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행기] 9. 홍콩에서 소비자 되기

category 홍콩 2013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3/03/29 14:26


 

침사초이에서 가장 명품샵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은 캔톤 거리이다. 거리가 시작되는 초입의 샤넬 매장에는 중국인들이 매일같이 줄을 선다. 랄프 로렌 매장에는 중국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는 초록색 실크 드레스가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한국에서 보수적인 이미지를 가진 루이비통은 매우 컬러풀하고 도발적인 포즈의 광고 사진을 걸어놓았다. 미우미우는 새 매장을 짓느라 먼지를 날린다. 유서깊은 페닌술라 호텔은 다이아몬드로 가득 채워진 명품 매장이나 다름없다. 이 화려한 거리에서 프라다 같은 브랜드는 오히려 검소해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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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사초이의 한복판은 핏빛 레드로 치장한 까르띠에가 차지했다.

 

멀리 나가기 귀찮다면 캔톤 거리를 오르내리며 명품샵 구경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명품에 관심이 없다면 스타 페리 맞은편의 차이니즈 아트 앤 크래프트라는 가게를 추천한다. 중국 현대 공예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가게로 웬만한 박물관보다 훨씬 낫다. 옥과 상아, 소뼈, 나무, 유리, 돌, 실크 등 거의 모든 소재의 공예품이 진열되었다. 선물과 기념품으로 남을 작은 물건들도 판매한다(참고로 우리가 갈 때 3분의 1에 육박하는 빅 세일 중이었다).

 

도착한 첫날 밤 침사초이를 돌아다니면서 보석 가게를 구경했다. 독특한 형태와 다양한 모양을 추구하는 중국 공예가 가장 사랑하는 소재는 단연 황금이다. 금과 옥, 다이아몬드를 파는 가게들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처음에는 굉장한 고급 가게인 줄 알았더니 한국의 미니골드처럼 아주 흔한 체인점이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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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물건은 팔아야죠.

 

부르주아나 샤샤 같은 종합화장품 매장은 언제나 사람이 붐빈다. 큐빅을 잔뜩 박은 처음 보는 향수도 팔고 있었지만 향은 별로였다. 이곳저곳 돌아보았지만 역시 화장품은 국산이 최고다. 몇 년 전 명동에 볼일이 있어 나갔는데, 한 중국인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대뜸 “웨얼 이즈 페이스샵”이라고 말을 걸었다. 참 대답하기 난감했다. 곳곳에 널린 게 페이스샵 가게인데 어떻게 대답을 하나. 머뭇거리니까 짜증이 나는지 휙 하고 가버렸다. 그녀 뒤로 지친 표정의 아저씨와 아이들이 뒤따라갔다.

 

한국화장품도 슬슬 홍콩에 진출하는지 송혜교의 얼굴을 내건 라네즈 매장도 볼 수 있었다. 라네즈는 텔레비전 광고도 내보냈는데 모델은 역시 송혜교였다. 한류 스타는 많지만 대부분 가수이고 그중 서구 시장에 어필하는 스타는 드물다. 송혜교가 계속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미모만큼은 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 광고를 보다 보면 제법 재미있다. 지금 랑콤 모델은 엠마 왓슨인데 사실 그녀는 샤넬 모델로 먼저 발탁되었다. 따지자면 랑콤이 샤넬이 계약을 끝낸 모델을 데려다 썼단 얘기다. 현재 랑콤의 이미지는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전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엠마 왓슨이라는 역대 최연소 모델을 사용해서 젊은 세대를 소비자층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랑콤의 시도이다. 이미 디오르도 밀라 쿠니스를 사용해서 신소비자층을 개척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정반대의 전략을 사용하는 브랜드가 바로 불가리인데, 줄리안 무어의 누드 광고 사진으로 크게 성공한 불가리는 아예 환갑이 넘은 이사벨라 로셀리니를 데려왔다. 불가리가 고급 악어 백 라인을 새로 런칭하면서 아예 5~60대 소비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물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한 브랜드가 사용하는 모델을 보면 목표로 삼은 소비자의 연령과 지역은 물론 계급까지 대략 드러난다. 동시에 이한 기업이 생각하는 소비자의 욕망까지 읽을 수 있다. 삼성 갤럭시폰은 한국의 톱스타들을 제껴놓고 무명의 백인 모델들을 사용한다. 라네즈는 서구 시장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는 송혜교를 고집한다. 펜틴의 모델로 나선 탕웨이는 아름다운 자태를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을 들고 그 장점을 직접 설명한다. 사람들은 탕웨이가 귀여울 뿐만 아니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여간, 명품은 원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었다. 예전에 써두었다가 남의 책에 올라가버린 글을 다시 싣는다.

