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術人生研究室: 왕후이 태그 글 목록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망상(妄想)과 콤플렉스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나의 말과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해둔다.2016-05-30T14:29:43+09:00Textcube 1.8.3.1 : Secondary Dominant왕휘 수업, 제6강 <전쟁, 문화 그리고 정치>藝術人生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422011-03-23T02:38:55+09:002011-03-23T02:35:43+09:00<p>
내용은 좀 산만하게 전개 되는데 몇 몇 포인트는 중요한 것 같아서 메모해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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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의 글 <문화와 정치의 변주: 전쟁, 혁명, 그리고 1910년대 '사상전'>은 1차 대전, 즉 전쟁의 위기와 중국의 공화 위기라는 '위기'의 정세 속에서 '자각'은 문화적인 것(또는 곧 정치적인 것)을 낳고, 여기에서 정치와 역사간의 단절이 발생했다는 점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 문화 운동이 5.4 신문화운동인데, 왕휘는 이 신문화운동에서 <신청년>과 갈등적 위치에 있었던 <동방잡지>를 분석함을 통해 '역사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 <신청년>에게 패배했던 <동방잡지>가 한 세기 이후 현대성을 고민하는 데 있어서 제시할 수 있는 참조점을 찾고자 한다. 흥미로운 것은 <신청년>이 적극적으로 현대성 또는 민족국가를 수용하고 청년이라는 새로운 주체를 통해 실천을 창조해 내고, 나아가 이는 사회주의혁명의 기초를 제공하기도 한 반면, <동방잡지>는 오히려 민족국가 보다는 문명국가를 제시하면서 국가의 정치를 넘어서는 문명의 정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왕휘의 분석은 그다지 깊게 나아가지 않는다. 물론 왕휘는 민족국가가 인민주권과 같이 권리주체로서의 개인의 인격화를 통해 형성됨을 비판한다. 이는 소위 사회계약의 허구성 또는 정치의 자율성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인 것 같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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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간에 흥미롭게도 3.1운동에 대해 언급했는데, 윌슨주의의 영향과 그에 대한 실망의 차원에서 조선의 사례도 나름 중요한 분석대상이 된다는 설명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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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손문의 대아시아 개념은 일본의 도쿄학파와 일정한 차이를 갖는데, 손문의 것이 혼종성을 포함하는 일종의 초국가적 개념이라면, 도쿄학파의 것은 동질성으로 표현되는 공동체주의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손문은 동으로는 일본, 서로는 터키, 남으로 인도까지 포함하는 대아시아 개념을 갖게 되는데, 이는 바로 '러시아 혁명'의 정치성을 전유한다는 것이 왕휘의 해석이다. 따라서, 손문의 '왕도'는 오해받기 쉽지만, 혼종성을 포함하는 공존의 원리라고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왕휘는 두 가지 예를 들었는데, 하나는 중국 역사 속에서 쇠망하는 청조와 오히려 조공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던 것은 네팔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련의 불평등조약 폐기를 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티벳과 몽고를 포함하는 중국의 국가형성과정이 민족국가(민족자결)의 논리와 다르다는 점에 의해 다시 지지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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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종족성/민족 등의 번역문제와도 관련된다. ethnic은 미국식 개념이고, national(ity)는 민족체는 중국적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왕휘의 설명은 흥미롭다. 기존에 나오키가 체계적으로 민족을 ethnic으로, nation을 국민으로 번역하는 부분에서 '국가'이전의 인민의 이름으로서의 '민족'(주의) 그리고 '민족해방'은 ethnic한 것이 아니라는 반론을 폈던 적이 있는데, 나는 이 지점이 바로 역사성을 요구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왕휘는 nationality를 민족/국민의 두 가지를 포함하되, 민족을 의미할 경우 반드시 동질화의 경향을 가진다기 보다는 혼종성, 차이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체를 구성하는 원리를 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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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뒷풀이에서 나는 두 번째 수업 텍스트에서 왕휘가 언급한 "아시아 역사에 대한 재사고는 유럽의 '세계역사'에 대한 재구성"이라는 관점에 대해, 이러한 '세계사'의 시각은 보편성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물어 보았는데, 데리다의 '연역'을 이야기한 부분은 내가 잘 모르겠고, 바디우의 개별적 보편성 이야기를 하면서 '이론'에 대한 문제는 옆 자리에 있던 류교수에게 물어보는게 좋겠다고 했다. 왕휘는 바디우의 사건적 개별적 보편성에 대해 별 이의 없이 수용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는데, 바로 구조의 역사, 또는 역사의 동역학에 대한 침묵이 바디우와 왕휘에게 공통적이지 않은가 싶다. 왕휘가 수업 말미에 이야기했던 일종의 허무주의적 언급은 바디우의 모종의 낙관주의와 동일한 논리적 구조를 가지지 않는가 의심해 보고 있는데, 왕휘는 20세기 출현했던 거대한 '정치성'이 지금은 불가능해졌고 어떻게 정치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가 불확실한 시대라는 진단을 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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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박사과정 들어와서 지속적으로 반항하면서 일부 동의하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역사화'라는 것일테다. 