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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에 대한 '안티'와 인터넷

2002년 8월에 서울교대 교지에 기고한 글 ------------------- 권력자에 대한 '안티'와 인터넷 오병일 건강한 비판과 토론은 민주적인 사회의 기반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토론-'안티'걸기-는 사회적 권력 관계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랜 동안 군사독재 치하에 있었던 우리 사회에서 비판과 토론은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학교는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지식을 '주입'하였고, 언론은 통제되었다. 흔히 전문가라 불리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제한된 방식으로 발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인터넷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공개적 토론공간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상관없이, 즉 교수나 변호사 등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기득권, 나이에 의한 폭력, 열등한 사회적 지위로 인한 위축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주류 언론에서 배제된 뉴스들, 대통령과 야당 총재와 같은 권력자에 대한 비판들이 날것으로 터져나왔다. 또한, 인터넷은 '개인'의 권력을 상대적으로 강화시켰다. 이곳에서 열정적 개인은 단체보다 훨씬 많은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 예컨데, 환경에 관심이 많은 한 개인이 큰 환경 단체보다 훨씬 유용한 홈페이지를 서비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화된 개인들은 기업과 같은 사회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하였다. 소비자가 왕이라지만, 기존의 사회에서 한 개인이 기업의 횡포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안티후지, 안티컴팩, 안티포스코 등 기업의 횡포에 대항하는 사이트, 안티조선같은 언론에 대항하는 사이트, 그리고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이트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곳에서 정보는 정부와 언론에 통제되지 않으며, 개개인들의 작은 반대의 목소리들이 집결되며, 서로 다른 의견들이 토론된다. 하지만, 이러한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들은 이제 기득권자에게, 권력자에게 이제 위협으로 느껴질만한 수위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러한 목소리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인터넷이 욕설과 명예훼손, 그리고 유언비어 같은 쓰레기로 넘쳐난다고, 그래서 실명제를 통해 정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이나 선거법과 같은 악법을 이용하여 검열을 행하기도 하며, 안티포스코(http://antiposco.nodong.net)의 사례에서와 같이 '저작권'을 이용하여 탄압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명예훼손'이라는 명목으로 사법적 수단을 이용하여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 많은 경우 이러한 사례들은 개인과 개인간의 분쟁이라는 형태로 드러나지만, 잘 들여다보면 대부분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권력자' 층이다. 물론 오랜 동안 통제에 길들여진 우리는 아직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못함을 간혹 느낀다. 그래서, 종종 건강한 토론보다는 상호 비방의 평행선을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동체의 자율적인 규제에 맡겨져야 할 일이지, 어떠한 토론의 룰을 강제할 문제는 아니다.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안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권력자에 대한 '안티'가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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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모델 특허에 대한 특허법원 첫 판결의 의미

