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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권운동사랑방 반차별 프로젝트1 : 별, 똥별</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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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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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dc:creator>반차별팀(mailto:)</dc:creator>
		<pubDate>Tue, 02 Mar 2010 23:10: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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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권운동사랑방 반차별 프로젝트1 : 별, 똥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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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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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날 차별해? 그것밖에 안되는 인간이라니ㅉㅉ - 돌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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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FCKeditor--><p>차별당한 경험은, 언제나 쓰리고 아프다. 그리고 그게 특히나 나의 무언가를 '탁' 건드리는 거라면, 가끔은 꼭지가 돈다. 뭔가 핑~ 하는 느낌과 함께 주위의 세상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br />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런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br />
<br />
뭐랄까..<br />
<br />
누군가에겐<br />
"아줌마! 집에나 가세요!"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br />
"키도 작은게"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br />
"어린 게 뭘 안다고"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br />
"병신"이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br />
"그런 학교 다니면 뭐 하냐"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br />
"여자가 어딜~/남자라는 게~"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br />
"드러운 깜둥이 놈들"이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br />
"넌 왜 그렇게 생겼냐!"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br />
<br />
아아..글로 옮기면서도 이런 걸 글로 옮겨도 되는 걸까 하는 검열에 시달리게 되고,(하지만 이런 말이 오가는 것이 현실인걸) 또한 슬며시 내 안에서 분노와 수치심이 동시에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도 막을 수 없다.(모두 내 경험?;;)<br />
<br />
듣는 순간 꼭지가 돌아버리는 말들은, 너무 많다. 그게 문제다.<br />
억울하다. 누군가 이렇게 쉽게 다른 사람을 엿 먹일 수 있다니. 그것도 단 한 문장으로. 정말, 억울해.<br />
<br />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멋지게 대응할 수 있는 걸까?<br />
<br />
"니가 뭔데!"라고 화를 내거나,<br />
"너도 마찬가지면서!"라고 빈정거리거나,<br />
"너는! 꼴통마초주제에!!!"라고 반격하거나<br />
<br />
하는 걸로는, 시원치 않다. 그걸로는 무언가 차별하는 것들을 바꿀 수도 없을 것 같다. </p>
<p>&nbsp;</p>
<p>그렇다고<br />
"니가 방금 한 말은 이러저러해서 너무 차별적인 말이야"라거나,<br />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난 너의 차별적인 말에 상처받았어"라거나<br />
<br />
하는 말은 나만 구질구질해지는 것 같다.<br />
나의 말에 상대방이<br />
<br />
"아, 그렇구나. 내가 차별했구나. 미안해"라고 할 리도 없을 테고.(대부분은..)<br />
<br />
흐음, 정말 어쩌면 좋을까?<br />
<br />
어쨌든 확실한 것은<br />
"너의 그런 말은 차별이야! 날 차별하지마!"<br />
라고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중요하다는 것이다.<br />
<br />
하지만 '차별하지 말라'며 차별을 저지하는 포지션으로서의 나를 넘어서서(물론 이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좀더 능동적인 주체가 되면 어떨까.<br />
난 이런 고민과 더불어 차별이 일어나는 (사회적/인간적, 혹은 둘다) 맥락을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당신은 결국 그런 차별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ㅉㅉ'하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다. 차별당해서 억울하다기 보다는 그의 한계가 좀 안타깝게 여겨지는..? 좀더 마음이 상한 상황에서는 "당신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냐!"라는 식으로도 말이 나오겠지만.(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그게 안되면 뭐, 나도 어쩔 수 없고)<br />
이게 정말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나는 이 방식이 좀더 좋은 것 같다.<br />
<br />
그리고 그나마 내가 이런 반응을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은,<br />
내가 '차별당하는 피해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p>
<p>'차별에 노출된 '소수자(minority, 권력관계에서의 약자)'이지만 '비주류'이기 때문에 주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p>
<p>비주류로서 자유로운 사람들의 관계과 공동체 안에서 나는 더욱 주류로부터의 자유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이전에 나 역시 짓누르고 있던 주류의 압박-성공해야 한다, 남자다워야 한다,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 취직해야 한다, 결혼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 등등등 끝도 없는!-에서 좀더 멀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벗어난다고 무조건 자유로워지거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지지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것, 그 관계망 속에서 함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진짜 중요한 조건인 것 같다.<br />
<br />
함께 비주류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우리 사회도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무언가 스스로 인정하기 힘든 것을 인정해내는 것이 출발선이 될 수 있겠지. 그리고 옆에 있는 '동지'들과 함께, 주류 뚫고 거침없이 하이킥~! 하하하.</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category>차별</category>
			<category>소수자</category>
			<category>해방</category>
			<category>비주류</category>
			<category>마이노리티</category>
			
			
			<pubDate>Tue, 02 Mar 2010 23:02:01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40</guid>
			<title>냄새</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40</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내가 활동하는 인권운동사랑방 반차별 팀에서는 &lsquo;별!똥!별&rsquo;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우리 사회의 반차별 문제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고 있다. 최근에 여기에 노숙인(홈리스) 차별 문제를 다룬 글을 올렸다. <br />
(관련글 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7 )<br />
<br />
그런데 여기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br />
<br />
&ldquo;전철에 딱 탔는데 한 쪽에 노숙인이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냄새를 참기 힘들어서 다른 칸으로 간 적 있어요(보통 참으려고 노력함). 가면서도 이래도 될까 하는 마음과 찜찜함이 많이 들었는데, 이런 것도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참았어야 할까요?&rdquo;<br />
<br />
여기에 이런 저런 댓글이 달렸다. 주로 나온 이야기는 냄새에 대한 반응은 신체적인 것인가 심리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노숙인 관련 기사들에서도 &lsquo;퀴퀴한&rsquo;과 같이 냄새와 관련된 수식어가 많이 등장한다.<br />
<br />
언제부턴가 냄새, 정확히 말하면 &lsquo;좋지 않은 냄새&rsquo;를 풍기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면서 냄새는 어느덧 사람을 구분 짓고 &lsquo;냄새나&rsquo;, &lsquo;더러워&rsquo;처럼 외국인, 홈리스, 저소득층에 대한 차별의 상징적 표현이 되고 있다. <br />
<br />
나도 가끔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익숙하지 않은 냄새를 맡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그런데 그 냄새는 &lsquo;나쁜&rsquo; 것이 아닌 &lsquo;익숙하지 않은&rsquo; 것이 아닐까. 외국인들이 우리들의 몸 내음에 익숙하지 않아 싫어하듯이 말이다.<br />
<br />
서양에서 목욕이 일반화된 것이 200년도 안 된 일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냄새, 위생에 대한 생각은 원초적인 것이라기보다 &lsquo;만들어진&rsquo; 것이다. 이 과정에서 냄새는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익숙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 좋은 향기를 풍기는 사람, 익숙하지 않은 향기를 풍기는 사람. 화장품 회사들은 이러한 것을 조장하며 성분은 같으면서 농도만 다른 수십 종의 화장품 세트를 팔고 있다. 우리는 점점 &lsquo;기본적인 사람들이 지닌 냄새&rsquo;를 넘어 &lsquo;좋은 냄새&rsquo;를 풍길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 냄새는, 옷, 화장품 등에 돈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된다. 결국 그러한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차별의 시선을 받게 된다. 외국인들, 특히 제3세계(?)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체취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인 말을 듣기도 한다.<br />
<br />
<b>이상한 냄새와 색다른 냄새의 차이</b><br />
<br />
언제부턴가 &lsquo;저 사람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rsquo;는 &lsquo;저 사람은 우리랑 다른 이상한 사람이야&rsquo;와 동일시 되어버렸다. 하나의 도덕처럼 냄새에도 &lsquo;올바름&rsquo;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냄새는 차별과 배제의 기준으로 작동하여 &lsquo;올바른 냄새&rsquo;로 자신을 포장해야 하고 나아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배제한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것이기에 그것이 차별 의식에서 나왔다고 여겨지기 보다는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반차별 팀 블로그에 누군가 쓴 댓글처럼 &lsquo;이러한 생각이 신체적인 것인지, 심리적인 것인지&rsquo;를 묻는다면 그것은 심리적인 것이 신체적인 것으로 내면화되어버린 것이라 말해야할 것이다. 우리가 &lsquo;이상한 냄새&rsquo;를 &lsquo;색다른 냄새&rsquo;로 달리 생각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주변을 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br />
<br />
&nbsp;</p>
<div style="text-align: center">
<div style="padding-bottom: 10px; margin: 0px auto; padding-left: 10px; width: 40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10px"><img border="0" src="http://sarangbang.or.kr/bbs/show_images.php?board=hrweekly&amp;sf=data/hrweekly/photo/9/1321/184_choco_hom1.gif" width="400" height="300" style="border-bottom: black 1px solid; border-left: black 1px solid; display: block; margin-bottom: 5px; border-top: black 1px solid; border-right: black 1px solid" alt="" />
