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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과 호남 사람들 ... [4]

경상도전문가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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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과 임진왜란 과 호남 사람들 [8]

경상도 전문가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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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등 ,,호남지역 신문..에 

연재 까지 하고 있는  , 그외 여러가지 보실수가 있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 강릉 캠퍼스 학장으로 근무중. 역사인물기행작가.
前 전남지방노둥위원회 위원장님  블로그를  소개 합니다 (글 내용을 클릭하세요 /./.)

 

 
  임진왜란과 호남 사람들 68회, 진주성 싸움 패인|호남 정신의 뿌리를 찾아서2012.04.19 16:58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2부 임진왜란과 호남 사람들 68. 진주성은 왜 함락되었나 - 제2차 진주성싸움의 패인 입력시간 : 2012. 04.18. 00:00 진주성 전경 관군과 의병 왜군의 위세에 눌려 중과부족 부원군 유성룡 7년전쟁 반성...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59, 진주성 싸움 순절 - 최경회 , 김세곤 글|임진왜란2012.02.08 00:19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2부 임진왜란과 호남 사람들 59. 진주성에서 순절한 호남 의병들(5) - 전라우의병장 겸 경상우병사 최경회 입력시간 : 2012. 02.08. 00:00 부사정 "한 번 죽음으로 나라 은혜 보답" 상복 차림 의병장...

 
  진주성 촉석루 삼장사 시 , 최경회 . 2차 진주성 싸움|시로 만나는 여행2012.01.24 08:02

一杯笑指長江水 일배소지장강수 長江之水流滔滔 장강지수유도도 波不竭兮魂不死 파불갈혜혼불사 1593년 6월29일 진주성이 함락되던 날 , 진주성을 9일간이나 지키던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는 진주성 촉석루에 오른다. 최경회는 이...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55, 진주성에서 순절한 호남사람들, 김세곤 글|임진왜란2012.01.11 02:57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2부 임진왜란과 호남 사람들 55. 진주성에서 순절한 호남 의병들(1)- 창의사 김천일, 김상건, 양산숙 등 입력시간 : 2012. 01.11. 00:00 정렬사 사당 고된 역경 속 조선·호남 위해 '순절' 유휘진·서정후...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54회, 진주성 무너지다. 김세곤 글 무등일보|임진왜란2012.01.04 00:51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2부 임진왜란과 호남 사람들 54. 진주성, 9일간의 혈전 끝에 무너지다 입력시간 : 2012. 01.04. 00:00 진주성 '승산 없던 전투' 아쉬움 속 끝나 왜 10만명 일제히 공략…황진·장윤 등 전사 진주성...

 
죽천 박광전 기행 14, 장윤 진주성에서 순절, 김세곤 글|죽천 박광전2012.01.01 12:59

제14회 전라좌의병 부장 장윤, 진주성 2차 싸움에서 순절하다. (1) 작 성 자 김세곤 일 자 2011년 12월 26일 1593년 4월 들어 임진왜란의 판세는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1월초에 명나라가 개입하여 평양성이 탈환되었고, 2월 중순에...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53, 진주성 2차싸움, 김세곤 글|임진왜란2011.12.28 00:25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2부 임진왜란과 호남 사람들 53. 호남 의병, 외롭게 진주성을 지키다 입력시간 : 2011. 12.28. 00:00 '호남 사랑' 신념…왜적 10만명과 맞서 진주성 관군 2천500명 등 6천명 군사로 대적 '진주가 무너지면...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어서 13. 조선수군, 칠천량 해전에서 전몰하다
입력시간 : 2013. 02.13. 00:00

 


 

칠천량 해전도

원균의 무리한 공격으로 조선 수군 참패

권율에 볼기 맞고 분풀이성으로 피곤한 병력 동원

수군동태 간파한 왜군 작전에 말려들어 전몰 당해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권율에게 볼기를 맞은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수군 전 병력을 이끌고 한산도에서 부산으로 향한다. 군졸들은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다시 전투에 임한다. 7월12일에 조선수군은 칠천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13일에는 옥포에서 이틀 밤을 지낸 다음, 14일에 부산에 이른다.