진보 블로그의 컨텐츠를 채워야한다는 일념으로 ^^; 2002년 8월에 (아마도 참세상방송국에) 쓴 글입니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현재도 인정이 되고 있지만... 요즘에는 큰 이슈가 되고 있지는 않군요. 여전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 BM 특허에 대한 특허법원 첫 판결의 의미 오병일 지난 3월 22일 특허법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내려졌다. 한 비즈니스 모델 특허 출원에 대해서, 그 출원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이라고 할 수 없어 산업상 이용할 수 있는 발명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특허를 받을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특허 출원은 '특허출원 등에 관련된 내용을 다양한 정보매체를 이용하여 출원하며, 또한 그 정보매체를 이용하여 심사, 심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출원에 관련된 내용을 보고 느끼면서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특허출원 등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존의 특허출원, 심사 방법을 다양한 정보매체를 이용하여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특허심판원 및 특허법원은 정보매체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들이고, 이 출원 내용은 그 이용형태의 하나를 기술한 것일 뿐이며, 특허 출원 및 심사 과정에 대한 개선안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개선안은 관련 법령의 제정, 즉 국회 및 관할 관청의 입법작용이라는 정신적 판단 내지 인위적 결정 사항에 해당하므로, 특허법 상 발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 판결이 의미있는 이유는 현재 '비즈니스 모델 특허'라는 이름으로, 비즈니스 상의 아이디어에 불과할 뿐, 기술적으로는 매우 수준이 낮은 발명(사실상 발명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들이 특허 출원되어 허가받고 있는 상황에서, '비즈니스 모델' 특허출원의 허용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질낮은 특허가 남발되는 것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특허의 애초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 발전의 촉진과 지식의 확산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통상 어떠한 기술상의 혁신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아이디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통상 특허 발명의 실시 과정에서 그 발명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명세서의 공개를 통한 기술 지식의 확산이라는 의미도 없다. 결국 단지 특허권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사적 이익만을 보호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몇 년 전부터 시민사회단체의 많은 문제제기를 받아왔다. (http://networker.jinbo.net/nopatent 참고) 현재 진보넷은 삼성전자의 '원격교육' 특허에 대해서 특허 무효심판 청구를 해놓은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특허 역시 특별한 기술적 혁신 없이, 단지 기존의 교육 방법에 통상적인 인터넷 활용방법을 결합해놓았을 뿐이다. 올해 중반쯤에 특허법원의 결과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이 삼성전자 특허에 대한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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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랙백 및 덧글 보기

현재 최근 목록에는 내가 올린 글 목록만 나오는데, 다른 사람이 쓴 트랙백이나 덧글 목록이 나오는 메뉴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나중에 이와 관련된 기능 개발 계획이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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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페이스가 던져주는 새로운 상상력

2002년 5월 [사회비평]에 실린 글.

 

새로운 거버넌스의 방식은 여전히 흥미있는 주제...

언제한번 다시 정리를 해봐야하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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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페이스가 던져주는 새로운 상상력

 

오병일

인터넷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이루어낸 생산력의 혁명적 발전만은 아니다.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터넷은 '또 하나의 공간'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하고, 함께 일을 하며, 삶의 기쁨과 슬픔을 똑같이 느낀다. 소통을 하는 주체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형성되는 문화는 기존의 현실 공간의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새로운 공간'이라는 점에서, 사이버 스페이스의 문화는 기존 오프라인의 문화와는 다르다. 특히, 인터넷의 설립자들은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룰들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초창기 인터넷에서 탄생한 새로운 문화들은 기존의 오프라인 질서를 반성해볼 수 있는 계기와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다.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과 생산의 사회화

이제 '카피레프트'라는 개념은 대중적으로 많이 확산된 듯 하다. 다시 한번 간략히 설명하자면, 카피레프트란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에 저작권(Copyright) 설정을 먼저 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 저작물을 복제, 수정, 재배포할 수 있으나, 수정해서 재배포할 경우, 수정된 저작물 역시 카피레프트로 배포되어야함을 규정(이를 GPL, General Public License라고 한다.)한 것이다. 즉, 타인이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저작물을 복제, 수정, 배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저작권이라면, 카피레프트는 현실 법체계인 저작권을 이용하여 악의적인 사용-즉,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을 수정하여 자신의 저작권으로 배포하는 것-은 막되, 오히려 저작물 공유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소프트웨어의 상품화에 의해 프로그래머 공동체가 갈수록 해체되는 경향에 반대하여, 전설적인 해커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이 대안적 공개 운영체제 개발을 위한 그누(GNU)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고안한 일종의 라이센스이다.