<div style="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50%; font-family: 굴림, 바탕, 돋움; color: #333333; font-size: 9pt; text-decoration: none"><img border="0" alt="사진설명" src="http://sarangbang.or.kr/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 />2009년 12월 22일 노숙인 추모제가 서울역에서 열렸다. 이날 경찰은 불법집회라며 추모행사에 참여한 10여명을 연행해 갔다.</div>
</div>
</div>
<p><br />
<b>선긋기의 작동 방식을 뛰어넘으려면</b><br />
<br />
여행을 하다보면 농촌 지역에서는 특유의 거름 냄새가 난다. 어촌 지역에서는 특유의 비린내가 난다. 하지만 그 냄새는 그 환경이 만들어낸 냄새로, 도시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냄새인 것이지 &lsquo;올바르지 못한&rsquo; 냄새는 아니다. 홈리스 문제에 대해서도 그 냄새를 말하기 전에 그 환경을 먼저 말해야 한다. 지금도 3,000원짜리 다방이나 6,000~7,000원짜리 만화방에서 자는 홈리스들이 있다. 거리에서 지하보도에서 추위 속에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옷을 빨고 널거나 몸을 씻을 안정적인 공간을 가질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놓여있다. 적절한 의료 행위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 그것이 냄새에 묻어난다.<br />
<br />
냄새가 이상한 것을 넘어 불결하다면 그 사람은 그 만큼 제대로 된 주거권과 건강권을 누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러한 반인권적인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lsquo;좋은 냄새&rsquo;를 풍길 것을 강요하는 것은 &lsquo;선 긋기&rsquo;의 의미만 있을 뿐이다. &lsquo;우리와는 다른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rsquo;로 누군가를 쉽게 배제하고 선을 그어버린다면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lsquo;올바르지 않은 냄새&rsquo;를 구분해 낼 코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 우리 사회가 누군가에게 건강하고 위생적인 주거 환경이 제공되지 못하는 반인권적인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함께 고쳐 나가려는 가슴과 작은 움직임일 것이다. <br />
<br />
어제 &lsquo;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rsquo;가 서울역에서 있었다. 올 한해도 많은 이들이 &lsquo;익숙한 냄새&rsquo;를 풍겨야할 의무를 강요당할 뿐 건강권을 유지할 권리도, 안정적인 주거 공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죽어갔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 코를 막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그 순간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주거권,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pubDate>Tue, 26 Jan 2010 10:31:08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9</guid>
			<title>모성의 재구성 -정은 </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9</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StartFragment--></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5pt;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모성의 재구성</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size: small"><span style="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흔히 자아의식이 정립되지 않은 어린 여자 아이, 혹은 심지어 성인 여성들조차 자신의 꿈을 &lsquo;현모양처(賢母良妻)&rsquo;라 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현모, 지혜로운 혹은 어진 어머니, 그리고 양처, 좋은 아내를 일컫는 이 말은 이에 대비되는 남성에 해당하는 단어만 떠올려 보아도 얼마나 남성 억압적 기재의 산물인지, 소위 남성들만의 남성적 언어임을 인식할 수 있다. 양처현모가 아닌, 착한 아내보다 앞서서 중시되는&lsquo;현모&rsquo;, 지혜로운 어머니를 기대하고 강조할수록 그녀들의 뒤편에는 또한 수많은 &lsquo;우모(憂母), 어리석은 어머니&rsquo;가 있다. </span></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모성(母性). 어머니됨이 본성이라는 이 두 글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현모와 맞닿아 있다. 모성은 흔히 여성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성이자 자연적인 현상으로서 아이를 출산함과 동시에 어머니 노릇은 더욱 극대화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nbsp;</span></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nbsp;</span></span></span>&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모성은 절대적인 본성이 아니다. 부단히 변화될 수 있는 상대적이고 역동적이며, 누구나 선택 가능한 개별적인 기재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lsquo;모성&rsquo;은 또다시 그녀들의 딸들에게 되물림 되고, 더욱 더 잔인한 형태로 어머니 노릇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이상화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어머니 노릇을 경험한 어머니, 그리고 그 &lsquo;모성&rsquo;을 되물림 받고 싶지 않은, &lsquo;모성&rsquo;의 헌신을 받고 자라난 우리부터 스스로 &lsquo;모성&rsquo;에 대한 인식,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span></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size: small"><span style="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는 신과 그 신의 의지에 따라 종속되는, 모성을 위대하게 신성화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물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인격 대 인격,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관계로 재정립해야 한다. 자녀는 그 누구의 종속물도 아니고, 어머니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대상물도 아니다. 그저, 대등한 인격체이자 사람일 뿐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내지 않는다하여, 자녀를 사회적으로 성공시키지 못한다하여 &lsquo;모성&rsquo;을 져버린 나쁜 엄마가 아니다. 어머니 되기를 거부했다 하여, 그리고 사회가 정상가족으로 치부하는 부, 모, 자녀의 가족(사회가 규정한 정상가족이지 결코 이것이 정상가족은 아니라 할 것이다. 절대적인 정상가족이란 없으며, 형태를 불문하고 어떤 가족이든지 존중받아야 한다)을 꾸리지 않았다 하여 그녀들을 비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다.</span></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또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여성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모성을 강조한다는 점에 있다. 일과 양육 속에서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은 &lsquo;모성&rsquo;의 역할을 친정어머니, 혹은 시어머니의 몫으로 전가하고 있다. &lsquo;모성&rsquo;을 요구하고 요구받는 누군가가 있는 한, 이 지독한 되물림은 결코 종식되지 않음을 여성 스스로 따끔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다. </span></span></span><span style="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size: small"><span style="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특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가부장제와 맞닿아 있는 &lsquo;모성&rsquo;이데올로기는 여성 억압적 기재의 악순환 고리의 핵을 이룬다 하여 이를 배제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다. 모성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lsquo;약자에 대한 배려, 유연함, 존중, 보살핌&rsquo;의 기재로서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의 모든 기저에서 재발현 되어야 하며, 이 기재는 남성, 여성 주체를 막론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함을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span></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nbsp;</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Arial"><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헌법이 보장하는 모성을 보호할 권리는 더 이상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고 여성을 가정 내에 고립시키는 요인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모성이 가지는 역량을 남성, 여성의 주체의 구분 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만끽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의미를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성 위주로 움직여진 지금까지의 사회문화적 구조에 비추어, 여성의 인력 활용의 중요성과 보육의 문제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끊임없는 인식의 전환, 그리고 모성보호권이란 가만히 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할 권리라는 인식을 누구보다 여성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과 양육의 자유로운 선택과 양립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말이다. </span></span></span></p>
<p class="바탕글">&nbsp;</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pubDate>Sun, 27 Dec 2009 21:43:20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8</guid>
			<title>메이크업한 자화상</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8</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
<table id="printPost1" class="post-body" cellspacing="0" cellpadding="0">
    <tbody>
        <tr>
            <td class="bcl" nowrap="nowrap">&nbsp;</td>
            <td class="bcc">
            <div id="post-view120096861837" class="post-view pcol2 _param(1)">
