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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2017년 1월

.22.

인삼꿀차를 한 잔 마셨더니 몸이 따뜻해졌다. 

.21.

# 예비군 훈련 거부 관련 행사 가는 길에 본 몸자보.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 분단이 낳은 잔해일까. 

# 인권운동가로서 자기 전망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쨌든 '인권운동' 자리 찾기의 몫을 떠넘기지는 않을 거다. 

.20.

ㄱ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부럽다는 건 거짓말은 아니었다. 

.19.

<공동정범>을 봤다. 오전에 있었던 희망버스 2심 선고가 1심과 마찬가지로 마구잡이 공동정범 논리로 항소를 기각해서인지 영화 제목이 새삼스러웠다. 몇 건의 통화기록과 카페의 게시물 같은 것들. 영화에서는 그 장소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 범인은 없는데 공범들만 있는. 경찰관 1인의 사망만 범죄사실이 되는. 용산참사는 용산에서 경찰관 1인이 사망한 사건으로 환원될 수 없는데, 사라져버린 참사의 책임을 어떻게 묻기 시작해야 할지, 다시 고민. '세월호' 참사와 겹쳐보이는, 그리고 구분되어보이는 몇몇 장면들. 진상규명이 덜 된 것이 아니라 진실이 은폐/삭제된 것이라는 접근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연대'에 죄를 묻는 것이 모두의 권리를 유예시키는 것이라는 점도. 

.18.

월담 사업보고회에서 한 회원의 발언. 결론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새겨들어야 할 말도 있었다. "일자리가 있던 시대의 노동운동이 일자리가 없어진 IMF 이후에도 그대로"라는 지적 같은 것.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법제도적 접근의 한계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잃을 것이 있는' 노동운동. 

.17.

# 갑을오토텍 지회장이 유성 조사 결과를 보지 말 껄 그랬다며 토론을 시작했다. 3년과 7년의 차이도 실감하게 됐고,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일이구나" 싶어서 마음이 무거웠다고. 앞으로 겪지 않게 되기 위해서라도 유성 노동조합을 잘 지켜야 할 텐데. 헌법 33조를 곰곰히 들여다보며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 병문안 한 번 못 가보고 부고를 전해 들었다. 남은 이의 외로움이 쉽게 짐작되지 않았다. 

.16.

이재용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사실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짚어봐야 할 변화. 엄마부대봉사단의 난동과 함께. 

.15.

<나, 다니엘 브레이크>를 봤다.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가능할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떤 풍경들을 떠올릴까도 궁금해졌다. 현실은 그리 다르지 않겠지만 문제의식을 쫓아가는 데에는 한참이 걸릴 것 같다. <품위 있는 사회>에서 말했던 '제도적 모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모욕은 편견이나 사적 관계에서의 멸시 없이도 제도를 통해 구조화된다.

그 와중에도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다니엘 브레이크가 마틸다에게 걸어잠근 문을 열던 장면이다. 아저씨도 우리를 도와주셨죠? 우리도 돕고 싶어요. 다니엘 브레이크는 케이티에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격려했지만,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던 것. 그래서 역설적으로 제도가 존재하고 제도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될 때, 사회는 제도가 없을 때보다 개인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다는 걸 드러내기도.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우리가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다면 의존을 독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다시, 의존할 수 있는 관계를 조직하는 것이 자유다. 

.14.

올해는 여성주의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기로. 다음 안식년에는 수화를 꼭 배우자는 다짐도 잊지 말아야지. 

.13.

모두가 용기를 내어 성의를 내어 이야기를 이어갔으리라. 이 노력들이 모두 웃을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아직은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12.

적폐청산 토론회 다녀왔다. 운동은 서두르라고 다그치고 국회는 어려움이 있다며 양해를 구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국회도 문제지만, 국회로 공을 넘기는 운동이 더 문제인 것은 아닐까. 됐어도 벌써 됐어야 할 과제들에 적폐라는 이름을 붙였을 텐데 그걸 처리 못하는 국회도 문제지만, 적폐 청산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는 운동의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웠다. 

