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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희망버스, 10월8일(토) 부산에서

5차 희망의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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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 노제(2011.9.7.13:00,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이소선 어머니 노제

(2011.9.7.13:00,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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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 시대의 미륵이셨습니다

[조시] 이소선 어머니 영전에 드립니다

 

백무산

 

어머니께서는

캄캄하고 거친 어둠의 길을 걸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부르튼 손 짓물러진 눈자위 얼음 박힌 발을 끌며

종종걸음으로 우리에게 달려 오셨습니다

 

공단 어두운 길에서 가슴을 치며 울고 있는 우리들 곁에

가마니에 덮여 트럭에 실려온 우리들 주검 곁으로

슬픔 가득한 얼굴로 숨이 차도록 달려 오셨습니다

 

밤새 가슴을 부여안고 기침을 해대는 어린 여공들 곁으로

쫓겨난 공장문 앞에 피투성이가 된 우리들 곁으로

떠나는 영구차를 따라

눈물도 닦지 못하고 신발도 벗겨진 채 허둥지둥 달려 오셨습니다

 

언땅에 주저앉아 비에 젖어 울고 있는 우리들 곁에

프레스에 잘려나간 손목 부여잡고 울부짖는 사람 곁으로

머리채 잡혀 끌려간 호송차를 가로막고 안된다! 안돼! 이놈들아!

내 자식들 내놔라 내자식들 죽이지 마라

어머니 우시며 통곡하시며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오셨습니다

무자비한 독재의 군홧발에 밟히며 짓밟히며

그렇게 오셨습니다

최루탄에 쓰러지며 곤봉에 머리가 터지고

바리케이트에 머리를 짓찧으시며

머리채 잡혀 감옥에 끌려가시며

만신창이가 되어 만신창이가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숨죽여 떨고 있는 우리 곁에

몸을 사리는 우리 곁에

절망에 지쳐있는 우리들 곁에

종교보다 더 강한 눈빛으로

종교보다 더 깊은 눈물로 우리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어머니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늘진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억울한 눈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재갈이 물리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세상

철벽같은 세상을 향해 온 몸을 던졌습니다

아들이 몸을 던져 구하려고 했던 세상 향해

어머니 평생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화인처럼 가슴에 새기고

 

"컴컴한 암흑 속에 어린 여공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어머니

보다 못 견뎌서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어머니, 내가 이루지 못한 일

어머니가 이루어 주세요, 약속하세요, 어머니"

 

아들은 왜 어머니에게

그 가난에 허기지고 모진 세월 살아오신 약한 어머니에게

왜 그 험한 길을 가라 했나요

그 잘난 세상에 말 할 곳이 그렇게도 없었나요

캄캄한 철벽같은 세상에 어머니라도 나서달라고 한

아들은 또 얼마나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요

그렇게도 억울하고 그렇게도 가여워서 그랬나요 하지만 어머니

모든 걸 아셨나요 이건 어머니와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

한 시대의 운명인 걸 어머니 다 아셨나요

 

그래서 어머니 그 약속을 평생 성경처럼 끌어안으셨나요

잘난 인간들 그다지도 많은 그 먹통같은 세상을 향해

온몸을 던져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들어주어야 한다

내가 안아주어야 한다 내가 아파해야 한다

내가 사랑해야 한다

그랬습니다 어머니 길이 없으면 내가 길이 되어야 한다고

길이 되어 우리에게 그렇게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던

새로운 세상은 좀체 오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새 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하루의 시작은 기도였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결코 이길 수 없고

사랑이 없으면 삶을 완성할 수 없고

새세상은 우리의 가슴에서부터 오는 줄 어머니 아셨기에

어머니 하루의 마지막은 기도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따듯한 밥상을 차려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머니의 그 사랑으로 차려진 밥상을

그 따듯한 말씀으로 차려진 밥상을

인정과 눈물의 밥상을 넘치게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넘치는 사랑을 하루에도 열두 번 잊어먹습니다

부끄럽게도 어머니 차려주신 둥근 밥상머리에 앉아

자식들은 또 대가리가 터지게 싸웁니다

어떤 자식은 저 혼자 다 처먹으려다 밥상을 엎었습니다

덩치 큰 놈은 작은 놈의 밥술을 뺏습니다

먼저 차지한 자식은 나중 온 자식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게 안타까워 그렇게 가슴 치시던 어머니 언제부턴가

