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모여서 얘기를 나눌 때 텔레비전에 자꾸 시선이 가면 마음이 좋지 않은데 대놓고 텔레비전을 보겠다며 뒤풀이를 갔다. 역시 그냥 집으로 들어왔어야 했다. 괜찮다고들 했지만 나는 잘못한 기분이다. 유도 경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언제부터 내가 이리 유도를 찾아봤나 한심하기도 했다. 지금 여기 함께 있는 사람들과 나눌 것이 훨씬 많았을 텐데.
.30.
곧 8월. 나름 방학인데 역시 방학이라 숙제가 있다. 마냥 미루지 말자고 이것저것 끄적이기는 했지만. 안식년을 잘 보내고 있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보고듣지 않을 수 없는 소식들, 책상 위에 쌓여가는 책들, 하고 싶은 것들만큼 늘어나는 하지 못하는 것들. 욕심을 비우는 것, 그게 가장 큰 숙제다.
.29.
당신들은 참 멋지다. 그동안 단편들만을 보여줬던 어떤 흐름이 이제야말로 파노라마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한 번은 차분히 돌아보고 싶다.
.28.
말을 꺼내놓고 보니 다시 찾아보고 싶어졌다만, 그냥 묻어둬야지. 세 명에게 추천받은 세 권의 책을 얼추 읽어가는데 이것저것 생각해볼 거리들을 많이 얻었다. 그때그때 메모를 남겨둬야지 하다가 잊히면 잊히는 대로 둬야지 하다가. 두 명에게 두 권 더.
.27.
모임이 연기되자 기운이 확 풀렸다. 글을 하나라도 마무리해야 그 다음으로 넘어갈 텐데. 이번 글은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는지, 그래도 끝까지 한 번은 쓰고 나서 읽어봐야 알 텐데.
.26.
도어즈에 도대체 몇 년 만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했던 집시의 열정 포스터가 찢어진 채 네 귀퉁이 중 두 군데만 가까스로 셀로판테이프에 붙어 남아 있었다. 십 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 붙어 있었던 포스터가 그림을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나마 남아 있다는 게 고맙기까지 했다. 주인은 역시나 달랐지만, 늘 틀어달라고 했던 노래를 부탁하자 마치 옛 주인 아저씨가 대답하듯,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을 따라 흐르며 때로는 가로지르며 반 년간의 안부를 친구와 나누니 벌써 새벽 세 시였다. 1년에 한 번을 만나도 십 년을 만난 것 같은 친구의 느낌.
.25.
# 방학 숙제가 생겼다. 세미나를 하면서 뭔가 정리해보기로 하면 늘 의욕은 앞서는데 막상 손대기 시작하면 한번도 얘기해보지 못한 것처럼 막막하다. 깨달음을 주는 생생한 이야기들은 너무 쉽게 잊혀진다.
# 콜밴 아저씨들이 춤을 춘다. 천 일이 되는 날 문자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이 되도록 정작 나는 날짜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 거리는 섣불리 메시지를 보낼 거리가 아니었던 듯. 하지만 나는 매일같이 흥겨운 얼굴로 웃는 콜밴 아저씨들을 보고 싶다.
.24.
염쟁이 유씨 보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밤에는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 병을 사고 동이 틀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친밀감이 부드럽게 흐르는 시간이었다.
.23.
# 방학에서 휴가에서 휴일로.
# 시험을 보는 꿈을 꿨다. 기억으로는 이런 종류의 꿈이 처음이다. 나는 무슨 일정이 있어 친구와 길을 가고 있었다. 맞은편 건물 5,6층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어 쳐다보다가 올라가봤다. 막 닿았을 때 상황은 이미 끝나있었는데 물어보니 기획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다시 내려가려다가 영화를 보고 가라고 해서 사양했는데 어느새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 곳은 시험장이었는데 나 혼자 혹은 내가 제일 먼저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험 문제는 핸드폰으로 **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이었다. 전화번호는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데 핸드폰의 숫자판이 모두 망가져있었다. 부당한 조건에서 시험을 쳐야 하는 나는 화가 나서 자리에 앉은 채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퍼포먼스라기보다는 화가 나서 책상을 친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뒤에 몇몇 사람이 있었는데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냥 쳐다보고 있었고 주어진 시간이 종료된 후 한 사람이 들어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른 얘기를 했다. 그쯤 해서 겨우 잠에서 깼는데 시험을 보는 꿈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심란했고, 무엇보다도 꿈 속에서 화가 났던 그 감정이 너무나 생생한 데다가 현실에서 경험해본 것 이상의 두께를 가진 분노라 놀라웠다.
.22.
에어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인 듯.
.21.
누군가 파자마 파티라고 이름 붙인 한여름밤의 여유. 같이 살기로 하고 나니 집에 대한 로망만 커진다. 하하.
.20.
