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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6 빈곤사회연대 정책위원회 주최, 반빈곤 정책포럼, 세션3, 토론문

주최
빈곤사회연대 정책위원회
포럼 제목
반빈곤 정책포럼 - 문재인정부 시대, 반빈곤운동의 길찾기
일시
2017-12-06
장소
노들장애인야학
세션
세션 3: 사회서비스공공성확대,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문 제목
복지의 방향과 공단의 방향, 사회서비스공단 논의에는 없는 것
작성자
전덕규(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사무국장)

들어가며 : 시설서비스, 사회서비스, 공공과 시장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가 정부에 의해 저절로 확대·유지된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복지는 투쟁을 통해 확보되어 왔고 시혜에 의한 복지는 쉽게 축소되었다. [발제문]에서는 한국의 사회서비스 변화과정을 70년대 생활시설서비스 중심, 90년대 이용시설 및 지역사회서비스 중심, 2007년 이후에는 사회서비스 바우처사업 중심으로 구분한 연구를 인용한다. 이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70년대부터 현재까지 복지의 변화 방향은 시설중심의 복지에서 사회서비스의 방향으로 변화하여 왔다. 그 이면에는 시설에 갇혀 사는 것이 얼마나 반인권적인지에 대한 문제인식,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를 보장하는 방법이라는 인식과 투쟁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장애인 운동에서는 ‘탈시설 자립생활’로, 노인·장기요양 분야에서는 ‘현대판 고려장’을 벗어난 ‘Aging in place’로 표현되고 있다. [1]

한편으로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는 미흡한 ‘재정적 지원과 소극적 관리감독’이었다. 그 지원 대상이 허가된 비영리민간인지, 신고된 영리민간인지, 수요자인지가 달라졌을 뿐이다. 정부는 그마저의 재정적 지원도 줄이기 위해 예산을 절감하기 위한 시도들을 멈추지 않았고, 장애인활동지원에 있어서 그 시도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①복지를 낙인화하는 부정수급 색출과 ②시설모델에 기반을 둔 정책으로 사회서비스를 대체하려는 시도[2]였다.

사회서비스분야가 바우처 제도로 시행된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시장화 정책으로는 공공성을 확보하기는커녕 애초에 기대한 시장의 경쟁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제도에 대한 문제인식 속에서 사회서비스공단 논의가 촉발되었으나, 여전히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고 있으며 복지를 권리로 보기보다는 예산낭비로 보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그리고 그 결과로 과열된 사회서비스공단 논의 속에 예산이 많이 들며 국가책임성을 위해 전면적 개편이 필요한 분야는 모두 제외되고 수급권자 당사자는 논의 자체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본 토론자의 문제인식이다. 또 시장정책이 반영된 사회서비스 바우처 제도 중에서도 비교적 공공적 요소로 제도가 구성되어 있는 장애인활동지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국가의 책임 없는 개별적인 제도변화만으로는 아무런 문제해결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본 토론문은 활동지원현장의 문제를 통해 공단설립의 당위를 살펴보고, [발제문]에서 분석한 사회서비스진흥원 논의를 검토하고 [발제문]과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 개진하는 순으로 토론을 진행하려 한다.

장애인활동지원에 있어서 현행 제도의 문제와 공단의 방향

바우처 제도의 한계 : 바우처 제도 폐지를 통한 국가책임 실현이 답

활동지원제도의 생성 이유와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존중이 중요한 한 축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유연성 혹은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 문제는 이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한 위험이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전가됨으로써 임금불안정과 고용불안을 초래한다.