어머니 저만치서 웃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모든 걸 알고 계셨습니다

이미 우리의 선지자였고 스승이셨습니다

 

그랬습니다

마흔 살까지 이소선은 전태일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흔 해는 이소선의 아들이 전태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전태일을 두 번 낳으셨습니다

한 번은 배앓이로 또 한 번은 가슴앓이로 낳으셨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가슴앓이 그 지독한 가슴앓이 끝에

피가 끓어 가슴에 붉은 피가 바다처럼 펄펄 끓어 넘친

그곳에 자신의 목숨을 부어

기어코 그 자식을 다시 낳으셨습니다

 

다시 낳은 자식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수많은 자식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40년 전에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시대의 미륵입니다

병들고 억눌린 중생들을 위해 다시 나신 미륵이셨습니다

어머니는 부활입니다

이것이 부활사건의 증거가 아니라면

이천 년 전 예루살렘의 사건은 협잡꾼들의 사기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가시지만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남은

만신창이가 된 몸만 벗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새로 입을 것입니다

거대한 바윗돌이 바람에 쓸려 모래밭이 될 때까지

인간의 대지에

민중의 몸에

다시 또 다시 살아계실 미륵이시니까요

 

 

고 이소선 어머니, 영면하소서

[이동수의 만화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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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주요장례일정 공지'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서울시 종로구 창신2동 651-6 전태일재단

이메일 : sosun2011@hanmail.net / 홈페이지 : http://www.chuntae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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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 정당,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발신 :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경유 :

제목 : 주요장례일정 공지 및 장례위원 모집 협조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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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원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어머니의 영면소식에 가슴아파할 정당, 시민사회단체의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2.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평소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민중들이 함께 참여하고, 만들어 가는 장례가 되도록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3. 주요 장례일정과 장례위원 모집 관련 협조를 아래와 같이 요청하오니 적극 참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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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래 -

 

1. 장례개요 및 주요일정

 

1) 장례명칭 :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2) 장지 : 마석모란공원(전태일 열사묘역 위쪽)

3) 주요진행일정

 

(1) 발인제

- 일시 : 2011년 9월 7일(수) 08:00

- 장소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 영결식

- 일시 : 2011년 9월 7일(수) 10:00

- 장소 : 대학로(검토중)

- 조직목표 : 5,000명 이상

※ 각 조직별 영결식 참가를 적극 조직바랍니다.

 

(3) 노제 및 장례행렬

- 노제일시 : 2011년 9월 7일(수) 14:00

- 노제장소 : 청계천 전태일다리

- 장례행렬(안) : 장례식장 => 대학로 => 전태일다리(한울삶, 쌍문동집 등 경유) => 창동(어머니 사시던곳/경유) => 마석모란

※ 전태일다리까지는 운구 및 도보로 행진, 이후에는 차량으로 이동

 

(4) 하관식

- 일시 : 2011년 9월 7일(수) 17:00

- 프로그램 : 운구, 예단, 취토, 달구벌, 평토 등

 

2. 추모주간 및 협조요청사항

 

1) 추모주간 행동지침

 

(1) 추모주간 : 2011년 9월 3일(토) ~ 7일(수) 5일간

 

(2) 행동지침

- 가능한 단위에서는 사무실 등에 어머니의 빈소를 설치하여, 모든회원들이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 SNS등을 활용하여 추모분위기를 띄우고, 빈소설치, 조문 관련 인증샷 등을 장례위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올려주십시오.

 

2) 추모문화제, 순례 등 장례행사 참여

 

(1) “어머니의 길” 순례(시민참여행사)

- 일시 : 9월 5일(월) 19:00

- 순례코스 : 전태일다리(집결) => 전태일분신지 => 평화시장 => 창신동 전태일재단 => 어머니 마지막 살던 집 => 서울대병원 영안실

- 방식 : 촛불행렬을 이뤄 행진, 주요코스에서 얽힌 이야기 등 교육,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

 

(2) “추모의 밤”

- 일시 : 9월 6일(화) 19:00

- 장소 : 미정(추후공지)

- 방식 : 전국동시다발(서울, 부산 한진앞, 제주 강정마을, 울산. 경남, 광주 등 6~7곳), 20분 정도 공동행사로 진행하고 나머지는 지역별 자체프로그램

 

※ 6일 낯 11시경, 어머니의 영정을 실은 “어머니의 희망버스”가 한진 85호 크레인 앞으로 출발합니다. 동행하실 분들은 희망버스 또는 장례위원회로 미리 신청바랍니다.

