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

category 관주와 비점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3/09/16 17:50


 

어릴 적에 못 읽어서 아쉬움이 오래도록 남고 어른이 되어서도 삶에 지쳐 다시 어려지고 싶을 때면 불현듯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을 마침내 읽었습니다. 간혹 동화는 어린이들이나 보는 책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사실 이것은 그릇된 편견입니다. 게다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 정도면 단순히 동화라고만 볼 수도 없고요. 19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이 소설은 번역본이 많지 않았습니다. 전편 격인 <톰 소여의 모험 The Adventures of Tom Sawyer>이 대부분의 아동문학 전집류 등에 포함되어 있었던 데 비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흔히 속편으로 알려져 있는 데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술을 마시고 담배나 피우며 거짓말이나 술술해대는 부랑아가 주인공이었던 까닭에 쉽게 접할 수 없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물론 개인적인 기억일 뿐입니다.

 

한편, 그 당시만 하더라도 아동기에 많이 읽히는 외국의 고전명작 소설 내지 아동문학들이 그야말로 각색 수준의 편역본이 거의 전부였으나, 오늘날에는 독자들의 수준도 높아진 데다 출판사마다 저작권 문제도 없고 ‘검증’이 된 소설들을 재출간하다 보니 이제는 완역본들이 다양하게 경쟁을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쥘 베른 Jules Verne의 <15소년 표류기>만 하더라도 어색한 일본어 번역본의 제목이 아닌 원제 그대로 <2년간의 휴가 Deux and de vacances>로 중역(重譯) 없이 프랑스문학 전공자에 의해 제대로 완역된 것이 불과 2년 전인 것을 보면 우리는 그저 급히 엑기스(?)만 뽑아서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셈입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만 하더라도 수십 종의 편역본이 있지만 19세기 후반의 빈민층과 노예들의 은어와 사투리 번역이 쉽지 않았을 것임을 감안하여, 원서를 안 본 독자 입장에서 무난하리라 짐작되는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의 김경미 완역본을 골라 읽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냥 신나는 한바탕 소동과 모험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이제 보니 왜 마크 트웨인이 미국 문학사에서 - 심지어 그 나라 민속학에서조차 -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겠더군요. 아동문학이야말로 어른들이 제대로 읽고 이해해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톰의 이야기가 장난꾸러기 소년의 한바탕의 소동을 다룬 것이라면, 허크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가정폭력을 다룹니다. 그밖에도 계층간 위화감, 종교의 위선, 보편적인 인간관, 노예제에 대한 비판(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등등을 다룹니다. 또 당시 미국 중남부 중하층의 구어체와 민간에서 구전되던 액땜 의식이나 해몽법을 비롯하여 생활방식 등이 생동감 있게 펼쳐집니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의 민속학에서도 마크 트웨인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자신의 작품들에서 민중에 대한 관심과 생활상을 자세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행간을 꼼꼼히 읽다보면 은행을 비롯한 자본주의 제도에 대한 비판의식도 볼 수 있습니다. 사기꾼들이 왕과 귀족 행세를 하는 것을 통해 작가가 가진 봉건제도와 유럽의 지배층에 대한 저항감이 느껴집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상대로 다양한 직업으로 바꿔가며 사기를 치는 모습에서는 역으로 법 제도, 행정망과 경찰력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식과 도덕, 질서의식에 의해 움직이던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않은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순박하고 건강했던(그렇기에 어설픈 사기에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끝없는 복수를 일삼으며 서로 대립하는 두 농장주 가문의 이야기에서 남부 지배층의 문화에 대한 성찰도 요구합니다.

 

무엇보다, 사실은 이미 해방된 상태였던 노예 짐을 유럽의 역사(소설)에서 본 것처럼 제대로(?) 탈옥시키기 위한 톰 소여의 어처구니없는 장난을 길게 늘어놓음으로써 유럽문화를 숭상하던 당대의 분위기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대목입니다. 얼른 노예 짐을 풀어주자는 허크의 투박하지만 실용적인 방법을 무식하다며 묵살하고 우여곡절을 일부러 자초하는 톰의 모습을 통해 유럽과는 다른 미국적 기풍을 만들자는 마크 트웨인의 호소가 들리는 듯합니다. 바로 이런 부분이 그를 미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받게 한 것이겠지요. 요즘처럼 어릴 적에는 학교와 학원에, 커서는 직장에 꽉 잡혀 자연을 접하지 못하고 사는 시대에는 암울한 소설들이 많은 데 비해 낙천적이고 인정있는 허크가 위기를 헤쳐가며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모습에서는 당대 미국인들의 정신이랄까 희망적인 사회 분위기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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