            <p>&nbsp;</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며칠 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분명 이번에 대학에 입학한&nbsp;것이 분명한&nbsp;여학생 둘이 OT에 갔다온 이야기를&nbsp;들었다. 그 때 나는 mp3를 집에 놓아두고 온 날이었고, 그래서 나는 눈으로는 책을 쫓고, 귀로는 내 바로 뒤에서 그 여자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다&nbsp;쫓는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지난 신입생 OT에 가서 화장을 다 지우고 '쌩얼'로&nbsp;잘 준비를 하려는데, 남자애들이 자기들 방에 놀러오라는 바람에 BB 크림을 숨겨서(다른 친구들과 화장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그걸&nbsp;몰래&nbsp;바르곤 남자아이들 방으로&nbsp;갔던&nbsp;것이다. 그녀들은 이제 막 화장이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스무살이 되었고, 남자아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며, 그 녀석들 중의 하나 정도는 마음에 두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다만 '막 스무살이 된, 예뻐보이고 싶은 여자 아이'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 그것&nbsp;만은 아니다. </span></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nbsp;</span></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프랑스어 선생님이 프랑스에 장기간 체류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신기하고&nbsp;달랐던&nbsp;건, 한국에 오니 여성들이 너무 '예뻐보이려고' 애쓴다는&nbsp;것이었다. 아침의 지하철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화장을 하고 있고,&nbsp;굉장히 "예쁘게"하고 다니는데, 프랑스 여성들은 거의 그렇지 않고 비가 와도 우산도 쓰지 않고, 뭔가 묻어도 쓱쓱 그냥 털어버리는 등 자신이 '어떻게 하면 예뻐보이는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nbsp;그래서, 내게&nbsp;또 프랑스 예찬론이냐고&nbsp;발끈할 준비를 할&nbsp;필요는 없다. 그는 프랑스는 이런데, 한국은 이래서 안 좋다는 의도로 말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그것의 반대였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는 고맙죠."라고 덧붙혔던 것이다. 거기에 나는 "당연히 그러시겠죠."라고 조용하고 비교적&nbsp;온화하게, 미소까지 지으며&nbsp;응수했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span></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nbsp;</span></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내가&nbsp;지금 묘사하고 있는 이 상황들은, 내게 무엇을 암시하는가? 결혼식이나 웨딩드레스가 화려할수록, 그 나라에서 여성이 결혼 후에 얻게 되는 지위는 낮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예쁘다는 게, 화려하다는 게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리라. 어쩌면 이곳은 단지 '예뻐야만 사는', 그러니깐 못생긴 몬스터들은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스물만 넘으면&nbsp;모두들 화장을 하는&nbsp;메이크업의 공화국인지도 모르므로. </span></p>
            <p>&nbsp;</p>
            <span style="font-family: 굴림">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나는 그 밤의 지하철에서&nbsp;조우한&nbsp;여자 아이들과, 화장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게 되어버리는 여자들과, '예뻐보이고 싶은'(혹은 예뻐보여야 하는) 수많은 여자들의 얼굴에서&nbsp;이&nbsp;감동적이게 '예쁘고도'&nbsp;슬픈 자화상을 본다. 이들은 누구인가, 그녀들은 나였던 게 아닌가. 그러나&nbsp;나는 '예쁘지' 않다. 나는 '예뻐지고'싶은가? 그렇다. 나는 예쁘고 싶었다. 나는 예뻐져야만 하는걸까? 예뻐지면 편하겠지, 나는 굳이 실력에 쏟는 힘을 조금 줄여도 좋을거야. 내가 조금만 좋아하면 남자들은 나를 많이 좋아하겠지. 그래, 내가 조금만 얼굴을 뜯어고칠거라고 마음 먹어도 내 인생은 백 팔십 도 달라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예쁘게 '변하면' 나는 되는걸까. 아니, 당장&nbsp;<span style="font-family: 굴림">내가 아침마다 아이라인을 그리는 것은 외꺼풀을 가진 나의 인상이&nbsp;좀&nbsp;강해보이고 싶다는&nbsp;그런 '단순해 보이는' 이유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nbsp;나는 그게 '동 충동'과 구분되는 것이라고 믿으며 자위하고 있는&nbsp;것 아닌가? </span></span></p>
            <p>&nbsp;</p>
            </span>
            <p>&nbsp;</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lt;&lt;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gt;&gt;(엄기호, 낮은 산) 중에&nbsp;가장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여성 집단은 여상 졸업생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nbsp;사실상 누군가에게 '간택'받아야만(물론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대부분의 그녀들이 취직을 할&nbsp;직장은 그&nbsp;정도나 방식이 특기할 만하다는 점에서)&nbsp;취직이 가능한&nbsp;직장을 지망하는&nbsp;이들이, 가장&nbsp;기본적이고도 적극적이게 수행할 수 있는&nbsp;취직준비는 바로 성형수술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돈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못생기기까지 한' 여자애들이라고 한다.&nbsp;돈도, 기술도, 빽도&nbsp;아무것도 없을 때 여성들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바로 그녀들의 몸이니까. '팔 몸'조차 이용할 수 없는 이는, 그 얼마나 불쌍한 여자가 되는 것인가. </span></p>
            <p style="line-height: 1.8">&nbsp;</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나는&nbsp;예쁘지 않으면 안되는, 예뻐야지 인정받고 먹고 살고 사랑도 할 수 있는&nbsp;현실의 자화상을 이들의 얼굴에서 본다.&nbsp;한국만큼&nbsp;여성들이 예쁘고&nbsp;늘씬하고, 하나같이 옷 잘 입고 다니는 나라가 없다는 것은 칭찬일까? 오히려 그건 이 곳에 대한 흉이며,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겠냐는 야유로 들리는 건 나의 지나친 사회학적 결백증에 의한 망상인가. 하아, 예쁘지 않고, 통통하거나 뚱둥하고, 옷을 제멋대로 입는 여자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기분좋게 거리를 활보할 수 없는&nbsp;이 공화국에 대한 기막힌 찬사라고.</span></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nbsp;</span></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이는 그녀들의 잘못은 아니다. </span></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남들에게 더 예뻐보이고 싶은 마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거의 모든 여자애들이 나이보다 몇 살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고, 화</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장 하지도 않은 얼굴은 감히&nbsp;보이지도 말라는(완벽쌩얼을 가진 연예인들 빼고) 이 시대의 처절한 금기에 철저히 순응하고 있는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nbsp;'예쁨 충동' 그 뒤에&nbsp;'죽음 충동'의 기괴한 얼굴을 하고&nbsp;내달리고 있는, 그 이 거대하고도 괴기스러운 메이크업의 공화국에 정착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을. </span></p>
            <p>&nbsp;</p>
            <p>&nbsp;</p>
            <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family: 굴림">최근에 내가 발견한,&nbsp;공부하는 나로서의&nbsp;치명적인 단점 하나는 종종 내가&nbsp;일반화를&nbsp;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특히 그건 여성과 남성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애써 지금 변명해보자면, 그러한&nbsp;주제에는 반드시&nbsp;완벽한 일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경(성)향'이 있음은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하기에 그랬다. 그러나 그 성향은 결코 내게 득이 될 수 없을 것이다.&nbsp;이제 그것을 깨달은&nbsp;나는&nbsp;그 치명적인 오류가 나의 사고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하리라. 그러나 이 글에서 한해서는, 이 나의 '일반화'가 그리 성급하거나 틀린 것 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감히, 이 글에서 나는 용감하게도 이 사회의 메이크업한 자화상으로서의 '일반화'를 감행한다.&nbsp;&nbsp;</span></p>
            <p>&nbsp;</p>
            <div class="autosourcing-stub">&nbsp;</div>
            <p>&nbsp;</p>
            </div>
            </td>
        </tr>
    </tbody>
</table>
</p>
<p>&nbsp;</p>
<p>&nbsp;</p>
<p>by 꿈의택배</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category>페미니즘</category>
			<category>인권</category>
			<category>인권운동사랑방</category>
			<category>외모</category>
			<category>차별</category>
			<category>반차별</category>
			<category>메이크업</category>
			
			
			<pubDate>Mon, 21 Dec 2009 13:09:22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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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 때, 내가 '노숙인' 차별했어! </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7</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nbsp;</p>
<p>서울역사. 아침에&nbsp;딱 마주친, 노숙인에 대한 여러분의 첫인상은?</p>
<p>&nbsp;</p>
<p>1. 더럽다. &gt;_&lt;</p>
<p>2. 불쌍하다. ㅠ_ㅠ</p>
<p>3. 뭔가 도와줘야 할텐데....&nbsp; ~.~</p>
<p>4. 우리 같이 힘모아 투쟁하자? ! .! &nbsp; &nbsp;</p>
<p>5. 기타 등등.</p>
<p>&nbsp;</p>
<p>여러분의 답변은 무엇인가요?</p>
<p>무엇이 그것을 당신에게 선택하게 했을까요?</p>
<p>&nbsp;</p>
<p>이번의 "그 때, 내가 차별했어!" 의 주제는 '노숙인 차별' 입니다.</p>
<p>1번부터 5번까지의 선택지 중</p>
<p>여러분을 선택하게 만든 그 선택지에, 차별이 있나요? 있을까요? 없을까요?&nbsp;뭐가요?</p>
<p>&nbsp;</p>
<p>그 때, 우리 노숙인 차별했던 적. 여러분, 있으신가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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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amp;quot;그때, 내가 차별했어!&amp;quot;</category>
			<category>인권</category>
			<category>차별</category>
			<category>사랑방</category>
			<category>반차별</category>
			<category>노숙인</category>
			
			
			<pubDate>Fri, 13 Nov 2009 15:31:38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6</guid>
			<title>&amp;quot;루저&amp;quot;들, 웬 이렇게 호들갑?</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6</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nbsp;</p>
<p>요 며칠 "루저" 발언의 후폭풍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180cm 이하는 루저에요'라는&nbsp;H 대학의 '여대생'의 한마디가 파장을 몰고와, 엉뚱하게 그 학교가 다구리 당하는 것은 물론 그녀의 미니홈피와 사적인 개인들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있고(이미 접한 바 있다.) 인터넷 시국의 대세는 "루저의 난"이다. 궁금하시면 검색해보시라. 아까까지만 해도 상위의 랭킹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그것을 접할 수 있으실 것이다.</p>
<p>&nbsp;</p>
<p>이는, 물론 그녀의 발언은 '180 이하'를 분노케 할 수 있는 맥락이 있을 것이다. 키 작은 남자란 것도 억울한데, 너같은 여자애한테 내가 루저라는 말까지 들어야 하냣! 라는 뭇남성들의 툴툴댐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겠다. 하지만 이건 가히 거국적인 분노의 물결로 표현할 수 있을만큼 인터넷이 완전 난리났다. 블로그 한다는 (대부분은 남자)사람들은 다들 포스팅을 이들의 짤샷으로 도배해놓고, 그 밑에 이 여자는 정말 무개념이고&nbsp;어쩌고 한다는,&nbsp;분노의 포스팅을 한다.</p>
<p>&nbsp;</p>
<p>나는 사실 그 기사가 맨 처음 떴을 때, 어디서 "또 한 명 걸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생각없고 '무개념녀'라고 말하기 딱 좋을,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한 명이 걸려서 옳타꾸나, 남성들은 덥썩! 이 떡밥을 잡아 문 것이다. 그래, 얘 봐. 봐봐,&nbsp;여자들이 이런 다니까? 남자 키 180 안 넘으면&nbsp;루저라잖아, 라며 자신들의 '여자들 싸잡아 까기' 딱 좋겠다 싶은 떡밥. 그러면서 많은 그들은,&nbsp;잘 걸렸다 싶어서 자신들이 몸매 "착한" 여자의 특정 부위를 당당히 밝히는 걸, 또 당당히 합리화&nbsp;하고 있을&nbsp;것이다. 봐, 얘네들도 180 이상 남자만 좋다잖아, 내가 '꿀벅지' 좋아하고 가슴 '착한' 여자 좋아하는 거 뭐 나빠? 그건 왜 욕하는데? 초콜렛 복근도 니네는 말하면서, 이거 뭐,&nbsp;쏘 왓? 그래놓고 우리 욕하지마, 우씨!</p>
<p>&nbsp;</p>