 

3) 장례위원 참여방안

 

(1) 장례위원의 범위

- 전체 장례위원을 7,000명이상 조직할 예정이며, 참여방안은 아래와 같습니다.

▶ 조직별 결의에 의해 참여하는 방법(ex. 00조직 중앙집행위원 00명 등)

▶ 온라인을 통한 참여방법 또는 장례식장에서 공개접수하는 방법

① 온라인 : 장례위 페이스북 www.facebook.com//sosun0903, 트위터 @sosun0903 등에 참여의사를 밝히고 계좌로 참가비와 이름을 올리는 방법

② 장례식장 공개접수 => 조문시 장례식장 공개접수처에서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

 

(2) 장례위원 참가비

- 장례위원 1인당 30,000원 내외(*금액은 자율! 돈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입금계좌 : 1005-201-664676 우리은행 예금주 전태일재단

※ 조직별 장례위원 참가비는 각 조직에서 취합하여 일괄 입금바랍니다.

 

(3) 접수방법

- 마감 : 9월 5일(월) 오후 10시 마감(시간엄수!) *9월 7일(수) 아침 일간지 광고

- 작성방법 : 조직별 참가자의 경우 작성은 엑셀로 작업(가나다순, 직책 등 생략 이름만) 개인은 ‘자율참여시민’으로 표시

- 구분(소속분야) : 노동계, 정당,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 종교계(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여성, 학계, 인권, 법조계, 자율참여시민

- 취합 이메일주소 : 장례위 공유메일 sosun2011@hanmail.net

 

  

' 장례 이후 절차'

 

1. 삼우재

○ 9월 10일(금) 낮 12시

○ 유가족, 유가협, 재단, 청계 등을 중심으로 진행

○ 묘비 제막

 

2. 사십구재

○ 10월 일, 오전 11시

○ 기획위원회에서 주관하고, 가족, 유가협, 재단, 청계, 장례위원 등 중심으로 100여명 참가하여 진행

 

3. 전태일 추모제

○ 11월 13일

○ 최대한 조직하여 진행

 

 

' 장례위원회 구성'

 

○ 유족

- 전태삼(아들), 전순옥(딸), 전태리(딸), 윤매실(며느리), 크리스토퍼조엘(사위), 임삼진(사위)

○ 전태일 친구들

- 김영문, 이승철, 임현재, 최종인, 신진철

 

○ 유가협

- 어머니와 아버지들, 안 계실 경우 가족대표

 

○ 고문

- 사회 각계각층의 원로들, 70이상의 기준, 일정한 대표성 적용

- 백기완, 박형규, 백낙청, 신영복, 남상헌, 오종열, 박중기 등....... 명단 확보

 

○ 상임 장례위원장

- 배은심(유가협 대표), 김영훈(민주노총), 이용득(한국노총)

 

○ 공동 장례위원장

- 야당 대표, 농민, 빈민, 여성, 문화, 시민사회단체, 민중의힘 등 일정한 규모와 상징성이 있는 조직의 대표. 약 25명~30여명을 넘어서지 않도록 하고 집행위원회에서 기준을 가지고 작성

 

○ 장례위원

- 공개적 대중 참여형 장례위원, 대규모로 구성, 전체 7000명 목표

- 양대노총은 4,000명 책임

- 명단 취합 : 각 단위별로 9월5일까지 취합

 

○ 호상

- 조헌정(전태일 재단 이사장), 장기표(전태일 대학생친구), 최종인(전태일 친구)

 

○ 대변인

- 박계현 / 부대변인 : 정호희(민주노총), 최삼태(한국노총)

 

○ 공동집행위원장

- 박석운

- 양대노총 사무총장

 

○ 상황실

- 역할 : 상황 종합, 업무 집행 및 점검

- 한석호(전태일재단) / 오도엽, 김정호

 