자기결정권 존중과 고용안정성이 충돌하는 극단적 사례를 살펴보자면 휴업수당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서비스이용자와 서비스제공기관, 그리고 노동자가 합의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서비스이용자의 사정이 생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경우를 가정해보자. 서비스이용자가 갑작스럽게 서비스 이용을 거부해도 활동지원기관이나 활동지원사는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 활동지원기관은 이용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며, 실질적으로 많은 활동지원사들은 서비스 제공을 포기하고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부지기수이다. 허나 현행법은 근로자의 귀책사유 없는 임금상실의 위험을 보호하기 위해 휴업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3] 법의 취지를 해석해 보자면, 경영자는 노동자에 대한 지휘 감독권을 가지되, 시장의 수요변동에 대한 예측 및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노동자가 휴업수당에 관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현재의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사용자를 활동지원기관으로 함으로써 이 유연한 수요에 대한 위험을 활동지원기관에 지우고 있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감안할 때, 수요의 유연성과 고용의 안정성 요청이 충돌하는 이 같은 위험지점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현실은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으며 규범적으로는 위탁받은 민간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속에 국가는 없으며, 국가책임성은 현행의 바우처 제도로는 달성할 수 없다.

유연성에 대한 위험은 오로지 노동자와 기관에만 전가되지 않는다. 현행 바우처 제도는 중증장애인의 생존권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사용가치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교환가치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생활 및 생존에 필요한 서비스 시간 단위로 급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단위로 바꾸어 바우처를 지급한다. 이 때문에 서비스 이용자들은 명절을 두려워한다. 제공인력에게 지급되는 가산수당[4] 때문에, 명절이 길면 길어질수록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 시간이 줄어든다.[5] 이는 공공재 영역에서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가 실질적 급부차원에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로 지급됨으로써 발생되는 폐단이라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장애인의 권리를 비용획일적으로 계산하여 이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현행 바우처 제도는 장애인이용자와 노동자에게 모두 한계를 가지는 제도이다. 장애인은 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 시간을 급부로 제공받도록 하며, 노동자에게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책임의 직접고용 및 월급제 실현이 필요하다.

허가제/신고제, 영리/비영리라는 구분

공급자의 성격

[발제문]에서 한국 사회서비스의 제도변화를 살피며 언급하는 몇 가지 제도들이 있다. 허가제/신고제, 영리/비영리의 구분이다. 장기요양의 경우 공급자격을 영리기관에도 열어두고 있으며 신고제로 운영하고 있다. 영리기관의 난입과 잦은 개·폐업은 시장화의 극단적 폐해를 보여주는 듯하다. 따라서 비영리기관을 공급자로 제한하자는 주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장애인활동지원의 경우 비영리민간 공급자 중심으로 한 허가제의 공급구조를 갖고 있다. [발제문]에서는 한국의 사회서비스공급구조 변화를 비영리민간과 시장으로 구분하여 변화추이를 바라보고 있으나, 공급체계와 관련한 선행검토에서 비영리법인 또한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활동지원제도의 현재를 살펴보자면 비영리기관을 공급자로 제한한다고 해도 다른 조치가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재의 상태가 크게 개선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특히나 이러한 구분의 무의미성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발제문]에서도 언급하듯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사회경제기업을 통해 돌봄 서비스를 확충하겠다는 내용을 제기하였으며 이는 현행의 민간위탁과 다르지 않다.

기관은 운영에 있어서 운영비 확보가 시급한 문제이고, 서비스 수가가 통제되는 상황에서 기관이 운영비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은 ①노동자들의 권리를 축소하는 방법과 ②장애인이용자의 권리를 축소하는 방법이 있다. 기관이 운영비 확보를 위해서 활동지원사들의 노동권을 축소시키는 전략은 비영리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자본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법적 포괄임금제도는 전국의 활동지원기관이 기본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며, 노동시간 제한을 통한 여러 기관으로 쪼개기를 통해 노동자 권리를 축소하는가 하면, 휴게시간을 보장하라는 근로기준법을 들어 실 근무시간보다 적은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여 임금을 삭감하고 10분단위의 휴게시간으로 쪼개어 보장하는가 하는 사례도 있다.[6] 수당지급을 피하기 위한 불법적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고, 부당해고와 4대보험 사측부담분을 활동지원사에게 전가하며, 체불임금에 대한 포기각서를 요구하는 사례들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지원기관의 노동자 권리 무시는 더 나아가 장애인이용자에 대한 권리 무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운영비 확보를 위해서는 적은 시간에 많은 바우처 수익을 남겨야 한다. 근로계약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고 법정수당은 그 기준으로 50%를 지급해야 하지만, 야간과 휴일의 경우 바우처수가 기준으로 50%의 수익이 더해진 다는 점을 악용하여 장애인이용자에게 야간과 휴일에 활동지원서비스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법정수당 발생을 이유로 야간과 휴일에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활동지원기관의 사례가 있다. 활동지원기관과 활동지원사 간에 분쟁이 있는 경우, 해당 활동지원사의 서비스 제공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해당 활동지원사를 이용하는 장애인이용자에게 서비스계약종료 등을 이유로 서비스제공을 거부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관운영상의 문제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활동지원 노동자의 권리가 무시되고 보호되지 못하는 논리와 장애인이용자의 자기선택권과 활동지원을 받을 권리가 방기되는 배경에는 [발제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민간위탁사업은 서비스구매계약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논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정부는 모든 법률적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소극적 규제와 강력한 규제, 그리고 경쟁의 성격

