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방'의 전근대적 언어 프레임과 정치

category 감놔라 배놔라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8/12/08 16:51


 

김정은 답방을 초미의 관심사로 만들기 위해 무척 애를 쓰는 모양입니다. 미디어에 공산당이 좋고 김정은이 위인이라는 인터뷰 내용이 방송되기도 하는 모양이던데, 진정 공산당이 좋다면 어찌 북한의 독재와 3대 세습, 그리고 그 결과인 김정은을 위인이라고 한단 말인지 납득이 잘 안 되네요. 공산당의 이름을 빌려서 해먹는 것과 진짜 공산당을 구분할 정도는 돼야 할 텐데 말이죠. 예수와 예수의 이름을 빌려 더듬고 돈 벌고 행세하며 물려주는 것이 전혀 다르듯 말입니다. 예수와 공산당을 모욕하지 말았으면 하네요.

 

답방을 하느냐 마느냐, 그 의미와 향후 국제 정세 등등 이런 것은 너도나도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일단 우리가 쓰는 언어에 대해 성찰이 좀 필요합니다. 아무도 의심없이 답방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과연 타당하고, 지금 상황에서 적절한지에 대해 말입니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현재까지 총 5회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그 중 답방이 주요 사안으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답방을 적극 요청했던 국민의 정부 시대에는 북측이 간첩선을 보내는 걸로 안 오겠다는 신호를 명확히 보냈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대선이 코앞이어서 답방 얘기는 유야무야 지나갔고, 이번 정부의 지난 1, 2차에 걸친 정상회담에서는 양측이 한 차례씩 중간에서 살짝 월경하여 만났으니, 답방 얘기를 꺼낼 게 없죠. 이후 지난 9월 남측의 평양 방문 이후 자연스레 답방 얘기가 나온 상황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답방이라는 말을 써서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답방이라는 행사는 당연히 그 자체로 정치적 행사임이 틀림없지만, 우리 미디어에 의해 선택된 이 단어에는 정치적 의미나 외교적 형식에 앞서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어감이 더 강합니다. 내가 한번 갔으니 너도 한번은 와야지~라는 암시. 그러나, 문재인이 트럼프와 만났다고 해서 한국 언론이 트럼프에게 답방 요구하지 않습니다. 베트남 경제부총리가 왔다고 우리 부총리가 답방을 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20년 넘게 답방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왔다고 달라졌을까요?

 

강희자전을 찾아이라는 글자의 연원을 풀어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아는 상식만으로도 답방이라는 어휘 선택이 타당한지 의구심이 듭니다. 답(答)은 영어의 answer에는 잘 담겨지지 않을 미묘한 어감이 있습니다. 상대의 요청에 응하여 반응한다는 뜻과 함께 답례라는 말에서처럼 상대로부터 받은 것을 되돌려 갚는 행위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죠. 문제는 이 상호호혜(reciprocity ≒ give and take)라는 것이 인간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상호호혜의 원리가 무너지면 신뢰가 깨지고 관계도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사람 노릇 못하는 것이 되는 것이 되고 철이 덜 든 것이며, 예의염치를 모른다고 여겨져 온 것입니다. 중국의 인정채(人情債)라는 말이 바로 바로 상호호혜의 원리, 다시 말해 갚을 것을 잘 갚는 것이 바로 꽌시의 바탕이 됩니다. 심지어 건달들이 빚 받으러 왔다며 복수를 하는 것도 역시 이 상호호혜의 사고에 기반한 것입니다. 심지어 인류 최초의 법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에서 현대의 법들에까지도 상호호혜의 원칙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상호호혜는 이처럼 인간 사회의 원리로서 그것의 모든 영역에서 기본 토대가 됩니다. 그럼에도 그 원칙이 가장 안 지켜지는 영역이 바로 국제정치입니다. 그래서 외교는 정부에만 맡겨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비공식 내지 민간 채널에서의 교류가 반드시 있어서 서로 음과 양의 대대적 관계로 해나가야 합니다. 한편 국제 관계가 상호호혜적 원칙이 가장 안 지켜지는 영역이라는 말은 세 명의 대통령이 평양에 갔어도 북측이 원하는 게 분명히 생기지 않는 이상은 그들이 쉽게 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상호호혜라는 근본적 원리에 따라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며 갔으니 와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쪽에서는 할 말도 없고 주는 것도 없는데 왜 자꾸 오라는 거야라는 격입니다. 이미 트럼프와 만난 문재인은 국제 제제를 이행해야 한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북측은 미국 외에는 만날 필요가 없게 되는 겁니다. 미국의 한국 정부 압박은 아주 정확하고 냉철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쉽게 오지 않지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봅시다. 김정은이 먼저 왔다면 달님(?)이 답방을 가야만 하는 걸까요? 전화 뚫어놨다니 전화를 자주 하면 되는 것이지 답방이라는 의례(ritual ceremony), 또는 볼 거리(spectacle)를 통해 정치를 쇼로, 드라마로 만드는(dramatize) 것이 외교의 정상적 방식인가요? 두 사람을 무당으로, 배우로, 상징으로 만들려고 하니 청와대 앞에 정상들이 악수하는 설치 미술작품이라는 것(암만 봐도 흔하디 흔한 행사장 백 패널이던데)이 등장해서 방문이 성사되도록 염원하게 하고, 방송에서 “위인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내보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내 입장에서는 두 정상의 악수 그림은 선사시대 암각화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앞에서 횃불 켜놓고 사냥감이 잘 잡히길 기원하던 원시종교의 의례. 뭔가 분위기 조성을 하려는 21세기 원시인들의 안간힘이 애처롭습니다. 형을 독살했다고 패륜아로 몰아붙이던 것이 2년도 채 안 되었는데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데에는 어떤 이면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일 터. 그 힘은 현실의 돈과 권력이기도 해서 입금의 힘을 잘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치와 연극와 의례가 근대화의 엄청난 흐름에서도 서로를 꼭 붙잡고 있게 하는 그 힘이라고 보는 게 더 본질에 다가간 분석일 겁니다.

