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術人生研究室: 전리군 태그 글 목록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망상(妄想)과 콤플렉스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나의 말과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해둔다.2016-05-30T14:29:54+09:00Textcube 1.8.3.1 : Secondary Dominant근황藝術人生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782011-07-29T17:26:03+09:002011-07-29T17:15:22+09:00<p>
대만 와서 우리 연구소 동학들과 술을 한잔 했고, 대북에 있는 탁구 친구이자 인생의 벗인 김 선생과 한잔 그리고 그의 한국인 동학들 및 친구들과 한잔했다. 김 선생은 자격고사를 무사히 잘 통과하였다고 한다. 오늘은 몇 년 전 대북 촛불집회를 계기로 알게 된 신죽에 있는 한국인 지인들과 한잔하기로 했다. 암튼, 대만에 오면 적어도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 같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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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번역 진척이 없다. 그렇지만, 역시 공간적으로 이동을 하니 몇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게 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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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북에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가 당산 서점에 가서 책을 좀 보았는데, 재미있어서 몇 시간을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5권을 사서 나왔다. 현재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구체적 제목이나 저자명 등이 생각이 안나는 부분이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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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은 전부터 계속 주목하고 있는 <사상> 여름호(?)였던 것 같은데, 화동사범대 허기림 선생의 '국가주의' 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대로 왕휘, 왕소강 등 신좌파를 포함하여 좌우를 막론한 국가주의의 부상에 대해 비판하고 있었다. 이러한 논의와 전리군 선생이 최근에 제기한 왕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백승욱 교수가 제기한 비판 등도 나중을 위해 모아두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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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네 권의 책 가운데 전리군 선생의 책을 제외하고 세 권은 서로 물려있는데, 하나는 대만의 좌익 소설가 진영진 선생이 주도하여 펴 낸 '좌익 전통의 복귀'? 라는 논문집이다. '인간' 출판사에서 몇 년 전에 나온 책이다. 물론 진영진 선생은 대만에서는 '통일 좌파'로 분류된다. 재밌는 것은 여기에 '진방명'이라는 '대만문학' 평론가의 독립/분리주의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소개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1970년대 이른바 '향토문학논쟁'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진영진 선생은 이 논쟁의 역사를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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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연스럽게 '진방명'의 책 가운데 그가 이론적으로 '탈식민주의'를 통해 일종의 하위주체로서의 대만인 소수자의 저항 및 '주체성'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고자 시도하는 책을 한 권 골랐다. 이 책의 말미에 역시 진영진에 대해 '가소롭다'는 식의 반비판이 실려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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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에 대해 대륙의 학자(?)가 다른 책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탈식민주의를 해석하고, 진방명이 어떻게 탈식민주의를 오해하고 있는지 지적하면서, 진영진을 탈식민주의적으로 계승하는 진광흥에 대한 논의를 상당한 분량으로 소개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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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이중/삼중의 대립 구도 속에서 아주 흥미로운 쟁점을 발견한다. 게다가 이 쟁점으로 인해 '대만'이 나의 논의의 구도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진광흥의 대만 주체성 비판은 아주 전형적인 탈식민주의적 비판인데, 내가 알기로는 사카이 나오키 같은 이들은 이러한 최근 '제3세계' 등을 중심으로 진영진을 재해석하는 진광흥의 시도를 진광흥 자신이 견지했던 탈식민주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탈식민주의의 타자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나는 제기하고 있다. 