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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1 복지의 하청은 국가감시와 공포정치를 부른다 아비

복지의 하청은 국가감시와 공포정치를 부른다

프레시안 기고글 :: 국가가 사라진 곳에 '공포 정치'가 있었다

프레시안에서는 글 제목을 바꿨고, 띄어쓰기를 했음. 제도상의 고유명사가 있는데 맞춤법 검사기 돌리면 띄워줌. 그런데 이게 아는사람이 읽기에는 별로임.


올해 5월, 한 노동자가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했을 때,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바우처 제도의 폐해를 알리고자 사회보장정보원 앞에서 선전물을 배포하고 있었다. 하청업체의 안전사고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민간의 하청구조와 다를 바 없는 바우처 제도하의 복지노동자에게 구의역 사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활동보조인의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라는 처지,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법정수당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열악한 노동조건, 서비스 제공인력의 불안정한 수급으로 인한 장애인의 복지 공백에 대한 지적은 지난 몇 년간 반복적으로 제기되던 문제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연달아 일어난 정부의 복지노동자와 복지대상자에 대한 감시 사건은, 단순히 예산집행의 정당성을 보증하기 위한 관리체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국가의 책임이 비어 있는 공간에는 감시와 낙인이라는 공포정치만이 들어찼다.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못하는 노동조건

현행 바우처 제도는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자들에게 활동지원에만 사용할 수 있는 전자이용권을 지급한다. 국가는 비영리 민간기관에 활동지원기관 자격을 부여하며, 활동지원기관은 활동보조인과 근로계약을 맺고 서비스 대상자들에게 활동보조인을 파견한다. 활동보조인은 서비스 이용자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시간당 얼마간의 금액(주간 9,000원/야간·휴일 13,500원)을 결제한다. 바우처 결제 금액 중 75%이상을 활동보조인의 임금으로 지급하고, 그 외의 금액은 활동지원기관이 관리인력 인건비와 운영비로 사용한다.

근로기준법에는 각종 법정수당을 규정하고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시간에 비례하여서만 임금이 발생하기에 활동보조인의 임금은 근무 시간에 보건복지부가 정한 금액을 곱한 금액이다. 시간급 외에 별도의 법정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 결국,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법정수당을 어떻게 지급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활동지원기관은 포괄임금제를 도입해서라도 근로기준법을 피해보려 한다. 실질적으로 활동보조인의 시간당 임금은 보건복지부 지침에서 정하는 금액이 되지만, 근로계약서 상 기본급은 최저임금에 맞추어 작성된다. 그 외의 법정 수당은 복지부에서 정하는 시간당 임금과 최저임금의 차액에 포괄하여 계산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도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없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만을 시간급으로 환산하면 2016년에는 7,236원이 된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6,800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휴수당이 이러할 진데 다른 법정수당은 말할 필요가 없다.

활동지원기관과 정부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

활동보조인의 노동조건이 이처럼 바닥을 치게 된 이유에는 활동보조인의 임금이 정해지는 구조와 관련이 있다. 이는 온전히 보건복지부 장관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활동지원사업의 예산은 인건비가 아니라 사업비용으로 책정되다 보니 일정한 인상이 보장되지 않는다. 정부는 항상 예산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예산논리의 압박 속에 대부분의 공무원이 근로기준법을 잘 모른다는 현실까지 겹쳐, 활동지원 수가 인상률은 항상 미미했고 이제 최저임금에도 추월당했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최저임금은 73%가량 인상되었지만, 활동보조인의 임금은 29% 인상이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6,800원 이상을 지급하라고 했지 6,800원만 지급하라고 한 게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근로계약상 고용주도 활동지원기관이고, 보건복지부 지침에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적혀 있다. 활동지원기관은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없는 수가를 책정한 보건복지부의 책임이라 주장하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활동지원기관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가 몇 년째 진행되고 있다. 활동지원기관들은 현재의 수가수준으로는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저임금보다 비교적 수가가 높던 시절, 활동지원기관은 보건복지부가 정한 수가수준 이상으로 활동보조인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활동보조인이 비교적 노동권에 대해 무관심했던 제도시행 초기, 일부 활동지원기관은 퇴직금마저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관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활동보조인을 부당해고하거나 4대보험 사측부담분을 활동보조인에게 떠넘기는 등. 기관의 이익만을 위해 노동권을 무시하는 사례는 여전히 수시로 접수된다.

제도시행 10년을 앞둔 지금, 활동지원기관들은 양적으로 성장했다. 활동보조인으로서는 활동지원기관의 성장에 쓰인 비용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활동지원기관이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어려운지 알기 위해 회계자료를 요구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정부는 활동지원기관의 회계를 확보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회계자료를 입수한 지방자치단체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다.

활동지원제도는 활동지원기관이 “수급자를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조장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영업이 불가능한 제도에 더불어 비영리기관만이 사업자가 될 수 있는 구조에서 어떤 “영업비밀”이 가능한지 알 수는 없다. 국가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공공서비스 영역에 정부가 회계자료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관리부실을 넘어, 입수된 회계자료조차 공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청구조는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하여 서로가 각자의 책임을 은폐시킨다. 하청구조 속에서 영리와 비영리라는 구분은 더는 의미가 없다.