진광흥(천꽝씽) 선생의 조금은 불친절한 강조에 대해 여러번 흥분하여 대응하기도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그에게 당신은 '역사화'는 있지만 '정치화'는 결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었다. 이 측면에서 볼 때, 왕휘에게는 '역사화'와 '정치화'라는 두 범주가 모두 존재하는데, 그것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그 사이에 긴장이나 모순이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대해 어제 수업 중 질문을 던져 보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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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는 제임슨의 '영원한 역사화'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역사화는 본질주의화와 다른 것임을 먼저 강조하고, 한편 '정치'란 일정한 의미에서 '역사의 중단'이며, 곧 역사가 중단되는 곳에서 정치가 탄생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야기를 더 끌고가지는 않았고, 이후 수업이 주로 역사화/정치화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후 충분한 논의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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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 선생님과의 대화 덕분에 '역사'와 '정치'를 그 관계 속에서 좀더 분명하게 개념화할 수 있는 길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보기에 왕휘는 '역사화'를 비본질주의화하면서, '정치'의 가능성의 조건을 탐색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왕휘 선생에게 있어서 '역사화 또는 역사서술'은 '정치화'(또는 정치적인 것)을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왕휘 선생과 사카이 나오키 선생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의 작업이 갖는 효과를 고려하면 또 다르지만. 나는 이와 대비되는 시도로 전리군 선생님의 작업을 주목하고 있다. 전리군 선생은 '정치화를 위한 역사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역사서사'를 시도한다. 따라서, 왕휘가 '당대의 정치'를 위해 현대성이라는 '과거의 역사'에 주목하는 반면, 전리군은 '당대의 정치'를 위해 '당대역사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즉, 전리군 선생은 역사 속의 대안적 주체의 계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당대의 정치적 공간에 직접 진입하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흥미롭게도 왕휘는 '서술'의 관점에서 역사를 대하는 반면, 전리군은 '서사'의 관점에서 역사를 대하는 대비가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구도는 두 선생님이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전반적으로 포괄하고 있지는 않고, 게다가 진행 중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후 진행될 부분을 배제하고 판단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아마도 전리군 선생은 소위 '역사화'보다 '정치화'에 더 방점을 찍고 있는 듯 하고, 나아가 역사화의 문제를 나름 해결하는 방식을 노신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왕휘 선생은 정치화를 위한 사상적 자원을 역사화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데, 그러한 역사화가 어떻게 새롭게 정치화를 가능하게 하는지, 또는 할 것인지는 두고 볼 문제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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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유물론과 변증법의 문제와 매우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근래 내가 알튀세르를 통해 고민해 왔던 문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문제이다. 역사화가 해체적이고/유물론적인 것이라고 할 때 정치(성)에 묶여있는 목적론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그러한 목적론을 배제할 경우 일종의 '우연의 유물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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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조만간 정치적인 것(정치)와 역사적인 것(역사)의 관계에 대한 소론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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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왕휘 선생과 3박4일 동부해안을 돌아보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왕휘 선생은 한국의 80년대 사회성격논쟁와 한국 사회운동의 궤적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글을 한편 써보라는 권유도 했었다. 물론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권위'자들이 한국에 있고, 나는 생계를 위해 당분간 중국연구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폈다. 생계 문제가 해결되면 언젠가 돌아가야 할 주제임은 분명한 것 같다. 