결국 이는 '정치'와 관련된 문제이고, 이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진광흥과 나오키는 매우 다른 지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다시 '역사'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나는 이 둘이 모두 버린 헤겔/마르크스적 보편성을 주목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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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나의 논의 안에 대만이 하나의 '실천'으로 들어온다. 대만은 탈식민주의를 논의하고 실천하는 현재적 사례로서 일정한 대표성과 일반성을 가지는 것 같다. 식민과 분단을 거쳤으나 국제법 상으로 국가에 미달하고,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영토, 화폐, 노동력 등 민족국가의 부분적 요소들을 불안정하게 나마 유지하고 있다. 대만에서 분리주의 또는 독립지향이 탈식민주의를 수용하고 표방하는 것은 참 흥미롭다. 따라서 나는 대만이 탈식민주의 자체가 자율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21세기적 사례라고 생각하는 중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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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치의 가능성, 또는 정치적인 것의 논의를 위해 박현채 선생의 사상으로 진입하고, 다시 박현채 선생('마르크스')이 추상적으로 남겨 놓은 윤리적/실천적 문제를 전리군 선생('노신')을 통해서 구체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는 다시 대만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대만의 탈식민주의적 실천의 한계과 곤경들에 대해 나 나름의 답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식으로 박사논문을 쓰는 것은 너무 무모할까? 불가능할까? 나는 이런 식의 사상연구가 진짜 '인터-아시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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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ody>
<tr>
<td>
</td>
<td>
박현채</td>
<td>
전리군</td>
</tr>
<tr>
<td>
생몰</td>
<td>
1935~1995</td>
<td>
1939~</td>
</tr>
<tr>
<td>
경력</td>
<td>
빨치산/이론가</td>
<td>
조반파/이론가</td>
</tr>
<tr>
<td>
대표적 이론/테제</td>
<td>
사회구성체론(해방공간에서의 분열과 내전이 특수성을 부여하는 역사적 분기가 됨)</td>
<td>
1957년학(중국 당국가 체제의 성립이 중국적 특수성을 부여하는 분기가 됨)</td>
</tr>
<tr>
<td>
학술/이론적 특색</td>
<td>
<p>
빨치산 경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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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 경제학과</p>
<p>
석사 졸업 후 강사/평론가/실천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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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체제 빨치산 출신성분이 가져오는 제약)</p>
<p>
역사적 경험의 이론적 심화</p>
<p>
국내 토착적 지식인</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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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강조(4.19 및 부마항쟁, 광주항쟁 대한 부단한 의미 부여)</p>
</td>
<td>
<p>
북경대학 중문(신문학전공)입학</p>
<p>
인민대학 신문학 졸업 후 운남으로 하방(국민당 현직 관료인 아버지, 출신성분의 제약)</p>
<p>
대약진/문혁 경험 후 노신 연구 및 이론화</p>
<p>
'망각을 거부하라'는 역사적 은폐에 대한 경고.</p>
<p>
국내 토착적 지식인</p>
<p>
민간 좌파적 사상자원의 복원시도.</p>
</td>
</tr>
</tbody>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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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묘한 유사성이 떠올라 컴퓨터를 켜고 적어 놓는다. 이 둘을 대화시키는 작업은 어떠한가. 아시아적 시좌를 도입하여 상호참조하면서 일정한 공백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아시아적 시좌에서 중국을 '방법'으로 삼아 보는 시도를 사상연구의 영역에서 해 볼 수 있지 않을까.</p>
<p>
</p>
<p>
앞으로 1년 정도 준비하여 두 과목으로 나누어 보게 될 자격고사의 첫 과목은 '아시아 문화연구'로 잡아 놓았다. 기존의 아시아 문화연구 방법론을 '정치'와 '역사'의 관계라는 내 나름의 설정을 가지고 전반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문화'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두 번째 과목은 아마도 박현채와 전리군을 재료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직 먼 훗 날 이야기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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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경제 진지에서 밀려나 엎드려서 포복하여 전진해 정치 진지로 기어 올라와 돌격해 갔다. ‘너는 너의 강점으로 싸우고, 나는 나의 강점으로 싸운다. 싸워서 이기면 계속 싸우고, 싸워서 지면 떠난다. 이 곳에서 어쩔 수 없으면, 다른 곳에 불을 놓는다.”