현실의 지배적인 질서인 저작권 체제는, 그 속성상 배타적일 수 없는 지식과 정보를 법적 강제를 통하여 상품화하여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하고, 판매 수익 극대화에 대한 욕망을 동기로 창작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카피레프트가 '운동'인 이유는 이러한 지배 질서에 반대하여 지식과 정보에 대한 인간 관계 중심적인, 새로운 생산, 유통, 소비의 방식을 만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카피레프트 공동체 내에서 보상은 금전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일에 대한 성취감이고, 자신이 창작한 것을 많은 사람이 쓴다는 보람이다. 혹은 명예에 대한 욕망이며,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형성할 때 느끼는 풍요로움이다. 그렇다고, 카피레프트 운동을 몇몇 선한 사람들의 선행 ,혹은 사상적으로 투철한 운동권들의 헌신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혹은 사상적으로 투철해서가 아니라, 단지 좋아서 카피레프트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원래 부자인 사람, 돈이 별로 없어도 프로그래밍에 빠져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여유 시간에 참여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좀 더 범위를 넓혀 정보와 지식이 정보자본주의가 탄생시킨 핵심적인 상품이자 생산수단이라고 했을 때, 카피레프트는 '생산수단 사회화'의 훌륭한 모델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것은 '국유화'라는 이름으로 공공성을 국가에 떠맡기지 않으며, 그래서 정치적 권력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혹은 특정 단체나 개인이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도 없다. 카피레프트 공동체의 결과물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소비와 또 다른 생산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다닌다.
물론 사람들은 이 공동체 내에서 많은 돈을 벌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산물 역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저작권 체제가 자신의 지적 창작물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동시에, 자신 역시 창작을 위한 소비에 많은 돈을 지불해야하는 반면, 카피레프트는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시스템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생태주의 운동과 비슷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때 자본주의 경제학자는 '무임승차자'의 문제를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카피레프트 운동은 이상(理想)만 훌륭한 공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현실에서 나름의 장악력을 가지고 있는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비록 레드햇(RedHat)과 같은 리눅스 패키지 제작, 배포업체의 공헌이 컸다고 하더라도, 그누/리눅스(GNU/Linux)는 윈도에 대항한 대안적 운영체제로 주목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고, 무임승차자가 자본주의적 인간형이라면, 새로운 사회적 관계 안에서 무임승차자란 무의미한 개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또 한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사회적 생산'으로서 그 '생산 방식'이다. 카피레프트 공동체의 성과는 몇몇 훌륭한 프로그래머의 헌신으로 돌려질 수는 없다. 그것은 특정한 개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사람, 주요 부분을 개발하는 사람, 쓸만한 프로그램을 모아서 널리 배포하는 사람, 프로그램을 사용해보고 버그를 알려주는 사람, 특별한 용도에 맞게 수정하는 사람, 그리고 사용하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하고,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실히 답변해주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누구나 자신의 역량과 참여하고자하는 의지에 맞게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고, 대화하며, 일을 진척시켜 나간다. 물론 이러한 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일련의 흐름을 통제하고, 개별적 성과를 적절하게 전체와 조화시킬 수 있는 조정자(Coordinator)의 역할이다. 하지만, 특정한 단체나 개인의 권력욕, 혹은 소유욕은 전체적인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의 생산, 혹은 활동이 반드시 프로그램 생산에만 적합한 것은 아니다. 다른 창작물의 생산이나,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혹은 어떠한 사회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영역에서는 그에 적합한 변용과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컨데, 환경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을 정부가 수많은 인력들을 고용해서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즉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한 기획자의 기획, 프로그래머의 자발적인 기여, 환경 단체나 기관의 협력, 지역 주민 등 개개인의 참여를 통해 훨씬 저렴하면서도 풍부하게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공동체와 합의의 정치