나 스스로 한국 사회운동을 얼마만큼 전유하고 있는지 아직 확신이 없지만, 지속적으로 반추하고 역사화/정치화해야할 자원임은 분명하다고 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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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시야: 중국역사의 서술"이라는 2010년판 왕휘의 책은 왕휘가 역사를 보는 관점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주는 3장 '동서간의 티벳문제'를 다루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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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는 티벳 문제를 중국(동방/아시아)와 서방의 대립구도에 위치시키면서 궁극적으로 '중국'의 평등주의적 반제국주의 정치를 긍정하고, 본래 티벳문제가 지시하는 '중국'의 합법성의 문제를 기각하거나 그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티벳문제가 민족국가에 의한 통합/배제와 무관함을 증명함으로써 '중국'은 민족국가라기 보다는 문명국가라는 논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티벳 문제는 순식간에 '중국사회'의 위기로 전환되고, 주로 종교의 세속화, 발전주의 등에 대한 비판이 민족국가 비판을 대체한다. 수업 중에 제기하고자 했으나 시간이 없어 제기하지 못한 문제를 간단히 메모해 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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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분석단위로서의 현대/당대 중국을 설정할 때, 왕휘가 설정하는 현대/당대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초장기지속론이 그렇다. 이 문제는 역사의 현재성에 대한 서로 다른 분석의 원인이 된다. 왕휘처럼 초장기지속의 경우 그가 다루는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역사이다. 즉, 자본주의적 현대성을 훨씬 초월하여 현재까지 진행되는 역사인데, 이러한 역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편성의 지표로 간주하는 자본주의적 세계질서 또는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전환을 부차화하여 통합한다. 따라서, 왕휘의 인식틀에서 '중국화'는 자본주의적 질서로의 재편 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이 되고, 민족국가적 '중국' 역시 매우 일시적인 현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보편성이다. 왕휘와 같은 관점에서 역사적 작업을 진행하면, 보편성에 대한 논의는 불가능해진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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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는 과거의 중국/아시아의 공납제와 유럽의 민족국가를 대립시키는데, 왕휘의 관점에서 이 둘의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적 구도는 아마도 민족국가간체계를 넘어서는 것일테다. 그래서, 국가간체계에 놓여 탈궤와 접궤의 궤도를 그렸던 중국 사회주의 역시 여전히 부분적 역사서사에 머물게 되고, 거기에서 발생한 발전주의에 의한 평등의 불가능성은 새로운 모순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 모호하게 남는 것은 '중국화'는 '중국 주권민족국가'의 성립을 포함하는데, '중국화'의 논의가 소위 '개혁개방' 이후의 새로운 모순이 '민족국가'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 덮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성격의 문제, 혁명 이후 정치과정의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가지 않게 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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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작은 문제들도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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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보편성의 문제.... 서구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을 보편적이지 않은 보편성의 문제로 인식하고, 새로운 보편성의 추구로 나아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본래 유럽적 인식틀이 세계화를 거쳐 일정한 보편성을 획득한 것은 단순히 유럽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비유럽의 수용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반례들은 새로운 보편성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특수성을 통해 유럽과 분리되기 위한 목적을 가져서는 안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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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교에서의 요소주의의 문제.</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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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현대민족주의는 정치와 문화의 융합이라는 특징을 갖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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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중화제국은 정치와 문화의 융합이라는 특징을 갖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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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화제국은 현대적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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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 논법인데, 3)은 잘못된 추론이다. 