<a href="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owner/entry/post#_ftn1" name="_ftnref1" title="">[1]</a> 이 역시 일종의 관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일종의 매우 중요한 신호입니다. 모택동은 1958년에 크게 벌인 경제 낭만주의와 경제 유토피아주의가 실패한 이후, 지금 다시 진용을 재정비하여, 희망을 정치 낭만주의와 정치 유토피아주의에 기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 모택동의 건국 목표와 중심(重心)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중략) 모택동이 단지 계급투쟁만 하고, 국가건설에 관심이 없다고 간단히 이해하는 것 역시 일종의 은폐를 낳습니다. 그러나 1962년 9월 8기 10중전회 이후, 모택동은 다시 확실히 중심을 “어떻게 혁명 승리 이후 건립된 국가 정권과 집정당이 계속 혁명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증할 것인가”에 두었습니다. 즉 중심이 “당과 사회주의 국가 성격의 변질을 방지하고, 자본주의의 복귀를 방지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같은 모택동에게 있어 아마도 더욱 근본적인 목표인 사회주의 신념에 관한 것으로 올라왔습니다. 문화대혁명은 이미 이 속에서 배태 중이었습니다.</p>
<div>
<br clear="all" />
<hr align="left" size="1" width="33%" />
<div id="ftn1">
<p>
<a href="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owner/entry/post#_ftnref1" name="_ftn1" title="">[1]</a>單少傑:《毛澤東執政春秋》,香港明鏡出版社,2001年出版,113頁。</p>
</div>
</div>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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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pan style="font-size: 12px"><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당연히 글 전체에서 이야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제국주의의 봉쇄에 저항하고, 어떻게 수정주의에반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대기근과 같은 심각한 국내의 문제를 완전히 회피하면서, 반제국주의와 반수정주의로 국내문제를 가리고 있습니다. 이 자체는 노신의 사상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u>노신은 절대 “일치단결하여 외세에 대항하자”는 구호 밑에서, 국내의 억압관계를 감추고, 민족문제로 사회모순을 덮지 말며, 절대 ‘이족의 노역’을 거부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사람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복하여 경고한 바 있습니다</u>.</span></span></p>
</blockquote>
<div>
<hr align="left" size="1" width="33%" />
<div id="ftn1">
<p>
魯迅:《半夏小集》,《魯迅全集》6卷,617頁。</p>
<p>
</p>
<p>
전리군 선생은 대기근 시기에 쓴 자신의 필기 노트의 글을 다시 분석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노신의 사유를 빌려오는 부분은 전리군 선생의 비판성의 기초를 구성하는 것 같다. 내재성에 근거한 정치적 주체의 형성을 노신 역시 고민을 했었던 것이다. 박현채 선생의 저작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이론화하려고 한 시도들이 곳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p>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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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div>
<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5362',63,'/alternativeasia','');"><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alternativeasia%2F63+%22%5B%EB%B2%88%EC%97%AD%3A%20%EC%A0%84%EB%A6%AC%EA%B5%B0%282011%29%5D%20%20%27%EB%85%B8%EC%8B%A0%EC%9D%98%20%EB%B9%84%ED%8C%90%27%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alternativeasia%2F63&t=%5B%EB%B2%88%EC%97%AD%3A%20%EC%A0%84%EB%A6%AC%EA%B5%B0%282011%29%5D%20%20%27%EB%85%B8%EC%8B%A0%EC%9D%98%20%EB%B9%84%ED%8C%90%27"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alternativeasia%2F63&title=%5B%EB%B2%88%EC%97%AD%3A%20%EC%A0%84%EB%A6%AC%EA%B5%B0%282011%29%5D%20%20%27%EB%85%B8%EC%8B%A0%EC%9D%98%20%EB%B9%84%ED%8C%90%27','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63?commentInput=true#entry63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번역: 전리군(2011)] '포스트' 모택동 시기藝術人生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592011-06-23T15:50:56+09:002011-06-17T11:57:05+09:00<blockquote>
<p>