인터넷은 다른 종류의 컴퓨터가 서로 통신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이다. 그래서, 인터넷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통신 규약인 프로토콜, 컴퓨터의 주소라고 할 수 있는 IP 주소, 그리고 IP 주소를 사람들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변환한 도메인 네임 등에 대한 전 세계적 합의에 기반해야 한다. 현재 어디서 이러한 주소자원을 관리하고 있는가? 주소자원을 관리하고 있는 국제기구는 ICANN(The 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다. 하지만, ICANN은 일반인의 상식과는 달리 정부간 협의체가 아니다. ICANN에는 관심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아래로부터의 합의(Consensus)에 의한 정책 결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1998년 말에 설립된 ICANN이 이러한 구조와 원칙을 갖게 된 것은 인터넷의 전통에 기인한다. ICANN 이전, 인터넷 초창기에 인터넷의 기본 질서를 설계한 사람들은 정부 관료가 아니라 엔지니어들이다. 그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 작업을 했으며,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을 협의를 통해 만들어나갔다. 이러한 그들의 작업은 IETF(The 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라는 인터넷 공동체 내에서, RFC(Request for Comments)라는 형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어떠한 해결해야할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관련된 작업반(Working Group)이 만들어진다. 이 작업반에는 관심이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 RFC라는 형식으로 해결책을 제안하면(혹은 여러 개의 제안서가 나오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 제안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토론을 한다. 이러한 토론의 과정에서, 교수, 변호사, 혹은 회사에서의 직책 등 현실 세계의 어떠한 권위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가장 설득력있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주장이 반영될 뿐이다. 그러한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합의가 형성되면, 일련의 번호가 부여된 안정적인  RFC 문서가 만들어진다. 물론 이 RFC 문서는 미래의 문제제기에도 열려있으며, 언제든지 타당한 문제제기에 의해서 변경될 수 있다. RFC 문서가 현실세계의 법처럼 어떠한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터넷 관련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이 RFC 문서를 존중함으로써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현실세계의 관료적 구조와 형식적 권위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예컨데, 정부 관료가 어떠한 법이나 정책을 만들 때, 소위 전문가라는 소수의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들게 된다. 전문가라 할지라도 정치적 소수파, 혹은 반대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배제된다. 그들이 민주적인 의견 수렴과정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공청회다. 물론 어떠한 법안에 대해서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공청회에서 발언한다고 하더라도, 반대 의견이나 대안을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는 여전히 정부 관료들의 마음이다. 왜 반영되지 않았는지 설명할 의무조차 그들에게는 없다. 심지어 작년에 새로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마저 비공개 회의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인권단체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인터넷 공동체에서 형성된 정책 결정 방식은 기존의 체제가 얼마나 비민주적인 구조인지 보여주는 거울이 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시민참여모델을 고민하고 있는 과학기술운동 진영에도 하나의 모델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서 우리는 전문가와 비전문가라는 작위적인 구분에 전제하여 '일반 시민'의 참여를 촉진하려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심해볼 수 있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은 무수히 많고, 내가 그 모든 것에 전문성은 고사하고 관심을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이 전문가로 규정되든 아니든, 자유롭게 참여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반영될 수 있는 '열린 구조'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열린 구조' 자체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ICANN은 형식적으로 참여가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미국'의, 그리고 '기업' 세력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약자에 대한 적극적 고려를 하지 않는 형식상의 평등은 오히려 실질적인 불평등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ICANN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닫혀진 세계에서 '열린 구조'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 약자의 무기일 수 있다.