<p>아니, 대체 왜 이렇게 다들 호들갑인가? 그들, 그렇게 그게 충격인가? 그게 그렇게 못마땅하고 못견뎌 죽겠나? 이건 이제까지 여성들은&nbsp;'착한' 몸매, 꿀벅지, '명품' 가슴이 이상형이고,&nbsp;'~한&nbsp;여자는 용서해도 뚱뚱한 여자는 용서 못한다'며,&nbsp;'잘하라는 뜻이었다'는 말들로 원치도 않은 "궁디 팡팡"을 당하고, 술 한잔 따라보라는 강요를 받고,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는 취업도 안되고 사람도 못되는 세상에서, 수많은 여성들은 이미 '루저'였는데, 그래서 나에게&nbsp;그냥 그런 건 평범하게 인터넷과 일상 속에서 매일 밥 먹듯&nbsp;접하는 것들인데. "180 이하는 루저에요" 발언 하나로 그 여자가&nbsp;자신들을 '루저'로 만들어버렸다고 이렇게 광분하고 있는 이들, 대체 뭐가 그렇게 원통하단 말인가?</p>
<p>&nbsp;</p>
<p>나는 '루저 발언녀'도&nbsp;뭔가 눈치 없고 안됐다 싶은 짜증이 들지만(이웃 블로거가 쓴대로&nbsp;심지어, 이건 남자들이 야동 본 이야기를 여자들 앞에서 하지 않듯,&nbsp;여자들끼리만 하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발설한, 감없는 한 여자의 실수담 같은&nbsp;것일수도 있는데)&nbsp;이런 기회를 잡아서 여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자신의 행위들을 정당화시키고 있을&nbsp;그 기회주의자 남성들이 더 싫다. 이 이제까지 해온 것들을 너무도 당당하게 정당화하고 합리화할&nbsp;떡밥을 이들은 보유한 것이다. &nbsp;</p>
<p>&nbsp;</p>
<p>난 웃겨서, 묻고싶다. 그럼&nbsp;너네들이 여자들에게 심심치않게, 심심풀이로&nbsp;내뱉는 그런 말들이 그렇게 듣기 좋고 것인줄 알았던 것인지!!&nbsp;그게 맥락적으로 뭐가 그렇게 다를까? 그 한낱 좀 눈치없는 한 여자가 꿈꾸는 남자 취향을 좀 거칠고 요령 없이 말한 것 뿐인데!&nbsp;이 한마디에 이토록 거국적인 분노를 보이고 분에 못 이기다니. 난 오히려 그 여성의 "루저 발언"같은 건&nbsp;별로&nbsp;놀랍지도 않고 이런 수많은 남성들의 과잉 대응, 그게&nbsp;황당하다.&nbsp;왠일인지 '키 180 이상의 남자는&nbsp;진지하게 좋아해 본 적도 없는' 내게는 '180 이하의 키'가 아니라&nbsp;오히려 그런 반응들이 너희를 '루저'스럽게 만든다는 걸,&nbsp;그들은 아시는지.</p>
<p>&nbsp;</p>
<div class="post_footer_contents">
<div id="tagList_120094731497" class="post-tag pcol2 _param(true)" style="display: block; cursor: default">&nbsp;</div>
<div class="post-tag pcol2 _param(true)" style="display: block; cursor: default">by 꿈의택배</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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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category>페미니즘</category>
			<category>루저</category>
			<category>마초?</category>
			
			
			<pubDate>Fri, 13 Nov 2009 00:45:42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5</guid>
			<title>학교차별_대옹</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5</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난 장학금은 못 받는다. 솔직히 받고는 싶은데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집안에 큰 빚도 없고 유복해서인지 장학금을 안준다. 대신 등록금은 꼬박꼬박 은행에 학자금 대출이라도 해가면서 미납 연체 없이 열심히 돈 내고 다닌다. 그렇다고 수업을 안 가는 것도 학교 물건을 혼자 부수고 다닌 것도 아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근데 학교에서는 나에게 가장 안 좋은 강의실과 애매한 시간표와 최소한의 편의공간도 제공하지 않는다. 자취하는데 보증금 지원도 없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내 친구는 장학금을 받는다. 못 받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 공부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이고 집안에 큰 빚이 있다고 하기에는 외양을 봤을 땐 아닌 것 같다. 당연히 은행에 가서 학자금 대출을 받을 리도 없고, 학교물건 맘껏 쓰며 학점도 잘나온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근데 학교에서는 그 친구에게 가장 좋은 강의실과 짜인 강의계획 언제나 주어지는 세미나실 사물함 편의공간이 제공된다. 게다가 기숙사 월세까지 지원이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난 문과대이고 철학과다. 그 친구는 글로벌 경영대학 글로벌 경영학과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난 한글로 하는 수업을 듣기도 벅차서 학점을 30%는 A 30%는 B 나머지는 자율인 한글 수강과목으로 수업을 듣고, 내 친구는 글로벌하게 영어로 하는 수업을 듣고 50%는 A 90%는 B를 주는 수강과목을 듣게 되어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나는 과에서 3등 안에 들면 장학금을 주는데, 그 친구는 학점 3.5를 넘으면 장학금을 준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Arial">좋다 장학금 이야기는 접어두고,, 난 꼬박꼬박 등록금내서 학교 다니는 대신 학점은 덜 받겠다는 거고 내 친구는 학점 잘 받아서 등록금 덜 내겠다는 걸로 이해하면 나에겐 왜 세미나실 이용권이 없는 것일까? 왜 우리 학부 건물은 어떤 과도 가리지 않고 모든 수업을 진행하고 친구네 학부 건물은 타과생의 출입조차 껄끄럽게 GLOBAL ONLY(글로벌 학부생만)을 붙여두는가,,, 난 깔끔하게 학점을 포기하는 대신 등록금을 다 냈을 뿐인데,,,</span></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pubDate>Tue, 10 Nov 2009 02:30:44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4</guid>
			<title>병원차별_대옹</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4</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nbsp;</p>
<div>병원에서 받는 이&nbsp;젠장할&nbsp;차별,,,</div>
<div>&nbsp;</div>
<div>-제가 어디도 아프고 어디도 아픈데요. 왜 그러죠?</div>
<div>&nbsp;</div>
<div>-글쎄요 증상으로는 정확히는 알 수가 없어서요. 검사를 해봐야 아는데, A검사를 하시던가, 혹시 또 모르니까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B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div>
<div>&nbsp;</div>
<div>아 의사선생님들은 왜 이렇게들 혹시 모를까,,,, 물론 사람 몸이란 게 그렇게 의사라고 다 알면,,,, 불치병이란 것들은 없겠지만,</div>
<div>&nbsp;</div>
<div>왜 A검사를 하면 불안하고 B검사를 해야 정확하게 알까? 근데 왜 A는 싸고 의료보험이 되고 B는 비싸고 의료보험이 안 되는데 의사선생님은 B를 하자고할까? 왜 난 근데 결국B를 선택할까?</div>
<div>&nbsp;</div>
<div>사실 일상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이렇게까지 권력의 차이가 나고 그 권력이 마음껏 발휘되어 차별을 느끼게 되는 대화가 있나 싶을 정도다. 음식점에 가서 손님이 메뉴에 대해서 물어보면 음식을 파는 사람은 대답은 해도 결정은 손님 마음대로다. 심지어 가르치고 배우는 장이라 하는 학교에서 조차도 우리는 모르면 질문을 하고 대답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왜 병원에서는 그게 안 될까? 왜 의사&lsquo;선생님&rsquo;이 주사 놓자고 하면 하는 거고 내일 또 오라면 오고 아플 때 검사하자면 하고 다 나앗나 검사하자면 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한다.</div>
<div>&nbsp;</div>
<div>물론, 안 그런 의사도 있고 병원의 형편이란 것도 있고 결국 개인 병원은 장사라는&nbsp;걸 간과해서는 안된다.(병원이 장사를 하는 현실의 안타까움에 관한 문제는 제쳐두고) 그럼 개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지 않을 것만 같은 대학병원은? 진료한번 받으려면 몇 개월 전부터 예약을 하거나 연줄이 최고란다.</div>
<div>또 누구는 잘 알아서 누구는 워낙 건강해서 비싼 검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나 같은 사람은 괜히 병원에서 하란대로 안했다가 잘못될까봐 걱정되고 자기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것에조차 돈 아끼는 노랭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div>
<div>&nbsp;</div>
<div>그럼 어째야 되는 거지? 난 돈이 없고 아프면 참아야 되나? 안 그래도 의료보험도 민영화되면 이제 진짜 아프면 어쩌지?</div>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pubDate>Tue, 10 Nov 2009 02:25:53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3</guid>
			<title>낮지만 진실된 목소리 </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3</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nbsp;</p>
<p><!--StartFragment--></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span style=""><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매주 수요일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다름 아닌 일본군성노예제의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낮지만 강렬하고도 끊이지 않는 목소리를 토해낸다. 아직도 다른 이들의 시선이 두렵다는, 나서는 발걸음이 부끄럽다는, 그리고 &lsquo;우리 어머니에게도 말 못한다.&rsquo;는 그들의 목소리는 여성인권이 신장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성차별의 문제, 가부장제 하의 권력구조가 뿌리 깊게 박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0여년이 지난 지금, 마스크와 모자로 자신을 중무장한 채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성매매 여성들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군 성노예문제는 지나간 과거, 돌이킬 수 없는, 돌아 갈 수 없는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역사적 경험은 지금의 성매매, 가정폭력, 성폭력, 여성노동권 박탈, 순결이데올로기의 강요, 그리고 아내 구타 등 다양한 형태로 재발현, 재탄생되어 오고 있는 것이기에 논의의 중요성이, 시급한 해결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것이다.</span></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nbsp;</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이 문제 해결을 향한 운동의 일환으로서 최근의 &ldquo;2000년 일본군성노예 전범 국제법정&rdquo;은 지금까지의 일본군성노예 문제 관련 전범재판을 재검토하고 명백한 인권침해와 전쟁 범죄자인 책임자 처벌문제를 근본적으로 물었다는 데에 그리고 다름 아닌 &lsquo;여성의 힘&rsquo;으로 열린 권력에 지원받지 않는 시민의 양심으로 이루어진&lsquo;시민법정&rsquo;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 나아가 피해 국가들만의 일방적 목소리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2000년 법정의 논의가 국제법의 일부로서 인정되고 유엔이나 다른 다양한 기관에서 &lsquo;법정&rsquo;운동과 판결을 확인시켜나가는 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에는 민사재판으로서의 처벌도 중요하겠지만 무력분쟁하 성폭력의 방지와 처벌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ICC(국제형사재판소)를 중심으로, 그리고 이미 작동하고 있는 ICTY(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 ICTR(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에서 2000년 법정의 판결이 전례로서 인용되어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명백히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보인다.</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nbsp;</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일본군성노예 문제 해결을 향한 또 하나의 길은 여성간의 연대의 강화라 할 것이다. 물론 남성들과의 협력을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범죄에 앞서 무엇보다 &lsquo;여성&rsquo;의 문제이기에 여성이 주체로서 피해자라는 수동적인 주체의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주체로서 문제를 이끌어나가야 할 것이다. 단 여기에서 우려되는 것은 여성 내 양심적 지지자의 엘리트주의이다. 엘리트 주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소위 내가 경험하지 않는 문제이기에 단지 추상적 사고를 하는데 급급하여 타자화 이상의 논의의 한계에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여성 내 상층과 하층계급이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여성 내 계급간 분열은 남성과 여성, 피식민국과 식민군의 대결구도, 권력구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nbsp;</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일본군성노예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을 풀지 못한 채 한 사람 또 한 사람 죽어가는 현실은 변화될 수 없다. 