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인권해설을 쓰느라 사무실로 갔다. 낮에 마당으로 쏟아지려는 해를 은행나무들이 흩트러놓고 있었다. 적당히 그늘진 마당. 그게 꼭 자기 집 마당이 아니더라도, 벽을 벗어나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고마운, 모두에게 꼭 필요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왈가닭을 발견한 날.
.29.
새벽에 사촌동생들과 맥주 한 잔. 처음 있는 자리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동생들인데 이제 그냥 거기서 거기.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있어 반갑고 고마웠다.
.28.
편하게 만나서 주거권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으니 좋다. 내가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주의해야겠다. 읽어볼 만한 책들이 많아지는 것도 좋다. (그나저나 이런저런 주제들과 관련해서 읽어봐야겠다고 사놓은 책들을 어떻게 다 읽을지 점점 답이 안 보인다.)
.27.
# 정동길을 따라 시청 쪽으로 갔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작가의 조각상이 있다. 서너 번 마주친 조각상이다. 사람들의 모습을 위아래로 힘껏 눌러놓은 형상이다. 가만히 서서 쳐다보는 동안 한번도 초점을 제대로 맞출 수 없었다. 내 눈이 아무리 조각상을 들여다봐도, 내 머리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보려고 애쓴다. 어슴프레 만들어지는 풍경은, 마치 현실을 벗어나 환상 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보이는대로 보는 게 쉽지가 않다.
# 우연만은 아닌 마주침, 그리고 길지만은 않았던 순간. 약간의 설렘. 서로 위로가 되었기를.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26.
몰아부치거나 다그치거나, 어쩌면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왜-이걸-몰라?"가 숨어 있다. 충분히 다르게 얘기할 수 있다.
.25.
# 문제의식을 나누는 게 쉽지 않았다. 나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모호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걸 잘 정리해야 할 텐데 조금 기운이 빠졌다.
# 그가 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계속 가라앉아 있는 것도 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슬쩍 걸친 채 연습을 계속 같이 하는 게 맞나 싶었다. 여수밤바다가 웃을 수 있는 힘이 되면 좋겠다. 90일 안에 이겨야 한다.
.24.
# 날씨가 풀리니 마음도 풀린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언제쯤 오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 멋진 후배라는 말이 반은 형식적이었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말해주면, 내가 참 기쁠, 그런 사람이 세 명 떠올랐다. 선배거나 언니인 그녀들의 건강을 빌어주고 싶었던 하루.
.23.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혹시 '당사자'에게 책임을 넘기는 핑계가 되는 건 아닌지. 그/녀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 것 사이에서.
.22.
일본 공공주택의 위기, 는 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갔다가 아주 재밌게(?) 본 다큐. 임대아파트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 혹은 그 주택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가, 내게는 흥미로웠다. 40년이 넘었는데도 깨끗한 건물과 단지, 인터뷰할 때 그/녀들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어떤 여유. '장소'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느낌. 한국의 영구임대아파트가 철거되고 강제퇴거가 이루어질 때 다를 수 있는 점은, 이미 '장소'를 빼앗긴 채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점 아닐까. 영화 보고 나서 차 한 잔 앞에 두고 수다 떨었다. 좋은 친구. 이렇게 말하면 얄밉겠지만, 내 안식의 많은 부분이 그녀 덕분. 나중에 몰래 고맙다 해야지.
.21.
비가 무겁게 쏟아졌다. 추웠다. 같은 기온이라도 따뜻해지는 느낌과 추워지는 느낌은 다르다. 이 비는 추위에 대한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비였다. 강좌가 끝나고 '어디 가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세상에 명쾌한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들. 그게 올해 기대했던 것 중 하나라는 걸 새삼 떠올렸다. 술은 말고.
.20.
당인리발전소 벚꽃길을 걸었다. 날씨가 화창할 때 찾아가볼 걸. 짧은 길이었지만 어슬렁어슬렁 바람 잘 쑀다. 앤트러사이트 들러서 커피도 샀다. 시다모.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 정동길 캐나다 대사관 앞에서 선선한 바람 즐기며 얘기 나눴다. 하고 싶은 것, 에 대한 이야기. 머리속을 떠도는 것들 중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나 우연적인가.
.19.
# 제안해놓고 나니 걱정이 되기는 했다. 활동을 하면서 어떤 사업을 할 때만큼은 분명 아니었지만, 좋은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만큼의 불안, 적당히 즐길 만한 긴장. 어쨌든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래오래 되새겨보고 싶은 말들도 있었지만, 그런 말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 자체가 좋았던 거겠지. 내가 풀어보고 싶었던 것들은 뒤늦게라도 정리를 해두자, 고 결심은 못하고 열심히만.
# '가볍게' 대답한다는 서운함을 듣고 두 사람이 더 생각났다. 내가 늘 그랬는지, 그런 편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이유로 서운했던, 그리고 서운했을 만한 사람. 편하라고 하는 말이 상대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할 때. 그녀가 던진 질문과 고민에 공감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공감하지 못한 채 편하게 생각하라고 하면, 상대는 공감받지 못했음을 확인할 뿐.
.18.
