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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의 역사

<저작권의 형성과정에 관한 역사적 고찰>(김정오, 신동룡, 2003)을 읽고...

1. 제목 그대로 18세기 전후, 유럽에서 저작권 개념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검토한 논문이다.

2. 이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지금 창작자의 권리라고 알려진 '저작권'은 원래 출판사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초의 근대적 저작권법으로 알려진 1710년 '앤여왕법' 이전에는 출판사(출판조합)들이 국왕으로부터 출판특허를 부여받아 서적 출판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누렸다.

앤여왕법은 '출판조합의 독점에 제동을 걸고 저작권 보호기간을 제한'함으로써, '특권적 독점체계와 왕의 대권이라는 구시대적 개념에 근거한 통제를 종식시키고 자유로운 무역에 의한 출판물 규제'를 하려는 목적을 위해 입안되었다고 한다.

앤여왕법이 보호하는 저작권은 작가의 권리라고 할지라도, '사실상 출판가의 권리'였다고 한다. 이후 여러 법적 분쟁을 통해 '작가'와 '보호받을 수 있는 작품'에 대한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3. 출판조합의 독점과 사전검열에 반대하는데 앞장선 사람들 중에 존 로크나 다이엘 디포우가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도 '작가의 권리'라는 데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듯 하다.

"'원고를 구매한 사람'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보아 로크는 문학적 재산을 작각의 배타적인 것으로 인식하였기 보다는 서적상의 것으로 인식하는 듯 하였다."

" 디포우는 해적으로부터 작가의 권리를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지만, 이것은 사회적 계약에 선행하는 자연권이라는 용어보다는 처벌과 보상이 상위의 정치적 권력자로부터 나온다는 전통사회의 틀 내에 있었다."

관련하여 이번 호 ACT!에서 조동원씨가 <저작권: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글을 통해, 저작권을 둘러싼 실제 사회적 관계로부터 괴리되어 유포되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도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그런데 당시 이러한 서적상(출판업자)에게 부여된 배타적 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계몽주의 계열의 존 로크나 다이엘 데포 등의 저술가들은 이러한 출판 독점이 자유로운 지식 획득에 해악을 끼친다고 주장하며, ‘저자’ 라는 새로운 개념과 그 권리를 통해 서적상들에 대항하여 정보를 유통시키고 공유하려고 하였다(우리가 여기서 비판하려고 하는 현재의 저작권이 갖는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를 정치사상적으로 뒷받침한 자연법사상가, 존 로크가 당시의 저작권에 문제 제기했다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때 저자는 출판 시장의 독점을 깨기 위한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런 근거가 되었다."

4. 그런데, '작가'라는 개념(혹은 저작자의 권리라는 이데올로기)은 독점적 출판업자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발전된 것이기도 하지만, 출판업자들이 자신의 독점권을 보장받기 위해 이용한 논리이기도 하다.

출판조합의 독점을 보장해주던 1662년 출판허가법이 1694년 만료가 되었는데, 서적상들은 출판허가법의 갱신을 의회에 청원하면서 처음에는 '만약 그들의 재산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서적상들의 생계는 완전히 파탄될 것이다'라고 주장했으나, 이 시도가 무산되지 전술을 바꾸어 1707년에는 '만약 배타적인 출판권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저술가들의 의욕을 꺾을 것이며,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출간되는 서적이 줄어듦으로써 공공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앤여왕법 제정 이후, 서적 교역의 주도권이 출판조합으로부터 '콘저'라고 불리는 '런던의 몇몇 소수 대형 서적상'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보호기간의 제한은 콘저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고 한다. 이들과 소규모의 스코틀랜드 서적상들간의 상업적 분쟁을 '서적상들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들간의 분쟁에서 런던 서적상들은 저작자의 권리를 명분으로 자신의 독점권을 주장하는데, '첫째 저작권은 근본적으로 제정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보통법상의 문제이며, 둘째 작가는 노동을 통하여 원고에 대한 재산권을 가지는데, 이때의 재산권은 자연권의 일종으로서 영구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스코틀래드 서적상들은 '작가의 권리는 앤여왕법이 정한 보호기간 동안만 인정되고 기간이 만료되면 공유물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법적 분쟁의 결과는 보호기간의 제한으로 종결되었지만, 이 논쟁으로 인해 작가의 배타적인 재산권이자 전유권이라는 지위가 인정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기의 논쟁의 구도와 담론이 현재의 그것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서적상이 음반사, 영화사, 소프트웨어 업체로 확대되었을 뿐, 저작자 보호를 명분으로 한 문화기업의 독점 욕구와 그 이데올로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5. 작가의 보통법적, 총체적 권리를 정당화하였던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것이 로크의 노동이론이다. 조동원씨가 아이러니라고 했던 것은 출판사들의 독점을 반대했던 로크의 이론이 그들 주장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 로크의 소유적 개인주의 담론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위 논문의 주석에 인용된 것인데, Rose는 소유적 개인주의 담론이 18세기 영국의 정치사상을 모두 반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당시에도 시민적 휴머니즘과 공화주의적 덕성을 강조하는 담론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담론을 기초로 한다면 작가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작가의 권한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영구적인 재산권은 출판의 자유과 인간의 권리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구적인 재산권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노동하는 작가' 개념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영구적 재산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재산'의 본질에 대해 초점을 두었다. 즉, Donaldson v. Beckett의 캠든 판사에 의하면 '과학과 학문은 공적인 것이고 공기 또는 물처럼 자유롭고 일반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세익스피어, 밀턴, 뉴턴 및 로크와 같이 진정한 천재들은 자기 작품에 대해 개인적인 이익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 "

