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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보고 계셔. 커피와 토익.

블로그에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고는 두 개의 글이라기보다는 잡담을 썼는데 반응이 좋았다. 반응이 너무 좋다 못해 이걸 어쩌나 싶게 좋았는데 반론이 들어오기에 다른 사람도 이 반론을 봐야겠다 싶어서 해당 글을 첫 글로 유지했다. 그런데 내 블로그에 공지사항 항목이 있다는 게 지금 생각났다. 이제 내 블로그에 새 글을 써도 좋을 것이다.
 
앞의 두 글의 경우는 그렇다 치고, 내 블로그에 대하여 엄청나게 무서운 사실을 알아차렸다. EM선생님의 블로그에 "Links: People, etc."항목이 있기에 어떤 훌륭한 분들이신지 살펴보았는데 아니 왜 자비가 있나, 하기야 자비는 불교에서도 나오고 윤리 교과서에도 나오니 흔한 말이지, 예전에 본 오타쿠 댓글을 캡처한 짤방에서 오타쿠 아이디가 자비였던 적도 있으니까 이 링크가 나는 아니겠지 하면서 눌러보니까 내 블로그다. 갑자기 친구의 카톡 프로필에 쓰여 있던 "선생님께서 보고 계셔"가 떠오르면서 내가 인생을 방탕하게 산다고 블로그도 방만하게 운영하는 걸 선생님께서는 신경도 쓰지 않으실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정말 만에 하나라도 선생님께서 내 블로그를 보시면 혀를 차면서 왜 이렇게 사냐고 하시지 않을까 걱정도 들고 예전에 지훈 간사님께서 인생 대충 살지 말라는 요지의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신 것도 갑자기 생각났다. 게다가 나 말고 다른 즐겨찾기가 된 블로그를 봐도 하나같이 훌륭한 분들이라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바람에 나도 이 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뭔가 아주 멋진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다짐이야 중학교 졸업식 때 우리 집 앞에 사는 불독을 닮은 통통한 볼을 가진 동갑내기 여자애가 연단에 올라 상을 받는 걸 보면서 부러워하는 아버지에게 고등학교 올라가면 나도 상을 받아오겠다고 다짐도 하고 약속도 했지만 결국 상장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던 것처럼 늘 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하물며 이번 다짐은 내가 멋진 글을 아무리 쓰고 싶어도 나는 멍청하고 글재주도 없는데 게으르기까지 해서 아무래도 틀려먹었으니 지금처럼 블로그를 닫아둔 채로 지내는 게 나은 지 고민하다가 29일에 토익 시험을 보니까 일단 영어 공부부터 하기로 마음먹고 겨울 방학 한 달 동안 토익 공부를 하다가 지겨우면 좀 놀면서 지냈다.
 
그리고 오늘 토익을 보았다. 그냥 남들은 아니고 대기업에 취직한 남들만은 토익은 시험도 아니고 그냥 시간 맞춰 가서 대충 풀면 900은 넘긴다고 격려했고 나도 2007년에 졸업요건 때문에 2주 정도 토익을 공부했더니 졸업요건은 넘겼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시험이 코앞에 다가오자 이런 시험은 정해진 시험시간 동안 교실에 앉아서 문제를 풀어야하고 더구나 어학 시험이라는 게 인문학 같은 거와는 달라서 어차피 단어 뜻조차 모르면 아무리 문제와 보기를 들여다봐도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결국 모르면 찍을 수밖에 없는 시험을 남들은 누가 뒤에서 머리채 끄집어 당기는 것처럼 죽어라 푸는 동안 나는 소심해서 아예 포기하고 엎드려 자지도 못하고 혼자 두 시간 동안 시험지만 멍하니 쳐다볼 걸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빴다. 결국 어제 벼락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무렵부터 수능을 준비할 때 했던 것처럼 시험 당일과 똑같은 순서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영어듣기부터 공부했다.
 
그런데 아침에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나니까 무척 졸렸다. 대개 사람들은 이럴 때 커피를 마시지만, 나는 재수할 때 4월 모의고사를 보기 전에 캔커피를 마셔본 후로 내가 카페인에 무척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서울우유에서 만드는 700원짜리 커피우유를 오전 9시에 시작하는 1교시 수업을 듣기 전에 마시면 하루 종일 눈이 말똥말똥하고 가나 초콜릿 하나를 먹어도 반나절은 카페인 기운이 남기 때문에 커피는 마시지 않고 보통 초코우유를 마시는데 어제는 뭐에 씌었는지 그냥 커피우유도 아니고 1200원짜리 엄청 큰 '우유 속에 네 글자 커피 이름'인 커피우유를 먹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자려고 누웠지만 새벽 5시 반까지 잠이 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카페인 기운이 남았는지 전혀 졸리지 않았지만 따듯한 교실에서 봐도 모르는 시험지를 들여다보면 졸릴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에 독한 마음을 먹고 캔커피를 마셨는데 덕분에 아직도 잠이 오지 않았고 시험도 망쳤다. 정신은 아주 멀쩡해서 듣기 시험을 들으면 받아 적으라고 해도 적겠는데 이상하게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이런 얘기를 혜원이에게 했다가 눈물 쏙 빠지게 혼나고 산 타러 간 친구들과도 못 만나고 집에서 억지로 자려고 누워봤지만 잠도 잘 들지 않아서 혼자 우울해하다가 흠므파탈이랑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얘기를 이렇게 길게 썼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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