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나로 성명] "우리는 두렵다, 그래서 말한다."
- 국가정보원 발, 우리 사회에 퍼져가는 ‘종북몰이’ 탄압에 대해
정말이지 말 그대로 시절이 수상하다. 국가정보원은 자신들이 선거 때 온라인에서 여론 조작을 벌여온 것이 드러나자 ‘종북세력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종북세력’을 막기 위해서란 명분만 있으면 법이 정한 권한을 벗어나도 된다는 생각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던 국가정보원은 지난 8월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 등이 “내란예비음모”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혐의로 압수수색을 하고 통합진보당 당원들 등을 체포했다. 그 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국회에서 거의 광속(狂速)으로 통과되었고, 이석기 의원은 구속된 상태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이후다. 극우언론들은 체포동의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들도 ‘종북’일 수 있다고 몰아간다. 극우단체와 반공주의자들은 폭력과 협박까지 감행한다. 입건된 이들과 관련된 사람․단체에 대해서는 각종의 혐오발언, 위협, 차별 등이 가해지고 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강의를 한 사람이 신고당한 사례도 있다. 청소년 시국선언을 한 단체가 운영상 비청소년 개입 등 문제로 갈등을 빚자, 극우언론은 ‘청소년은 정치에 물들어선 안 된다’라는 논조를 깔고서 이 사건을 ‘<이석기 키즈>를 만들기 위해 종북세력이 청소년에게 접근하여 이용하려 한 것’이라고 갖다 붙인다. 심지어 충북교총은 학생인권조례도 내란예비음모와 연관된 것 아니냐며, 조례 초안을 작성한 사람을 수사하라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혹시 너도 종북 아니냐, 거기 연관된 것 아니냐고. 그 중에는 두려움 때문에 묻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혹시나 너나 나도 ‘종북’으로 낙인찍히고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우리는 두렵다
그렇다. 우리는 두렵다. 이것이 누구나 ‘종북 아님’,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 체제에 동의함’을 인증해야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노골적인 폭력과 차별의 시작일까 두렵다. 극우언론 등은, 저들은 이미 유죄이고 저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으면 너도 유죄가 될 것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우리 사회 전체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사람들이 변화를 상상하고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있다.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만 쩌렁쩌렁 울리고, 체제를 어떤 식으로든 바꾸려는 목소리는 작아지게 하고 있다.
청소년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청소년들의 주체성이나 정치적 권리 문제는 신경도 안 쓰면서 ‘종북세력’들이 <이석기 키즈>를 만들려 한다는 언론들을 보라. 학생인권조례가 내란과 연관되어 있는지 수사하라고 하는 교사단체의 성명을 보라.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이 불온세력에게 조종당한 거라고 말하는 꼰대들을 보라. 우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청소년에게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나이에 따른 위계와 차별, 나이주의를 비판한다.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고 학생들을 죽음과 불행으로 내모는 교육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청소년을 억압하는 국가주의․자본주의 등을 반대하고 청소년의 해방과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우리는, 충분히 불온하고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체제 전복 세력이나 ‘종북세력’으로 몰릴 수 있고 처벌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 때문에 우리의 활동을 망설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우리에게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다.
1995년, 청소년단체 ‘샘’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그때도 공안당국 등은 ‘샘’이 이적단체를 결성했고 체제를 전복시키려고 했다고 했다. 결국 이적단체 결성은 근거가 없음이 드러났고, 민족문화의 일환으로 택견을 배운 것이 무장세력 양성이었다고 했던 것 등 공안당국의 개드립은 웃음거리로 남았다. 그렇지만 ‘샘’ 활동가들은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적 조항인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당시의 청소년단체들은 탄압에 시달려야만 했다. 지금은 과연 다를 것인가? 우리 아수나로도 뚜렷한 근거 없이 언론과 온라인 등에서 ‘전교조가 길러낸 홍위병’이라는 등의 비난을 받아왔다. 중국 공산당이 배후에 있다는 이상한 음모론도 들어봤다. 근거 없는 비난과 억측에 불과해서 무시했던 그런 이야기들이, 이제 실체를 가질지도 모른다. 정부와 극우언론 등의 합작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그것을 가능케 할 것 같아 보인다. 그것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두려움을 알고서도 맞서 싸우는 것이 용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의 두려움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지 말라고,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하려고 한다.
만약 정말로 이석기 의원 등이 북한 정권을 옹호하거나 전쟁을 대비한 무력 활동을 논했다면, 국회의원으로서 용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역시 평화를 지향하며 보편적 인권을 지지하기에,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나 남북한의 군사주의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입장이다. 또한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만약 인권 침해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뭇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는 사람들이 낙선운동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표현할 문제다. 마찬가지로 인권 침해를 옹호하고 군사주의를 선동하는 다른 수많은 정치인들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겠지만 말이다.
정말로 내란을 예비했다면, 이는 폭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므로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맞는 말이다. 지금 내란예비음모죄로 입건된 사람들의 유무죄만 논할 때는 말이다. 그 문제에서는 섣부른 피의사실 공표나 적법절차의 문제 같은 게 중요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내란예비음모죄라는 무리한 죄명을 들이댄 것은 아닌지,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 등 반인권적 독소 조항은 어떻게 폐지할지, 그런 것들도 이야깃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시작되어 온 사회로 퍼져 나가고 있는 흐름은, 이석기 의원 등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정권에 대한 입장이나 군사주의적 사고방식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가정보원이 시작했지만, 국가정보원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사회 전체의 경직성의 문제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며 체제를 무조건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빨갱이 사냥’의 문제이다. 주류와 다른 사상을 가지고 다른 주장을 하고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을 혐오·배제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가고 있다.
입건된 사람들이 유죄냐 무죄냐와 무관하게, 그들과 생각이 같으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상과 정치를 위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말한다. 다른 존재, 위험한 존재라고 섣불리 낙인을 찍은 뒤 돌을 던져도 된다고 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말한다. 정부와 국가정보원은 ‘종북’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감시하고 탄압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공작을 중단하라. 극우언론․단체 등은 ‘종북’몰이와 낙인찍기, 혐오 폭력과 차별을 멈춰라. 청소년인권 등 사회 전영역에 반공주의와 탄압의 잣대를 들이대는 짓을 그만둬라. 청소년을 포함해 모두에게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자유, 변화를 위해 상상하고 활동할 자유를 보장하라!
2013년 9월 13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