이 점을 인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u>현재 늘상 모택동 시대가 평등한 시대였다는 신화와 가상을 제조해내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u>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모택동은 평등을 강조했습니다. 심지어 절대 평균주의의 극단을 향해 걷기도 했습니다. 모택동 시대의 특권과 오늘날 중국 사회의 특권은 질적이나 양적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택동 시대의 특권과 양극화는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존재입니다. 모택동 시대에 있었던 연속적으로 반복되어 발생한 민간의 ‘반특권’ 투쟁이 과녁없이 활을 쏜 것은 아닙니다.</p>
</blockquote>
<blockquote>
<p>
모택동 시대는 부단히 대립면을 설정하고 계급투쟁을 제조하여,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의 모순을 고도로 정치화하였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고도로 긴장시키고 악화시켰으며, 그 결과 인간에 내재한 살육성을 유도해 내었습니다. ‘부단혁명’의 구호 하에서 서로 다른 이익 집단 간에 끝을 모를 상호 살육, 즉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이 제조되었고, 무고한 생명을 앗아 갔습니다. 정치적 고압과 유혹 아래에서 “거짓말, 아부, 남을 다치게 해 자신을 살찌우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자지간, 사제지간에 강제로 선을 긋고, 상호 검거하고 밀고하도록 강조하고 고무하였으며, 사람들이 도덕의 최저선을 넘어서도록 압박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진정한 도덕의 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는 물론 개인의 도덕품성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도덕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도덕 위기는 중국 원시기 사회주의의 본질적 특징입니다. 이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역시 동일하게 <u>모택동 시대가 도덕이 숭고하고 순결한 시대라는 신화와 가상을 제조하고자 하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u>. </p>
<p>
</p>
<p>
먼저, 고준이 이야기한 중국 원시기(原始期) 사회주의는 모택동 이후까지 줄곧 연속되었습니다. 이는 <u>우리가 공화국 60년을 하나의 전체로 관찰하고 사고하며 토론해야 함을 의미합니다</u>. <u>내가 보기에 뒤의 30년의 개혁개방은 그 기초를 모택동이 놓았을 뿐(이는 우리가 이후에 토론할 것이다) 아니라, 전혀 모택동 시기로부터 빠져 나오지 않았고, 또는 이를 ‘포스트 모택동 시기’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적절하며, 더욱 역사의 진실과 본질을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것</u>입니다. 모택동에서 등소평까지, 강택민에서 호금도까지, 네 세대의 지도자가 완성하고자 했던 것은 원시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사명이며, 이는 하나의 완결성을 갖는 역사과정입니다. 그 기본특징은 고준의 말을 빌리면 곧 “야만적 방식”으로 “호구경제”를 세워, 중국인의 밥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조금 확대하면, 중국의 독립 및 통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u>이른바 “야만적 방법”은 모택동 시대에 정치적 수단으로 부단히 계급투쟁과 대약진을 동원하여 원시적 자본축적을 완성하였다면, 포스트 모택동 시대는 경제적 수단으로 권세 있고 지위 높은 자본주의의 시장 방식을 이용해 경제의 고속 성장을 실현하는 것입니다</u>. 이러한 원시 축적과 고속발전은 앞의 분석처럼 모두 자원 대파괴와 기층인민, 특히 농민에 대한 대대적 수탈을 대가로 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 역시 공통적 특징을 가집니다. 경제의 고속발전과 특권이 심각하고, 사회불평등, 도덕 최저선의 파괴, 엄격한 사상통제, 문화의 거듭된 파괴 등이 그것입니다. 그것의 의존한 것은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 일당전제 하의 ‘저(低) 인권의 우위’였습니다. 이는 모택동 시대의 ‘정치적 강대함’과 포스트 모택동 시대의 ‘경제적 강대함’의 비밀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p>
</blockquote>
<p>
모택동 시기와 포스트 모택동 시기의 연속성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집중적으로 드러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관점이 중국 내외부의 어떤 경향과 비판적 선을 긋는지 엿볼 수도 있다.</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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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2px">원래 번역하면서 흥미로운 부분들을 매일매일 한 두 부분 뽑아서 올려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동안 인터넷 사정이 안 좋아서 안 올렸는데, 최근 이유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블로그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앞에도 아주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는데, 49년에서 50년대까지는 지나갔고, 대약진 이후 대기근 기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부분을 재인용해 본다. 2년 전에 수업 들을 때에도 조금 놀랐던 내용이었는데...</span></p>
<p>
<span style="font-size: 12px"> </span></p>
<p>