결국 현장에서 이처럼 노동자와 이용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국가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서 일 것이다. 국가는 기관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보장에 대한 규제는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기관이 이용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용자가 시장원리로 타 기관을 선택하면 될 사안이며, 운영상의 문제이므로 간섭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기관들은 국가가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아우성이지만, 이 규제의 성격이 중요하다. 활동지원 현장에서 느끼는 정부의 관리감독은 부정수급 색출에만 집중되어 있다. 장애인이용자에게 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는 별도로 요구되는 서류업무는 서비스의 질 개선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들은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 장애인이용자들도 서비스의 질 차이로 활동지원기관을 찾지 않는다. 서비스의 질은 직접 얼굴을 마주치는 활동지원사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지 활동지원기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장애인이용자 혹은 활동지원사가 함께 손잡고 활동지원기관을 찾는 현상은 장애인이용자에게 활동지원기관이 어디든 상관없다는 현실, 그리고 어떤 기관이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평가하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기관은 노동자를 잘 착취하여 시설을 잘 갖추는 소위 규모의 경제를 갖춘 기관들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평가 기준은 부정수급 관리감독을 잘 하고 있는지, 그리고 제반 시설이 잘 되어있는지 등이다. 장애인이용자의 서비스 평가는 변별력을 갖기 힘들다. 결국, 제공인력의 노동권을 보다 잘 보장하는 기관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용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사실 이미 심기를 거스르는 기관은 이용하지 않는다), 활동지원인력이 부정수급하는지 보다 잘 노동감시 하며, 보기 좋은 부동산을 확보한 기관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신고제와 허가제, 진출입의 통제

앞서 말한 것처럼 정부가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는가는 시장 경쟁의 성격을 좌우하며, 규제자가 올바른 기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현 시스템에서 규제자가 올바른 기준을 가졌을 경우 그에 대한 집행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활동지원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은 지방지차단체에 있다. 활동지원기관이 운영을 잘못한다 하더라도 지자체 입장에서는 기관에 대한 지정취소가 벌어질 경우 기존이용자와 노동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골칫거리다. 특히 사업공모에 응하는 기관이 적은 지방으로 갈수록 이런 문제는 심해진다. 지방으로 갈수록 지자체가 기관을 장악하는 능력이 약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허가제와 허가갱신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방정부가 실질적으로 진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 자체에서 이용자와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 자체를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국가 직영 기관, 공공거점기관의 필요

민간위탁기관을 중앙에서 컨트롤 할 수 있는 기관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활동지원제도상의 매칭문제가 항상 발생한다. 타 기관을 이용하는 장애인이용자와 활동지원사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간과 이용하고자 하는 시간이 일치함에도 단지 기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기관들은 장애인이용자가 수입원이며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활동지원제도가 중증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임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정보의 문제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지자체별로 거점기관을 두고 지역 장애인이용자와 제공인력에 대해 조절해준다면, 매칭문제는 덜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인력의 긴급한 사정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할 경우 등에 대한 대비를 위해 거점기관에서는 긴급한 상황을 대비한 상시 대비인력이 고용되어야 한다. 공공 거점기관은 서비스제공에 있어서 그 책임성도 강화해야 한다. 기존의 활동지원기관들은 서비스제공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나, 인력수급 문제가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서비스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 서비스대상자의 생존권과 관련된 사회적 권리로서의 활동지원을 제공받을 권리에 있어서 이러한 예외가 인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장애인이용자들에게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제도 자체의 공공성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간관리자들은 사례관리 등의 업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처럼 여러 기관에 찢어져 고용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연계기관이나 서비스이용자의 집으로 파견되어 급부를 제공하더라도, 고용주체를 일원화하는 고용의 통합이 필요하다.