○ 기획위원회

- 역할 : 장례관련 계획 수립

- 박래군(유가협) / 이종문, 안경호, 한경아, 이장주, 최한용

 

○ 의전위원회

- 역할 : 내외빈 및 유가족 안내

- 김명운(추모연대) / 이승헌, 이숙희, 곽민, 구본훈

 

○ 치산위원회

- 역할 : 묘지 교섭, 묘지에 소용되는 제반물품, 인원준비, 묘비, 묘지의 제반 준비, 하관식의 현지 인원 및 기타 제반물품, 사망 진단서등의 서류준비, 장지에서의 음식준비 등…….

- 박종부(유가협) / 김정현, 김현태, 박선하

 

○ 총무위원회

- 역할 : 장례관련 재정 집행 담당, 행사물품구입 및 조달, 제수음식 준비 등

- / 이형숙, 송기역,

 

○ 조직/운구위원회

- 역할 : 장례 참석자 조직, 운구물품 수습 및 이동, 경호, 만장대열 인솔, 대오정리

- 윤용배(민중의힘)

 

○ 홍보위원회

- 역할 : 선전물제작 및 배포, 신문광고, 만장구호, 현수막 구호 작성, 광고조직

- 박원석(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박제민

 

○ 대외협력위원회

- 역할 : 장례위원 위촉, 추모 행사장 섭외, 고문, 각 단체 회의 안내

- 양태조(민주노총), 한정애(한국노총) / 오윤석, 권태훈,

 

○ 문예위원회

- 역할 : 장례의 제반물품 (예술적 형상화)의 제작 (영정, 대형만장, 일반만장, 깃발 및 기타 제반물품), 추도관련 문예

- 이수빈(민예총) / 김경화, 이사라, 민정연

 

 

어머니의 길(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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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1월 9일(음력) 경북 달성군 성서면 감천리에서 아버지 이성조 씨와 어머니 김분이 씨 사이에서 1남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남

 

1933년 대구에서 농민운동과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 이성조씨가 일제에 의해 학살

 

1945년 봄 근로정신대로 대구 칠성동 방직공장으로 끌려가 강제노역 중 해방직전 공장을 탈출하여 칠곡 고모댁에서 숨어 있다가 해방을 맞음

 

1947년 여름 대구 남산동에서 봉제 공장을 하던 전상수씨와 결혼

 

1948년 8월 26일(음력) 장남 전태일을 출산했고, 이후 태삼, 순옥, 순덕을 낳아 슬하에 2남2녀 둠

 

1950년 전쟁 직전 부산으로 이사, 남편 미군부대에서 옷 수선

 

1954년 남편의 사업 실패로 서울로 이사. 염천교 주변에 살며 팥죽장사, 채소장사 등을 함

 

1960년 남대문 대도시장에서 옷 공장을 하던 남편이 브로커에 속아 사업 망함. 이후 용두동 천막촌에서 생활을 하다 대구로 감

 

1964년 생계를 위해 이소선 홀로 서울로 와서 식당에서 일하다 병을 얻어 요양한 뒤, 중앙시장에서 우거지 장사를 하며 주변 거지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봄

 

1965년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남산동 판자촌에 셋집을 얻어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됨. 남산 판자촌 화재로 이재민이 되어 도봉동을 거쳐 쌍문동 208번지에 정착

 

1969년 남편 전상수가 뇌출혈로 사망

 

1970년께 아들 전태일에게 근로기준법을 배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진행하며 분신 항거

 

1970년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

 

1971년 동화시장 후생식당에서 노동자를 위해 국수 삶아 주는 일을 함

 

1974년께 일제 강점기에 헤어져 연락이 끊긴 오빠가 일본에서 찾아옴

 

1975년 근로 시간 단축 농성, 1976년 시다 임금 직불제 농성 등 숱한 투쟁에 참여

 

1976년 4월 16일 노동교실 실장

 

1976년 7월 25일 동일방직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연대 투쟁

 

1977년 7월 22일 민청학련 수배자 장기표 재판과 관련하여 법정모독죄로 구속되어 실형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름

 

1979년 8월 11일 YH노동자 신민당사 농성투쟁에 연대

 

1979년 10월 28일 박정희 사망

 