중화제국과 현대민족주의가 정치와 문화의 융합이라는 부분적인 공통점을 가진다고 그 둘이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왕휘는 왕국빈의 이 논의를 적어도 두 번 인용하는데, 논리학적으로 모순됨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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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성과 집단성의 문제도 거론되는데, '집단' 간의 다원주의적이고 상호교통적 공존을 강조하는데, 그 차이들 사이의 관계의 문제를 포기하거나 무시할 경우 일종의 급진주의적 탈정치화의 위험이 있다. 차이의 정치를 탈정치화에서 구하는 길은 무엇인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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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5362',37,'/alternativeasia','');"><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alternativeasia%2F37+%22%EC%99%95%ED%9C%98%20%EC%88%98%EC%97%85%20%3C%ED%8B%B0%EB%B2%B3%ED%8E%B8%3E%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alternativeasia%2F37&t=%EC%99%95%ED%9C%98%20%EC%88%98%EC%97%85%20%3C%ED%8B%B0%EB%B2%B3%ED%8E%B8%3E"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alternativeasia%2F37&title=%EC%99%95%ED%9C%98%20%EC%88%98%EC%97%85%20%3C%ED%8B%B0%EB%B2%B3%ED%8E%B8%3E','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37?commentInput=true#entry37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왕휘 수업 중간 감상평藝術人生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362011-03-06T23:21:19+09:002011-03-06T23:21:19+09:00<p>
왕휘 선생님은 첫 공개강연 겸 강의에서 초기 노신의 작품을 정치철학적으로 재해석했던 것과는 달리, 그 이후의 강의는 정치철학적 함의라기 보다는 중국적인 것이라는 범주의 확장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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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강의에서 아시아 담론을 검토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각종 아시아 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중국적인 것'을 확립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인다. 세 번째 강의에서 본격적으로 기존의 민족주의/전통주의적 담론과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을 거론하면서 '漢化'/'華化' 또는 '정복왕조/중앙정부'를 동시에 종합하면서 넘어서는 '중국화'를 시도하고자 하며, 이는 민족국가적 틀에서 볼 수 없는 일종의 문명적인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제시하는 듯 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확장과 국가간체계의 맥락에서 파악되는 동역학은 이 보다 훨씬 더 긴 2500년에 달하는 '중국화'의 초장기지속에 놓이게 된다. 나는 우선 이러한 관점이 프랑크의 초장기지속론에 닿아 있지 않은가 가설적 의문을 던져 놓는다. 자본주의적 질서의 재생산 조건으로서의 민족국가라는 정치적 체제 자체를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시키는 초장기지속론에서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질서, 즉 국가와 자본에 대한 비판은 그 중요성이 부차화/종속화된다. 물론 이 초장기지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한데, 강의를 통해 볼 때 '중국사상의 흥기'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대체적으로 유교적인 어떤 것에 근거하는 것으로 짐작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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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 선생님은 이런 '중국화'라는 장기지속의 맥락에서 기존 자유주의적 시각이 노정하는 티벳이나 중국의 소수민족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의 한계를 새롭게 드러내고자 한다. 민족주의/민족국가의 틀이 서구중심적인 것이라는 관점을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반서구중심주의가 결국 '중국화'라는 장기지속에의 천착에 동력을 부여한 듯 하다. 아무리 이원론을 극복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우더라도 말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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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결국 민족주의/민족국가라는 틀을 서구중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대체하는 특수개념을 구성하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틀을 서구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결함을 갖는 '보편성'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대안적 보편성의 조건을 검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보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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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는 신자유주의 비판자로서의 '왕휘'에 익숙해져 있지만, 실제로 그는 전형적인 역사학자 또는 사상연구자인 것 같다. 실제로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왕휘는 북경 청화대학의 중문과/역사학과 교수이다. 따라서 인문학적 상상력, 또는 창의적 연구의 측면에서 보면 그의 작업은 매우 독보적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회과학적 성격을 갖는 그의 개입들은 인문학이기 보다는 사회과학의 현실적 맥락에서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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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989년6.4천안문 사건의 학생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유명한 왕초화의 특강이 열렸다. 