6. 위 논문은 결론에서 저작권에 나타난 세력들 및 요소들의 역사를 '왕권-출판업자-기술', '법률가-출판업자-작가', '법률가-작가-독자'의 관계망으로 묶어 정리하고 있다. 맨 마지막 관계망은 필자들이 향후 전망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인데, '앞으로 저작권의 역사가 드러내야 할 부분은 법률-작가-독자의 관계망 속에서 작품에 대한 독자, 즉 공중은 어떠한 권리를 가지며, 독자의 권리는 현재 작가들이 향유하고 있는 권리의 독점성을 어떻게 해체시킬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작가와 독자의 권리를 어떻게 상호보충적 관계로 위치지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지적하며, '독자의 지위와 권리에 관한 법적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법률가들의 몫'이라고 하고 있다.

사실 내가 고민해왔던 부분도 이것인데, 현재 저작권 체제 내에서 독자의 권리는 제대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세계인권선언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 문화와 과학의 성과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작권법이나 이론 내에서 정립되지는 않은 듯 하다. 국내 저작권법에서도 1조에서 저작자의 권리 보호와 함께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한다고만 되어있고, 공정이용(Fair Use)의 부분은 '저작재산권의 예외'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이용자(독자)의 권리는 '독자적인 권리'가 아니라, '예외'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Fair Use이지, User's Right는 아니다. 나도 공정이용, 이용자의 권리, 문화적 권리, 접근권 등을 상황에 따라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위 논문의 결론과 같이 이용자(독자)의 지위와 권리를 정립해야 한다는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과연 법률가(이론가)들을 신뢰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법률가(이론가)들은 권력과 자본의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독립적인가?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권력과 자본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며, 또한 주류 이데올로기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의 법률가/이론가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한미FTA 지재권 협상에 대해 비판적인 법률가(이론가)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힘들며, 대부분 정부의 요구에 맞춰 이론적 근거를 생산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예전에는 어용이었지만, 지금은 '참여'라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물론 그렇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지적재산권의 강화 과정을 보면, 현실적인 법제화 과정에서 합리적인 이론적 근거가 얼마나 작동하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으로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지속적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연장되어온 사실을 들 수 있겠다. 현실 법제화를 추동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론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이다.

7. 현재의 저작권 강화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출판사(음반사, 영화사를 포함하는 의미에서)라는 점에서, 현재의 관계망은 오히려 '법률가-출판업자-작가-독자'로 정리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저작권법 내에 창작자만이 아니라 투자자(유통업자)의 독점 보호를 위한 조항이 포함된 것은 저작권법 출발부터 그러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음반제작자, 방송사업자, 그리고 법인(업무상 저작물) 등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저작권을 양도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저작권법이 창작자보다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규정인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저작자는 자신의 '원고'를 서적상에게 양도하였고, '원고'의 소유권자인 서적상이 그 이익을 향유하였다.)

8. 앤 여왕법의 제정은 출판조합의 독점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 '작가'의 개념이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저작권법의 강화를 통해 출판사들의 독점은 확대되고 있다. 다시한번 이들의 독점을 제어하고자 하는 흐름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는 '독자' 개념의 발전과 함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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