<span style="font-size: 12px">"적지 않은 지역에서 식인 사건이 벌어졌다. 임하(臨夏) 시 전체 10개 공사와 41개 생산대가 있으며, 5백 88 명이 3백 37 구의 시체를 먹어치웠다. 그 가운데 홍대(紅台) 공사만 1백 70명이 1백 25구의 시체와 살아 있는 다섯 명을 먹었다. 소구문(小溝門) 생산대의 8개 작업대 가운데 6개 대에서 식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23 가구가 57명을 먹어치웠고, 심지어 매장한 지 한 달이나 된 사람도 먹었다. 장금광(藏錦光) 생산대의 마희순(馬希順)은 병든 시체를 먹었고, 자신도 죽었다. 전 가족 11명이 모두 죽었다. 사원 백일노(白一努)는 먼저 8개 시체를 먹고, 그 중에는 아버지와 처 그리고 딸을 포함한 3대가 있었다. 빈농 사원 마아복(馬阿卜)은 굶주려 숨이 간들간들할 때, 그의 딸 마합소비(馬哈素非)에게 “내 몸에 고기가 없으니, 죽은 뒤에 내 심장을 꺼내 먹어라”라고 말하였다. 그가 죽은 후, 딸은 그의 심장을 꺼내 삶아 먹었다. 백장(白藏) 공사 단결 생산대의 빈농 사원 마일부랍(馬一不拉) 부부는 자신의 14세 딸을 산 채로 먹었고, 남편은 죽은 뒤 그 처에 의해 먹혔다. 홍대 공사 소구문 작업대 이소륙(李尕六)은 자신의 죽은 두 아이를 먹었고, 이소륙은 죽은 뒤 사원 호팔(胡八)에 의해 먹혔다. 호팔은 죽은 뒤 숙정지(肅正志)에 의해 먹혔다."</span></p>
<p>
<span style="font-size: 12px"> </span></p>
<p>
<span style="font-size: 12px">이는 오랫동안 감숙성 부녀연합회 주석을 담임했고, 대기근 당시 영하 회족 자치주의 위원회 서기였던 이뢰(李磊)라는 노부인의 회고록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본문은 이러한 기근의 원인과 배경 등에 대한 내용을 모택동 등의 지도부와 기층 민중의 언어를 모두 동원하여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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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복단대학 문과 도서관 인터넷이 잘 안되어서 블로그를 개점 휴업해 두었는데, 갑자기 오늘 저녁에 또 된다.</p>
<p>
</p>
<p>
엊그제 텀페이퍼를 하나 마치고 갑자기 감기가 걸려서 오늘 저녁까지 이틀간 고생하고 있다가 저녁에 다시 도서관으로 나왔다. 뭐 대단한걸 했다고 꼭 감기가 오는지 모르겠다.</p>
<p>
</p>
<p>
텀페이퍼는 "박현채 선생의 '민족민중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내 딴에는 의외의 수확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사상과 이론, 나아가 운동의 위기가 사실은 '민족'의 부재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던지는데 주력했다. 역사적 '민족'과 정치적 '민중'의 변증법적 상호결정성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이런 시각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보게 되면 여러가지 논의거리가 많아질 것 같다. 게다가 마지막에서 '문학과 경제'의 관계를 둘러싼 백낙청 선생과의 토론을 소개하였는데, 여러모로 상당한 현재성을 갖는다는게 내 생각이다.왕휘선생님이 어떤 코멘트를 해 올 지도 조금 궁금하다.</p>
<p>
</p>
<p>
번역은 어느정도 지연되는 것이 당연한 것(?) 같긴 한데... 사실 대만에서 출판될 중문판이 늦어지고 있어서 어쩌면 굳이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게 된 것이기도 하다. 약 2/3정도.. 즉 문혁 정도까지만 마치고, 나머지는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다. 방학 때 나머지를 마무리짓고, 중문판 최종판본과 대조작업을 거치면, 대강 초고가 나올 것 같은데... 아마 8월말은 되어야 할 듯 싶다. 그래도 초고가 어느정도 잘 나와서 뒷 사람들이 고생을 덜하고 책도 빨리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시간을 조금 넉넉히 잡고 괜찮은 초고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린비에서 나올 '57년학'은 왜 안나오는지... 먼저 나오면 참고하고 토론할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p>
<p>
</p>
<p>
</p>
<p>
</p>
<p>
</p>
<p>
</p><div class="buttons-bottom center jinboblog-i-like-this-buttons"><a class="button-jinboblog" href="javascript:void(0);" title="스크랩으로 글 링크를 저장하세요" onclick="recommend('5362',55,'/alternativeasia','');"><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mini_chuchon.png" alt="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a><a class="button-twitter" href="http://twitter.com/home?status=http%3A%2F%2Fblog.jinbo.net%2Falternativeasia%2F55+%22%EA%B7%BC%ED%99%A9%22" target="_blank" title="트위터로 리트윗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twitter.png" alt="트위터로 리트윗하기" /></a><a class="button-facebook" href="http://www.facebook.com/sharer.php?u=http%3A%2F%2Fblog.jinbo.net%2Falternativeasia%2F55&t=%EA%B7%BC%ED%99%A9" target="_blank" title="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facebook.png" alt="페이스북에 공유하기" /></a><a class="button-delicious" href="http://delicious.com/save" onclick="window.open('http://delicious.com/save?v=5&noui&jump=close&url=http%3A%2F%2Fblog.jinbo.net%2Falternativeasia%2F55&title=%EA%B7%BC%ED%99%A9','delicious','toolbar=no,width=550,height=550'); return false;" title="딜리셔스에 북마크합니다"><img src="/plugins/../jplugins/ILikeThis/images/delicious.png" alt="딜리셔스에 북마크" /></a></div><p><strong><a href="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55?commentInput=true#entry55WriteComment">댓글 쓰기</a></strong></p>가제: “노신좌익의 중국 현대사 강의”(상)/(하) 목차藝術人生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462011-04-24T16:58:59+09:002011-04-24T16:58:59+09:00<p>