이 특강은 우리 연구소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인데, 한 학기 동안 학위 과정의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한 지도와 더불어 각 분야의 저명한 연구자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초화의 특강 제목은'지식사상 공공화의 곤경'이었고, 부제목은'중국사회 장기역사발전에 대한 지식사상의 인식과 개입'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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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화는 먼저 지난7월 세상을 뜬 미조구치 유우조(溝口雄三)의 문제의식에 대한 소개로 강연을 시작하였고, 특히, 다케우치 요시미에 대한 반성과 극복의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어 왕휘, 감양 등의 글을 검토하면서 왕휘, 감양과 미조구치, 다케우치 사이의 관련성을 지적한다. 한편, 최근 뉴레프트리뷰에서 논쟁이 된, Joel Andreas와Huang Yasheng의 논쟁도 소개되었다. 마지막으로 팍스콘 노동자 자살의 케이스를 통해 중국 농촌의 문제를 다시 환기시켰고, 앞서 제시한 왕휘, 감양 등의 오류를 확인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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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강연과 약간의 오차가 있겠지만, 필기에 따라 요점만 정리하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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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양은 중국의 사상적 자원으로 유가, 모택동, 개혁개방을 제시하고, 이는 親情人情, 正義平等, 自由權利라는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시킬 뿐,等差秩序, 大躍進/文革, 市場化등의 문제에 대해서 맹목적인 문제가 있다. 왕휘는 국가와 정당의 문제에서 독립주권성격을 강조하고, 농민과 관련해서 토지혁명과 인민공사의 연관성, 그리고 초국적 자본의 침투 하의 농촌경제의 의존성 증가의 문제를 지적한다. 종합하면, 감양과 왕휘는 지방분권적인 전통사회의 특성과 중국혁명을 통한 농촌포위도시 전략, 토지혁명, 인민공사 등이 농업자본주의(향진기업) 낳음을 긍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개혁개방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농촌자주모델이 도시의존적 농촌으로 변화했음도 지적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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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분석에서 공통적인 것은 ‘중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부분인데, 왕초화는 이를 미조구치 유우조 및 다케우치 요시미 등과 관련 짓는다. 이 부분은 내가 개인적으로 고민해온 주제와 매우 흡사하다. 나는 여기에 진광흥(陳光興, 천꽝씽)을 추가하고 싶고, 어제는 문득 한국의 김지하도 떠올랐다. 물론 고민이 아직 충분하진 못하다. 왕초화는 팍스콘 문제를 제기하면서 어쩌면 아주 상식적인 ‘국가’와 ‘자본’의 공모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식적 비판이 왕휘와 감양에게서 나올 수 없는 상황 자체를 중국 지식사상의 곤경으로 보는 듯 하다. 왕초화는 스스로 연구 중인 주제라는 한계 속에서 일정한 유형적 상동성을 정리한다. 사실 이 부분은 강연 장소에 있던 손가(孫歌, 쑨거), 진광흥(陳光興) 등에 의해 토론시간에 반박되기도 하였다. 왕초화의 정리는 다음과 같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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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 ‘자본주의’의 개념적 해석력 부정: 미조구치, 감양</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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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서방중심(1): 미조구치, 왕휘(농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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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으로서의 중국: 미조구치, 다케우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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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서방중심(2): 다케우치, 왕휘(정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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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손가(孫歌)는 미조구치의 다케우치 비판은 말기에 그가 다시 다케우치에게로 돌아간 점을 통해 다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과 당시 미조구치의 비판의 대상도 다케우치의 영향을 받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는 점을 부연해주었다. 