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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한 날들

이것저것 피로한 날들이다. 이 곳도 만들어 놓고 방치해 두니 내 삶을 뚫는 키워드는 '게으름' '방치'같은 것들이 아닌가 싶다. 몸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불어나지 않았지만 엉덩이를 깔고 앉기만 하면 미쉘린 타이어 마스코트처럼 부풀고, 방구석에서는 사놓고 안 읽은 책들이 드디여 40권을 돌파했다.

 

그러면서 남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의 서평에 대해 이야기한다. 직접 몸을 만들어서 정말 근사한 몸을 가진 사람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나 뭐라도 직접 써보려는 액션은 취하고 있지 않다. 늘 그렇듯 생각은 한다. 생각은 하지만 아마 내가 행동에 옮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멘붕을 한다. 멘붕은 가장 쉬운 도피처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렇게 늘 생각만 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러면 생각도 자라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한다. 생각 생강

 

요즘 꽤 피곤한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고 쌓인 일들을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프다. 지금 손대고 있는 일들을  멋지게 끝낼 자신이 없다. 그리고 상황이 달라져도 잘할 자신도 없다. 이미 나보다 내가 속한 부류의 글을 잘 쓰고 관련 활동을 해서 유명해진 사람들이 눈에 띤다. 내 10대 때의 환타지를 모두 실현한 주변 사람들을 본다. 내가 전자 식의 글을 쓸 생각도 없고 후자의 꿈을 이제 ('더는'은 아니더라도) 그리 원하지 않지만, 이런 내 생각 자체가 먹지 못하는 포도는 신 포도다는 자위에 불과한 것 같다.

 

뭘 할 수 있을까. 뭘 해야 되고. 남들이 그런 얘기하면 한심하다고 뭐라 하곤 했었는데 역시 사람은 제 나이를 사는 것이 맞나 보다. 이런 자학을 가장한 통찰과 그로 비롯된 하루치 자존감 혹은 통찰을 가장한 자학이든 뭐든 어쨌건 이런 것들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들을 씹으며 살고 있다.

 

지금 나는 안경을 고치러 지하철 15개 역을 지나 레스토랑에 와있다. 문득 여기로 오는 모든 이유가 마치 요즘 내 삶을 반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실 오늘 밖에 나와야 할 객관적인 이유는 안경을 고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문득 풀이나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생각과 아마 늘상 밖에 나갔다가 의도치 않게 그랬듯 여자를 보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안경을 고친다는 명분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나왔다. 샐러드를 먹고 여자를 보고 영화도 보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함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가지고서.

 

하지만 다른 이에게 더이상 연락을 할 수 없다. 그들이든 그녀들이든 이제 모두 나를 부담스러워 한다.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이들은 내가 부담스럽다. 부담스러워 하지 않아서 부담스러운 건가? 사건들의 무관계를 강조하는 일상인의 사고에 엿먹이기를 좋아하는 예전의 나로서는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이제 그런 고등교육 수료자들의 강박에 조소를 가하기를 즐기는 요즘 나로서는 아니라고 답해야 겠지. 늘상 이런 식이다. 내 사고는 나만의 유행을 따라 간다. 아니면 주변 유명인의 것이든.

 

다시 돌아가서, 그런 멋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이런 식의 약속 요청을 여럿 받았고 그때마다 거절했었다. 아직도 난 누군가를 내 방에 재우기를 꺼렸다는 것이 떠오른다. 내가 이렇게 못되게 굴었는데 누가 나를 안 챙긴다고 징징 짜는 게 얼마나 부당한 짓인가. 하지만 기대한 것들의 일부는 취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맞은편에 선 여성의 흉부가 생각난다. 크진 않았고 오히려 작은 편이었지만 확실하게 업되어서 윤곽이 도드라진 흉부. 진보넷이라는 곳에서 이런 포스트를 쓰고 있다. 이곳에 징계 제도는 없겠지? 있으면 어떤가. 걍 피난처 하나 잃는 거지 ㅎㅎ 내가 사고 읽지 않는 책처럼 그토록 원하다가 결국은 아무 관심도 안 주고 있는 이 장소.

 

요즘 다 이런 식이다. 모두다 이런 식이다. 이래저래 핑계거리만 늘어나고 있다. 외국어 공부는 역시나 했는데 혹시나 손도 안 대고 있다. 많은 업무가 핑계다.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적은가? 그렇지도 않다. 물론 객관적으로도 꽤나 바쁘긴 하지만.

 

누구누구 핑계대는 것도 자학하는 것도 지치고 지친다. 다 될대로 되겠지. 책을 (읽진 않고) 사 모으면서 느낀 건 참 좋은 주제에 좋은 글은 내가 굳이 말을 얹지 않아도 알아서 잘 나온다는 것이다.

 

위같은 생각을 하면서 내 또다른 기만을 느낀다. 난 왜 생활인이나 직업인으로서의 마인드가 부재한가, 아니면 이에 만족을 못 하는 것인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하긴 많은 비생황인들은 생활인으로서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이 멘트는 그냥 하나마나한 말이었겠구나. 여하튼 위의 어딘가에서는 나는 내가 크게 변했다고 하는 식으로 말한 것 같은데 이제 보니 그냥 펑크 락커가 되고 싶다던 그때 그대로이다.

 

나는 셀레브리티를 원한다. 내가 되든 곁에 두든 무엇이든간에. 남자든 여자든. 괴짜이건 아름다워서건 똑똑해서건. 왜 이럴까. 모르겠다.

 

이렇게 뭔가 쓰고보니 기분이 시원해지는 것도 같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집에서도 이리 쏟을 수 있으면 조금 좋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러려면 컴퓨터를 사야 하고 무엇보다 내가 집에서 누워서 있으려는 욕심을 줄어야 한다. 근데 난 아마 못할 거다. 지금까지도 못했듯이. 이건 내 오랜 생활습관이다. 과로로 인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내 육체는 망가질 것이다. 살은 더 찔 것이고 성기를 쪼그라들 것이다. 과다한 자위는 참을성은 줄어들고 허리는 굽을 것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기에 눈이 나빠질 것이다. 사고는 트위터를 많이 해서 그 폭이 좁아질 것이고 술을 마시면 샀지만 읽지 않은 책들을 껴안고 헤헤 술마시니 기분이 그래도 좋네 그럴 것이다. 다음날 출근해서는 더딘 업무진행에 괴로워 할 것이고 주변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고 그로 인해 희박한 인기나 호감도를 잃고 혼자서는 괴로워할 것이다.

 

모든 것이 나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의 문제는 나다. 내가 처한 어려움은 그리 큰 것도 아니다. 내 작은 변화로 여러 가지 것들을 성취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 않는다. 나 자신에 절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도 싶다. 누구맘대로 절망같은 거창한 단어를 쓰는가.

 

됐다. 됐다. 모두 됐다. 그저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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