 

 

“프라다 얘기 나오니까 프라다 비닐백 보고 으악 하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온통 투명한 비닐백과 그 안에 든 노트, MP3, 콘돔까지 환히 들여다보이던 비닐백 광고사진. 문제는 그 별것도 아닌 비닐백이 무지 비쌌다는 것이다. 다른 브랜드, 샤넬이나 디오르, 에르메스가 모피ㆍ가죽ㆍ보석ㆍ실크 등을 동원한 최고급 재질로 물건을 만들어낸 데 반해 프라다는 보통 기성복에 쓰이는 재료를 가지고 물건을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에르메스 백에는 다이아몬드나 박혀 있지, 프라다는 비닐이었단 말이다. 비닐... 그야말로 순수하게 디자인 그 자체에만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샤넬, 디오르 등은 상류층 40~50대의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어 젊은 여성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중산층의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명품 브랜드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프라다의 등장으로 현대 워킹우먼들도 이제 ‘개털 될’ 차례가 된 것이다. 이전까지 명품 브랜드란 상류층들의 기호품 정도로 취급받았지만 프라다는 그 시장을 중산층에까지 확장시킨 사례가 되었다. 프라다의 대박 뒤에는 중산층 여성들의 수없이 털린 지갑들이 즐비한 것이다(사실 말이 프라다지, 그 월급 갖고 지를 여유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다들 버는 사정 거기서 거긴데).

 

프라다는 비교적 새롭게 떠오른 브랜드에 속한다. 전통적인 브랜드 외에도 새로운 명품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패션업계에서는 계속 신진 브랜드를 성공시키는데, 베라 왕이나 지미 추가 그에 속한다. 문제는 이들이 상류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지갑도 노린다는 것이고, 10대 소녀들의 호주머니도 탐내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지갑이 얇은 중산층 젊은이들을 겨냥해 명품 브랜드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프라다가 처음 열어젖힌 셈이다. 통장이고 카드고 막 털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괜히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 게 아니다. 아, 지름신 오신다. 젠장.”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고, 명품 있는 곳에 짝퉁이 있다. 한밤중이 되면 명품샵이 즐비한 캔톤 거리에서 바로 한 블럭만 넘어가면 짝퉁 장사가 야행성 동물처럼 어슬렁거린다. 입 딱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한국인인 걸 어떻게 알았는지 “사장님, 사모님, 짝퉁, 싸요, 싸.” 귓가에 바로 들려온다. 한국 사람들, 얼마나 명품 짝퉁을 밝혔으면... 처음에는 성가셨는데 매일 밤 지나다니다 보니 어느 새 얼굴이 친해져서 서로 웃음도 터뜨렸다.

 

야시장으로 유명한 홍콩은 가볼 만한 곳이 두 군데 있다. 홍콩 야시장의 명성을 지키는 레이디스 마켓과 탄하우 사원 앞의 템플 스트리트다. 레이디스 마켓은 세 블록을 몽땅 차지할 정도의 규모를 자랑한다. 템플 스트리트는 규모는 조금 작아도 물건 가짓수가 많고 식당가가 늘어서서 배 채우기 좋다. 남편은 레이디스 마켓과 템플 스트리트 뒤에 각기 홍콩 마피아 파벌이 버티고 있을 거라면서 노점상과 지하경제의 밀월관계를 추측했다. 홍콩 정부가 노점상을 밀어내는 것에는 질병 예방과 땅값도 있지만 지하경제를 잡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하루를 쇼핑의 날로 정하고 템플 스트리트 앞으로 갔다. 옥 시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마음에 드는 걸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야우맛떼이 역에 내려 걸어갔다. 마침 주방용품 가게가 주욱 늘어선 거리였다. 식당을 열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파는 거리였다. 프라이팬은 물론 복고양이 인형까지 진열한 거리를 구경하는데, 좁은 인도를 막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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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놓는 복고양이가 아니라 진짜 고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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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깔깔대거나 말거나. 햇빛을 받으며 잘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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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용품 가게에서 키우는 녀석들인 모양인데 정말 귀엽다.