한편, 진광흥(陳光興)의 반박은 좀 더 적극적이었는데, 그가 미조구치의 ‘적자’임을 드러내는 듯 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왕초화가 미조구치의 절반만을 이야기하였고, 나머지는 생략하였다면서, 외부/내부, 서방/반서방 등의 대립의 사이의 복잡성을 생략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방법으로서의 중국’에서 그치는 미조구치가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세계’까지 함께 이야기해야 미조구치의 사상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왕휘, 감양 등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서, 다른 교수들과도 토론이 있었는데, 진광흥(陳光興)은 왕휘 비판 자체가 그다지 의미 없다는 입장을 제기하였고, 오히려 미조구치의 관점에 따른다면, ‘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장’을 배제한 ‘분석’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왕초화는 마지막으로 비판이론의 성장, 전화의 역사 속에서 ‘자본주의’를 망각하는 측면을2010년 정세적으로 제기하고 싶었다는 입장을 제시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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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fck_bookmark="1" style="display: non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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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1px">번역 글에 앞서.</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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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1px"> </span></p>
<p align="left">
<span style="font-size: 11px">왕휘(汪暉, 왕후이)의 최근 글에 대한 번역을 실어본다. 이 글은 지난 9월2일자 환구시보(環球時報)라는 중국매체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을 번역하는 이유는, 우리 연구소에서 오늘 오후 왕초화(王超華, 왕차오화, 6.4천안문사건학생지도자) 초청 강연을 하게 되는데(사실상 나의 추천으로), 왕초화가 강연을 위해 학생들에게 일독을 추천한 자료 중에 이 글이 포함되어 있고, 분량이 짧고 비교적 명쾌하게 왕휘의 최근 관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왕휘는 한국에 지나칠 정도로 많이 소개된 측면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그만큼 왜곡되어 소개된 측면도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한 교정이 없진 않았지만, 여전히 충분해 보이지는 않다고 보인다. 이 번역이 이를 교정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물론 왕휘가 갖는 상징성이나 지식담론형성에 있어서의 중요성을 감안할때, 그를 소개하는 연구자들의 노력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한국 연구자들 중의 일부는 왕휘의 핵심적 결함(당/국가주의적 경향)을 지적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했다고 본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는 한국 지식인의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왕휘의 초기작업(박사논문)에서 중후기 중국적 현대성 탐구로의 전환에 이미 이러한 문제들이 배태되어 있었다고 본다. 이 문제는 노신연구를 포함하는데,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좀 더 포괄적 논의는 이후의 연구작업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나는 중국 내부에서 ‘사회주의 중국’ 을 ‘좌익적으로’ 비판하는 문제가최근에 남한에서도 떠들썩한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좌익적’ 비판의 문제와 고도의 유사성을 갖는다고 본다. 나아가 이는 ‘대안적 아시아’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br />
<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span></span></p>
</div>
<div>
<p align="left">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왕초화의 강연정보는 다음과 같다. </span></span></p>
<p align="left">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講題:知識思想公共化的困境</span></span></p>
</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主講人:王超華‧中研院近史所博士後研究員</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地點:交通大學人社二館106A研討室</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時間:2010年10月13日(三)14:00~17:00</span><br />
</span></div>
<div>
<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주제: 지식사상 공공화의 곤경</span></div>
<div>
<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강연자: 왕초화(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박사후연구원)</span></div>
<div>
<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장소: 대만 국립교통대학 인문사회2관106A</span></div>
</li>
</p>
<p>
</p>
<p>
<li>
시간: 2010년 10월 13일(수) 14:00~17:00<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span>
<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span></span></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왕초화는 왕휘의 글 외에도, 감양(甘陽, 깐양)의 “중국의 길: 30년과60년”이라는 글을 추천하였고, 팍스콘 및 신세대 농민공 관련한 글을 참조해달라고 전해왔다. 나는 왕초화가 올해 초 ‘사상’이라는 대만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짧게 왕휘의 문혁관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 부분을 본 적이 있는데, 이번 강연에서 그 부분을 좀 구체적으로 전개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br />
<br />
</span></span>
<p align="left">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span></span></p>