 

지금 이 글은 현실 정치의 어떤 입장에 서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와 종교와 연극이 비록 한뿌리이기는 하지만, 답방이라는 어휘를 선택하면서 우리는 더더욱 전근대적 정치 문화에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다는 뜻입니다. 북한에 매달리는 저자세가 되어 외교적 협상에 불리한 위치를 자초한 것은 표면의 일부일 뿐이고요. 정치란 신화와 종교, 의례와 의식을 이용하기도 하고 그것들이 드러나는 장이기도 하며, 때론 그것들이 되기도 하고 나아가 어쩌면 원래부터 그것들 자체일 수도 있음을 대중들에게 잘 보여준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lh)의 <의지의 승리 Triumph of the Will>. 답방을 원하는 권력과 대중 언론에게, 과연 <의지의 승리>는 작금의 한국 정치와 무관한지 묻고 싶습니다.

 

만약 그가 답방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으면 미세먼지 없고 날씨 좋은 가을에 벌써 와서 잘 보고 갔겠죠, 왜 한겨울 되도록 묵묵부답일까요? 쉽게 안 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극우들이 말하는 것처럼 미국 몰래 퍼주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국내 정치의 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 북측 주민들에게 남측이 간절히 원해서 가줬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있겠고요. 물론 남측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전 세계에 북측이 변했으니 대북 제재를 조금만 줄여달라는 요구를 하고, 그래서 남북의 생존 활로를 찾으려는 시도로 봐도 그 또한 맞습니다.

 

물론 그런 현실적인 분석도 당연히 맞습니다만, 그럼에도 언론은 답방이라는 말이 갖는 함의를 우선 고려했어야 합니다. 돈 주니까 왔네, 돈 줄 건데 안 오냐 하는 식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엿보인다면 아무리 명분과 예우가 극진하더라도 일이 꼬이기가 쉽습니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답방이라는 말은 거창하고 공식적이며 역사적인(실은 신화적인) 그네들의 정치적 어휘 선택 방식과도 그다지 않습니다. 북측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휘로써 네 번째 만남을 규정한 상태에서 어찌 김정은이 쉽게 온단 말입니까.

 

언어는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어법과 생활에 맞고 상스럽지 않은 말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을 왜곡하지 않는 정확한 말을 쓰는 것도 역시 품격입니다. 정상끼리 만나 논의할 사안의 중요성이 담겨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게 해야 북측의 부담을 덜어 권력이 그렇게도 바라는 답방’이 오히려 실현될 것입니다.

 

 

덧붙임

 

* 그저께 낮에 김정은이 13일에 온다는 근거 없는 기사들이 나오던 때 쓴 글입니다. 몇 시간 뒤 글을 올리던 무렵에는 오보로 밝혀지고 대신 18~20일 사이에 온다는 뉴스들이 쏟아졌고요. 하지만 이틀이 지난 오늘 15일 아침에는 북측이 아무런 언급이 없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연내 답방이 힘들 것 같다는 뉴스들이 쏟아지더군요. 청와대도 주워담기 바쁜 인상인 거 같고요. 정치를 굿판으로 만드는 짓거리는 일찌기 그 굿판의 구경거리 노릇을 해야 했던 스파르타쿠스가 하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쵸? 나라를 움직이는 자들의 머리가 그 수준입니다. 요구할 걸 해야지, 그걸 뉴스로 쓰라고 굶주린 하이에나들한테 던져주다니. 그러니 또다시 찬반놀이 좋아하는 초딩 수준 국민들이 엄동설한에 거리에 쏟아져나오잖습니까. 쓸데없는 분란 만들어 국민들 편가르기로 득을 보려는 건 똑같습니다. 수상한 비행 경로라면 당연히 국정 감사를 해야 하는데,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도 어쩜 그리 똑같은지. 달 보고 하울링하는 늑대떼들은 다음 정권에는 또 누구한테 돈 받으러 달려갈지 궁금할 뿐입니다.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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