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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도 그리 즐겁게 읽히지 않는다. 책을 읽은지 오래 되었다보니 뭔가 알았던 것들에 더 붙여가는 재미도 없고, 지금 내가 읽은다 한들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소용이 없다는 것은 지금 써먹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애당초 내가 읽은 것들은 써먹을 수가 없는 종류의 지식들이었다. 물론 내가 그것을 조금 나중에 알았다 할지라도.
써먹을 수 없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단기적인 맥락으로 내가 이걸 나중에 내 지식들에 갖다 붙일 때까지 과연 기억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나중에 읽는 게 맞지 않나 싶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장기적인 맥락으로 말이나 글로서 생업을 꾸리거나 무언가를 하겠다는 결의가 꽤 많이 무뎌진 상태에서 이런 글들을 읽는 게 의미가 있을까, 설사 읽더라도 예전처럼 관심사가는대로 읽는 게 아니라 그 종류와 분량을 골라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보는 게 아예 싫은 것은 아니다. 온갖 눈앞의 또는 다음날 아침의 고민으로 괴로울 때 책을 읽고 있노라면 현실과 조금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아주 가끔은 그런 것들을 느낀다. 닥치는대로 읽을 때의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지" 식의 지루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정신이 환기되는 것을 느낄 때도 있더라. 돌이켜보면 이런 청량감은 마구 읽을 때는 못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책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거나 책이 이런 기능도 있구나 하고 감탄할 마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이건 그냥 최소의 청량감일 뿐이다. 요즘 좀 그만큼 지쳐있다.
사실 이것 말고도 항상 쓰고 싶은 것들이 있다. 내가 대체 어디까지 왔는지 앞인지 뒤인지 옆인지 위인지 어찌 됐건 좌표가 어디인지 재보려면 하는 수 없다 글을 써봐야 한다. 글이 사회를 바꾸는지 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생각'이라는 것에 물리적인 위치를 측정하게 해주는 좌표의 기능을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글의 이러한 기능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쓰지 못하면 촉박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쓰고 싶었다. 근데 평상시에는 그게 정말 안 되더라. 매일 운동하기로 마음먹고 헬스장 1년치를 끊었다가 3일 나가는 사람처럼, 글을 어쨌건 평생 쓰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죄책감의 이자만 불리며 그러고 지내고 있다. 이렇게 뭔가 쓰는 것도 정말로 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죄책감을 잠시나마 덜기 위해서이다.
훼이버릿이라도 모아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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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지만 항상 그 말만으로는 논쟁이 온전히 형성되지 못하는 쟁점들이 있다. 폭력, 고통, 꼰대, 피해자. 이 말들은 매우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며 오히려 그러하기 때문에 성립된다. 가해자는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가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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