그리고 아직 해결되었다고 평가할 만한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깨어있는 고위 정책자들과 법률가들이 이 문제의 해결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일 것이나, 이와 같이 소위&lsquo;깨어 있는&rsquo;그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이유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추진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방안으로는 무엇보다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물론 성인지적 관점을 견지한 언론의 시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다양한 포럼과 심포지엄은 국민 누구나 쉽게 문제에 접근할 수 있고 의식을 전환시키는 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場이 될 것으로 보인다. </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nbsp;</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진상 규명에 대한 운동이 2000년 법정에서 보여주었듯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국민적 합의를 통한 &lsquo;힘&rsquo;을 실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역사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논의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단지 그녀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깊은 뿌리가 되어 되물림되는 아물지 않는 상처로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피해자가 내가 사랑하는 친구, 가족 그리고 다름 아닌 내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span></span></p>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small"><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마지막으로 이 땅의 딸들에게 피해가 안 간다는 보장을 아무도 할 수 없기에 목소리를 높인다는 그녀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여성들이라고 밝히고 싶다. </span></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small">&nbsp;</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small">&nbsp;</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small">&nbsp;</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small">&nbsp;</span></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pubDate>Sun, 01 Nov 2009 01:33:09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2</guid>
			<title>서로 다른 지점에서 폭력과 차별 말하기 _청올</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2</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a href="http://blog.jinbo.net/adelitas"><b>adelitas</b></a>님의 <a href="http://blog.jinbo.net/adelitas?pid=26">[청올님 제발 나 좀 살려줘 T.T]</a> 에 관련된 글.</p>
<p>&nbsp;</p>
<p><span style="display: block;" id="comment_box26">(adelitas님에게 덧글로 달다가 이번엔 정말 덧글뿐이었다가 순전히 길어서, 포스팅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 관련된 글을 읽고 보아야만 하겠네요. 누군가 제 덧글이 길어 잘 못 읽겠어서 출력을 해서 읽었다는 얘길 들으니;;; 두루(?) 양해 부탁드립니다.)</span></p>
<p>&nbsp;</p>
<p><span style="display: block;" id="comment_box26">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마지막 문장이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뭔가 '그렇기 때문에 그 비교가 잘못되었다'고 얘기할 근거가 되기에는, 저는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논리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는 거예요. 물론 adelitas님은 서로 다른 얘길 하고 있다고 해도 '그 비교만은 정말 아니다'라고 하기에 충분한 근거라고 생각하시니까 그렇게 얘기해오신 거겠지만 저는 '이런 이런 같은 점을 그들이 보였다'고 비교한 것을 자꾸만 '다른 점이 있는데 왜 같냐'고 하시니까 저도 답답합니다.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차이가 있는 거겠지요. </span></p>
<p><span style="display: block;" id="comment_box26">그리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같다는 얘기는 다른 분이 말씀하시기 전에 저도 한 적이 있고 그런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br />
<br />
' 보통 일반인들은 교통신호만 위반해도 벌금뭅니다. 옆집에서 남자가 처자식 두들겨 패면 저런 죽일 놈 하면서 욕합니다. 사람들도 뭐가 옳고 그른지 다 알아요. 집회하러 나온 사람들이 집회 좀 방해했다고 노숙인을 들고가서 내팽개치면 다 욕해요. 하지만 철거민들은 용역한테 온갖 행패 다 당해도 나 몰라라 하고 노동자들은 구사대한테 온갖 폭력 다 당해도 관심도 안 가지고 정부와 자본의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저는 그 점을 지적한 거에요. T.T' <br />
-&gt; 역시 계속 말씀드리듯이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이런 얘기가 애초에 제가 한 얘기에서 비교한 부분을 무효화할 정도로 같은 논리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회 하던 사람들이 노숙인을 그렇게 했을 때 '다 욕하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그렇게 한 사람들 집단이 끝까지 정당화했고요, 주변 아무도 문제제기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옆집에서 처자식 두들겨 패는 남자'도 사람들이 다 욕하더라도 그 남자는 끝까지 잘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폭력 그렇게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잘 알고 제대로 대처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정폭력은 남의 집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훨씬 더 많을 겁니다.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란 말입니다. <br />
<br />
저도 사람들이 옳고 그른 것을 모를까 봐 알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폭력을 주변에서 욕하는 사람들도 직접 들어가서 남편에게 시비 걸고 제지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 드물 겁니다. 노숙인에게 그랬을 때에도 주변 사람들은 다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쳤습니다. 아무도 실제로 신경쓰지 않아요. 문제제기한 사람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변에선 다 둘러싸서 제가 욕을 먹었죠. 저도 직접 뛰어들어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충격 먹고 내 눈을 의심하며 한참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다가 뒤늦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했을 뿐이에요. <br />
<br />
또 철거민, 노동자가 용역과 구사대한테 온갖 행패를 당하고 구타를 당해도 죽일 놈들 하면서 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충분히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원수나 통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의 한계는 명백하지만, 그 접근으로도 이미 '어느 쪽이 더 심한 폭력이다'라는 말은 뒷받침이 안 된다는 겁니다. <br />
<br />
어떤 폭력에 대하여 제대로 대처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은' 적은 없습니다. 당장 당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피해는 이미 발생했고 가해자가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이 죽일 놈 하면서 욕은 하지만 그것을 가해 당사자로 하여금 설득시키고 '네가 분명히 잘못한 거다'고 하는 문제는 분명 다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근본적인 문제고 운동이라고 얘기한 겁니다. <br />
<br />
그리고 어느 경우든 소위 '사적인 영역' 그리고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하여 '어떤 것은 계급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더 폭력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계속 이 문제는 애초에 제가 비교한 것과 다른 부분의 얘긴데, adelitas님은 계급 문제를 자본과 국가에 의한 계급만 보고 그것이 다른 어떤 계급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br />
<br />
자본과 국가에 의한 지배가 물리력이나 자원 소유에서 엄청나고 비교도 안 되게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젠더나 노숙인 문제도 그 계급 문제와 떨어질 수 없게 연루돼 있기도 할 뿐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계급 논의만 가지고 설명되지 않는 세세한 영역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 '계급'과 지배/피지배 이야기를 더 중심에 놓고 모든 이야기의 전제로 삼으려고 할 때, 그 지배 관계조차 뒷받침되지 않는 수많은 폭력에 대하여 '그래도 그건 국가 폭력과는 다르다'와 같은 사실상의 '덜 중요한 폭력'으로 만드는 차별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가정폭력'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 알고 죽일놈이라고 욕한다'고 하고 계시잖아요. 그걸 다 아는 사회에서 계속해서 그 폭력이 일어나고 은폐돼고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보십니까? 전에도 덧글로 말했지만 여전히 '그래도 남성의 성욕은 어쩔 수 없이...'라고 하면서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많은 성폭력이나 성매매는 어떻고요? <br />
<br />
adelitas 님은 제가 국가/자본에 의한 계급 간의 피지배/지배 문제를 삭제하고 말했다고 여겨서 답답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 문제를 없다고 생각하거나 삭제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자본에 의한 지배를 그들이 흉내냈고 그것이 얼마나 일상에 침투해 있는지를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흉내낸 것이지 그래 봐야 그들은 절대로 국가가 될 수 없으므로 같지 않다'고 하면 이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span></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category>폭력</category>
			<category>차별</category>
			<category>노숙인</category>
			<category>용산</category>
			
			
			<pubDate>Thu, 22 Oct 2009 17:44:15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1</guid>
			<title>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하는 차별 _청올</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1</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a href="http://blog.jinbo.net/banchabyul"><b>반차별팀</b></a>님의 <a href="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0">[&lsquo;누구의&rsquo; 폭력이냐? _청올]</a> 에 관련된 글.</p>
<p>&nbsp;</p>
<p>위 글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을 덧글에만 덧붙여 달다가, 그 글 논쟁이 폭력/비폭력 얘기로 많이 가기도 해서, 물론 꼭 필요하고 동시에 이루어질 만한 논쟁이라 생각하지만, 차별에 관해 좀더 하고 싶은 말을 보강하느라고, 여기에 연결해 와 새 포스팅으로 남기기로 했다.</p>
<p>&nbsp;</p>