머리말과 후기의 초역이 끝났다. 번역해 놓으니 참으로 감동적인 내용이다. 2년전 수업 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A4로 25쪽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첫 주 상해에 적응하면서 한 것 치고는 나름 선방하지 않았나 싶다. 다음 주 부터는 좀 더 속도를 내야할 것이다.</p>
<p>
</p>
<p>
아래에 이번 번역되는 책의 목차를 번역해 놓는다. 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지금까지 이런 중국역사서는 없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독자성을 갖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상/하로 나뉘어 나올 예정인데, 1200쪽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 예상된다.</p>
<p>
</p>
<p>
<strong>***</strong></p>
<p>
<strong>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1949-2009)</strong></p>
<p>
: <strong>또 하나의 역사서사</strong></p>
<p>
<strong>[</strong><strong>가제: “노신좌익의 중국 현대사 강의”(상)/(하)]</strong></p>
<p>
</p>
<p>
<strong>* (</strong><strong>상권)</strong></p>
<p>
머리말</p>
<p>
1. 나와 모택동 및 모택동 시대의 관계</p>
<p>
2. 모택동 사상과 문화의 몇 가지 기본 특징</p>
<p>
3. 당대 중국의 모택동</p>
<p>
4. 세계에 대한 모택동의 영향</p>
<p>
</p>
<p>
제1강 건국초기(1949-1955)</p>
<p>
1. 역사 교체 시기, 나와 나의 가정</p>
<p>
2. 지식인의 선택: 심종문(沈從文)을 중심으로</p>
<p>
3. 통치노선과 모델에 있어서 모택동의 선택</p>
<p>
</p>
<p>
제2강 반우파운동 전후(1956-1958년초) (상)</p>
<p>
1. 소련20차 당대회 이후 모택동의 반응: 중국의 발전노선 탐색</p>
<p>
2. 모택동의 내재적 모순</p>
<p>
3. 국내외, 당내외의 반향과 모택동의 대책</p>
<p>
4. 지식인과 민주당파의 반응, 그리고 정치정세의 급변</p>
<p>
</p>
<p>
제3강 반우파운동 전후(1956-1958년초) (하)</p>
<p>
1. 청년 학생의 반응: 중국 학원(學園)에서의 사회주의민주운동</p>
<p>
2. “모든 문제는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고준(顧准)의 사고</p>
<p>
3. 반우파운동 중의 모택동, 나 그리고 지식인</p>
<p>
4. 반우파운동 이후 모택동의 이론적 수정</p>
<p>
5. 반우파운동 이후 건립한 “57체제”</p>
<p>
</p>
<p>
제4강 대약진 시대(1958) (상)</p>
<p>
1. “너희들은 성인이 되고 싶지 않으냐?”</p>
<p>
2. 대약진: 모택동 통치의 큰 그림</p>
<p>
3. 전인민의 철 만들기와 참새잡기: 대약진의 두 가지 장면</p>
<p>
4. 대약진 시기의 나</p>
<p>
</p>
<p>
제5강 대약진 시대(1958) (하)</p>
<p>
1. 인민공사운동: 모택동의 공상사회주의 실험</p>
<p>
2. “전민참여(全民參與)”에 대한 분석</p>
<p>
</p>
<p>
제6강 대기근 시대(1959-1961) (상)</p>
<p>
1. “천국”에서 “지옥”으로</p>
<p>
2. 대약진은 어떻게 대기근이 되었는가</p>
<p>
3. 교정기제는 존재하는가</p>
<p>
</p>
<p>
제7강 대기근 시대(1959-1961) (하)</p>
<p>
1. 대약진, 대기근에 대한 민간의 관찰과 사고</p>
<p style="margin-left: 10.5pt">
고준(顧准), “사회주의 선사시기” 비판</p>
<p style="margin-left: 10.5pt">
《성화(星火)》, “국가사회주의” 비판</p>
<p style="margin-left: 10.5pt">
장중효(張中曉) , 모택동 시대의 정신 비판</p>
<p>
2. 어떻게 곤경으로부터 벗어날 것인가</p>
<p>
3. 대기근 시기에 형성된 나의 모택동관(毛澤東觀)과 노신관(魯迅觀)</p>
<p>
</p>
<p>
제8강 문화대혁명으로 가는 길(1962-1965) (상)</p>
<p>
1. 중국 농민의 목소리</p>
<p>
2. 하층과 중간층 간부의 반응</p>
<p>
3. 상층 지도자의 답변과 선택</p>
<p>
4. 모택동의 결정: 계급투쟁의 전차(戰車)를 다시 가동하라</p>
<p>
</p>
<p>
제9강 문화대혁명으로 가는 길(1962-1965) (하)</p>
<p>
1. 대지에서부터 폭풍우가 일다</p>
<p style="margin-left: 10.5pt">
국내 전장(戰場): 기층과 중간층, 그리고 상층의 계급투쟁 연습</p>
<p style="margin-left: 10.5pt">
국제 전장(戰場): 중미관계와 중소대논전</p>
<p>
2. 중국 학원(學園)의 지하 신사조</p>
<p>
3. 사회 기층의 상황: 문혁 전 나 개인의 처지와 예감</p>
<p>
</p>
<p>
<strong>(</strong><strong>하권)</strong></p>
<p>
제10강 문화대혁명시대(1966-1976) (상)</p>
<p style="margin-left: 10.5pt">
발단: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계속혁명”- 문화대혁명을 위한 모택동의 밑그림</p>
<p>
1. 고위간부 자제들이 주체가 된 홍위병 조반운동과 사조</p>
<p>
2. 57체제 피억압자들이 주체가 된 조반파의 조반운동과 사조</p>
<p>
3. “상해코뮌”의 요절에서 군대개입과 전국적 동란까지</p>
<p>
4. 조반파의 분화</p>
<p style="margin-left: 10.5pt">
청년모택동주의자와 문혁의 국제적 영향</p>
<p style="margin-left: 10.5pt">
17년파</p>
<p style="margin-left: 10.5pt">
문혁 신귀족</p>
<p style="margin-left: 10.5pt">
소요파와 문혁 일상생활</p>
<p>
