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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리차드스톨만

지각생님의 [RMS] 에 관련된 글.

내가 처음 리차드스톨만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것은 90년대 초중반쯤이었을 것이다. 90년대 초반에 나도 GNU/Linux를 깔아보려고 시도해본 적은 있으나 (요즘처럼 CD 한장으로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디스켓 수십장을 이용했어야 했다) 기술쪽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스톨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여느 사람들처럼 리눅서(?)로서라기 보다는, 카피레프트라는 그가 정립한 철학 때문이었다.

처음 카피레프트 운동이나 스톨만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당시에, 나는 당연히 스톨만이 이미 저 세상에 가신 사람인 줄 생각했었다. 아마도 그가 거의 '전설'처럼 얘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이었는지, 그 전이었는지, 그가 여전히 생존해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2000년 그가 방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이슈화하고 있던 우리는 스톨만 특별강연을 추진했고, 그는 흔쾌히 승락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의 모습은 전혀 내 예상 밖이었다. 사진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배가 상당히 나왔고, 사진에서 볼 수 있다시피 수염은 거의 다듬지 않은 듯 덥수룩했으며, 그래도 얼굴은 투명한 듯 말끔했다. 낡은 밤색 바지에 파란색 셔츠를 입은 그는 매우 수수해보였는데, 주머니에는 피리를 꼽고 있었다. 옛날 해킹할 때 쓰던 도구라나. 영어도 짧고 해서 많은 얘기는 못했으나, 보기에도 성격은 매우 괴팍해보였다. 실제로 강연을 하면서 통역자에게 짜증을 내어 통역자가 당황하기도 했다. (그 통역자가 이번에도 기꺼이 통역을 맡아주셨다.)

그의 완고함을 처음 실감한 것은 강연장소인 연세대에서 였는데...당시 만든 포스터에서 스톨만 사진과 함께 리눅스를 상징하는 펭귄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강연 장소에서 그 포스터를 본 스톨만이 포스터마다 GNU에서 만든 '소'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그 이유는 그가 GNU와 Linux의 혼동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리눅스'라 부르는 운영체제는 정확히 말하면 'GNU/Linux'다. 즉,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이 만드는 GNU 운영체제에 Linux 커널이 결합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리눅스 패키지 업체에 의해서 상업화되면서, GNU의 철학은 사라지고 '리눅스'라는 상품만 남은 것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linux'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의 철학인데 리눅스에서는 기술만 남고 그 철학이 소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이용이 누군가(독점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의해 '통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매우 윤리적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윤리적이라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정확한 언어의 사용을 강조한다. 그는 언어의 정치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가 혼란을 피할 것을 주문하는 언어들이 몇 개 있는데,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지적재산권' 이라는 용어다. 그는 '지적재산권'은 적(?)들이 자신들의 독점적 이익을 교묘히 포장하기 위한 용어라고 지적한다. 특허, 저작권, 상표 등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법적 권리들을 '재산권'이라는 말로 일반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권리'인 것처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애매한 용어의 사용은 우리가 서로 다른 각 제도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에 나는 동의한다. 그런데 나는 왜 계속 '지적재산권'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 강연 요청을 하면서 '한미 FTA 지적재산권 협상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다'라는 얘기를 했다가, '지적재산권'이라는 용어를 쓰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또 설교를 들었다. ㅠ.ㅠ
그러나 이미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을 피해서 사용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면 내가 그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걸까? (생각난 김에 카테고리 이름도 '특허/저작권'으로 바꿨다)

그는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뿐만 아니라, 현실의 여러 이슈에 대한 정치적인 발언과 활동도 많이 한다. 지난 2000년에 소프트웨어 특허의 문제점에 대해 얘기한 것에 이어, 이번에는 (단지 소프트웨어 저작권만이 아닌)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 강화의 문제점에 대해 얘기할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여러 정치적 행동에 대한 제안도 하고 있다. (왜 그런지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않았지만) 해리포터 책을 사지 말자는 제안도 하고 있다. 국가신분증을 요구하지 않는 나라들의 목록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완고함이 '독단적'인 것으로, 그의 정치적 지향이 '이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는 '현실적'이지 못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나 역시 MS 윈도를 이용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MS 독점에 반대하고, 독점 소프트웨어에 반대하는 것이 '이상적'인 주장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만일 free software 보다는 open source 를 주장한다면, 차라리 스톨만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이고, 실제로 국제 시민사회 내에서 양 진영간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최소한 국내에서는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모르겠고) '현실적'인 고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톨만과 멀어지는 듯 하여 매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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