#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게 이런 거구나. 무엇을 입증하고 주장해야 할지 몰라 헤매다가 판사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깨달았던 평택 재판이 떠올랐다. 여전히 우리가 주장해야 할 것은 법이 아니라 상식으로부터 출발해야겠지만, 공동주거침입죄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자고 욕심을 부렸다. 일반교통방해와 더불어 시위와 농성을 옥죄는 수단 중 하나. 법의 언저리에서 주장되어야 할 것들 정리해보기.
# '노동자를 조직'한다는 것에 대한 상이 다르기 때문인지, 나는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잘 짐작하지 못하겠다. '조직화'가 위계적이지 않을 수 있는 접근을 고민하기.
.19.
와인 바인 줄 모르고 들어갔던 곳. 다른 데 가기엔 늦기도 했고 하우스 와인 한 잔을 마시며 한창 이야기를 하는데 주인장이 세 분은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 그가 나름 생각해낸 관계는 '사회적 선후배'. 도저히 일반적인 관계로 조합되어지지 않았나 보다. 여성 같은 어린 여성과 여성 같지 않은 늙은 여성과 여성 같지는 않지만 남성적인 느낌도 없는 젊은 남성. 나오면서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고 묻는데 주인장이 들었다. 큭. 나로서는, 그게 조합이 안 되는 이유도 그렇게밖에 짐작이 되지 않았다고.
.18.
<장인>, 그 책 참 재밌을 것 같다. <젠더, 정체성, 장소>는 의외로 지금 부딪친 고민들을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들을 주면서 흥미롭게 읽혔다.
.17.
아침에 눈을 뜨자 분명해졌다. 오늘은 같이 연습을 하기 어렵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책상에 앉아야 했고 컴퓨터를 켜야 했다. 수십 분이 지나도록 한 줄도 늘어나지 않는 화면을 보면서도 글을 써보겠다고 책상 앞을 지킨 나에게 응원을. 하지만 날이 저물 때쯤 지금 그 글을 쓸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안 써지는 건 하고 싶은 말이 아직 없기 때문이니까.
.16.
신 엘로이즈를 펼쳐봤다.
.15.
엄마 생일인데, 일어나보니 저녁 시간. 부랴부랴 전화했더니 김치에 돼지고기 양파를 넣고 푹 끓여서 막 먹으려던 참이었다고. 의자가 네 개 있는 식탁에 혼자 앉아 김치찜을 냄비째 올려놓고 먹을 엄마의 모습이 상상되니 괜히 내가 외로웠다. 아침 비행기라도 타고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버린 게 보름쯤 됐나.
.14.
# 수영장이 공사로 문을 닫기 전 마지막 개방. 자유형의 느낌을 익혀보려고 몸의 움직임을 천천히 관찰했다.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냄새 맡는 것도 아니고 만져지는 것도 아닌 것을 '관찰'한다는 의미는 뭔가. 근육들의 수축과 이완이 신경을 통해 감각으로 전달되고 그걸 눈으로 보듯 읽어낼 수 있는 신경세포들까지, 자신의 몸을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의 몸이라니, 그야말로 위대한 탄생이다.
# 워크숍과 뒤풀이를 하면서 함께 하는 느낌을 오랜만에 가져본 듯. 그나저나 내 말투나 목소리가 조금 느려지고 조금 낮아진 것 같은 느낌은, 실제의 변화일까 아니면 기대일까. 흐뭇했다.
# 언젠가 한번쯤은 그이들이 오겠다는 예상도 해보았지만, 막상 후원주점에 갔을 때 그이들을 만나니 지방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 것인 양 반가웠다. 왁자지껄 흥을 나누는 모습도 부러웠다. 이사갈 후보지 중 하나가 은평인데 한 표 더 생겼다.
.13.
놀이터에서 멍구랑 같이 연습했다. 노래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어 연습하기에 아주 좋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바람 쐬면서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만큼 연습하기에 아주 좋았다. 두어 시간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다가 돌아오는 길에, 언젠가 둘이 공연을 하게 되면 밴드 이름은 멍미 가 어떨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이 밴드는 멍미. 큭.
.12.
# 변방연극제.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친구 덕분에 알게 돼서 몇 번 기웃거렸던 연극제. 올해는 아는 사람이 하는 작품이 있어서 보러 가볼까, 오랜만에 대학로로, 생각 중이었다. 어제 저녁에 같이 보기로 했던 걸 두통 때문에 보지 못한 터라 오늘 두 군데를 들르려고 했다. 하나는 영상작업이라 시간을 맞춰 가지 않아도 되고 하나는 8시에 시작하니 오후 일을 마치고 가면 시간도 딱 좋은 듯했다. 연극 정보를 찾아보다가 8시에 하는 연극은 대학로가 아니라 문래동에서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둘 다 볼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뭘 보러 가야 할지, 뭘 놓치는 것이 덜 아쉬울지.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왔다갔다 고민을 하다보니 도대체 내가 뭘 보고 싶었는지, 왜 보고 싶었는지도 모두 헷갈리기 시작했다. 움직여야 하는 시각인 저녁 6시, 나의 결정은 둘 다 보지 않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지?