5. 피 바람: “오일육”에 대한 색출, 1968년 여름 대탄압, 계급대오의 청산</p>
<p>
6. 새로운 각성: 모택동으로부터 빠져 나오기</p>
<p>
</p>
<p>
제11강 문화대혁명시대(1966-1976) (상)</p>
<p>
1. 문혁 후기 민간사고와 두 가지 배경</p>
<p>
2. 문혁 후기 민간사고의 특징</p>
<p style="margin-left: 10.5pt">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사상운동</p>
<p style="margin-left: 10.5pt">
직면한 모순과 곤경</p>
<p style="margin-left: 10.5pt">
사상자원과 서로 다른 길</p>
<p>
3. 문혁 후기 민간사조의 주요 성취</p>
<p style="margin-left: 10.5pt">
중국 현행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정치경제학 비판</p>
<p style="margin-left: 10.5pt">
사회주의 민주와 법제, 그리고 사상계몽 호소와 사고</p>
<p style="margin-left: 10.5pt">
사회생산력의 발전과 농촌체제를 개혁하고자 하는 호소와 사고</p>
<p style="margin-left: 10.5pt">
마무리: 모택동의 “유언”</p>
<p>
</p>
<p>
제12강 포스트 모택동 시대(상) (1977-1989)</p>
<p>
1. “모택동 이후” 중국 발전 노선의 선택</p>
<p style="margin-left: 10.5pt">
상층의 논쟁: 등소평의 결정</p>
<p style="margin-left: 10.5pt">
사회민주운동(1978-1980): 개혁과 발전에 대한 또 다른 선택과 요구</p>
<p>
2. 체제내의 경제개혁과 사상계몽운동</p>
<p style="margin-left: 10.5pt">
농촌체제개혁과 중국 농촌 발전연구조</p>
<p style="margin-left: 10.5pt">
민간학술문화운동</p>
<p style="margin-left: 10.5pt">
나와 안순(安順)의 친구들의 선택</p>
<p>
3. 80년대 말의 정치체제개혁과 천안문 민주운동</p>
<p>
</p>
<p>
제13강 포스트 모택동 시대(중) (1989-1999)</p>
<p>
1. “모택동 찾기” 열풍</p>
<p>
2. 나의 “모택동 연구”</p>
<p>
3. 1998년 전후의 북경대학 개교100주년 기념</p>
<p>
4. “64체제”: 90년대 중국사회구조와 체제의 변동</p>
<p>
5. 번개 불: 1998년 “북경의 봄”</p>
<p>
</p>
<p>
제14강 포스트 모택동 시대(하) (1999-2009)</p>
<p>
1. 등소평의 개혁개방의 긍정적/부정적 효과</p>
<p>
2. 권리보호운동과 네티즌 통제, 그리고 비정부조직: 삼대(三大) 민간운동의 흥기</p>
<p>
3. 지식인의 서로 다른 길</p>
<p>
4. 중국 공산당의 분화: 당내 모택동파와 민주파의 출현</p>
<p>
5. 조정과 견지: 집정자의 답변과 선택</p>
<p>
</p>
<p>
참고문헌</p>
<p>
후기</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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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박사과정 들어와서 지속적으로 반항하면서 일부 동의하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역사화'라는 것일테다. 진광흥(천꽝씽) 선생의 조금은 불친절한 강조에 대해 여러번 흥분하여 대응하기도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그에게 당신은 '역사화'는 있지만 '정치화'는 결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었다. 이 측면에서 볼 때, 왕휘에게는 '역사화'와 '정치화'라는 두 범주가 모두 존재하는데, 그것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그 사이에 긴장이나 모순이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대해 어제 수업 중 질문을 던져 보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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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는 제임슨의 '영원한 역사화'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역사화는 본질주의화와 다른 것임을 먼저 강조하고, 한편 '정치'란 일정한 의미에서 '역사의 중단'이며, 곧 역사가 중단되는 곳에서 정치가 탄생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야기를 더 끌고가지는 않았고, 이후 수업이 주로 역사화/정치화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후 충분한 논의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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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 선생님과의 대화 덕분에 '역사'와 '정치'를 그 관계 속에서 좀더 분명하게 개념화할 수 있는 길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보기에 왕휘는 '역사화'를 비본질주의화하면서, '정치'의 가능성의 조건을 탐색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왕휘 선생에게 있어서 '역사화 또는 역사서술'은 '정치화'(또는 정치적인 것)을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왕휘 선생과 사카이 나오키 선생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의 작업이 갖는 효과를 고려하면 또 다르지만. 나는 이와 대비되는 시도로 전리군 선생님의 작업을 주목하고 있다. 전리군 선생은 '정치화를 위한 역사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역사서사'를 시도한다. 