사이버 스페이스와 현실 질서의 수렴

필자는 앞에서, 초창기 인터넷에서 탄생한 새로운 문화들이 기존 질서의 억압성을 반성하고, 대안적 체제를 고민해볼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음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하여 사이버 스페이스를 대안적 공간인 것처럼 신비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기실 인터넷이 미국의 군사 프로젝트로부터 발전했다거나,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네트워크 기반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의 물리적 토대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 현실의 권력 관계와 질서는 사이버 스페이스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예컨데, 누구나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던 것이 당연시되었던 인터넷의 문화는 인터넷 기업들이 형성한 시장에 의해서 빠른 속도로 침식되고 있다. 정보는 유료화되고,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을 막기 위해 가상의 벽이 설치된다. 올바른 인터넷 문화 형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터넷 실명제는 사실상 인터넷의 시장화를 위한 필수 기반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ICANN의 최근 경향을 보아도 그렇다. 2002년 2월, ICANN 최고 경영자인 스튜어트 린(Stuart Lyne)은 ICANN 개혁안을 내놓았는데, 이 개혁안의 핵심은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효율성'을, 그리고 현실적 권력집단으로서 각 국 정부를 인정하며, ICANN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이를 본받아, 현재까지 자율적으로 형성되어왔던 국내 인터넷 공동체인 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 주소위원회를 무시하고, 주소자원 관리권한을 정통부로 귀속시키는 '자소자원관리법안'을 현재 추진중이다.
물론 앞서 설명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사이버 스페이스 역시 현실의 권력관계와 질서에 알게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이버 스페이스 공동체에 익숙한 개인들은 내용 없는 권위에 반발을 느끼기 쉽다. 익명의 고발과 쏟아지는 의견은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와 같이, 사이버 스페이스와 현실의 질서는 현재 서로 영향을 미치며 수렴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는 요동치고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와 현실의 질서 형성 과정의 결과가 향후에 어떠한 사회 질서를 형성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가 현실 권력의 개입에 의해 갈수록 분절화되고, 억압적인 공간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하고 저항하는 것과 동시에, 사이버 스페이스의 새로운 질서와 문화가 던져주는 상상력을 기존 현실 관계의 변혁을 위해 적절하게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과 생산의 사회화

이제 '카피레프트'라는 개념은 대중적으로 많이 확산된 듯 하다. 다시 한번 간략히 설명하자면, 카피레프트란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에 저작권(Copyright) 설정을 먼저 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 저작물을 복제, 수정, 재배포할 수 있으나, 수정해서 재배포할 경우, 수정된 저작물 역시 카피레프트로 배포되어야함을 규정(이를 GPL, General Public License라고 한다.)한 것이다. 즉, 타인이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저작물을 복제, 수정, 배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저작권이라면, 카피레프트는 현실 법체계인 저작권을 이용하여 악의적인 사용-즉,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을 수정하여 자신의 저작권으로 배포하는 것-은 막되, 오히려 저작물 공유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소프트웨어의 상품화에 의해 프로그래머 공동체가 갈수록 해체되는 경향에 반대하여, 전설적인 해커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이 대안적 공개 운영체제 개발을 위한 그누(GNU)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고안한 일종의 라이센스이다.