1980년 봄 청계노조 임금인상 투쟁을 하며 대학교에 초청되어 반독재 민주화 투쟁 강연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으로 수배

1980년 10월 30일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어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그해 12월 12일 형 집행면체로 석방

 

1981년 1월 30일 계엄당국에 의해 해산된 청계피복노동조합의 복구를 위해 벌인 아프리 사무실 점거노성 사건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계엄법 위반으로 2월 9일 구속 수감되어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옥고 치름

 

1983년 6월 20일 <전태일 평전><돌베개 펴냄> 출판

 

1984년 4월 8일 청계피복노동조합 복구 후, 노동조합 고문을 맡음. 이후 1985년 9월부터 청계노조 합법성 쟁취 대회를 학생들과 연대하여 동대문 일대에서 거리시위 등 전개

 

1985년 12월 12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

 

1986년 3월 17일 구로공단 신흥정밀 박영진이 분신 항거하자 병원으로 달려가 유언을 들음

 

1986년 8월 12일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건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아 1993년까지 역임

 

1987년 8월 27일 거제도 대우조선 이석규 장례투쟁에 참석하여 장례위원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내사를 받아 수배.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이후 쌍문동 집에서 연행되었다가 석방

 

1988년 6월 26일 <선한 마리아인상>을 받음

 

1988년 11월 17일 기독교회관에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농성을 135일간 전개

 

1989년 1월 5일 대통령 선거 부정을 폭로한 이동균 대위 양심선언 투쟁을 조직

 

1989년 1월 20일 <전국민족민주연합>이 발족, 고문으로 추대

 

1989년 3월 범민족대회 판문점 예비회담 남측대표로 참가하려다 불구속 입건

 

1989년 12월 시화전을 열어 유가협의 보금자리인 ‘한울삶’을 만들어 입주

 

1990년 4월 18일 제1회 <사월혁명상>을 받음

 

1993년 5월 <전국해고자협의회 지원대책위원회> 상임의장

 

1994년 5월 1일 <영화 전태일 제작위원회> 결성

 

1996년 2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베를린 영화제 출품으로 독익을 방문하여 교민 상대로 강연회 등을 진행

 

1998년 11월 4일 의문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

 

1999년 11월 30일 이소선 구술, 민종덕이 정리한 <어머니의 길>(돌베개 펴냄) 출판

 

2000년 11월 12일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노동조건 개악 저지를 위한 2000 전국 노동자대회’에 참석하여 노동자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

 

2001년 10월 27일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아 노동기본권 쟁취 결의대회’에 참석하여 격려사

 

2003년 10월 17일 한진 중공업 김주익, 곽재규 장례 투쟁에 참여하여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의 임금을 가압류하는 기업주와 정부를 규탄하는 발언

 

2005년 6월 18일 구로동맹파업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연대사

 

2005년 9월 30일 청계천 버들다리에 전태일 동상 건립

 

2005년 10월 어릴 적 헤어져 생사를 몰랐던 언니의 사망 소식을 처음 만난 조카들에게 들음

 

2006년 4월 11일 ‘칠팔십년대 노동탄압규명 진실 규명 기자회견’ 참석하여 성명 발표

 

2006년 5월 14일 평택에서 열린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집회 참석하여 격려 연설

 

2007년 5월 1일 창원에서 열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 참관하여 이북 노동자들 만남

 

2007년 8월 20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성명 발표

 

2007년 11월 15일 삼성 해고자 김성환에게 영등포 교도소에서 전태일 노동상 수여

 

2007년 11월 23일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 농성중인 명동성당 지지 방문

 

2008년 3월 26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성명 발표

 

2008년 6월 기륭 노동자 단식 농성장 방문. 기륭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 및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노동정책 규탄과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

 

2008년 12월 5일 팔순기념 헌정문집 <조선 질경이>(아름다운 전태일 펴냄) 및 이소선 구술, 오도엽이 쓴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후마니타스 펴냄) 출판 기념회

 

2008년 12월 6일 이소선 어머니 팔순 맞이함

 

2010년 11월 13일 전태일 40주기

 

2011년 9월 3일 오전 11시 45분경, 양대노총 위원장과 가족, 지인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82세를 일기로 운명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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