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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환경에서 현행 저작권 제도의 문제점

한국지적재산권법제연구원이 발간하는 [지적재산권]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그쪽 홈페이지에서는 회원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서, 제글은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계속 얘기해오던 것이기는 하지만, 고민할 수록 새로운 문제의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과거와 비슷할 수도, 혹은 새롭게 정리된 부분도 있는 글입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현행 저작권 제도의 문제점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  

 

 

1. 들어가며  

 

2005년 1월 17일, 가수나 연주자 등 실연자와 음반 제작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효되었다. 이를 전후해서 인터넷 게시판과 블로그에서는 저작권법을 둘러싼 논란이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당황하거나, 저작권법과 문화관광부에 대해 분개하였다. 그 이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인터넷에서의 행위들 - 예를 들어, 자신의 미니홈피에 배경음악을 깔거나, 다른 사람의 쓴 좋은 글을 ‘펌질’하는 행위 같은 -이 이제 금지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법개정에 대해 반대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의 발효에 즈음하여 네티즌들의 반발이 이렇게 거셀 줄은 필자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미 국회를 통과한 이후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저작권자에게는 전송권이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용자 입장에서는 과거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 상반기에 벌어진 전송권 논란을 단지 ‘네티즌들의 오해에 근거한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네티즌들이 당황하거나 분개한 그 ‘이유’를 살펴보고 토론하는 것이다. 네티즌들이 저작권법 개정안에 반발한 이유는 전송권을 ‘저작인접권자’에게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송권’을 통해 자신은 당연하게 허용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행위들이 규제되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했던, 2000년 저작권법 개정안은 국회는 통과하였으되, 국민들의 공감은 얻지 못한 상태였던 셈이다. 따라서, 뒤늦게나마 ‘전송권’을 둘러싼 논란이 사회적으로 벌어지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물론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논란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소리바다 이슈로부터 시작해서, 벅스뮤직, MP3폰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다른 쟁점들을 제기하며 계속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용자 측면에서 본다면, 소리바다, 벅스뮤직, MP3폰 등 기존의 이슈들은 특정한 서비스와 관련된 것이었던데 반해서, 올해 전송권 논란은 ‘전반적인 인터넷의 이용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충격이 훨씬 컸을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상에서 저작물의 이용 방식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법제의 정비와 함께 저작권 위반 행위에 대한 실제적인 단속도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현재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추상적, 논리적인 수준에서 우려했던 것들이 어느새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법이 야기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들이 제대로 인식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2. 문화적 소통(표현, 교류)의 제약  

 

2005년 4월,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자리잡은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팬카페 - 영원불멸 이순신] 운영자는 네이버로부터 게시물 삭제 요청 메일을 받았다. KBS로부터 저작권 침해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카페 메인 화면에 게시된 이순신 이미지를 비롯하여, 사진 게시판 및 멀티미디어 게시판에 게시된 수백장의 사진을 삭제하라는 내용이었다. ‘불멸의 이순신’은 올해 큰 인기를 끌었던 KBS의 드라마이며, 카페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카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 관련 정보를 교류하고 의견을 나누기 위한 펜카페이다. 카페 운영진들은 네이버 및 KBS 측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만족할만한 답변을 얻지 못한채 ‘눈물을 머금고’ 과거 카페 활동의 기록들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카페가 폐쇄되거나 법정 소송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카페에 가입한 이유는 단지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게시판에 글을 쓰고, 드라마 사진과 동영상을 캡쳐하여 함께 즐겼던 것은 어떤 상업적인 목적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KBS가 제작한 ‘불멸의 이순신’ 공식 페이지가 펜들이 만족할만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펜카페를 통해 자발적으로 서로의 욕구를 채워나갔다. 과연 KBS가 이 카페에 의해서 어떠한 경제적인 피해를 입었는지 의문이다. 혹자는 KBS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고, KBS의 ‘공영방송’으로서의 지위에 대해 문제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측면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와 같은 ‘비영리적, 문화적 소통 행위’가 저작권에 의해 규제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이 ‘문화 상품을 구매해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 이상임은 명백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창작한 시, 음악, 그림, 영화 등을 감상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비평하고 자신의 의견을 친구들과 나눈다. 이는 문화를 향유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소양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자신이 창작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대부분의 창작자는 가장 열렬한 이용자이기도 하다. 타인의 연구 논문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은 사실 비슷한 영역의 학자일 것이며, 그 또한 저자일 것이다. 또한, 타인의 음악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사람은 정작 음악을 창작하는 작곡가일 것이다.  