# 인권침해가 있어서 인권이 주장된 것이 아니라, '인권'이 만들어지면서 어떤 사건들이 인권침해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지금 외쳐지는 어떤 절박한 요구들이 '인권'으로 설명되지 못한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11.
아침부터 두통이 찾아오더니 끝내 떠나질 않으셔서, 결국 항복했다. 뻗어 잤더니 밤에는 떠나신 듯.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같은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생각을 그 와중에 했다.
.10.
어느 책에선가, 노래방에 가서 남이 고른 노래를 가로채서 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내가 고른 노래를 누군가 부를 때 그리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저 내용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도 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노래방에서뿐만 아니라, 누군가 시작한 얘기를 가로채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게 뭘까. 그저 노래할 기회나 말할 기회를 빼앗았다는 점 때문만은 아닐 텐데. 함께 놀거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정해진 순서로 각자의 놀이나 발언이 이어지는 것과는 다르니까.
.9.
수유 강좌 첫 날. 기대가 모호하기는 했지만 조금 아쉬웠던 강의. 그래도 '인권의 재장전'이라는 주제로 생각할 거리들을 정리해주니 유익한 강좌이기는 하다.
.8.
로미오와 줄리엣. 몸으로 모든 걸 말해야 하는 발레는 정말 어려운 도전인 듯. 지리산 종주 일정에서 내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걸 발견했다. 으흑.
.7.
# 나누리+ 엠티는 안 가기로 했다. 같이 가자고 연락해준 게 고마웠지만 왠지 낄 자리는 아닌 듯해서. 그냥 술자리나 있으면 꼭 한 번 끼고 싶다.
# '파킨슨의 사소함의 법칙'. "회의 안건을 다루는 데 들이는 시간은 그 안건의 중요성에 반비례한다." 회의를 하다가 내가 뭔가 고집하고 있다면, 그게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꼭 생각해봐야겠다.
.6.
노래연습을 같이 했다. 역시 듣는 귀가 중요하다. 거창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같이 즐겁게 노래하는 것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변두리 숙제는 과감하게 안했고 마무리 일정을 같이 정했다.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마음만 붕붕 떠다닌다. 뒷풀이 자리에서 '원 포인트'라고 했던 말이 계속 신경 쓰인다.
.5.
# 장소와 인권 마지막 강의. 강좌 중에 토론하면서 나온 이야기들로 하반기에 워크숍을 열면 좋겠다. '장소'와 '인권'을 연결시키는 일은 여전히 남은 과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인권운동에서 '장소'가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을지. 그런데 막상 워크숍을 준비하기 시작하면 역시나 스트레스가 생기겠지? 어렵다. 하고 싶은 '일'.
# 친구와 택시를 탔다. 비가 내리고 있어 친구가 내리고 나면 집 앞까지 가려고 했다. 기사 님이 대뜸 "예수님 믿으세요?" 묻는다. 뭐라고 말을 더 건네시는데 말투가 어눌하고 발음이 입 안에서 말린다. 불쑥 두려운 마음이 인다. 친구랑 그냥 같은 자리에서 내렸다. 낯선 느낌에서 비롯된 공포, 그리고 피하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이 '차별'과 이어진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나았을지 나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예전보다 택시를 덜 타는데, 교회 다니라고 권하는 택시기사들은 더 자주 만나게 된다.
.4.
권정생 선생의 한티재하늘을 읽고 있다. 엄청난 작품이다. 수많은 그녀들의 삶에 압도된다. 그녀들의 삶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되기도 한다. '억압에 맞서 일어선' 사람들과 '억압을 가로지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차이랄까. 어떻게 살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지난달에 책을 자제했다는 생각이 나서 또 몇 권 질렀다. 다 읽지 못하고 쌓여가는 책들이 늘어난다.
.3.
강습 뒤풀이를 새벽까지 했다. 올해말쯤 1년을 돌아보면 가장 의미 있는 만남 중 하나가 코드씨가 아닐까 싶다. 아직 남은 1년이 흥미진진해진다.
.2.
그녀가 쓴 글을 읽으니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느껴졌다. 부러운 능력. 그런데 그건 글쓰기의 능력이라기보다는 관찰과 공감과 기억의 능력인 듯하다. 나는 요즘 내 안에 타인 혹은 타자의 자리가 얼마나 있는지 회의하고 있다.
.1.
위키드. 엄마가 혹시 졸까 봐 걱정했는데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즈의 마법사의 뒷 이야기. 이런 걸 '허구적 상상력'이라고 부르는 걸까? 탄탄한 이야기 안에서 여성들 간의 사랑, 그리고 체제의 실체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서쪽 마녀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질문이 남는다. 배우들의 노래에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 무대가 옹색하게 좁은 느낌이었다는 것 정도의 아쉬움. 이태원에서 동생네랑 그리스 음식점에 갔다. 근처 카페 옥상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족'과의 하루.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