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행기] 8. 호랑이도, 사람도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category 홍콩 2013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3/03/26 13:47


 

서울에 온 관광객은 5분짜리 케이블카를 타고 성지순례를 하듯 남산 타워에 오른다. 물론 예전처럼 칙칙한 남산 타워는 아니다. 올라가는 길목에 예쁘장한 까페와 레스토랑도 있고 설치미술과 레이저를 동원해서 잘 꾸며놓았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는 의미의 자물쇠도 잔뜩 걸려 있다(언젠가는 그 무게에 펜스가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전망을 내려다보는 것은 우리 둘 다 별로 즐기지 않지만 홍콩 여행의 성지를 빼놓을 수는 없는지라, 빅토리아 파크 옆 픽트램을 탔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끝까지 타고 올라가서 좌회전한 다음, 다시 내리막길을 한참 걸어가면 왼쪽 길 건너편에 픽트램 매표소가 있다. 역시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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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화창해서 경치가 잘 보인다. 빅토리아 파크를 등에 진 센트럴 지역. 높은 장소를 싫어하는 남편은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게 뭐가 좋으냐고 투덜거렸다. 나야 올라가는 게 싫지 않지만 전망 감상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사실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행위 자체에 내포된 우월의식은 좀 밥맛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트램을 탄 이유는 유명인 밀랍인형 전시관으로 유명한 마담 투소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마담 투소는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면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단, 세 명(?)의 인형은 예외다. 입구 바로 앞에 놓여진 성룡과 오바마, 그리고 후진타오다. 지금쯤 시진핑으로 바뀌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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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투소의 인형들이 모두 실물과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다. 오드리 헵번은 거의 닮지 않았고, 유덕화는 상당히 젊어 보였다. <레지던트 이블 5>에 출연하면서 국제적인 활동을 시작한 판빙빙은 나이가 들어 보이고... 제일 비슷한 인물이 메릴 스트립이었는데, <철의 여인>으로 주연상을 받은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궁금하면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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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투소(Marie Grosholz)의 모습(사실 전시관마다 다른 인형이 놓여 있다)이라는데, 그녀는 스위스의 인형 세공사로 18~19세기에 걸쳐 활동했다. 런던의 투소 밀랍 인형관의 창시자라고 한다. 마담 투소 인형관은 라스베가스, 암스테르담 등 유명 관광도시에 널리 운영되고 있으며 부산에도 한시적으로 오픈했다. 부산의 마담 투소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형도 전시했다고 한다. 흐음...

 

원래 마담 투소가 주로 만들었던 인형은 프랑스 혁명기의 희생자들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범죄자와 대량살인자도 인형으로 만들었졌다. 최초의 인형은 다름아닌 볼테르였고 장자크 루소와 벤자민 프랭클린도 모델이 되었다. 그녀가 밀랍인형을 만들게 된 계기는 모친이 해부학용 인형을 만들던 필리프 쿠르티우스 박사에게 가정부로 고용되었던 것이었다. 모친이 배운 밀랍인형 기술은 그녀에게 전수되었고 죽은 시체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 그것도 명성을 날리는 사람을 그대로 만들게 되었다. 1835년 영국 런던 베이커 가에 인형 박물관을 열었는데 프랑스 혁명 희생자와 살인자를 전시한 공포의 방은 특히 인기를 끌었다. 추리소설 팬들에게 익숙한 그 거리다. 셜록 홈즈가 사무실을 열었던 바로 베이커 거리...

 

홍콩의 마담 투소는 크게 대중문화 스타, 정치인, 팝스타, 스포츠 스타로 섹션이 나뉘어져 있다. 정치인에게 한 공간을 몽땅 내주었는데 마오쩌둥, 덩샤오핑, 후진타오 등등이 전시되었다. 한국에서 정치인을 밀랍인형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방문해서 따귀 날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긴 나도 부시 인형에 가운뎃 손가락을 들이댄 기념사진을 찍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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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마담 투소에서 베스트로 꼽고 싶은 인형. 가장 실물에 가까운 느낌을 주거니와 전성기의 덩리쥔(등려군)이 뿜어내던 매력이 100% 구현되었다. 노래하는 새, 새 중의 새인 봉황이 새겨진 치파오는 그녀의 심볼이다. 마흔두 살에 기관지 천식 발작으로 죽었을 때 국장급의 장례식이 치러졌고 중화민국 국기와 대만 국기를 나란히 덮은 채 묻혔다. 지금도 타이뻬이 시 동북에 있는 묘소에는 동상과 레코드 장치가 설치되어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2045년까지 그대로 보존할 예정이라고 한다.

 

덩리쥔 인형 앞에 매염방의 콘서트 장면을 틀어주는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비록 포린샤에 모셔진 위패에 향불을 사르진 못했지만 대신 콘서트를 보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신혼여행 중 이게 무슨 상황..?)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행위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만들어 보존하는 것은 기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유명한 사람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욕망을 실현해주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연예인의 ‘직찍’ 사진도 비슷한 욕망을 실현한다. 매체를 통해 걸러진 모습 대신 실제로 보고 싶은 욕망. 그런 면에서 마담 투소가 최초로 만든 인형이 볼테르라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볼테르는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격렬하게 종교를 공격함으로써 엄청난 비난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사진도 없고 그림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 유럽인들은 볼테르 인형을 들여다보며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악마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나 구경했을 것이다.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사진찍고 놀다 보니 한 시간이 흘렀다. 전망을 내려다보며 칭다오 맥주 한 캔씩 따 마시고 홍콩 대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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