<p>용산 참사에서 '살인마'라거나 '폭력'을 행사했다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의 입장, 그것을 당한 사람에게 지지하고 연대하는 입장이지,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런 게 전혀 아니라는 것, 그만큼 폭력이나 살인이라는 것을 누가 생각하고 누가 의미 부여하고 구성하느냐에 따라 사회적으로 폭력, 살인, 이렇게 이름붙여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p>
<p><br />
정도의 차이에 따라 폭력이냐 아니냐, 또는 효율적이고 필요한 폭력이냐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폭력이냐 같은 식으로 얘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연 어떤 행위를 우리는 폭력이다/살인이다, 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기득권을 포함한 사회의 동의/합의를 얻을 수 있느냐 아니면 벽에 부딪히느냐? 할 때 후자라는 것이 답답할 때가 많다. 여기서 '폭력'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주체가 있고 그 주체에서 배제된 대상이 있는데, 그 둘 사이에는 엄청난 권력 차이라는 강이 흐른다는 거다. <br />
<br />
우리는 용산 참사를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런 표현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고 보수 언론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까.</p>
<p>&nbsp;</p>
<p>'살인'이라는 의미는 그 폭력에 문제제기하는 우리 입장에서, 기득권/힘을 가진 정부/가해자가 허용하지 않은 저항 방식으로, 심지어 대부분의 일반인 중에서 기존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안 된 상태에서, 이름 붙이고 알려 나가는 운동 단계에 있는 것이지, 정부가 마침내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며 살인이었다'라고 참회하고 이후의 그런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단계(그렇다 해도 이미 일어난 사건 자체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에 이르지는 못했다(아직은). 여전히 재개발과 강제퇴거는 계속되고 있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순응하는 게 그나마 편해서 저항을 포기하는 일도 수없이 많고.<br />
<br />
- 연쇄살인범이 한 살인은 모두가 당연히 '살인/범죄'라고 받아들이지만 공권력이 한 살인은 '살인'이라고 ('도발적/선정적으로') 말하는 것부터 벽에 부딪치며 끊임없이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 <br />
<br />
- 우리가 전경의 차를 훼손하는 것은 '폭력 시위'라고 이름붙여지고 보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실리지만 전경이 우리의 신체에 직접 위협과 폭행을 가하는 것은 정당한 진압이라고 정부가 주장하는 것. 그리고 정부의 주장이라 함은 즉 구속하고 벌금을 때릴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 것<br />
<br />
- 노숙인이 '집회 도구'인 판넬을 발로 차는 것은 모두가 폭력이라(또는 '도발'이라고라도 어쨌든 처벌/응징 가능한 것으로) 쉽게 인식/주장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의 신체에 (그것도 여럿이 달려들어) 직접 폭력을 가하는 것은 '집회 방해자를 제지하기 위한 응당한 권리' 또는 '조금 과잉되고 너무하긴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그럴 만했다'는 얘기로 정당화하는 것<br />
<br />
그리고 그 건널 수 없는 강에는 공권력과 시민 간의 권력 차이도 있지만, 시민 중에서도 누구나 같은 시민이 아닌 차별의 기제가 작동하는데, 그 당당/뻔뻔함이 마치 공권력이 시민을 대할 때의 그것과도 하나 차이가 없다는 무서움이었다. <br />
<br />
그날 판넬을 발로 찬 사람이 허름한 옷차림의 그 사람이 아니라 전/의경 차림의 사람이었더라면?또는 번듯하게 양복을 갖춰 입은 사람이었더라면? 또는 백인이었더라면? 또는 외제 차를 몰고 와서 차로 판넬을 박아 몇 개쯤 한꺼번에 쓰러뜨렸더라면? 과연 그날처럼 그렇게 한 사람을 양쪽에서 잡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머리부터 7m를 질질 끌고 가서 내팽개칠 수 있었을까?  <br />
<br />
사람을 똑같은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누군가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 그것이 정부가 사람들을 쥐 잡듯이 몰아쳐서 잡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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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category>폭력</category>
			<category>노숙인</category>
			<category>용산</category>
			
			
			<pubDate>Thu, 15 Oct 2009 15:43:56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0</guid>
			<title>‘누구의’ 폭력이냐? _청올</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30</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lsquo;누군가에게는&rsquo; &lsquo;어떤 이유가 있다면&rsquo; &lsquo;조금쯤&rsquo; 함부로 해도 좋은가?</span><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br />
</span></p>
<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
<p class="바탕글">폭력이다/아니다, 라는 이분법으로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가도,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그 행동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을 때 결국 그 이분법에 의지하게 되는 당혹스러움이란....&nbsp;</p>
<p class="바탕글">&nbsp;</p>
<p class="바탕글">용산 참사 추모 집회가 있던 주말 판넬을 세워두고 집회 하던 어떤 이들도 그랬다. 한순간 자신들의 집회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 노숙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술취한 목소리로 허공에 몇 번 화풀이로 소리지르다가, 갑자기 판넬들 세워둔 쪽으로 다가가더니 판넬 하나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두 번째 판넬을 또 차려던 찰나- 그 깃발 아래 서 있던 두 청년이 노숙인을 거칠게 몇 번 밀쳐내는가 싶더니 결국 당하지 못하고 쓰러진 그를 양쪽에서 붙잡고 땡볕에 하늘을 향해 누운 그의 자세대로 7m 정도를 질질질 바닥에 끌고 와서 내팽개친 것이다. 면티 한 장을 입고 있던 그 아저씨는 티가 들어올려져 등의 맨살도 일부 드러났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유유히 판넬 쪽으로 돌아갔다. 그 노숙인은 한동안 꿈쩍 못하고 뙤약볕에 내버려져 일어나지 못했다. 난 일행을 찾으러 두리번거리다 마주친 그 순식간의 장면이 충격적이라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p>
<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
<p class="바탕글">최근에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지만 짐작도 가능하듯이, 일반적으로 노숙인들(그때 그 사람도)은 수면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지하철역사에선 첫 차가 있는 5시 이전에 무조건 역 밖으로 쫓겨나고, 막차 뒤에나 들어갈 수 있고, 행인들의 소리 등 주변 소음에 잠 못 이루어 술을 마셔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는 경우도 많고,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조금만 툭 쳐도 픽 쓰러질 수 있다고 한다.&nbsp;</p>
<p class="바탕글">&nbsp;</p>
<p class="바탕글">망설이다 결국 이쪽(쓰러져 꼼짝 못하는 사람,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의 얼어붙은 시선)에도 시선이 힐끗힐끗 와 꽂히기에 용기를 내어 그 한 명에게 물었다. 혹시 저 아저씨와 이전에 무슨 다른 사연이 있었나? (그것도) 아니라기에 더 확신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그가 노숙인으로 보이고 술도 취해 있었고 몸도 잘 가누지 못하며 사람을 친 게 아니라 판넬을 찬 것인데, 그냥 제지만 했어도 충분했을 것이라고 굳이 저렇게 했어야 하냐는 내 말에 그들은 이런 말들로 받았다.</p>
<p class="바탕글">"그걸 알기 때문에 내가 많이 참은 거다. 보통 같으면 그냥 저렇게 안 보냈고 맞아서 갔을 거다."</p>
<p class="바탕글">"그 사람이 우리 판넬 찬 건 폭력이 아니냐, 언제까지 평화를 외칠(?) 거냐. 우리는 누가 와서 때리면 맞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야 하냐."</p>
<p class="바탕글">"당신 집에 누가 쳐들어와서 접시를 하나씩 둘씩 깨고 있으면 가서 곱게 말로만 '그러지 마세요' 하겠냐"</p>
<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
<p class="바탕글">한명씩 한명씩 끼어들면서 결국 일 대 다의 토론(사실은, 그리고 점점, 그 &lsquo;일&rsquo;인 나에 대한 집단적 감정적 성토? 같은)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잘되는 토론일 리가 없다. 나중에 가세한 또 한 명은 &ldquo;아줌마&rdquo;란 표현을 여러 번 섞으며 반말을 해서 내가 &ldquo;아줌마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 그 말 욕으로 쓰고 있는 것 알고 있다&rdquo;고 하니 잠시 그 표현만 빼고 말하는 것 같다가 이내 곧 무시하고 욕으로 활용하며 빈정거리길 계속하기도 했다.</p>
<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
<p class="바탕글">그 와중에 골똘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사람은 문득 이렇게도 말했다. &ldquo;그래서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어서 당사자가 느낄 2차 피해는 생각해 보셨어요? 그 아저씨가 자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걸 보고 느낄 당황이나, 그런 거 생각해 보셨냐구요!&rdquo; 내가 &ldquo;그 문제는 저에게만 고민해보라고 말씀하실 건 아니지요&rdquo;라고 했으나 그는 &ldquo;거 봐요! 그런 것도 생각 안하고 무슨 말을 해요!&rdquo;라 하였다;;</p>
<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
<p class="바탕글">언제까지 평화를 외칠 거냐고? 집회를 평화적으로 하는 것이 무조건 모든 사람이 떄리는 대로 맞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이 부당하게, 전/의경이나 경찰이 무기 없는 시민을 때리거나 밀어붙이면 맞서 싸울 수 있다. 같이 때릴 수도 있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전경 차를 훼손하는 것 정도도 괜찮다(빈 차라면, 그리고 남성들끼리만 들어가 &lsquo;오줌을 싸는&rsquo; 짓거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명박산성이 사람들의 발길을 (그야말로) &lsquo;폭력&rsquo;적으로 원천봉쇄했으니 그것을 뚫어버리든 위를 넘어가든 할 수도 있다.</p>
<p class="바탕글">&nbsp;</p>
<p class="바탕글">그러나 노숙인 아저씨는 전/의경이 아니다. 집회 당사자들이 그를 질질질 끌고 간 것은 전의경이 시민을 발로 차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공권력에서 평소 받은 스트레스를 그날 그에게 화풀이하듯 쏟아낸 것처럼 보였다.)</p>
<p class="바탕글">&nbsp;</p>
<p class="바탕글">집에 들어와 접시를 깨는 도둑이라면 나보다 물리적으로 훨씬 강할 경우가 많을 터이므로, 나는 정당방위를 (그나마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사연에선가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나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 순간에 내가 너무 놀라고 방어기제가 발동하느라 그 사람이 약한 것을 몰라보고 지나치게 강하게 제지, 아니 제지가 아니라 보복으로서 훨씬 더 심한 정도로 파괴했다면, 나중에라도 사태가 파악되면 미안해져야 할 것이다(물론 이것도 가택침입과 성폭력 위험에 대한 정당방위 등등을 모두 고려하여 엄정히 따질 문제고 내 문제제기에 대한 대항 비유로는 애초에 잘못된 것이지만).</p>
<p class="바탕글">&nbsp;&nbsp;</p>
<p class="바탕글">또 한 사람은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도 잘못한 점은 있지만 어쩔 수 없기에 해명해야겠어서 나선다. 집회의 효율성을 위해서,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가 없고, 훼방 놓는 사람을 좀 그렇게 한 것이니 이해해야 한다"</p>
<p class="바탕글">&nbsp;&nbsp;</p>
<p class="바탕글">이 논리는 미안하지만 용산 참사를 일으킨 정부의 논리와도 똑같이 닮았다. "경제 개발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너희 살던 사람들은 나가줘야겠다." 그리고 그들은 나가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았다. 그들의 논리에 정부 정도의 공권력이 보태어진다면 무엇이 다르겠는가?</p>
<p class="바탕글">&nbsp;&nbsp;</p>
<p class="바탕글">아, 너무 답답했다. 명백히 존재하는 차이와 차별 상황에서 등장하는 말들. "그 사람만 피해자가 아니다. 우리도 피해자다" "왜 그쪽 편만 드느냐, 그가 잘했다는 것이냐" &ldquo;그가 먼저 폭력을 썼는데 왜 우리한테만 뭐라고 하냐&rdquo; "우리가 좀 세게 한 건 인정하지만 (어쨌든) 그가 먼저였다." 다들 낯설지 않은 논리다.</p>