 

헐리우드 로드에서도 고양이를 봤다. 구멍가게에서 키우는 녀석인데 쓰다듬는 손길을 피하지 않고 가르릉거리는 예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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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오 마을도 그랬지만 홍콩 고양이들은 다들 예쁘고 붙임성이 좋았다. 애완용품을 파는 펫샵 거리에 가서 귀여운 고양이들을 구경했는데, 한국의 고양이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도 훨씬 뽀얗고 부티가 났다. 너덜너덜한 몰골로 쓰레기통을 뒤지는 서울의 고양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삶의 질을 누리는 모양이었다. 동물조차도 계급의 넘사벽이 존재하는 것인가. 흑.

 

홍콩 관광청에 따르면 제이드 마켓 주변은 최근 재개발이 진행되었지만 식민시대 경찰서는 다행히 보존되었다고 한다. 탄하우 사원에서 곧장 올라가면 오른편에 제이드 마켓이 있다. 붉은 천막에 400여 개 이상의 노점들이 다양한 옥 제품을 팔고 있다. 최고급품은 아니더라도 기념품이 될 만한 물건은 살 수 있다. 실은 고양이 조각상을 사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어서 눈요기만 하고 그냥 나왔다.

 

시장 초입에는 ‘옥출곤강’이라고 쓰여진 명패가 걸려 있었다. 원래 천자문에 나오는 ‘금생려수 옥출곤강(금은 여수에서 나오고 옥은 곤륜산에서 나온다)’을 줄인 말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될 때 청해성이 곤륜옥을 기증하여 옥메달을 만들었다. 금메달은 백옥, 은메달은 청백옥, 동메달은 청옥으로 만들어 조각했다고 한다. 베이징 올림픽 공식 메달은 뒷면에 옥 원반을 박아넣었다. 동양적인 전통을 살린 디자인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서양인들은 그저 떨떠름했을 것이다. 서양에서 옥은 그저 아름다운 돌일 뿐 보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중국에서 유통되는 고급 옥은 모두 미얀마산이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옥은 연옥이라고 불리우는 부드러운 돌로 건축에도 사용된다. 자금성 안의 길도 연옥 덩어리가 박혀 있다. 하지만 보석으로 사용되는 경옥은 모두 미얀마산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은 미얀마뿐만 아니라 한국산 옥도 열심히 수입하는데 춘천옥과 해주옥이 대표적이다. 여담으로 1999년 미얀마에서 1000톤짜리 백옥이 발견되어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이 옥산으로 불상을 조각하기로 결정한 미얀마는 10만여 명이 무보수로 참가하여 자원봉사를 했고, 강과 임시 철도까지 조성되었다. 양곤으로 옮기기까지 무려 3년이 걸렸고 우기였던 운송기간 보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02년 드디어 높이 11미터, 무게 500톤의 로카찬타 불상이 완성되었다. 피츠제럴드의 소설 <리츠 칼튼 호텔만큼 큰 다이아몬드>가 생각나는 이야기다.

 

시간 그리고 체력이 모자라 버드 마켓과 플라워 마켓은 패스하고 레이디스 마켓이 열리기 기다렸다. 레이디스 마켓은 밤 9시부터 12시면 절정에 달한다. 반면 템플 스트리트는 12시가 되면 다투어 장사를 걷어내기 바쁘다고 한다. 깔끔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레이디스 마켓에서 취향을 충족시키는 물건 찾기가 쉽지 않다. 유행도 한국에 비해 2년 정도 뒤져 있었다. 다양한 품목에 식당가까지 즐기겠다면 템플 스트리트가 한결 위였다. 가격도 조금 더 싸다.

 

어렸을 때 홍콩에 왔을 때는 몰랐지만 서울 동대문이 여행객에게 정말 재미있는 장소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거대한 쇼핑몰이 한데 밀집되어 품목별로 옷을 파는 것은 물론, 악세사리와 벨트, 스카프와 모자 등 특정 소품만 다루는 쇼핑몰도 있기 때문이다. 청계천 다리만 건너면 헌책방 골목 맞은편에 각종 원단과 단추 등 부속물만 골라 살 수도 있고 심지어 이불과 그릇까지 구경하기 좋다. 청계천을 따라 올라가면 오래된 공장들과 청킹 맨션 못지 않게 먼지냄새를 풍기는 낡은 아파트까지 줄을 지었다. 동대문에서만 놀아도 좋고, 조금만 더 걸으면 인사동과 종로, 북촌까지 구경할 수 있으니 얼마나 재미있는 곳인가. 참고로 홍콩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가 서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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