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행기] 4. 홍콩 박물관 관람기

category 홍콩 2013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3/03/21 17:25


 

쇼핑몰과 명품 샵으로 넘치는 이 정거장 같은 도시에도 박물관이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제법 많다. 쇼핑하고 맥주 마시기에 바쁜 여행객 틈바구니를 벗어나고 싶다면 곳곳에 위치한 박물관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중 홍콩의 어느 재벌이 소장품을 몽땅 기증한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는 홍콩예술박물관을 방문했다.

 

홍콩에는 가볼 만한 박물관이 약 여섯 군데 정도 있다. 먼저 스타의 거리 앞의 예술박물관. 이곳은 매주 월, 수, 금 아침 8시부터 태극권 무료 수업이 있다. 이스트 침사초이로 가면 역사박물관과 과학박물관이 마주보고 있다. 센트럴 지역으로 넘어가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면 중국 건국의 아버지 손문을 기리는 손중산기념관이 있다. 손중산 기념관 근방에는 홍콩 의학박물관이 있다. 신계지로 지하철을 타고 올라가면 문화유산박물관이 있다. 이 중 돌아본 곳은 예술박물관과 역사박물관, 과학박물관이었다. 손중산기념관은 방문했지만 아쉽게도 휴관일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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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예술박물관에서 내다본 풍경...은 아니고, 박물관이 마주한 센트럴 지역의 모습이다.
찍은 장소는 스타의 거리. 사진을 찍을 때 마침 정크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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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버스에 이어 홍콩의 명물이 되어가고 있는 정크선이다. 미리 예약을 해야 탈 수 있을 만큼 인기가 좋다. 명나라 시절 주로 다니던 형태인데, 바다 항해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양자강을 건너다니는 배와는 생긴 것부터 다르다. <동방불패> 맨 마지막에 영호충이 이렇게 생긴 배를 타고 강호를 떠나는데, 중국 안에서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아예 대륙을 떠나기 위해 타는 배인 것이다. 타고 싶어서 사무실을 한참 찾았지만 결국 못 찾았다.

 

홍콩예술박물관에 찾아가자 마침 앤디 워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앤디 워홀전은 한국에서도 가끔 열리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고 대신 뮤지엄 패스를 구입했다. 30불을 주면 홍콩의 모든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는 패스를 살 수 있다. 광동어 엑센트가 섞인 영어를 주고받으며 패스를 산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상설전을 보러 올라갔다. 마침 동물을 주제로 한 도자기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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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그려진 도자기. 아르누보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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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소나무가 새겨진 유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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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도자기

 

한국의 박물관은 대부분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홍콩 박물관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옆에서도 여행객들이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한국 박물관이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이유는 유물이 상한다는 것인데, 사실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이상 손상될 우려는 없다. 몇 백 년 묵은 유물의 저작권이 따로 있지 않다면 공연한 권위주의라고 밖에 보기 힘들다.