부산 앞바다에 도착한 조선 함대는 마침 일본에서 나온 왜선 1천 여척과 마주쳤다. 원균은 왜선을 좇았다. 그런데 왜군은 접전을 회피한 채 도주하였다. 원균은 이들을 계속 추격하였다. 그 결과 조선 함대는 부산 앞바다의 물마루(水嶺)을 지나서 너무 멀리 가고 말았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원균은 후퇴를 지시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조선 함대는 갑자기 일어난 풍랑 때문에 대오를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다. 배 7척이 물길을 제어할 수가 없어 표류하였다. 다행히도 이 전함들은 경상좌도 조선군 관할지역에 도착하였다. 

함대를 겨우 수습한 조선 수군은 밤새도록 노를 저어 15일 아침에 가덕도에 도착하였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갈증에 시달리던 병사들은 물을 구하려고 섬에 상륙하였다. 하지만 가덕도에는 다카하시 나오스쿠, 스쿠시 히로카도 등이 이끄는 일본 육군이 매복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 수군이 상륙하자마자 일시에 공격하여 조선군 400여명을 살해했다. 

조선 수군은 큰 손실을 입은 채 물도 얻지 못하고 다시 배를 돌려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로 물러났다. 이곳에도 시마즈 요시히로의 일본 육군이 매복하고 있었다. 왜군은 조선 수군을 공격하기 위하여 가덕도와 거제도 및 남해의 연안 일대에 육군을 배치하여 수륙합동작전을 펼친 것이다.

칠천량은 조선 함대를 왜군이 포위하여 백병전을 벌인 곳이다. 경상남도의 해양탐사선이 이 주변을 탐색하여 거북선을 찾고 있으나 아직 성과가 없다.



왜군 복병은 또 다시 사방에서 나타나 조선군을 공격하였다. 원균은 어쩔 줄을 몰라 이들을 구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급히 배를 끌고 물러나 칠천도로 후퇴하였다. 

조선함대가 칠천도에 도착한 것은 15일 밤 9시경이었다. 원균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왜군은 함선 500여척을 칠천량에 배치시키었다. 왜군은 도도 다카도라와 구키 요시다카, 와키사카 야스나루가 이끄는 정예 수군이었다.

원균은 밤늦게 휘하 장수를 소집하여 작전회의를 열었다. 원균은 왜군의 기세가 너무 커서 당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한탄하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원균의 지시에 대해 경상우수사 배설이 팔을 걷어붙이며 큰소리로, “용맹을 낼 때는 내고, 겁낼 때에 겁낼 줄 아는 것은 병가의 긴요한 계책입니다. 우리가 부산 바다에서 기선을 잡지 못하여 군사들이 의기소침하게 되었고 영등포에서 패하여 왜적의 기세를 돋구어주어 적의 칼날이 박두하였는데, 우리의 세력은 외롭고 약하여 용맹을 쓸 수 없으니 오늘은 겁내어 싸움을 회피하는 전략이 타당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배설의 말을 듣자 원균은 노하여 “죽고 나면 그만이니 너는 많은 말을 말라”고 배설에게 고함쳤다. 이에 배설은 자기 배로 돌아가서 은밀히 소속 장수와 더불어 퇴각할 것을 꾀하였다. 

이날 밤은 보름이었는데 비가 크게 내렸다. 원균은 전선 4척으로 왜군을 경계하도록 하였다. 일본 수군은 가만히 왜선 10여 척으로 우리 배 사이를 뚫고 형세를 정탐하였다. 밤 10시를 넘어서 왜선 5∼6척이 불시에 내습하여 우리 배에 불을 질렀다. 우리 배 4척이 모두 불타고 침몰되었다. 원균은 크게 놀라 북을 치고 바라를 울리고 화전(火箭)을 쏘아 왜군의 내침을 알리었고 조선 수군들은 겨우 진을 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전투에서 가장 기본인 경계에 실패한 것이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정유재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에 잡혀갔다가 돌아온 영광 출신 강항의 '간양록'에도 칠천량 해전을 본 조선인들의 증언이 실려 있는데, 이를 읽어 보면 조선수군의 경계가 얼마나 취약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칠천량 해전 기념관. 2013년 6월 준공예정이다.



정유년 7월15일에 왜장이 날쌘 군졸들을 이끌고 우리 진영의 동정을 살피러 다녔다. 우리 전함의 군사들은 깊은 잠에 빠져 코까지 골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왜적은 화포 두발을 쏘았고, 우리 군사들이 당황해 하자 우리 진영으로 일시에 진격하여 한산도를 무너뜨렸다. 