 

그러나, 현행 저작권법은 인터넷에서의 이와 같은 일상적인 문화적 소통(표현, 교류) 행위를인정하지 않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 펜카페는 저작권법의 규제 대상이 된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올해 초 전송권 논란 이후 많은 블로거들과 미니홈피 운영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려진 음악 파일들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것들은 MP3 음악 파일을 무작위로 수집해 올려놓은 것이 아니라, 블로거들의 갖가지 사연들과 함께 연관된 음악을 올려놓은 것이었다. 그들은 음악 파일을 삭제하면서 자신들의 추억을 훼손당할 수밖에 없었다.  

동호회 운영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현행 저작권법에 의하면, 예를 들어 시 동호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올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거나, 어떤 시에 대해 자신의 비평을 올려놓는 것은 저작권 위반이 될 수 있다. 저작자에게 사전에 허락을 맡지 않았다면 말이다. 필자의 상식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시를 추천하기 위해 “저는 기형도 시인의 ‘안개’라는 시를 좋아해요. 궁금하시면 시집을 사서 읽어보세요”라고 할 수밖에 없다든가, 혹은 글을 올릴 때마다 기형도 시인의 권리 승계자나 문예학술저작권협회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일상적인 문화적 소통이 없이, 한 사회의 문화 발전이 가능할까?  

 

이와 같은 일상적인 문화적 소통은 과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학교 문학 동호회에서 시집을 함께 읽거나, 동호회 잡기장 등을 통해 유명 시인의 시에 대해 비평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행위는 저작권 위반이 아니다. 그런데, 이용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같은 의미의 행위가 ‘단지 인터넷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규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상적인 문화적 소통(표현, 교류)을 규제하는 것은 저작권자에게 이용자에 대한 엄청난 통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의 이런 효과에 대한 근거가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않다. 올해 초 전송권 논란과 관련된 많은 토론회에서는 P2P 프로그램이나 웹하드 등을 통해 얼마나 많은 문화 콘텐츠가 불법 유통되고 있는지, 그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만이 반복해서 주장되었을 뿐이다.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명제 하에서, 문화적 소통의 중요성은 너무나 가볍게 무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소리바다 등 P2P 프로그램 등을 통한 ‘비영리적’ 저작물 이용에 대해서는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의 핵심은 아니다. 설사 P2P 등에 대한 저작권자들의 문제제기가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동호회나 블로그 등을 통한 일상적인 문화적 소통을 제약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소리바다나 웹하드 등에서는 ‘저작물의 교환’ 자체를 주된 목적으로 하지만, 동호회나 블로그 등에서는 어떤 문화적 소통의 맥락 속에서 저작물이 이용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적 소통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일 뿐만 아니라, 문화 발전의 궁극적인 기반이라면, 저작권법이 이를 규제하는 합당한 근거가 제시될 필요가 있다.  

 

어떤 행위가 오프라인에서 발생했는가, 혹은 인터넷에서 발생했는가의 차이는 중요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저작권 체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상에서 이러한 문화적 소통을 규제하는 것이 그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할 만큼 문화 발전을 위해 긍정적 영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저작권자들의 가장 큰 염려는 저작물 시장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 카페나 블로그 등에 타인의 저작물을 올려놓았다고 무조건 시장에 심대한 피해를 주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시 동호회에 시 몇 개가 올려있다고 시집 판매가 저하될 것인가? 음악비평을 위해 블로그에 올려놓은 음악을 일상적인 감상용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소리바다와 같은 P2P 프로그램이 시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저작물 교류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동체나 블로그에 이용된 저작물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물론 공동체나 블로그에 올려진 저작물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특별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특별 사례가 보편적 규제의 근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상업적 목적의 불법복제나 영향력이 큰 사이트만이 단속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비영리적, 개인적인 블로그나 미니홈피는 현실적으로 저작권 규제와 무관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타당성을 잃고 있다.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은 단속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사전에 허락받지 않은 타인의 저작물 이용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된다면 이용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미 수많은 블로거와 미니홈피에서 음악 파일들을 삭제하지 않았는가? 또한, 실제로 개인 이용자들도 저작권 위반 소송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의 주장이 인터넷에서는 타인의 저작물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구매한 시집에서 좋은 시를 골라 시 동호회의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 혹은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을 깔기 위해서 자신이 구매한 CD에서 어떤 음악을 MP3 파일로 변환시킬 수도 있다. 이용자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시집과 CD를 구매하였지만, 이러한 행위들이 현재 규제되고 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집이나 CD를 구매한 것이 그 내용을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행위까지 허락받은 것은 아니다. 이는 창작자의 ‘전송권’을 침해한 것으로 별도의 허락을 필요로 한다. 필자가 문제제기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전송권이 과도하게 규정됨으로써 이용자들의 문화적 표현, 소통까지 규제한다는 것이다.  