<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
<p class="바탕글">소위 &lsquo;폭력&rsquo;이라고 하는 것을 누가 행사하냐에 따라 같은 것이 &lsquo;폭력&rsquo;이라고 이름붙여져 낙인찍히기도 하고 &lsquo;정당한 권한 행사&rsquo;라고 쉽게 합의되기도 한다. 상대의 것을 &lsquo;폭력&rsquo;이라고까지 이름붙이기가 민망할 때에는 &lsquo;도발&rsquo;이라는 알쏭달쏭한 죄목(?)으로 이름지어 불러서라도 기어이 <span style="font-weight: bold">폭력</span>("권한에 따른 응징") 행사가 정당화된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 행위나 상황에 대하여 &lsquo;폭력&rsquo;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뜻을 부여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은 기존의 &lsquo;합의&rsquo;나 &lsquo;권한&rsquo;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내가 기존의 합의나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계속해서 돌아보는 일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보기에는 물론 참으로 귀찮고 낯설고 피곤한 일이기에 슬쩍 미뤄지기 쉽다... 그리하여 &lsquo;<span style="font-weight: bold">폭력</span>&rsquo; 대 &lsquo;폭력&rsquo;의 대결에서 한쪽의 &lsquo;<span style="font-weight: bold">폭력</span>&rsquo;은 정당화되고 다른 &lsquo;폭력&rsquo;(?)은 가차없이 단죄된다. (센 사람이 보기에) 괘씸하다는 이유로.</p>
<p class="바탕글"><!--[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
<p class="바탕글">p. s.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자질하듯 글을 써서 해당 &lsquo;그들&rsquo;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그날은 혼자 수고했으니 쩝;; 내가 계속 &lsquo;그들&rsquo;이라 칭한 이들에게 이후에는 노숙인에 관련한 영화를 같이 보자고 얘기해볼 가까운 소망을 갖고 있다.</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category>폭력</category>
			<category>노숙인</category>
			<category>용산</category>
			
			
			<pubDate>Fri, 09 Oct 2009 05:18:55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29</guid>
			<title>그 때, 내가 학력(학벌) 차별했어!</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2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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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FCKeditor--><p>&nbsp;</p>
<p>자자.. 까먹을랑 하면 돌아오고, 지겨울랑 하면&nbsp;새로운 주제로 우리의 '차별'감수성에 경각심을 일으키는(?)&nbsp;사랑방 반차별&nbsp;프로젝트의 야심찬 小프로젝트,"그 때, 내가 차별했어!"</p>
<p>&nbsp;</p>
<p>이번의 새로운 주제는 바로</p>
<p>"그 때, 내가 학력(학벌) 차별했어!" 입니다.&nbsp; 감이 팍 오시죵?</p>
<p>&nbsp;</p>
<p>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 중, 그 뿌리가 깊고 심각한(물론 다 중요하지만.-.-) 차별 중 하나는,</p>
<p>학력에 대한 차별인 것 같아요.</p>
<p>'학력'이라고 하면, 초졸, 중졸, 대졸 등의 어느 정도까지 교육을 받았느냐, 하는 것을 흔히는 의미하지만</p>
<p>"어떤 학교"를 나왔냐 하는 것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을 것 같아요.</p>
<p>더구나,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가 이렇게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말이지요!</p>
<p>&nbsp;</p>
<p>그러면서 학벌에 대해 얘기해볼 수 있겠지요.</p>
<p>학벌(<span lang="ko-hani" xml:lang="ko-hani">學閥</span>)이란 "특정 학파 또는 특정 <a title="학교" href="http://ko.wikipedia.org/wiki/%ED%95%99%EA%B5%90">학교</a> 출신자가 어느 <a title="직업" href="http://ko.wikipedia.org/wiki/%EC%A7%81%EC%97%85">직업</a> 혹은 특정 <a class="mw-redirect" title="기업" href="http://ko.wikipedia.org/wiki/%EA%B8%B0%EC%97%85">기업</a>, 특정 집단 내에서 암묵적인 지위나 세력을 형성하여 그것을 자기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세력을 확장하는 데 이용하는 행위나 그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위키백과)</p>
<p>&nbsp;</p>
<p>그렇다면 학벌을 차별한다 함은,&nbsp; 어떤 특정한 '학벌'에 속함으로 해서 사회에서 위치가 달라지며, 누군가를 대할 때&nbsp;어떤 '학벌'인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거겠지요.</p>
<p>&nbsp;</p>
<p>어떠신가요, 생각을 더듬어.. 누군가를 학력(학벌)로 하여금, 차별해본 적.</p>
<p>언제였던가요?&nbsp;</p>
<p>&nbsp;</p>
<p>&nbsp;</p>
<p>&nbsp;</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amp;quot;그때, 내가 차별했어!&amp;quot;</category>
			<category>인권</category>
			<category>인권운동사랑방</category>
			<category>대학</category>
			<category>교육</category>
			<category>차별</category>
			<category>학력</category>
			<category>학벌</category>
			<category>반차별</category>
			
			
			<pubDate>Fri, 25 Sep 2009 22:38:20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28</guid>
			<title>&amp;quot;아이돌&amp;quot;도 이 '세상'을 뜨는구나 by 꿈의택배</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28</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nbsp;</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span class="pcol1 itemSubjectBoldfont"><strong><font color="#636363">"아이돌"도&nbsp;이&nbsp;'세상'을 뜨는구나</font></strong></span>&nbsp;</span></p>
<p>&nbsp;</p>
<p>&nbsp;</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2PM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다만 '오후 2시'라는 뜻 밖에는 알지도 못했고, '니가 밉다'와 '어게인 어게인'이 그들의 노래임을&nbsp;구분하는 것도 굉장히 대단한 것일 만큼 관심이 없다. 그랬던 내가 2PM에 '재범'이라는 사람이 있고, 그가 몇 살이며,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nbsp;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불과 하루 만에.</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
<p><span style="font-family: 굴림">하루종일 아이돌 그룹 2PM의 재범 탈퇴와 그의 출국에 대한 기사가 포털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span></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2PM의 재범이 4년 전, 연습생이전 시절에 미국 사이트에 올렸던 글에서 "한국인은 정상이 아니다. 내가 하는 저질 랩을 잘한다고 칭찬한다. 정말 멍청하다",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허상이었다" 등의 말을 쓴 것이 4년이 지난 지금&nbsp;알려져서 구설수에 올랐던 것이다. 구설수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 일파만파 퍼져서 혹독한 '국민'들의 비난 세례를 받으며, 그는 결국 오늘 저녁 미국으로 출국하였다. 마치, 급히 이 '한국'에서 쫓겨나듯.</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그러한 "한국 비하" 글이 문제로 터지고 난 후,&nbsp;그는&nbsp;자신이 4년 전에 그런 글을&nbsp;썼던 것은 맞지만 그 연습생 시절 가족과, 살던 곳으로부터 혼자 떨어져서 너무 힘들어서 그 자신의&nbsp;힘듦을 주변 상황으로 돌리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너무&nbsp;어렸고&nbsp;앞날에 대한 불안과 한국에서의 부적응&nbsp;등으로,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질렀다는&nbsp;사과문을 올렸으나 여전히 "재범 한국 비하"라는 화제는&nbsp;끊이지 않았고, 며칠만에&nbsp;몇 년 동안 오로지 이것만을 바라보고&nbsp;왔을 그룹에서 탈퇴하였다.&nbsp;</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그는 꼭 2PM에서 탈퇴해야만 했을까.</span></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그러나 그 물음은 명제로 대답하자.</span></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이 '대한민국' 에서 그는 그룹을&nbsp;반드시 탈퇴해야만 했고, 그를&nbsp;탈퇴시켜야만 했다. </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나는 그의 사과문이 진심일 거라고도 생각하며, 심정적으로 사실 그를 이해할 수도 있다. </span></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지금보다 4년이나 전, 모든 가까운 사람들과 떨어져&nbsp;당시 자신이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 막막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는 '연습생'이었던 자신의 불안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자신의 내밀한 공간에서 만이라도 그것을 덜어놓고 싶지 않았을까. 너무도 많은 이가 바라는 스타를 꿈꾸지만,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혹은 하늘로 올라갈 수 조차 없는 것이 그 세상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느끼고 있었을텐데, 그런 그가 얼마나 불안함과&nbsp;휩쌓인 10대 후반을 보냈을까?&nbsp;</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nbsp;공교롭게도 나와 그는 동갑이다. 나는 끊임없이&nbsp;방황하는데, 지금보다 훨씬 불안정했을, 그리고 지금보다 더 어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현명하지 못했을 4년 전, 나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 물론 그가 '잘'했다고는 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그러나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변하나.&nbsp;우리들은 그런 '한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반성할 당분간의&nbsp;시간마저도 결코 허락할 수가 없었던 것인가?&nbsp;구석으로 끝끝내 몰아부쳐, 결국은 그 날 당장 미국으로 떠나고야 말게 한&nbsp;대단한 이 애국심. 아, 이제 새들도 세상을 뜨는 이&nbsp;나라에는,&nbsp;연예인도&nbsp;애국 때문에&nbsp;나라를 뜨는구나. </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나는 두렵다. </span></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지금보다 훨씬 달랐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몇 년 전의 글 몇 편으로 그의 운명을 완전히, 완벽히&nbsp;바꾸어놓을 정도로 확실한 이 무언가, 그 실체 없지만 이 나라의 곳곳에, 무엇보다도 명징히 실제하는 이&nbsp;공포감에 몸이 떨린다.&nbsp;그가 탈퇴를 선언하고몇 시간 되지 않아 </span></p>