현실의 지배적인 질서인 저작권 체제는, 그 속성상 배타적일 수 없는 지식과 정보를 법적 강제를 통하여 상품화하여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하고, 판매 수익 극대화에 대한 욕망을 동기로 창작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카피레프트가 '운동'인 이유는 이러한 지배 질서에 반대하여 지식과 정보에 대한 인간 관계 중심적인, 새로운 생산, 유통, 소비의 방식을 만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카피레프트 공동체 내에서 보상은 금전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일에 대한 성취감이고, 자신이 창작한 것을 많은 사람이 쓴다는 보람이다. 혹은 명예에 대한 욕망이며,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형성할 때 느끼는 풍요로움이다. 그렇다고, 카피레프트 운동을 몇몇 선한 사람들의 선행 ,혹은 사상적으로 투철한 운동권들의 헌신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혹은 사상적으로 투철해서가 아니라, 단지 좋아서 카피레프트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원래 부자인 사람, 돈이 별로 없어도 프로그래밍에 빠져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여유 시간에 참여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좀 더 범위를 넓혀 정보와 지식이 정보자본주의가 탄생시킨 핵심적인 상품이자 생산수단이라고 했을 때, 카피레프트는 '생산수단 사회화'의 훌륭한 모델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것은 '국유화'라는 이름으로 공공성을 국가에 떠맡기지 않으며, 그래서 정치적 권력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혹은 특정 단체나 개인이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도 없다. 카피레프트 공동체의 결과물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소비와 또 다른 생산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다닌다.
물론 사람들은 이 공동체 내에서 많은 돈을 벌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산물 역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저작권 체제가 자신의 지적 창작물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동시에, 자신 역시 창작을 위한 소비에 많은 돈을 지불해야하는 반면, 카피레프트는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시스템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생태주의 운동과 비슷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때 자본주의 경제학자는 '무임승차자'의 문제를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카피레프트 운동은 이상(理想)만 훌륭한 공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현실에서 나름의 장악력을 가지고 있는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비록 레드햇(RedHat)과 같은 리눅스 패키지 제작, 배포업체의 공헌이 컸다고 하더라도, 그누/리눅스(GNU/Linux)는 윈도에 대항한 대안적 운영체제로 주목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고, 무임승차자가 자본주의적 인간형이라면, 새로운 사회적 관계 안에서 무임승차자란 무의미한 개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또 한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사회적 생산'으로서 그 '생산 방식'이다. 카피레프트 공동체의 성과는 몇몇 훌륭한 프로그래머의 헌신으로 돌려질 수는 없다. 그것은 특정한 개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사람, 주요 부분을 개발하는 사람, 쓸만한 프로그램을 모아서 널리 배포하는 사람, 프로그램을 사용해보고 버그를 알려주는 사람, 특별한 용도에 맞게 수정하는 사람, 그리고 사용하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하고,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실히 답변해주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누구나 자신의 역량과 참여하고자하는 의지에 맞게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고, 대화하며, 일을 진척시켜 나간다. 물론 이러한 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일련의 흐름을 통제하고, 개별적 성과를 적절하게 전체와 조화시킬 수 있는 조정자(Coordinator)의 역할이다. 하지만, 특정한 단체나 개인의 권력욕, 혹은 소유욕은 전체적인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의 생산, 혹은 활동이 반드시 프로그램 생산에만 적합한 것은 아니다. 다른 창작물의 생산이나,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혹은 어떠한 사회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영역에서는 그에 적합한 변용과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컨데, 환경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을 정부가 수많은 인력들을 고용해서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즉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한 기획자의 기획, 프로그래머의 자발적인 기여, 환경 단체나 기관의 협력, 지역 주민 등 개개인의 참여를 통해 훨씬 저렴하면서도 풍부하게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공동체와 합의의 정치

인터넷은 다른 종류의 컴퓨터가 서로 통신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이다. 그래서, 인터넷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통신 규약인 프로토콜, 컴퓨터의 주소라고 할 수 있는 IP 주소, 그리고 IP 주소를 사람들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변환한 도메인 네임 등에 대한 전 세계적 합의에 기반해야 한다. 현재 어디서 이러한 주소자원을 관리하고 있는가? 주소자원을 관리하고 있는 국제기구는 ICANN(The 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다. 하지만, ICANN은 일반인의 상식과는 달리 정부간 협의체가 아니다. ICANN에는 관심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아래로부터의 합의(Consensus)에 의한 정책 결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1998년 말에 설립된 ICANN이 이러한 구조와 원칙을 갖게 된 것은 인터넷의 전통에 기인한다. ICANN 이전, 인터넷 초창기에 인터넷의 기본 질서를 설계한 사람들은 정부 관료가 아니라 엔지니어들이다. 그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 작업을 했으며,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을 협의를 통해 만들어나갔다. 이러한 그들의 작업은 IETF(The 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라는 인터넷 공동체 내에서, RFC(Request for Comments)라는 형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어떠한 해결해야할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관련된 작업반(Working Group)이 만들어진다. 이 작업반에는 관심이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 RFC라는 형식으로 해결책을 제안하면(혹은 여러 개의 제안서가 나오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 제안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토론을 한다. 이러한 토론의 과정에서, 교수, 변호사, 혹은 회사에서의 직책 등 현실 세계의 어떠한 권위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가장 설득력있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주장이 반영될 뿐이다. 그러한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합의가 형성되면, 일련의 번호가 부여된 안정적인  RFC 문서가 만들어진다. 물론 이 RFC 문서는 미래의 문제제기에도 열려있으며, 언제든지 타당한 문제제기에 의해서 변경될 수 있다. RFC 문서가 현실세계의 법처럼 어떠한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터넷 관련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이 RFC 문서를 존중함으로써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현실세계의 관료적 구조와 형식적 권위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예컨데, 정부 관료가 어떠한 법이나 정책을 만들 때, 소위 전문가라는 소수의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들게 된다. 전문가라 할지라도 정치적 소수파, 혹은 반대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배제된다. 그들이 민주적인 의견 수렴과정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공청회다. 물론 어떠한 법안에 대해서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공청회에서 발언한다고 하더라도, 반대 의견이나 대안을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는 여전히 정부 관료들의 마음이다. 왜 반영되지 않았는지 설명할 의무조차 그들에게는 없다. 심지어 작년에 새로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마저 비공개 회의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인권단체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인터넷 공동체에서 형성된 정책 결정 방식은 기존의 체제가 얼마나 비민주적인 구조인지 보여주는 거울이 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시민참여모델을 고민하고 있는 과학기술운동 진영에도 하나의 모델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서 우리는 전문가와 비전문가라는 작위적인 구분에 전제하여 '일반 시민'의 참여를 촉진하려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심해볼 수 있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은 무수히 많고, 내가 그 모든 것에 전문성은 고사하고 관심을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이 전문가로 규정되든 아니든, 자유롭게 참여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반영될 수 있는 '열린 구조'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열린 구조' 자체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ICANN은 형식적으로 참여가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미국'의, 그리고 '기업' 세력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약자에 대한 적극적 고려를 하지 않는 형식상의 평등은 오히려 실질적인 불평등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ICANN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닫혀진 세계에서 '열린 구조'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 약자의 무기일 수 있다.