야간 기습에 성공한 왜군은 16일 새벽이 되자 500여척의 왜선으로 조선 수군을 서너 겹으로 에워싸고 총 공격을 하였다. 조선 수군도 닻을 내린 가운데 응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어서 왜군은 일본 배 5-6대로 조선 배 1대를 포위하고 조선 배에 올라와 육박전을 벌이었다. 왜군은 상대적으로 높은 판옥선에 오르기 위해 배의 돛대를 눕혀 사다리로 사용하여 기어 올라왔다. 육박전은 왜구들이 사용하는 전술로서 이는 왜군들의 주특기였다. 

본격적으로 백병전이 벌어지자 원균은 후퇴하지 못하도록 수군을 독려하였으나 조선 수군은 계속 밀리었다. 마침내 조선수군은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맨 먼저 배설이 자기 휘하의 전선 12척을 이끌고 도망쳤고,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는 고성 방면으로, 원균의 전라좌수군은 추원포 쪽으로 퇴각하였다. 

이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저항한 장수도 있었다. 조방장 김완이 그러하였다. 김완은 다른 배들이 도망치는 상황에서 홀로 왜군과 맞서 싸웠다. 이를 본 원균이 김완에게 외쳤다. “두려움 없이 죽을 각오로 싸우는 모습을 보니 가히 충성을 다하는 임금의 신하라고 할 만하다.” 

그러자 김완이 대답하였다. “이처럼 급한 상황에 다른 진의 장수들은 어물쩍거리며 달아나기만 합니다. 빨리 장수 한 명을 베어 위엄을 보이십시오.”

그러나 원균은 김완 보고 용맹하다는 말 만 할 뿐 싸우려 들지 않았다. 김완은 고군분투하며 적선 수척을 분멸시켰으나 결국 부상을 입고 물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김완은 포로가 되어 일본까지 끌려갔다가 이듬해인 1598년에 간신히 탈출하여 조선으로 돌아왔다. 도체찰사 이원익은 “중론을 참고하여 보니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바다 가운데에서 전사한 이는 조방장 김완 뿐 이었습니다”라고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이 당시 이원익은 김완이 전사한 것으로 알았다.)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1561∼1597)와 충청수사 최호도 끝까지 싸우다가 적진에 고립되자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는 17세에 무과에 합격하여 경흥부사로 여진족과 싸워 공을 세웠고, 임진왜란 때는 전라우수사로 이순신을 도와 한산도, 부산포해전 등에서 공이 컸다. 그는 이순신이 잡혀가자 이항복·김명원 등 조정대신들에게 서신을 보내 무죄를 적극 변론하였다. 스스로 바다에 뛰어 들어 순국의 길을 택한 이억기는 당시 37세였다. 그의 신위는 여수 충민사에 이순신, 안홍국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

여수 충민사에 있는 이억기 영정.



한편 원균(元均 1540-1597)이 도망 친 추원포(秋原浦)는 서쪽으로의 뱃길이 막힌 육지였다. 원균은 추원포에서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갔다. 조선 수군의 최고지휘관이 이러하였으니 휘하의 전라좌수군들도 판옥선을 버려 둔 채 도망쳤다. 육지로 도망간 조선수군은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일본 육군에 의해 무참히 살육 당하였다. 원균도 왜군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원균의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원균은 체구가 비대하고 건장하여 한 끼에 밥 한 말, 생선 50마리, 닭과 꿩 3∼4마리를 먹었다. 평상시에도 배가 무거워 행보를 잘하지 못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싸움에 패하고는 앉은 채 죽음을 당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는데 곡성에 사는 생원 오천뢰가 이런 시를 지었다.



한산도 섬은 나라의 남쪽 관문인데 閑山一島國南門

무슨 일로 조정에서는 장수를 자주 바꾸었나. 底事朝廷易將頻

원균이 나라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不是元均初負國

원균의 배가 원균을 저버렸네. 元均之腹負元均

-난중잡록(1597년 7월16일)



김세곤 (역사인물기행작가,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 학장)

 

http://blog.daum.net/segon53/15860365  클릭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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