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과 학생·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가 물로 보이니?
-교사시국선언 대량징계 탄압에 대한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의 입장-
지난 6월 18일 1만6천여 명의 교사들이 민주주의의 후퇴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등을 비판하는 교사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26일 교과부에서는 교사들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문제 삼으며 서명을 주동하거나 서명에 적극 동참했다고 판단되는 교사 88명을 선별해서 해임이나 정직 등의 중징계를 하고 검찰에 고발을 했다. 더군다나 정부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서한을 전달하려고 하는 교사들 16명을 연행하기까지 했다.
교과부가 이번 징계의 주요 근거로 삼고 보수 단체 등이 교사시국선언을 비난한 주요한 논거 중 하나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교사의 '정치활동 금지'이다. 그들은 그 핑계로 항상 청소년들을 걸고 넘어가곤 한다. ‘정치적인’ 교사에게 순진한 청소년들을 물들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비정치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고 ‘정치적 백지 상태’여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사들에 대한 어이없는 징계에 화가 나는 동시에, 그 징계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와 자율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까지도 교과부, 교육청 등에서는 교육정책에 대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는 집회나 촛불집회 등 청소년들이 ‘정치적인’ 활동을 할 때마다 전교조가 선동했다는 등 전교조 배후설을 만들어서 ‘순진한’ 학생들을 나쁜 교사들이 선동한다고 헛소리를 해댔다. 청소년들을 무슨 정치적 아메바로 여기는 것인가? 우리는 최근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을 비롯하여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들이 학교와 정부에 의해 탄압당했던 것과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탄압당하는 것이 같은 맥락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학교들은 교사들과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를 모두 ‘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육이 정치권력의 하수인이자 도구가 되었던 나치 독일 등의 역사적인 사례 때문에 나온 개념이다. 이는 교육이 비정치적이어야 한다거나 교사나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교육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되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한 개념이다. 오히려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들 입맛에 안 맞는 교과서를 다 뜯어고치게 하고 정부정책을 학교에서 홍보하게 하며, 자기들 말 안 듣는 교사들은 다 해임시키고 있는 교과부에게 적용할 만한 조항인 셈이다. 지금 교과부에서 전교조에게 징계를 내리면서 들먹이는 ‘정치적 중립성’은, 지금 정권의 입맛에 잘 맞게 버무려 먹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징계에 항의하는 교사들의 목소리조차 짓밟은 정부의 행태는 이처럼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만 허락하겠다는 폭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정치적 권리는 기본적 인권이며, 정치적이지 않을 것을 강요당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답게 살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작년 촛불집회 당시에 광우병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학생을 두들겨 팬 교사처럼 교사가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특정한 생각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강요가 아닌 이상, 교사들도 정치적인 권리가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 또한 순진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학교의 교육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며, 교사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꼭두각시도 아니다. 우리는 학교에 대해서 교육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말하거나 활동할 자유가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도 교사들도 당연히 그리고 충분히 정치적인 존재들이다. 청소년, 특히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와 교사들의 정치적 권리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가 꽃피고 다양한 사상들이 이야기될 수 있는 학교를 원한다.
1. 시국선언에 참가한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즉각 중단하고, 징계에 대한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가 연행당한 교사들을 석방하라!
2. 교사들과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억압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법과 학칙을 폐지하고 교사와 학생 모두의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
2009년 6월 30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