사회서비스 공단을 둘러싼 주요 쟁점에 대한 의견

국가책임 결여된 진흥원

이러한 현장의 문제와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공단이 대안으로 지속적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공약을 폐기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공단논의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 구축과 국가가 책임지는 고용, 예산지원에 대한 부분은 모두 폐기되었다. [발제문]에서 분석하는 것처럼, 사회서비스진흥원은 명칭만 바꾼 것이 아니다.

진흥원은 “모니터링 및 평가, 네트워크 구축, 교육 강화, 컨설팅 등 운영지원, 조사 통계등의 사업”을 할 것이며 이는 “사회서비스 영역별 표준운영모델과 지침을 만들고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민간에 적용”하여 민간을 규제하겠다는 시도로 볼 것이다. 허나 [발제문]에서도 이미 지적한 것처럼, “공공인프라 및 예산 확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이 될 것이 뻔하다.

진흥원이 제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서비스들을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현장에서 나아질 구석이 전혀 없다. ‘모니터링 및 평가’는 이미 부정수급 단속이라는 명목으로 층층이 겹쳐진 국가기관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좋은 서비스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한 의미가 없다고 할 것이다. ‘네트워크 구축과 컨설팅 등 운영지원’은 이미 지역별 민간기관 간에는 기관운영상의 문제를 서로 논의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으며, 이 네트워크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서비스량이면 운영이 가능한지, 운영비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등의 정보는 모두 공유하고 있다. ‘교육’을 강화하고 ‘조사 및 통계’를 낸다고 해도, 교육받은 당위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과 조사한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모두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무엇이든 포함할 수 있는 추상적 포괄보다, 어느 하나 빼놓지 않는 구체적 명시가 중요

사회서비스공단관련 법률의 제정은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책임지고 운영하고자 할 때, 이를 시행할 수 있도록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사회서비스를 책임지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기 위함이다. [발제문]에서는 “법 차원에서 사회서비스 사업 범위를 정하는 것은 결국 배제하는 영역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사업 종류와 범위를 지자체의 재량으로 두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론적 배제를 이유로 미래에 주장될지도 모를 사회서비스를 위해 지금 당장 요구되어야 할 사회서비스를 주장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법률이 작동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법률에 명시되어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시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것은 안하는 경향이 있다. 추상적 포괄로 명시할 경우, 지자체에 사회서비스와 관련한 책임을 질 의무가 있음을 주장하고 요구할 때, 해당 사회서비스가 포함되는지 포함되지 않는지 여부를 놓고 또다시 해석투쟁을 벌여야만 한다. 기존의 사회서비스 분야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명백히 하되, 사회적 요구에 따른 새로운 사회서비스 분야는 가능성과 재량의 영역으로 열어두어 이후의 투쟁을 대비하는 입법기술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경향 분석

[발제문]에서는 ‘인력 파견형’으로 운영되는 서비스를 ‘우선대상’으로 하자는 기존의 한 연구를 비판한다. [발제문]이 말하는 것처럼, 비용-효과 등을 중심으로 단순히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사업을 후순위로 미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기준으로 우선사업 범위를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러한 시각은 정부의 예산중심적 시각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선사업 범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도 미흡하다. 정부가 이미 예산논리에 매몰되어 있음은 명백하고 정부의 정책방향은 비용이 안 드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경향에 대한 어떤 대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진흥원이든 공단이든 정부가 어떤 변화를 시도할 순서는 아마도 공공센터, 시설, 재가서비스 순서가 될 것이라고 토론자는 짐작한다. [발제문]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진흥원은 공공센터를 위탁전환하는 것이 핵심이고, 국공립시설의 경우 아주 일부에 지나지는 않지만, 직접고용이나 월급제 등을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재가서비스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말하는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된다.