</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a href="http://opinion.huanqiu.com/roll/2010-09/1066579.html">http://opinion.huanqiu.com/roll/2010-09/1066579.html</a></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번역] 왕휘, 중국은왜붕괴하지않을것인가('汪晖:为何中国不会崩溃')</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環球時報2010-09-02<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중국모델과 관련한 토론 가운데, 많은 학자들이 중국의 발전이 갖는 안정성을 강조하면서 중대한 위기가 출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개혁개방30년간 중국 최대의 위기는1989년 위기이다. 가장 심각하고 지속적인 위기는 곧 정치영역과 국가기구가 나날이 시장관계에 의해 침투되었던 것이다. 오늘의 금융위기와 마찬가지로1989년의 위기는 동일하게 국제정치와 사회위기의 일부분이었는데, 바로 소련/동유럽위기의 전주곡으로 볼 수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 역시 공산당이 영도하는 사회주의 국가였다. 하지만, 왜 중국은 그들과 달리 무너지지 않았는가? 궁극적으로 어떤 요인들이 중국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고속성장의 조건을 제공했는가? 30년 개혁을 경험한 후, 이 조건 자체에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가? 중국경험의 독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먼저 대답할 것은 바로 중국과 소련/동유럽, 특히 변천 후의 러시아 등 전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큰 분기이다. 이 큰 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strong>중국체제가 소련/동유럽체계와 구별되는 첫 번째 특징</strong><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소련/동유럽체계의 와해는 관료체계와 민중의 대립, 냉전정치 중의 전제정치, 나아가 결핍경제가 낳은 민중생활의 곤경 등의 복잡하고 심각한 역사적 원인을 갖는다. 이러한 요인은 중국에도 정도를 달리하여 존재했다. 하지만, 중국이 소련/동유럽체계와 구별되는 첫 번째 특징은, 독립자주적으로 사회발전의 길을 탐색하였고, 이로 인해 독특한 주권지위가 생겨났다는 점이다.<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냉전시기, 양방의 정치가들은 “브레즈네프의 법칙”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여 동유럽국가들의 “불완전 주권”상태를 조소하였다. ‘바르샤바조약’체계 중에 동유럽 국가는 완전한 주권을 가지지 못하고, 소련의 지배를 받았으며, 소련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만 하면, 소련/동유럽체계 전체가 함께 무너지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 민족국가의 주권체계가 확립되었는데, 사실상 세계범위 내에서 진정한 독립주권을 가진 국가는 매우 적었다. 단지 소련/동유럽국가 뿐 아니라, 서유럽국가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아시아에서 일본, 남한 등의 국가 역시 냉전의 구조 속에서 그들의 주권은 미국의 전지구적 전략에 제약을 받았고, 동일하게 불완전 주권 국가였다. 냉전의 구조 속에서, 양대 진영은 모두 결맹 국가체계였고, 어느 한 진영 가운데의 헤게모니 국가가 변화가 발생하거나 정책이 전변하면, 다른 국가들도 모두 깊은 영향을 받았다.<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그런데, 중국혁명과정 그 자체가 그 독특한 길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중국은 건설시기에 독립자주적인 발전의 길을 걸었다. 지난 세기5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적극적으로 비동맹운동을 지원하였고, 그 후 다시 소련공산당과 공개적인 논전을 전개하였다. 정치, 경제, 군사를 막론하고 모두 일부 학자들의 용어로 말하자면 소련과의 ‘종주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회주의체계, 나아가 세계 전체에서의 독립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이 과정은 강요된 부분이 있으며, 중국 당대 역사 가운데 가장 고난하고 거대한 희생을 치른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중국 국가의 정치성격이 주권적이고 고도의 독립자주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러한 정치성격의 주도하에 형성된 국민경제체계는 공업체계를 빼고도 고도로 독립자주적이었다. 이러한 자주성이라는 전제없이 중국의 개혁개방의 길을 상상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중국의1989년 이후의 운명을 생각하는 것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개혁개방 과정이 개시되던 시기, 중국은 이미 하나의 독립자주적인 국민경제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개혁의 전제였다. 20세기70년대부터80년대까지의 개혁을 통해서 볼 때, 중국의 개혁은 하나의 내부논리를 갖는, 자주적인 개혁이었으며, 하나의 주동적이지, 피동적이지 않은 개혁이었다. 이는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의 각종 복잡한 배경을 갖는 ‘색깔 혁명’과 매우 다르다. 중국의 발전은 라틴 아메리아식의 종속경제와도 다르며, 일본, 남한, 대만 등의 지역과 비교해도 아마 동아시아 모델로 간단히 환원할 수 없을 것이다(국가의 역할, 정부산업정책 및 일부 발전전략 방면에서 유사성과 상호성이 존재하더라도). 정치의 각도에서 볼 때, 중국개혁의 전제는 자주이며, 앞서 지적한 각국의 발전은 대체적으로 종속형발전으로 개괄할 수 있다.<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strong>중국의 자기조정은 피동이 아니라 주동[능동]이다.</strong><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이러한 상대적으로 말해서 독립완전한 주권성격은 정당의 실천을 통해서 완성되었다. 이는20세기 정치에 있어서 돋보이는 특징이다. 중국 공산당이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얼만큼의 오류를 범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중국공산당의 ‘반제’와 그 후의 소련과의 변론은 중국 주권성을 완성하는 기본 요소였고, 이 문제에 있어서 세세한 문제에 갇혀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소련 공산당과의 공개 변론을 통해, 중국은 먼저 두 당 사이의 종주관계에서 벗어났고, 이어서 국가간의 종주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립적인 모델을 형성했다.<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다시 말해서, 이러한 주권근원은 정치적인 것인데, 정당관계와 정치과정 중에서 발전해나오는 일종의 특수한 정치독립성이 국가와 경제 등의 영역에서 현현된 것이다. 식민주의 역사 가운데, 규범적인 주권개념과 독립자주는 아마 거의 관련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는 국가는 국제법의 의미상 반드시 하나의 주권 국가이지만, 이 주권과 독립자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상 냉전시대의 양극화 구조는 점차 와해되고, 이는 이러한 양극 구조의 지속에 대한 중국의 비판과 투쟁과 관련된다. 중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미/소 사이 직접적 대결의 가능성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br />