 

물론 돈을 주고 구입하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앞서 예로든 ‘불멸의 이순신’ 펜카페의 사례처럼 방송을 캡쳐받았을 수도 있고, 친구에게 전달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경우가 ‘공짜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친구의 책을 빌려보거나, 옆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다고 ‘공짜로 이용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듣지는 않는다. 필자가 책이나 CD가 무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뿐더러, 유료 온라인 음악 서비스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즉, 온라인 음악 서비스는 무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오히려 이용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들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저작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온라인 상에서의 모든 저작물 이용 행위가 문화 상품의 판매/구매 행위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필자의 주장은 저작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공정이용의 범위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정이용의 범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터넷 상에서의 문화적 소통 행위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점이다.  

 

 

3. 전송권과 문화권  

 

인터넷 상에서의 문화적 소통 행위를 규제하는 근거는 ‘전송권’이다. 국내 저작권법에서 전송권은 “일반공중이 개별적으로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수신하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저작물을 무선 또는 유선통신의 방법에 의하여 송신하거나 이용에 제공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저작물이 이용된 맥락과 상관없이, 즉 영리적인 목적이든, 비영리적인 목적이든, 혹은 사적인 이용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공개된 인터넷 공간에 타인의 저작물을 올려놓는 것은 전송권을 침해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비영리적, 개인적 이용에 대해 저작재산권의 예외를 규정하는 저작권법 27조는 ‘복제’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 저작재산권의 예외, 혹은 공정이용은 ‘전송’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설명했듯이, 예외없는 전송권의 보호는 다른 한편에서 인터넷 상의 다양한 문화적 소통을 위축시키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이용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하는지에 대해 저작권자들은 막강한 통제 권한을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 컬럼에서 이를 ‘국가보안법’에 비유한 바 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이나 공산주의와 관련된 특정한 표현이나 소통을 규제했다. 전송권은 특정한 문화적 표현을 규제한다. 예를 들어, 필자는 블로그에 어떤 음악에 대한 비평을 올려놓기를 원한다. 그러나, 저작권법은 비평과 함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음악을 직접 듣는 것이 비평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더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소통에 미치는 전송권의 영향은 막대하다고 본다. 과거 저작권법은 주로 영리적인 사업자를 규제했다. 반면, 현재 전송권은 국민 대다수의 문화적 소통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문화적 결과의 심각성이 제대로 평가되거나 인식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결정자나 지적재산권 전문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저작권과 관련된 담론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저작권자의 이익은 ‘권리’로서 당연하게 인정되어 왔으며, 또 강력한 이해당사자 집단의 로비가 작용하고 있는 반면에, 이와 균형을 맞춰야 할 다른 측면의 이익은 ‘권리’로서 규정되기보다는 ‘이용자에 대한 고려’, ‘권리 남용의 제한’, ‘이용의 확산’과 같이 다소 모호하게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공정이용과 관련해서도 이용자의 ‘권리’라는 측면보다 저작권자 권리의 ‘제한’ 혹은 ‘예외’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저작권이 창작자의 권리와 공정한 이용의 균형을 제대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권리’로 적극적인 규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이와 같은 이용자의 권리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역사적으로 그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1948년 유엔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제27조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     

1항.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2항.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2항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근거 규정이라면, 1항은 이용자로서의 ‘권리’를 규정한 것이라고 본다. 이어 1966년 제정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국제규약’ 제15조 제1항 a)는 문화적인 삶에 참여할 권리를, b)는 과학적인 진보와 응용으로부터의 이익을 향유할 권리, c)는 자신이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도 c)가 지적재산권을 규정한 것이라면, a) 와 b)는 문화와 과학의 이용자, 향유자로서의 ‘권리’를 규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용자의 권리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문화권’ 혹은 ‘문화적 권리’가 적절한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맥락에서만은 아니지만, 문화적 권리를 개념화하기 위한 노력은 국내외적으로 계속되어 왔다. 물론 ‘문화권’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거나, 법적으로 구체화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문화권’ 개념을 구체화하고, 저작권과 관련한 맥락에서도 저작권과 문화권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은 향후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다만, 여기서는 전송권에 근거한 예외없는 규제에 의해서 이용자들의 (필자의 관점에서는 정당한 것으로 보이는) 문화적 소통이 부당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확대되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4. 새로운 창작에 대한 제한 

