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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she was... vol.1] 3.20 그날의 기록

(편집자주 : 예전 'and she was... vol.I' 게시판 백업 중 발췌) ☆앞면 ☆뒷면 제 목 : ☆[3.20 그날의 기록]주류를 거부하자 작성자 : 사과벌레 시 간 : 2004-03-28 오후 7:58:47 내 용 : 3.20 하루 전날 빈집을 점거하여 함께 모여 피켓을 만들기로 한 주민들은 아무런 소득없이 밤을 보내야 했다. 아니키는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식은 피자와 샐러드 몇 점 주워먹고 다시 불법학원으로 향하였고 단순 육체노동자 ㅤㅆㅛㅇ과 나는 한주일의 피곤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엇다 손에 풀 한 번 가위질 한 번 안하던 코직은 줄곧 음악만 틀다가 계속되는 강아지 알레르기로 휴지 한통만 날린채 결국 밤 12시에 집을 나섰고 유슉 얄짤이모는 11시쯤이 되어 한껏 만취하여 들뜬 목소리로 헛소리를 전화기에다 나부렁대다 못오시겠다 하였다 (얄짤이모는 담날 오후 4시경에 알콜 냄새가 가시지 않은 채 이제 일어낫다는 무성의한 메시지만 보내었다) 결국 날은 새었고 사과는 허둥지둥 재택업무를 마치고서 이런 저런 필요한 준비물을 마련하러 시내에 나갔다 돌아온 후 집회 시작 2시간 전 아니키와 함께 대략 1시간 동안 사과의 감독, 연출, 지휘 하에 일사분란한 피켓제작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현재 한나라당도 아닌데 굳이 나라를 지키겟다며 군복무 중이신 띠벌도 작금의 시국 걱정을 하며 격려의 전화를 주시기도 하였다. 우드락 본드냄새에 한껏 취한 아니키와 사과는 드디어 대학로 반전시위 장소에 입성하는데 무사히 성공하엿고 탄핵 정국에 묻히기도 했거니와 외국과는 달리 시민들의 반전시위 참여는 레냐 언니네 가족을 제외하고는 보기 드문 편이었고 대체로 학교와 사회단체들의 참여가 대부분이엇다 피켓의 구호에 많은 사진기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촬영을 해갔으나 어느 곳에도 실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국정원의 포상금을 노리고 찍어간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class war, 계급투쟁을 선동한 자는 신고의 대상이 된다고라고라..) 또 함께 시위에 참여한 타 단체나 학교 학생들이 사과마을 단체의 성격과 회원 가입 등에 대한 문의가 쇄도 하엿다 하지만, 피곤한 탓인지 머리가 너무 아프기도 했거니와 사실 정신무장 안된채 3.20 전세계 반전 행동의 날에 참가한 점 반성할 면면이 많았다. ☆사진기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피켓 (스파이크, 안전핀, 바인더 고리, 압정 등 펑크 아이템으로 무장하심) ☆투톤 피켓! ☆들기에 가장 쪽팔리기도 했던 피켓 하지만 조선시위 문화에 펑크가 당당히 등장한 것에 그 의의가 컸던.. (1.훗날 애너퀴의 전언에 따르면 '다함께' 단체 홈페이지에 우리의 사진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2. 당시 보도를 보고 놀랐던 점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탄행 정국 속 전세계적 반전 행동의 날인 한국에서의 수천에 이르는 집회 참가자의 수보다 모 아파트 분양 신청을 하러 나온 시민들의 수가 수십배가 많았다는 것이다. 보다 놀라운 다른 보도는 아마 수만이었을 아파트 분양 신청자들의 수보다 이 전세계적 반전행사에 나온 이탈리아에서의 시민의 수가 열댓배가 많다는 것이다. 또 그리고 그 보다 수백만배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당시 런던에서의 3.20 집회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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