.11.

바람 쐬러 다녀왔다. 서울만 벗어나도 마음이 트였다. 이런저런 고민을 오래 붙들지 않게 되는데, 이게 좋은 건지 문제인 건지 아직 모르겠다. 

.10.

ㅇ가 자리에 오는 것부터 별로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무슨 얘기를 듣고 왔는지, 무슨 얘기가 하고 싶어 왔는지, 누가 와서 얘기하든 열어놓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주제라 그런지. 귀를 열고 듣게 되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같이 얘기해서 더 좋았다는 느낌도 아니다. 서로의 위치가 가지는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는 것 같아 싫었고, 사전에 나눈 이야기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규정하고 반박하려는 마음이 앞선 것 같아 싫었다. 그런들 싫은 건 내 마음일 뿐이고. 참석에 대해 미리 우려를 전하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같이 얘기하면 더 좋을 것들을 먼저 고민해야 했겠다는 생각도 들고.

.9.

# "국정조사를 할 때 묵념을 했대요. 그동안 그렇게 무시당했는데... 천일이 되니까 이렇게 달라졌다는 게 아직 실감이 안 나요." 그 짧은 순간에도 그녀의 눈시울은 조금 붉어지는 듯했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녀가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바꿀 때 확 바꿔요!" "우리 같이 바꿔요!" 천일, 안산에서.

# 노래에는 유난히 예민한 건지, 음악회의 구성이나 공연이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가수' 정태춘을 다시 보게 됐고, 전인권의 아름다운강산+미인 편곡이나 앵콜곡 sailing(Rod Stewart) 선곡이나 노래는 너무 좋았다.

.8.

초고를 다 버리고 쓰기 시작한 편지. 솔직히 지금 나는 헤매고 있는데, 길을 찾으려는 마음을 붙들어준 것이야말로 고마운 것일지도 몰라. 

.7.

광화문광장에서 ㄷ의 목소리를 들었다. 반갑고 또 고마웠던 마음. 

.6.

주워담을 수 없는 말, 철회하기에는 거짓이 아니고 유지하기에는 진심이 아닌 말. 그러나 말의 무게만은 진실이다. 

.5.

수영. 나는 영화의 한 장면에 매료되어 배우기 시작했다. 너는 현실의 한 장면에 직면하기 위해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확인하게 되는 나의 자리. 내가 어줍잖게 '조언'을 하려고 애썼던 건, 구경꾼이 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기도 했다. 

.4.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될 것을 알았지만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었다. 준비가 없었으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준비를 할 만큼의 여력이 내게 없다는 것, 그러니 당장 닥친 문제부터 잘 풀자는 것, 그게 내가 얻은 깨달음. 그래도 잔인한 시간이다. 

.3.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 이제 당신이 방법을 내놓아야 할 때라는 것, 어제의 만남 덕분에 오늘의 만남에 후회가 없어졌다.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것 역시 지금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겠지. 

.2.

재계약 하기로. 책이나 옷은 정리해야지. 

.1.

지난 한 해를 돌아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마흔이라 설레며 맞은 한 해였는데 살면서 겪지 않아야 할 일들이 연말의 몇 달을 압도해버렸다. 그러니 새로 왔다는 한 해를 내다보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소소한 것들, 금연의 소망 같은 것들도 그냥 흐지부지 사라졌고 그나마 머리를 기른다는 게 40대를 시작하는 흔적 같은 걸로 남았다. 단발도 10여 년만이거니와 고등학교 3학년 때 컷트를 시작한 후 최대 길이에 이르고 있다. ㅎ이 말하길 "쉽지? 그냥 두면 알아서 자라는 거야." 머리카락처럼 사람도 그렇게 자라면 좋겠다. 그냥 두면 알아서. 2017년에는 나를 그냥 두는 걸 소망으로 빌어볼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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