</span></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부리나케 오후에 올라온 프레시안의&nbsp;<a class="con_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08150621" target="_blank">이동연의 글</a>&nbsp;"2PM 재범 탈퇴, 나는 공포를 느낀다."는 정확히 이 '공포감'을 짚고 있다. 그렇다, 나는 두렵다. 나는 공포를 느낀다. </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이 나라에서는 가장 자유분방하고 솔직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돌 가수조차 나라를 위해, 애국을 위해 노래 불러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nbsp;국가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정치적 올바름'이라기 보단 맹목적, 도덕적 애국주의에 빠진 이들을 우리는 아이돌에게서까지 바라야만 하는가?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방식은, 늘 국가와 민족에 헌신을 다 하는 것이어야 하는걸까? 한국의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나의 그 사랑을 "조국"에 돌려주기 위해 국위선양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가? 이 거대한 써클, 한국을 유령처럼 늘 배회하는 애국과 조국에 대한 요청. 우리는 왜 애국이 아니면 안되는가. 나는 이 지나친 애국심이 불편하다. 이 지나친 국가에의 복종과 애정을 강요하고 심지어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명령하는 익명들의 목소리, 그 거대한 목소리가 불편하다. </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4년도 더 전에, 나 또한&nbsp;가수 유승준이 군대 문제로 한국 국적을 포기했을 때 분명 사람들 틈에 끼어서&nbsp;군중 속에서 그를 향해 애국주의적으로 소리쳤을 것이다. 당신은 비겁하고, 나쁜 것이라고.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그래, 거짓말은 나쁘다 쳐. 하지만 그 때 난 정말 그의 거짓말이 나빴던 걸까? 그 거짓말만 싫었던 걸까? 몰래 국적을 포기한 게 괘씸했던 게 아니라? 한국은 4년도 더 전, 유승준을&nbsp;강제 출국 시켰던 그 때와 하나도 변한 것 없이&nbsp;2PM의 재범을 (사실상, 상직적으로) 강제 출국 시켰다. 4년이 지난 후, 그 때와 지금의&nbsp;자신은&nbsp;많이 달라졌다고 반성한 재범보다도&nbsp;한국 사회의 낮은 성숙도를 차라리 더 혹독하게 비판하고 싶다. 여전히 국가(민족)이라는 구도, 끊임없이 "글로벌"과 세계화를 외치지만&nbsp;한국은 이토록 그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속이 마치 편하고 그것으로 인해 보호받는 듯, 마치 끓여야만 부패하지 않는 듯. 하지만 그런 독하고 해로운 방부제를 넣지 않는다고 해서,&nbsp;부패하지는 않을 것이다.&nbsp;애국/국가주의에 대한 주제만 나왔다 싶으면 지나치게 도덕주의적이 되는 우리들은, 이제 조금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사실&nbsp;나는 흔히 '교포 출신(대부분 미국) 연예인'이라고 알려진 이들에 대한 불신감이랄까, 반감이랄까, 하는 감정이 있어왔다. 특히 영어권에서 살다가 와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특히&nbsp;한국보다 선진국인 나라에서&nbsp;오래 살다 왔다는 '교포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의&nbsp;인기에 붙는 잉여의 권력이자 특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연예인으로서의 끼/실력'와 무관하게&nbsp;추가로 붙게 되는 일종의, 식민지적 '이미지 마케팅' 처럼 여겨졌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구사하며, 미국(혹은 영어권 어딘가)에서 살다 왔다는 것을 의식하는 이들의 욕망/선망을 잘 이용하는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그것은 일면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억지로 "살기는 미국(혹은&nbsp;어딘가)에 살았지만, 항상 진심으로 한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해왔어요." 라는 말로 그러한 '상대적 박탈감'(영어를 그들처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고-그러나 하고 싶고- 한국보다 더 "잘 사는" 곳에 살지 못했다는)을 위로해주길 요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타국에서 살다가 연예인을 하기 위해서만 한국에 왔을 수도 있고, 실제로 (울 언니가 '교포 출신' 가수 P모에 대해 싫다는 말을 하며)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다가 자신이 살던&nbsp;곳에 가서 몽땅 다 쓰고, 다시 돌아와서 돈을 벌어가기를 반복하는 누군가일&nbsp;수도 있을&nbsp;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감정적으로 얄밉기는 할지언정,&nbsp;우리들이 애국과 국가를 느끼기 위해 그들의 음악과 연기를 감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둘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혀 관련을 맺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망측하고 건방진&nbsp;상상은, 아직은 이 "세상"에서&nbsp;불가능한 상상력일까. </span></p>
<p>&nbsp;</p>
<p><span style="font-family: 굴림">몇 십 년전의 극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애국가를 경청"하곤 "주저 않았"다. 끼룩끼룩, 마치 비웃듯이 혹은&nbsp;울듯이 새들도 세상을 떴다. 그러고 나서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그러나 우리들은&nbsp;보이지 않지만&nbsp;극장 화면보다 훨씬 더 큰 그것을 향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nbsp;맹세를 하고, 애국을 하고, 주저 앉곤 하고&nbsp;있는 것 아닐까. 그리하여 끼룩끼룩 새들 뿐만 아니라 '아이돌'까지 이 "세상"을&nbsp;뜬다.</span></p>
<p>&nbsp;</p>
<div class="autosourcing-stub">&nbsp;</div>
<p>by 꿈의택배</p>
]]>
			</description>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category>민족주의</category>
			<category>국가주의</category>
			<category>애국주의</category>
			<category>2PM</category>
			<category>재범</category>
			
			
			<pubDate>Tue, 15 Sep 2009 22:39:54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banchabyul/?pid=27</guid>
			<title>가족의 간섭-대옹</title>
			<link>http://blog.jinbo.net/banchabyul/?pid=27</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p>-아 너무 내이야기라,,, 좀 그렇긴 하지만,,,,,일단 씁니다,,,,-</p>
<p>&nbsp;</p>
<!--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nbsp;&nbsp; 가족관계에 있어서 수많은 조언, 충고, 참견, 간섭 등은 도대체 <span style="font-weight: bold">뉴규</span>에게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강제적인 어떠한 형태의 것으로도 간섭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적절한 형태로(그것이 단순한 정보의 전달에서 강제적인 형태의 간섭까지)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게다가 가족이 경우라면 더욱 심한 간섭과, 잔소리와 같이 갖가지 형태로 더 쉽게 접근해 오지만 더더욱 그런 접근을 막지 않는다. 난 여기서 좀 더 가족 이라는 관계에 대해서 고민이 든다. 도대체 가족은 나의 어디까지 파고드는 것이 가능하며 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배제는 당연한데 가족은 되는지 말이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nbsp;&nbsp; 먼저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길 해보고 싶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nbsp;&nbsp; 간혹, 나는 나의 동거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갑 : 니가 뭔데 이래랴 저래라야! 니가 엄마냐?</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을 : 너?! 진짜 니가 미쳤구나? 가족이니까 하는 말에,,, 누나(, 언니, 형)한테 너?</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 </span><o:p></o: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nbsp;&nbsp; 위의 대화에서 갑은 &lsquo;가족 간에도 분명히 권력의 분배는 차이가 있고, 부모의 간섭은 모르겠지만 나머지 사람의 간섭은 배제하겠다&rsquo; 을은 &lsquo;가족의 간섭은 정당하다와 가족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존칭어를 써야한다&rsquo;는 전제를 깔고 있어 보인다.(갑은 확실하다,,,ㅋ) 그런데 갑의 전제를 살펴보면 가족 간의 권력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타인의 접근, 간섭에 대해서 허용과 배제의 선을 긋고 있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나이가 더 많고 덜 많고 혹은 적다의 차이? 혹은 날 낳았냐 아니냐? 더 친밀하냐 아니냐? 여기서 갑은 물론 글 쓰는 나이기 때문에 친밀감의 차이는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남는 나이와 출생 이 두 가지를 근거로 타인의 접근을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여기서 갑은 나이만이 아니라 또 부모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두 가지를 모두 복합적으로 염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지도 않은 사람의 간섭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차별적인 태도와 함께 삶의 근거를 오로지 출생에서만 찾는 수동적인 태도가 섞여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있어서 전통적인 사상이 수평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출생과 그 출생에 따른 보은의 관계(흔히 말하는 부모님 은혜 같은?!)를 많은 이의 모태신앙처럼 정당화 시켜왔다.</span></p>
<p class="바탕글">&nbsp;</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nbsp;&nbsp; 또 을의 전제는 타인의 간섭을 동거인의 관계에서 가족이라는 관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정당화 시킨다. 을의 말이 정당화되기 위해선 가족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서로 공유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황상 그래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을은 또 우리는 서로가 도움의 주고받음이 필요하다고 공유되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접근하고 간섭해야 하지 않을까?</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다른 을의 전제인 가족 내의 나이에 따른 확실한 존칭구분은 개인적으로는 정말 불만인 사항이다. 특히 나이에 따른 존칭의 문제는 어디에 가든 한국어의 특징상 어디가나 따라붙는 내용이지만 특히 가족 내라고 말한 것은 가족과 나이가 만나서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족보, 항렬과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전통적인 우리나라 가족관에서는 족보를 펼쳐서 자를 대고 쭉 그어보면 대체로 나이와 가족 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에 따라 처음부터 호칭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항렬과 나이순으로 정해져 있는 이런 호칭에는 당연히 불평등한 권력이 분배 되어있다. (쌍둥이 마져도 호칭을 구분하는 ㄷㄷ) 이런 불평등을 호소하고 반발하는 사람은 예의를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가족관인 것이다. 게다가 같은 서열이지만 나이가 많은 언니, 형, 누나에게 대들 듯이 겨우 해보는 &lsquo;너&rsquo;라는 호칭을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쓴다는 것은 애초에 상상을 해 볼일이 없는 것이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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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nbsp;&nbsp;&nbsp; 난 &ldquo;가족&rdquo;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어떤 실체가 있다고 하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를 일컫는 추상적인 정의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흔히 말하는 가족 관계의 뗄 수 없는 인연, 친말감 등에 대한 강조도 가족이니까 인연이고 친밀하다보다는 개별의 관계가 소중한 인연이고 친밀하니까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나에겐 어느새&nbsp; 준기,영례 ,미숙과의 관계는 없어지고 엄마,아빠,누나라는&nbsp;가족관계만 남아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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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P.S우리집에서 보면&nbsp;실명 별로인거 같아서 가명썻음,,</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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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반차별팀</author>
			<category>반/차별 프리즘 </category>
			
			
			<pubDate>Sun, 13 Sep 2009 03:51:3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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