 

저작권이 창작자의 배타적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은 창작자에 대한 동기 부여와 경제적인 보상을 통해 창작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창작을 활성화하는 조건이 창작자의 배타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존의 저작물을 더 많이 향유하는 것, 그리고 기존 저작물을 자신의 창작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창작을 활성화하기 위한 또 다른 조건이 된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창작자의 배타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상반되는 조건일 수 있다. 그래서, 저작권은 양자사이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앞서 전송권이 문화적 소통을 위축시키고 있음을 지적했는데, 이는 창작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이와 관련하여 창작 환경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창작에 필요한 저렴한 수단들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컴퓨터를 포함해서,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포토샵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저작물을 쉽게 만질 수 있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단지 기존 저작물을 변형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창작물의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전문적인 예술가나 영리목적의 기업에 의한 창작뿐만 아니라, 일반인에 의한 비영리적 목적의 창작 활동의 폭도 넓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송권에 근거한 규제는 기존 저작물에 토대를 둔 의미 있는 생산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2005년 3월 2일, 한국온라인신문협회는 ‘온라인 뉴스 이용규칙’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홈페이지 등에서 뉴스 콘텐츠를 복제해서 서비스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이 된다. 국내 대부분의 홈페이지들은 기업, 공공기관, 정치인, 비영리 시민사회단체 할 것 없이 관련 신문 기사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예를 들어, 환경단체는 각 신문사의 환경 관련 기사를 수집해 자기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였으며, 이용자 입장에서는 여러 신문사 사이트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정보 가공’ 행위였다.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지침에 따라, 이제 이용자들은 이러한 서비스를 더 이상 향유하기 힘들게 되었다. 물론 지침에 따르면 기사를 링크하는 방식은 허용이 되므로, 기존의 서비스를 일정 정도는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기사를 클릭할 때마다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거나, 때로는 링크가 끊어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관련 기사 내에서 검색을 하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비영리적 신문기사 가공 서비스가 각 언론사의 수익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의문이다.  

또한, 홈페이지마다의 기사 가공 방식은 나름의 관점을 갖고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같은 환경 단체라도 관점이나 관심 영역이 다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수집되는 기사의 종류도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신문기사 가공 서비스가 과연 언론사에 의해 제공될 수 있을까? 혹은 이러한 다양성과 창조성은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비영리적 문화비평 웹진이나 인터넷 방송 역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문화비평 웹진에서 비평의 대상이 되는 문화콘텐츠의 사진, 이미지, 동영상, 음악 등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비영리적 웹진 운영자 입장에서는 저작물을 이용할 때마다 대가를 지불할 여력은커녕,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맡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비영리적 인터넷 방송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전송권 체제 하에서 비영리적 웹진이나 인터넷 방송을 운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내용 구성에 있어 상당한 제약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법적인 제약만 없다면 가능할 수 있는 수많은 창작물들을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손실이 비영리적 웹진이나 인터넷 방송을 허용함으로써 입을 수 있는 저작자들의 손실에 비해 과연 적을 것인가.  

물론 영리적으로 운영되는 웹진이나 인터넷 방송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영리적인 시스템을 통해 전달되기 힘든 목소리도 있는 법이다. 주류 언론, 방송 영역에서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영리적 문화 창작의 위축은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도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5. 저작권법의 근본적인 문제들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은 저작권과 관련된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복제와 전송기술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지식・문화의 효과적인 확산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지만, 저작권자 입장에서는 권리 침해의 위협이 높아진 것이었다. 권리자들은 기술적인 보호조치의 마련과 함께, 전송권과 같이 디지털 환경에서의 권리 보호 강화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디지털 네트워크 내에서는 개인들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행위들이 복제와 전송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저작권이 상업적인 불법복제만이 아니라 비영리적, 개인적인 소통 행위까지 규제하게 되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저작자의 권리와 이용자의 권리 사이의 갈등을 빚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은 창작자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창작자는 사실상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블로그 등 1인 미디어의 등장과 디지털 카메라 등 창작 도구의 대중화에 따라 창작자의 범위가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점차 누구나 지식・문화의 소비자이자 창작자인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전업 창작자 중심의 시대에 비해, 현재에는 누구나 영리를 목적으로 창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비영리적 창작이 활성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저작권이 이를 제한하고 있는 측면과 함께, 저작권 체제 자체에 대해서도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싶다.  