사이버 스페이스와 현실 질서의 수렴

필자는 앞에서, 초창기 인터넷에서 탄생한 새로운 문화들이 기존 질서의 억압성을 반성하고, 대안적 체제를 고민해볼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음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하여 사이버 스페이스를 대안적 공간인 것처럼 신비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기실 인터넷이 미국의 군사 프로젝트로부터 발전했다거나,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네트워크 기반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의 물리적 토대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 현실의 권력 관계와 질서는 사이버 스페이스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예컨데, 누구나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던 것이 당연시되었던 인터넷의 문화는 인터넷 기업들이 형성한 시장에 의해서 빠른 속도로 침식되고 있다. 정보는 유료화되고,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을 막기 위해 가상의 벽이 설치된다. 올바른 인터넷 문화 형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터넷 실명제는 사실상 인터넷의 시장화를 위한 필수 기반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ICANN의 최근 경향을 보아도 그렇다. 2002년 2월, ICANN 최고 경영자인 스튜어트 린(Stuart Lyne)은 ICANN 개혁안을 내놓았는데, 이 개혁안의 핵심은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효율성'을, 그리고 현실적 권력집단으로서 각 국 정부를 인정하며, ICANN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이를 본받아, 현재까지 자율적으로 형성되어왔던 국내 인터넷 공동체인 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 주소위원회를 무시하고, 주소자원 관리권한을 정통부로 귀속시키는 '자소자원관리법안'을 현재 추진중이다.
물론 앞서 설명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사이버 스페이스 역시 현실의 권력관계와 질서에 알게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이버 스페이스 공동체에 익숙한 개인들은 내용 없는 권위에 반발을 느끼기 쉽다. 익명의 고발과 쏟아지는 의견은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와 같이, 사이버 스페이스와 현실의 질서는 현재 서로 영향을 미치며 수렴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는 요동치고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와 현실의 질서 형성 과정의 결과가 향후에 어떠한 사회 질서를 형성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가 현실 권력의 개입에 의해 갈수록 분절화되고, 억압적인 공간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하고 저항하는 것과 동시에, 사이버 스페이스의 새로운 질서와 문화가 던져주는 상상력을 기존 현실 관계의 변혁을 위해 적절하게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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