[발제문]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사회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고도의 노동집약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서비스는 고용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사회서비스의 좋은 일자리 확대는 자연스레 서비스의 질 향상과도 연결된다.” 사회서비스에 요구되는 인프라라는 것은 단순한 물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사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책임을 부여하는 단계로 보아야 한다. 인프라만 확충한다고 하여 사회서비스 질 향상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인프라 확충을 통해 종사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국가책임성이 확인된 후, 종사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나서 사회서비스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토론자는 예산이 많이 필요한 것은 ‘인프라 구축’일까, ‘인건비’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발제문]에서는 오히려 “국공립어린이집이나 공공요양시설 등의 사회서비스공단 전환은 장기적으로도 불가능”하게 된다고 기존 연구의 기준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나, 국공립어린이집이나 공공용양시설의 사회서비스공단 전환에서 부담이 되는 것은 ‘인프라 구축’뿐만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부담해야할 ‘노동조건개선 비용’이 더욱 부담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정부의 정책선호도가 공공센터, 시설, 재가서비스 순서로 나열되는 것은 ‘인프라 우선구축’이냐 ‘인력파견형 우선 지원’이냐의 대립이 아니라, 노동조건개선비용이 적게 드는 순서로 나열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경향 속 복지의 방향에 대한 고민 - “나는 일자리가 아니에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부의 경향 속에서 우리는 어떤 대처를 하느냐 하는 질문이다. 본 토론자는 이에 대한 대답이 복지의 방향에 대한 고민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복지의 방향에 대한 고민에서 빼놓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야 할 중요한 주체는 서비스 이용 당사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공단 논의에 대해 한 장애인이용자에게 의견이 어떤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사회서비스 공단을 둘러싼 논의가 일자리 논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불쾌감을 표했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고민할 때 빠트리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노동권 없는 공공성은 허구이지만, 공공성이 곧 노동권은 아니다. 사회서비스는 복지에 대한 사회의 요구와 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고 이는 공공성 고민에서 빠트리지 않고 고민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장기요양서비스를 받는 노인은 요양시설에서 서비스를 받기를 원할까 자신이 살던 집에서 늙기를 원할까? 장애인 당사자는 시설에서 살기를 원할까 지역사회에서 함께 섞여 살기를 원할까?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으리으리한 어린이집을 원할까, 아니면 보육교사당 아동비율이 낮아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어린이집을 원할까? 산모는 어떤 공단의 모습을 바라고 있을까? 본 토론자는 국가가 책임지기를 가장 기피하는 사회서비스 분야이자, 복지의 과제이자, 또 당사자들이 가장 원하는 서비스로서 재가서비스를 강조하고 싶다. 공단논의에 있어서도 가장 후순위에 시행될 것이며 가장 많은 투쟁을 필요로 하는 분야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당사자와 함께 공공성을 논의하고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공동의 목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연대형성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1. [발제문]은 크게 시설과 재가, 공공센터를 축으로 하여 유형을 구분하고 있는데, 보육 어린이집과 일반 사회복지관, 공공센터에 있어서는 본 토론자의 논지와는 다른 개별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2. 경기도는 시설법인화를 용이하게 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재가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시설로 돌리려 시도하고 있다. 비마이너, 2017-11-07, “경기도, 탈시설 흐름 거스르는 ‘법인화 기준 완화안’ 결국 강행”,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1555 참고.
    “당시 박근혜 정부는 활동지원서비스의 양을 늘리는 대신 예산이 적게 드는 응급안전서비스와 야간순회서비스를 도입했는데, 이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은 “활동지원 24시간을 지원하지 않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_ 비마이너, 2017-07-18, “루게릭병으로 사지 못 써… “활동보조 24시간이 필요해요””,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1164&thread=04r04
  3. 근로기준법 제46조
  4. 1인 제공인력 기준 하루 8시간까지 서비스제공시간에 대해 150%의 수가가 결제된다. 이후의 근무시간에 대해서는 연장근무수당 등이 발생함에도 100%의 수가가 결제된다.
  5. JTBC, 2017-09-20, '추석 때 어떡하라고'…황금연휴가 두려운 중증 장애인,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24675&pDate=20170920
  6. 평화뉴스, 2017-09-26, 장애인활동보조 1시간에 10분 '임금꺾기', 대구 첫 '안꺾기' 합의, http://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5553
2017/12/09 23:06 2017/12/0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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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2017/12/10 00:46 응답 수정/삭제
지난주에 빈곤사회연대 정책위원회가 주최한 반빈곤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하겠노라 공약했지만,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은 이미 물건너 갔다고 보는게 맞는 것 같다. 사회공공연구원 이재훈 연구원이 정부의 진흥원 계획에 대한 분석을 발제에서 이미 해주어서 그 발제문을 보고 토론문을 작성했다.