그렇게 관람객들에게는 거만하다가도 영부인이 만찬을 열겠다면 말없이 문을 열어주는 게 한국의 박물관 수준이다. 기 소르망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물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걸 본 적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유물 손상이 안 되나 보다. 사람 차별하는 유물을 만드시다니 조상님들 솜씨가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동물을 주제로 한 도자기 전시는 제법 신선했다. 시대와 기법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도자기뿐만이 아니라 여러 소재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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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옥 술잔, 오른쪽은 유리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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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유리 작품이다. 청록색과 노란색의 대비가 아주 현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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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유리병, 오른쪽은 백옥 상자. 박물관 샵에 내놓아도 충분히 세련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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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모양 베개. 저런 베개를 베고 자면 꿈에 귀신이 나올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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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도자기다. 표정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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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탄 보살상이다. 놀라운 빛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창백한 피부를 연상시키는 모호하고 독특한 색깔을 띠고 있다. 이 작품 말고도 정말 마음에 드는 보살상이 있었다. 전시장 앞에 놓인 나무로 깎은 관음보살상이었는데, 내가 이제까지 본 부처상 중 가장 멋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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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면서도 오만한 자세와 무심한 표정과 시선이 표현하기 힘든 초탈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세가 무척 독특했는데, 관음상이지만 여성이 이러한 자세를 취한 유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관음보살상이 아니라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은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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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목상 위에 색깔이 칠해진 듯한데 복원하면 대단히 아름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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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 놓인 작품.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었지만 중국 현대 작가의 느낌이 물씬 났다. 중국 현대 미술이 세계 미술 경매장을 싹쓸이하기 시작한 지 벌써 사오 년이 넘었다. 예술박물관을 나와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역사박물관은 홍콩의 역사가 잘 재현되어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높은 박물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조금 볼만한 유물을 보려면 일반인의 눈에 정말 석기시대 유물인지, 채석장에 굴러다니는 돌멩인지 구별할 수 없는 돌덩어리의 행렬을 한참 지나가야 하듯이 홍콩역사박물관도 홍콩의 자연사를 꼼꼼하게 전시해놓았다. 솔직히 한국은 유물이라도 많지 홍콩은 오래된 유물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박물관이 가장 인기있는 박물관이 된 이유가 있었다. 역사박물관을 관람하기 전에 이스트 침사초이에서 딤섬과 볶음밥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침사초이는 식당이 별로 없기 때문이 맛난 것을 먹으려면 이스트 침사초이로 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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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통 결혼식을 보여주는 전시인데, 딱히 유물이 많지 않아서 마네킹을 이용한 세트로 대신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방식의 전시보다 훨씬 생동감있고 재미있다. 사진 촬영도 아주 개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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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으로 이민 온 중국인들이 즐기는 오극의 한 장면을 재현한 전시. 오극은 광동의 전통극이다. 황비홍 시리즈를 87편이나 찍었던 전설적인 배우 관덕흥도 오극의 배우이자 각본가였다. 장편소설도 썼다고 하는데 출판은 못 했다고 한다. 그래도 미국 암스트롱 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를 받았다고 하니 한은 푼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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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미터가 넘는 신선상. 홍콩의 민속 축제를 잘 재현해 놓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기록 필름이 상영되었고 관람객들이 직접 만지고 배울 수 있는 간단한 교육용 전시품이 놓여 있었다. 교육용 전시품은 특히 과학박물관에서 돋보였는데 만지면 ‘수리 중’이라고 뜨는 경우가 많았던 한국에서의 기억과는 대조적이었다. 민속 전시뿐만 아니라 홍콩의 100년 전 거리와 1950년대부터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발달하기 시작한 홍콩의 모습을 기록 필름과 세트로 묘사해 놓았다.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재현 세트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날카로운 눈을 지닌 관람객이라면 유물의 절대적인 부족을 세트로 보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외부에서 보면 홍콩의 근대화와 대중문화의 발달은 생기 넘치지만 내부의 갈등도 상당했다. 영국 식민주의에 맞선 투쟁과 중국 반환에 따른 불안감은 홍콩을 뒤흔든 주요한 역사적 요소였다. 하지만 그러한 불안은 매끈한 세트 뒤에 잘 감추어져 있었고, 그 사실은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다. 1992년 홍콩을 처음 방문했을 때 목격했던 격렬한 시위 장면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홍콩은 나라와 도시 사이에 불안정하게 떠 있는 정거장 같은 지역이다. 사람들은 이 정거장을 고향으로 삼고 정착하기보다는 열심히 돈을 벌어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보다 민주화되고 안정적인 나라로 떠나고, 그 빈 자리는 또다른 이민자들이 채운다. 이민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어떠한 불합리와 갈등도 외면한 채 묵묵히 돈을 벌고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곳으로 떠나거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오로지 이곳에서 뼈를 묻고 싶은 사람들만 시위를 벌이고 경찰과 싸우고 공공 기물을 때려부순다. 그 옆에서 이민자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돈을 번다.

 

역사박물관에는 그러한 역사가 보이지 않았다. 이민과 정착자들의 싸움이 이어지는 그런 역사 말이다. 그래서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역사박물관은 홍콩에서 유일하게 다시 오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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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오늘하루 2015/06/29 16:54

    경극은 북경을 중심으로 한 극을 말하고, 정확하게는 오극이라고 하죠. 광동지역을 한자로 오(奧, 아랫목)라고 하는데, 타이오(大奧) 마을의 바로 그 '오'입니다. 중국에는 각 지역을 지칭하는 지역명을 해당 지역의 특색에 맞춰 한 글자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사천의 경우 '천(川)'이라 하고, 안휘의 경우 '휘'라고 하는 식입니다. 사천의 요리는 천채, 연극은 천극이라고 합니다. 지역별로 자부심도 굉장하다 보니 글쎄, 서로 차이가 크다고 주장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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