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에서- 일기.

2009/01/08 23:53

 

 

작은책에서 요청한 원고부탁을,

오늘이 마감인데 '급' 부탁을 받아버리고 허겁지겁 글을 썼다.-_-; 

10대의 이야기면서, 글쓴 사람의 삶이 드러나면 좋겠다 그래서,

공현과 논의(?) 끝에 전에 여기 블로그에서 썼던 자퇴할 때의 기억을 가져오면서

지금 사는 이야기를 좀 더 덧붙였다.

 

음 근데, 새삼스럽게-

자퇴 결심하고, 그 때 했던 고민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그랬구나, 싶으면서, 참 일들이 많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 때는 그래도 오래오래 고민 많이 했는데

요즘은 고민도 별로 안하고 너무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것 같다고-

또 그렇게 생각했다. -_-

 

무튼 다시 덧붙이는 글을 쓰면서 그래도 잘했다면서 스스로 토닥였다. *

 

 

 

 

*

 

2008년 4월 8일, 어느 고등학교에서- 나의 일기.

 

 

담임이 날 불렀다.

"아까 어머니 오셨더라, 봤냐?"

"네."

"근데 넌 왜 학교 그만둘라 그러냐?"

"......"

"자자, 앉아봐. 얘기 좀 들어보자 뭐 때문이냐? 나 때문이냐?"

"아뇨."

"내가 싫은거면 그냥 하루에 20분만 보면 되는거 아니냐, 좀 참을 수 있는 거 아니냐. 그것도 못 참겄냐?"

"제가 선생님 땜에 그러는게 아니라요, 학교에서의 공부 같은거나, 학교에 있는 시간이 아무래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요.."

"그게 왜 의미가 없냐?"

"시험 잘 보고, 수능점수 잘 받아서,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 하는 그런 공부가 싫어요. 점수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내 자리가 정해지고, 그런....."

"잠깐잠깐, 근데 말이다. 너는 지금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어. 나도 학교 다니고, 너만한 시절에는 학교 그만두고 싶었던 적 많았다. 나는 니보다 더 오래 살았다. 이럴 땐 더 오래 산 사람 말을 들어야되는거야, 알겄냐? 나는 50년을 살았지만, 니는 18년 밖에 안 살았단 말이다."

"네, 선생님이 저보다 오래 사시고, 아무래도 저보다 경험 많으신 것도 사실이겠지만요, 그렇다고 제 판단이 잘못되고, 선생님 판단이 옳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니지. 어른 말이 맞는거야. 니는 지금 동굴 앞에 서있어. 캄캄한 동굴 말이다. 거기로 들어갈라고 하고 있단 말야. 근데 안돼. 거기서 비껴나야돼. 내가 만약에 그 때 니처럼 학교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뒀으면은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몰라. 배추장사 하고 있을지도 몰라."

"선생님, 그 말씀은..."

"어쨌든 안돼. 지금 내 말 안 들으면 니는 나중에 후회한다."

"선생님, 전 예전부터 계속 고민해왔던거구요,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니가 고민해봤음 얼마나 해봤겠냐. 그럼 한 달 동안 나오지 말아봐, 어떻게 되나. 학교에 있는 게 더 행복할걸. 학교에 막 오고싶을걸."

"....."

"니 지금 이래서는 안돼. 니가 뭐 해금 한다고 그러나본데, 예체능도, 정상적인 코스를 밟지 않으면 안돼. 인정 못 받는단 말이야."

"전 인정 받고 성공할려고 하는거 아니예요."

"국악고 같은데 가고싶어서 이러는거면 선생님이 국악고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한테...."

"전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예요."

"....아무튼, 공부 지금 안해놓으면 안돼. 머리에 든 게 없으면 안된다고."

"지금 하는 공부가 제 머리를 전혀 채워주지 못하면요?"