 

현재 저작권 보호기간은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되어있다. 이는 물론 국제협정에 의해 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영리적인 목적의 저작물도 일부의 인기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상품이 짧은 기간 내에 수익의 대부분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각 저작물 유형별로 구체적인 수익 회수 기간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따라서, 나머지 보호기간 동안에는 저작권자에게 별다른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향유나 창작을 위한 저작물의 유용한 이용을 제한할 뿐이다. 영리적 목적의 저작물이 아닌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커질 것이다.  

 

물론 창작자에게 이용 허락을 받으면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용 허락을 받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며, 때로는 불가능한 경우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디지털 정보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출범한 정보트러스트센터(http://www.infotrust.or.kr/)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즉, 과거의 웹진을 복원하고자 하지만, 무작정 복원하자니 저작권 침해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과거 웹진의 필자가 워낙 많다보니 사전에 허락을 맡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별도의 형식적인 요건이 필요 없이, 창작 즉시 저작권이 부여되는 현 저작권 시스템이 이러한 문제를 가중시킨다. 현 시스템 하에서는 모든 창작자들이 자신의 배타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제된다. 과거에 전문 창작자 중심의 생산 환경에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창작자의 폭이 확대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그러한 전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떤 창작자 오히려 자신의 저작물이 널리 이용되는 것을 원할 수 있다. 이는 학술 영역에서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기는 하지만, 여타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공개 소프트웨어(free and open source SW) 영역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창작물을 공개하는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창작자들은 영리적인 목적만 아니라면 자유로운 이용을 허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저작권 시스템 내에서는 이와 같은 창작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이용자 입장에서는 어떤 저작물을 이용하기 전에 비용이 들더라도 창작자들에게 허락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혹은 저작물의 이용을 포기하게 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법학자 로렌스 레식도 그의 저서에서 이와 비슷한 제안을 하고 있다. 그는 저작권 등록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등록 시스템이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겠지만, 디지털 환경은 오히려 그러한 비용을 줄일 것이다. 그는 도메인 네임 등록 시스템을 우리가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누구나 쉽게 도메인 네임을 등록하듯이, 저작권을 등록하는 일도 (이를 통해 배타적 권리를 획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리 번거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등록 시스템은 저작물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도 유익하다. 이용하고자 하는 저작물이 등록되어 있는지, 저작권자는 누구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저작권 보호 기간도 현실적으로 줄어들 필요가 있다. 다만, 상업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저작물의 경우에는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업적 가치가 지속되는 저작물은 현재와 같은 보호기간을 향유하면서도, 그러할 의도가 없거나 상업적 가치가 없는 저작물의 경우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 영역(Public Domain)에 남게 될 것이다. 물론 현재의 저작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인만큼 엄밀한 검토를 필요로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도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제기를 하고 싶다.  

 

혹자는 저작권 등록 시스템 대신에, 창작자의 다양한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크리에이티브커먼스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나 국내의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이용하면 될 것이라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크리에이티브커먼스 라이선스나 정보공유라이선스가 앞서 얘기했던 현 저작권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현 저작권 체제를 일정하게 보완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보다 많은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크리에이티브커먼스 라이선스나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 운동이 보편적 사회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저작권의 문제는 그것대로 토론이 되어야 한다.  

 

 

 

6. 나가며... 

 

앞서 현행 저작권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몇 가지 짚어보았지만, 현행 저작권법이 법 자체로만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지향하는 국제질서와 이에 부응하는 국내흐름,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를 중심으로 한 국제협약, 한류를 앞세워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콘텐츠 산업, 영화사・음반사 등 정보・문화 기업의 로비, 산업 중심의 문화 정책, 그리고 정보・문화 상품의 기반이 되는 저작권법.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가치에 밀려 인류 공동의 지적 자산, 전 세계 시민의 협력, 공적인 문화 인프라, 비영리적 문화 기반의 확대, 문화적 권리 등은 존중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이 단지 법적 논란으로 머물지 않는 이유다. 전송권이 야기하는 문화적 소통의 제약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의 일방적인 강화에 대한 반발 역시 거세지고 있다. 지적재산권 관련 국제협약들을 관장하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가들이 개발 의제(Development Agenda)의 수립을 제안하며, 지적재산권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각 국의 개발을 촉진하는데 복무해야 하며, 각 국의 발전 수준이나 독특한 사회적 요구를 고려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전 세계의 공익적 시민사회단체 역시 이러한 흐름을 지지하고 있다.  

 

국내 정보화가 매우 진전됨에 따라, 저작권과 관련된 세계적인 이슈가 국내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저작권 관련 논쟁을 적극적으로 주도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작권과 관련된 국내의 연구 및 논쟁에서 배타적 권리에 대한 보호와 동시에 이용자의 문화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고려가 균형있게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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