복지노동자와 복지대상자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

이처럼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는 다른 방향으로 투명성을 요구한다. 국가가 복지대상자에게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에, 현행 바우처 제도는 사회서비스 전달 과정에서의 왜곡가능성이 상존한다. 쉽게 말하면 활동보조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거나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비스 대상자의 전자이용권을 결제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는 이를 부정수급으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선다. 활동지원기관을 관리 감독할 권한이 있는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공단, 지방자치단체는 번갈아가며 활동지원기관에 대한 감사에 나선다. 감사내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점은 활동지원기관이 부정수급에 대한 관리감독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활동지원기관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증거서류를 만들어야 한다. 활동보조인에게 매일 자신의 근무 내용을 기록하고 서비스 대상자의 서명을 받도록 한다. 활동보조인은 본 업무와 무관한 서류업무에 노동이 가중될 뿐 아니라 장애인 이용자의 일상생활에 관한 내용까지 활동지원기관에 의해 기록 관리된다.

부정수급 단속을 위해 경찰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활동지원제도를 비롯한 바우처 제도 전반을 규정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이용 및 이용권 관리에 관한 법률”과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부정수급에 관한 벌칙규정을 두고 있어 경찰이 기획수사에 나서기도 한다. 김포경찰서는 2015년부터 부정수급단속을 명목으로 김포시에 활동지원과 관련된 전체 활동보조인 310명과 장애인이용자 294명에 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집주소, 핸드폰 번호는 물론, 카드사용내역, 핸드폰 통화내역과 위치정보까지 수집했다. 단지 활동지원제도와 관련된 복지노동자와 복지대상자라는 이유로 저인망식 수사대상으로 포착된 것이다. 이 같은 사건은 2014년에 인천에서도 벌어진 바 있다. 현행 법률하에서는 경찰력이 언제든지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이용자에 대한 저인망식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로부터 바우처시스템에 대한 관리업무를 위탁받고 있는 사회보장정보원은 올해 2월부터 실시간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바우처시스템에 근무중으로 기록되면 제대로 근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활동보조인에게 전화를 건다. 업무에 바빠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에도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받는다. 현행 제도에서 부정수급으로 판정되면 활동지원기관 또한 25%미만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부당이득으로 환수당한다. 활동지원기관도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활동보조인을 미행하거나, 장애인이용자의 집을 급습하거나, 서비스 시작과 종료시 영상통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 같은 층층의 감시로도 부족한지 “청구비용 사전심사제도”라는 것이 올해 7월부터 새로 시행되고 있다. 급여가 지급되기 이전에 정당한 청구인지를 증명하라는 것이다. 심사기간이 최대 60일까지 소모되기에 임금체불이 초래되는 제도이다.

국가의 책임 없는 민간위탁 바우처 제도하에서, 복지노동자와 복지대상자에게 요구되는 투명성이란 노동감시 혹은 사생활 없는 삶일 뿐이다. 지금도 활동보조인은 정당한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국가는 복지를 사회적 인권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노동자와 복지대상자를 국가재정을 축내는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감시와 통제만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가 책임지는 공적 전달체계로의 개편만이 해결책

국가의 무책임에서 기인하는 복지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낙인과 감시의 공포정치를 통해서는 복지국가가 제대로 실현될 리가 없다. 근로기준법조차 준수하지 못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서비스 제공인력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지적은 언제나 있었다. 이러한 문제만 발생하고 있다면 활동지원제도를 둘러싼 문제를 수가문제로 환원하는 시각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바우처 제도를 복지현장을 감시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6년 3월 김포경찰서의 수사소식을 뒤늦게 접한 활동보조인과 장애인단체는 반발하고 나섰다. 김포경찰서는 서둘러 수사를 종결하며 38명의 활동보조인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조사과정에서 모욕감을 느낀 다수의 활동보조인이 이미 일을 그만둔 뒤였다. 활동보조인들이 대량으로 그만둔 뒤 대체인력을 구할 수 없는 장애인이용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기소된 활동보조인 중에는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할 수 없으므로 8시간 이상 일을 하지 말라는 기관의 말을 듣고, 하루 8시간 넘게 일을 한 뒤에는 쉬는 날에 결제하여 부정수급으로 걸린 예도 있었다. 현재 검찰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지만 혹여 벌금형이 내려진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형사처벌을 근거로 부당이득 환수라는 명목으로 받았던 임금을 도로 토해내야 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이런 상태로 활동지원제도가 유지될 수는 없다. 감시와 낙인이 불필요한 제도, 부정수급 자체가 불가능한 제도,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 체계로의 개편이 시급하다. 나쁜 제도가 범죄자를 만든다. 의심하지 말고 제도를 바꿔라.

2016/08/31 22:28 2016/08/3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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