".....아무튼간에 안돼. 다시 생각해봐. 니가 너네 가족들이랑 다 같이 얘기를 했든, 온 친척들하고 얘기를 했든간에, 무조건 안돼. 선생님 말 들어."

"......"

"선생님도 힘들어. 우리반 애들이 좀 많냐. 오늘도 이따 병원 가봐야돼."

"그럼 저 하나 빠지면 반 인원도 줄고 좋겠네요. 전에 선생님도 그러셨잖아요. 우리반 사람 너무 많아서 전학 좀 보내야겠다고."

"그거는, 안 나와도 될 애들이 안 나와야 편해지는기고. 니는 안돼."

".........선생님, 진짜..."

"종쳤다. 올라가봐라. 암튼 생각 고쳐먹어라."

 

 

 

 

2009년 1월 8일, 오늘, 학교 밖에서- 나의 일기

 

 

난 학교를 다니지 않는 탈학교 청소년이다. 이 대화는 학교를 그만두려고 결심한 나를 위해(??) 엄마가 학교에 다녀간 후, 담임이 나를 불렀을 때, 그 분과 내가 한 이야기이다. 학교를 그만둔 건 작년, 그러니까 2008년 4월 쯤이다. 지금은 2009년- 몇 달 뒤엔 자퇴를 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랜만에 그 때 담임과 한 얘기를 적어놓은 내 글을 보면서, 내가 탈학교 청소년-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라는 한국 사회에서는 나름 특수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게 새삼 뚜렷하게 느껴진다.

학교를 다닐 땐 정말, 아니 뭐, 중학교 때도 거의 비슷하긴 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를 가서 더 심하게 압박을 느꼈다. 아침 6시반 쯤 일어나서 정신없이 씻고, 옷 갈아입고, 꾸역꾸역 아침 먹고 지각할까봐 발 동동 구르며 버스 기다리고, 교문 들어설 때는 혹시라도 뭐 잡힐까봐 나도 모르게 머리를 매만지고, 책가방을 다시 부여잡고. 교실에 도착하면, 교과서와 문제집에 고개를 처박기를 밤 10시 넘도록. 학원이다 뭐다 다니다보면, 집에 도착하면 적어도 12시반. 그러고 바로 뻗어버리기. 그리고 아침 되면 다시 반복.

 

 

학교를 그만둘까 말까 하는 고민은,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의, 입시제도 안에서 굴러가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꼭 해보지 않았을까 한다. 내가 자퇴를 확실하게 결심한 건, 공부 열심히 해서 스카이 들어가서 취직 잘해서 돈 많이 버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밟고 내가 그 위에 올라서야 한다는, 정확히 그곳에서 얘기하진 않지만,(아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노골적으로 얘기한다-)그런 걸 가르치는 학교가 싫어서, 그리고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앉아있어야 한다고 하는 걸 더는 견딜 수 없어서였다.

학교에 다니는 많은 청소년들이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테지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건, 청소년인-그 나이 때의 사람들은, 당연히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한다는 크고 단단한 고정관념과, 대학을 가고,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는, 오로지 한 길만 보이는 불안한 현실과, 그 밖에 여러 가지 것들을 쉽게 깨뜨리기가 힘들기 때문일거다.

 

 

이런 고민하던 나는 지금, 참 편하게(?), 규칙적인 생활 뭐 그런 거 없이 잘 살고 있다. 머리모양, 입는 옷, 화장실 가는 시간, 시험 점수, 성적표, 학교등록금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가끔 후회 안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후회 안 한다. 읽어야 될 책이 엄청 두껍다던가, 밤 샐 일이 많아졌다던가, 탈학교 청소년이에요 이러면 좀 이상하게 본다던가, 주민등록증 만들라는 노란 종이가 날아온다던가, 하는 생각하지 못했던 좀 힘든 일들이 있긴 하지만, 난 학교를 그만 둔 걸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렇게 사는 게 더 재미있고 더 사람 사는 것 같으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s

학교 밖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