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휴가 외전

       

 

"518때 엄마는 어덯게 복이형을 데리고 시골로 빠져 나갔어?"

 

복이형은 이모네 사촌형이다.

 

"그때야? 말도마라. 니 복이성은 나한텐 그때 빚진거 갚을라믄 아직도 멀었다"

 

우리집은 광주 전남대학교 정문부근에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항아리 안으로 숨드라. 그러다가 안되겟다 싶어서 옷장에 숨었다가, 내가 지하실로 숨겼제. 그때 밖에 나가 봉께 같이 도망치던 다섯이도 여기저기 넘의 집 담을 넘고 있더라고"

 

당시 전대를 다니던 사촌형 복이형은 학교에서 공부하다 친구 여섯이서 공수부대원들에게 쫓겨 결국 우리집까지 숨어들어왔다.

 

"글고는 쫌 있다가 공수부대가 우리집앞이랑 전부 전대앞 집은 지키고 있드라고"

 

지난 토요일 광주사는 첫째 여동생이 엄마랑 조카 둘을 데리고 인천 사는 둘째 여동생네로 엄마랑 휴가를 보내러 왔다. 딱히 휴가라기 보다는 조카들이 자기들 키워준 서울에 계시는 외증조할머니(나한테는 할머니다)보고 싶어해서 방학이라 데려 온거다.

 

"그때 나 아팠잖아. 엄마랑 복이 오빠랑 나 차에 태워서 빠져 나간 기억이 있어"

 

둘째 여동생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니가 아팠재. 복이가 하도 떨고 있어서 내가 외가집 차를 불어서 나랑 복이랑 부부 처럼 위장하고 니가 아파서 용한 병원에 가야 한다고 나섰재"

 

울엄마는 확실히 쎄다.

 

"아빠는 머 했소?"

 

당시에 아빠 얘기는 한번도 못들었다.

 

"니 아부지는 그때 영광까지 갔다가. 518 터져서 다 막혀분께. 월야에서 차 얻어타고 왔다가 송정리서 집까지 걸어 왔다드라. 안죽은거이 다행이제"

 

아빠는 당시에 시외버스 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샐러리 맨이엇다.

 

"나가 그때 현오기 년이랑도 엄청 이가 상해부째"

 

복이형, 현오기 누나 모두 광주에서 살던 엄마가 이모네 언니 오빠들을 모두 우리집에서 먹고 살게 해줬던 사촌 언니 오빠들이다.

 

"원래 니 외삼촌네에서 현오기가 살다가 외숙모 등쌀땜에 나한테 왔었거든. 근디 내가 공수부대 땜시 총알 날아 올까바서 느그 외삼촌 집으로 가자고 했드만...전대 앞이잖냐. 아니 죽어도 안간다고 난리드라고. 그래서 내가 니기들만 데고 가부째. 현오기는 놔도불고. 그래갖고 한참 나한테 삐져부째. 근디 어쩔것이냐. 내 새끼들이 죽겄는디"

 

그러고는 엄마는 당시 어디어디서 총맞은 사람들이 4수원지에서 시체가 나왔다고 뒷얘기들을 하신다.

 

그리고 이어진 몇 가지 옛날 얘기들

 

지난 토요일 여동생과 꼬맹이 조카들의 서울 나들이 휴가는 이렇게 시작되부렀다.

 

다음날 아이들은 나의 고모집(어린이들한테는 외고모할머니)에 머물고 계시는 외증조할머니 품에 안겼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