사실 할말은 많았는데 다 할수있는 시간이 없었다.

몇가지 강조해보자면,

사회서비스 관련 구조가 이미 위탁과 하청의 구조인 이상 영리/비영리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이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구체적 함의는 두가지인데, 일단 사회서비스 영역 내에서 딱히 영리기관과 구별되는 행위를 하지 못하고 비영리라고 해도 특별히 의지있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사회서비스 영역 바깥에서는 시장에 이미 들어온 영리민간 행위자들이 공공성확보에 장애물이되는 정치세력화가 된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는데, 비영리도 같은 요인을 갖는다는 것.

사실 후자가 더 중요한데, 이러한 이유로 사회적경제영역 비영리 협동조합 등등 모든 운동단체에서 사회서비스 공공성에 대한 요구를 주저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라는 것이고, 이것은 이용자의 목소리를 공공성에 대한 요구로 조직하는 것을 주저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이용자의 목소리가 공단논의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내 문제인식이다.

이재훈 연구원의 발제문은 내가 읽기에 비교적 인프라를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이재훈 연구원이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보아도, 정부의 정책 경향은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부담해야 할 노동조건 개선 비용이 적게 드는 순서대로 정부의 정책이 선호되고, 현재 사회서비스 분야 중 재가서비스가 가장 열악한 이유도 이러한 정부의 정책 선호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부정책의 경향성 속에서 정부가 책임지길 가장 기피한다는 것이 재가서비스가 강조되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재가서비스가 당사자 운동이 가장 지지하는 서비스라는 것이다. 단순히 모든 사회서비스분야가 공단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중립적이고 기계적이고 혹은 외견상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장은 시설서비스와 재가서비스의 정책적 경쟁 혹은 경합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정부는 예산을 아끼기 위해 시설서비스를 명백히 선호하고 그곳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

때문에 나는 공공성 논의에 국가복지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논의되어야 하고 그것은 복지를 받는 수급자 중심의 입장에서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재는 수급자 중심의 복지서비스를 운운하며 자유주의와 시장주의가 득세하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이 수급자의 선택권을 보장하지도 못할 뿐더러 수급자 중심주의가 아니라는 것이 지적되어야 한다. 진정한 수급자 중심의 공공성 논의, 그 결론은 분명 시설과 인프라가 중점이 된 것이 아니라, 재가서비스와 노동권이 중심이 될 것이다.

장애인 자립생활의 요구와 좋은돌봄 장기요양은 만나는 지점이 있다. 활동지원제도에 있어서 65세 제한 폐지 요구는 장애와 노인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으로서의 사회생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에는 장애인의 사회활동 시간이 보장되어야 함이 포함되어 있지만, 노인장기요양에는 노인의 사회활동 시간을 권리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은 65세가 되면 노인으로 분류되고 사회활동시간이 제거된 노인장기요양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장애인에게는 보장되는 것이 옳고 노인에게는 보장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과연 인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장애인의 특수성을 말하는 것이 인권이 적용될 '인간' 에 노인을 배제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과연 노인과 장애인의 구분이 유효한가 의문이 든다. 사회적의미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노인또한 장애인으로 동일하게 규정될 수 있다. 나는 우리의 복지가 장기적으로는 노인과 장애인의 구분도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정부는 싫어하겠지 예산이 많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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