따라서, 왕휘가 '당대의 정치'를 위해 현대성이라는 '과거의 역사'에 주목하는 반면, 전리군은 '당대의 정치'를 위해 '당대역사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즉, 전리군 선생은 역사 속의 대안적 주체의 계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당대의 정치적 공간에 직접 진입하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흥미롭게도 왕휘는 '서술'의 관점에서 역사를 대하는 반면, 전리군은 '서사'의 관점에서 역사를 대하는 대비가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구도는 두 선생님이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전반적으로 포괄하고 있지는 않고, 게다가 진행 중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후 진행될 부분을 배제하고 판단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아마도 전리군 선생은 소위 '역사화'보다 '정치화'에 더 방점을 찍고 있는 듯 하고, 나아가 역사화의 문제를 나름 해결하는 방식을 노신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왕휘 선생은 정치화를 위한 사상적 자원을 역사화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데, 그러한 역사화가 어떻게 새롭게 정치화를 가능하게 하는지, 또는 할 것인지는 두고 볼 문제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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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유물론과 변증법의 문제와 매우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근래 내가 알튀세르를 통해 고민해 왔던 문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문제이다. 역사화가 해체적이고/유물론적인 것이라고 할 때 정치(성)에 묶여있는 목적론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그러한 목적론을 배제할 경우 일종의 '우연의 유물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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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조만간 정치적인 것(정치)와 역사적인 것(역사)의 관계에 대한 소론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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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왕휘 선생과 3박4일 동부해안을 돌아보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왕휘 선생은 한국의 80년대 사회성격논쟁와 한국 사회운동의 궤적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글을 한편 써보라는 권유도 했었다. 물론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권위'자들이 한국에 있고, 나는 생계를 위해 당분간 중국연구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폈다. 생계 문제가 해결되면 언젠가 돌아가야 할 주제임은 분명한 것 같다. 나 스스로 한국 사회운동을 얼마만큼 전유하고 있는지 아직 확신이 없지만, 지속적으로 반추하고 역사화/정치화해야할 자원임은 분명하다고 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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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2011 봄 통권 151호에 전리군(첸리췬) 선생님의 글이 실렸다. 아마도 지난해 금문에서 열렸던 비판간행물대회에서 발표된 글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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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리췬, '중국 국내문제의 냉전시대적 배경: 중화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성찰 (임명신 옮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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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에 나는 이 비판간행물대회의 시대착오적 냉전에의 집착이라는 문제설정과 그를 훨씬 넘어서는 전리군 선생이 그 공간에서 갖는 이질성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다수 한국 민족주의자들의 국가중심적 서사로 쓰여진 냉전의 역사를 다시 꺼내 동아시아을 논하는 우익적 초국적 담론에 대해, 전리군 선생은 오히려 국가주의에 대한 반성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오키나와의 문제도 끼여있는데, 아마 그들에게 적당히 이용되기 쉬운 자원이었을 것이다. 깊이 들어가면 그렇지 않겠지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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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전리군 선생님에 대한 소개도 좀 아전인수격인 듯 싶다. 느닷없이 웬 동아시아이며, 루쉰 중심의 연구자라고 하면서 정작 루쉰 관련 연구서는 하나도 안가르쳐주는 소개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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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뻬이징대학 중문과 교수. 루 쉰을 중심으로 한 중국근현대문학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의 역사체험과 현실인식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왔다. 저서로 『知我者謂我心憂』 『1948, 天地玄黃』 등이 있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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