<br />
</span></span></div>
<div>
<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경제, 정치, 문화 영역에서, 사회주의의 길에 대한 중국의 탐색과 개혁의 실험 모두 다양한 편차, 문제, 심지어 비극적 결과를 낳았는데, 그렇지만 지난 세기50년대, 60년대, 그리고70년대, 중국의 정부와 정당은 부단히 스스로의 정책을 조정해왔다. 이러한 조정은 당연히 세계적인 환경과 조건 가운데에서 발생하여, 냉전, 베트남전, 경제봉쇄, 중소관계의 악화 등이 중국의 정치와 경제 정책의 제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나, 그에 대응한 방식은 주동적인 것이었다. 곧 대내외적 실천 가운데 출현한 문제에 근거하여 조정을 진행한 것인데, 이는 곧 독립자주라는 구호의 정치적 함의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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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strong>중국은 또한 교정기제를 가지고 있다</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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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일종의 정당 노선 교정기제로서의 이론변론, 특히 공개적 이론변론은 정당과 국가의 자기조정, 자기개혁 중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공산당내 일종의 서방적 의미의 민주기제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이론 변론과 정책 차이가 잔혹한 권력투쟁을 낳은 적도 있지만, 이러한 요인이 노선 변론과 이론변론이 역사 속에서 행한 중요한 역할을 덮을 수는 없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자면, 개혁 이래의 일정한 습관적 담론을 다시 사고해 볼 필요가 있는데, 예를 들어, 개혁이 준비된 모델, 준비된 정책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 말하자면, “돌을 더듬어 강을 건넌다”는 말은 당연히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준비된 모델이 없다는 것 자체가 중국혁명 전체의 특징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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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준비된 모델이 없을 경우에 무엇에 기대는가? 기댈 것은 이론변론, 정치투쟁, 사회실천이다. 이론변론은 중국의 혁명과 개혁 과정 가운데 중대한 작용을 하였다. 개혁의 이론원천, 사회주의 상품경제의 개념은 바로 상품, 상품경제, 가치법칙과 자산계급의 법적 권한 등등의 이론적 토론 가운데 생산된 것이며, 사회주의 실천 가운데 모색된 것이다. 가치법칙 문제와 관련한 토론은 지난 세기50년대에 출현하였는데, 손야방(<font size="2">孫</font>冶方)과 고준(顧準)이 가치와 가치법칙 문제와 관련한 논문을 발표하였고, 그 큰 배경은 중소분열과 중국사회모순에 관한 모택동의 분석이었다. 이 문제는 지난 세기70년대 중반 다시 당내 변론의 중심과제가 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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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이러한 이론변론이 없었다면, 그 이후의 중국의 개혁이 가치법칙, 노동에 따른 분배, 사회주의상품경제, 사회주의 시장경제 등의 논리적 발전을 따라가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지식인 차원에서 보면, 지난50년대, 60년대부터70년대 까지, 사회주의, 민주사회주의, 인도주의적 사회주의 등의 문제는 그치지 않고 전개되었다. 개혁은 그 체제 안팍에 이론적 원천을 갖는다. 오늘날, 발전노선과 관련한 변론은 이미 과거의 정당 내부에 제한된 것과 다르다. 하지만, 이론변론이 정책노선에 대한 조정의 의미는 여전히 막대하다. 만약 GDP 성장만 치중하는 발전주의에 대한 체제 안팎의 비판과 저항이 없었다면, 새로운 과학발전 모델에 대한 탐색은 일정에 올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세기90년대 중국 정치구조의 변화에 따라, 중국 지식계의 변론은 부분적으로 과거의 당내 노선 변론의 기능을 대체하게 되었으며, 지난 세기90년대 말 이래로의 삼농문제에 대한 관심, 2003년 이후 의료개혁에 대한 반성, 2005년 국유기업개혁과 노동권리에 대한 관심, 나아가 생태환경보호의 이론선전과 사회운동 등등은 모두 국가정책의 조정에 영향을 끼쳤다. 이론변론은 방향을 인도하는 문제에 있어서 아주 큰 기능을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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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1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현재 민주는 교정기제라고 자주 말해지는데, 사실 이론변론과 노선변론 역시 하나의 교정기제이고, 정당의 교정기제이다. 20세기의 역사에 있어, 당내 노선 변론은 시시각각 폭력과 전제의 특징을 드러냈고, 이에 대한 깊이 있고 장기적인 반성은 필요한 것이지만, 당내투쟁의 폭력화에 대한 비판은 이론변론과 노선변론에 대한 부정과 같은 것일 수는 없다. 사실상 후자[이론변론과 노선변론]가 바로 독단을 벗어난, 자기교정적인 루트와 기제이다.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이론변론은 더 이상 정당과 국가내부에 제한되지 않으며, 심지어 사회공중의 공간에서도 발생한다. 이로 인해, 어떻게 공공 토론에 이익이 되는 사상공간을 촉발시키고 창조해 낼 것인가의 문제가 중국의 발전노선을 탐구하고, 공공정책이 특수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피하는 첫 번째 과제 중 하나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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