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고

category 관주와 비점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8/02/08 17:46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지만, 이제서야 읽게 된 <압록강은 흐른다>. 책장을 덮으며 느껴지는 여운이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 이후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작가와 제목만 들어서 알고 있어지 어떤 내용인지 관심조차 둘 기회를 갖지 못하고 달려온 시간들이 아쉬울 정도로군요.

 

소설은 20세기 초, 농촌에서 유년기를 보낸 향반 지주의 후손인 미륵이 전통 사회의 격변기 속에서 신학문을 배우러 떠나는 긴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원문은 독일어지만,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문체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해집니다. 의 자전적 소설이어서인지 작가의 어릴 적 경험이 생생하고도 진솔합니다.

 

1900년대부터 1920년대 초의 우리 전통적인 민속과 변화해 가는 일상 풍경의 편린이 자연스레 오늘날 독자의 경험이었던 마냥 느껴지게 하는 데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빛바랜 조각난 기억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독일의 독자들에게까지 공감을 얻었던 데에는 경험과 기억, 그리고 온 곳으로 돌아갈 수 없어 느끼게 되는 노스탤지어 때문이겠습니다. 바로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지요.

 

1900년대의 시골에서도 유럽에 관한 정보와 사진이 돌고, 머슴들이 소설을 돌려 읽었다는 사실도 흥미롭고 신학문, 특히나 서구 의학을 처음 받아들이던 학생들이 겪은 해부학 실습의 당혹감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1920년경 상해에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유학생 브로커가 있었다는 사실, 상해에서 출발해 싱가폴, 스리랑카, 아프리카와 수에즈를 거쳐 프랑스로 가는 배 안에서 만난 다양한 민족들과의 접촉 경험 등등도 역사서나 당대를 연구한 논문, 다큐멘터리로서는 상상이 안 되던 것들 뿐입니다.

 

힘든 격동의 시기에 벌어지던 차별과 인권 유린, 제국주의의 폭력과 피지배민족이 마주한 끔직한 현실을 행간으로만 전달하기에 오히려 더 절절합니다. 3ㆍ1운동에도 직접 뛰어든 작가이기에 작품 속에서 일본인들에 대한 민족 감정도 은근히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미움을 표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미륵은 휴머니트이고 그의 작품에는 휴머니즘이 관통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식민지 조선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1년 가까운 항해 기간 동안, 중국인 유학생들은 배 안에서 독서를 쉬는 이들이 없었으나 조선인 유학생들은 책을 읽는 이가 없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작가는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고 그 대목을 넘어가지만, 우리는 그 한 문장만으로도 참으로 많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내친 김에 <이미륵 평전>도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렵니다. 또 초창기 유학생들에 대한 자료도 틈틈히 모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당시의 유학생들이 대개 격동의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자가 되어 이 땅의 새로운 지배층이 되었다는 정도로만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갖 차별을 맨몸으로 겪으며 세계로 나아간 프런티어들이기도 합니다.

 

그들 가운데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제국주의의 첨병이 된 사람도 있지만, 이미륵 박사처럼 문화 교류에 큰 영향을 남기기도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끝내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모든 삶들이 젊은 미륵이 한밤에 몰래 건너던 압록강물처럼 묵묵히 흘러가는 것이 우리가 겪어내는 세상이고, 역사일 것입니다.

 

저작권이 풀려 있는지, 독일어 원본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듯한데, 독일의 중학교 교재에도 실린 적이 있다니 그다지 어렵지 않을 듯하여 한번 독일어 일독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독일어가 머릿속에 어느 정도 남아 있을지 궁금하군요. 참고로 <이미륵 평전>에 대한 기사를 걸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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