평등이든, 노동이든, 빈곤이든, 어디에서 시작하든, 어딘가에서 견고하게 맞물려 있는 벽이 있다. 싸우는 우리들도 어딘가에서 그 벽에 기대고 있다. 우리가 부수려는 그 벽. 그래서 그 벽은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채색됐고 수리되고 있는지, 얼마나 길고 높은지 또 두꺼운지를 헤아려보자는 것. 그리고 과연 우리는 그 벽으로부터 어떤 거리만큼 떨어져 어떤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는지를 가늠해보자는 것. 아, 그리고 인권은 무엇일 수 있는지 찾아보자는 것.
.17.
지난달 카드 결제 금액이 보통 한 달 지출에 가까웠다. 쉬니까 사고 싶은 게 더 많아진다. 책이 그렇고, 커피 그라인더는 특히 그렇다. 마트에서 사게 되는 작은 물건들도 안식년이 아니라면 있거나 말거나 대충 살았을 것들. 하나하나 계산하면 과한 지출은 아니지만 하나씩하나씩 쌓이면 훌쩍 금액을 넘긴다. 명세서를 뛰쳐나갈 기세다. 약간의 대책이 필요하다.
.16.
글쓰기를 마냥 미루고 있다. 부담스럽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욕심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장을 만들고 싶다는 느낌이, 예전에는 꽤 있었다. 짧든 길든 펼쳐보고 싶고 버무려보고 싶고 잘 전하고 싶은 느낌. 누가 읽는지와는 상관 없는 욕심이었다. 지금은, 글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조금 더 나아진 거라고, 나는 평가한다. 그런데 그럴 때 글을 시작하는 부담을 덜 느끼려면, 조금 더 익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면, 평소에 글쓰기 자체에 대한 욕심이 필요하다고, 요즘은 고민한다. 이러나저러나, 자꾸 써야 하는 걸 텐데.
.15.
어제 만든 사랑노래를 다듬었다. 기타 연습을 더 해야겠다. 마음 가는 대로 시간을 보낸 하루.
.14.
건축학개론을 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아침에 기분이 좋았기 때문. 영화 소개에서 우연히 본 그 시절 풍경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역시나 영화를 보다가 울었는데, 엇갈린 마음들은 그냥 그렇게 슬픈 건가. 서오릉 슬슬 걷다가 저녁을 배불리 먹고, 근데 답이 보이지 않는 얘기에 풍덩 빠져서, 축축했다.
.13.
콜밴을 쫓아 유성 문화제에 다녀왔다. 작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마음이 여전히 무거워서. 상집 간부들이 무대에서 율동을 하는데 어찌나 유쾌해보이는지. 지금 다시 민주노조에 대한 고민을 하는 저력과 다르지 않은 느낌.
.12.
애매함은 남아있지만 시작은 했고, 할만하다 싶었고, 조금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나기도 했고. 아이들이 올 때 역시나 긴장이 되고.
.11.
동생이 뽑은 정당투표 후보는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 통합진보당, 청년당. 청년당은 거의 이름 때문이었으니 빼면, 십수개의 정당 중 고르고 고른 후보의 스펙트럼이 저렇게 넓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정치적 성향이 그렇게 구분되지 않는 건, 실제로 거기서 거기라는 게 너무 분명하기 때문일까.
.10.
더 좋은 승리 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 힘겹게 싸운 사람들을 '죄송'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한 번의 싸움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싸움이 끝나면 조직도 사라지는 싸움이라 그런 걸까. 막연하게 안타까운 메시지.
.9.
소설처럼? 소설은 뭐지?
.8.
변두리스토리, 본격적으로 글쓰기 시작. 역시 직접 쓰면서 더 고민할 것들이 보인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 내가 '생각이 들었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는 걸 알게 됐다.
.7.
책 읽는 게 조금 몸에 붙는 듯하면서도 어영부영. 대한문 앞에 다녀왔다. 참 오래 걸렸다.
.6.
오랜만에 기타를 치다가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손목도 아프고. 그래도 즐겁다. 콜밴 덕분이다.
.5.
# 틈새 보고서가 드디어 나왔다. 내게는, 고마운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나온 보고서를 꼼꼼히 한 번 더 읽어야겠다.
#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을 헤아려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적당히 덮어두는 걸로는 풀리지 않는 불편함.
.4.
'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얘기하다 보니 아주 추상적인 관념들로 날아가고 있는 듯했다. 내가 활동을 하면서 자주 부딪쳤던 질문들, 그건 참 단순한 것들이었는데. 몸은 하나고 가야 할 곳은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무엇을 할 것인가.
.3.
쌀쌀한 저녁 따끈한 생태탕과 막걸리. 편안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돌아오는데, 문득 내가 그이에 대해 모르는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삶에 새겨져 있을 인권/운동의 역사도.
.2.
경주에 내려갈 준비를 하느라 바쁜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셨다. 안식년이 조금 부끄러워질 때.
.1.
총선 주거 공약들을 살폈다. 주거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 강좌를 들으며, 주거권과 주거정책의 관계, 그리고 주거권의 정치란 어떤 것일지 한 번은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고민의 수준에서라도 미루지 않아 다행. 다시 이어질 고민은 조금 더 현장에 가까운 곳에서. 그건 어쩌면 나의 집, 내 친구의 집에서 시작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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