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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2 /현대정치철학 Seminar @ Se-um/
*발제: 자크 랑시에르, 오윤성 옮김, 『감성의 분할Le partage du sensible : 미학과 정치esthétique et politique』, 도서출판b, 2008.
**인용문의 쪽수는 괄호 안에 표기하거나 참고하고 있는 장을 밝히는 것으로 대체한다. 강조는 별도의 표기가 없는 경우 모두 발제자의 몫
***번역이 의심스러운 경우, 불어나 영어를 병기하도록 하며 문맥상 수정이 불가피할 경우 별도로 명시하도록 한다.
“예술이 배타적인 활동의 특징을 취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노동으로서다.” -본서 62쪽.
『감성의 분할』은 랑시에르 본인의 『불화』를 읽은 독자들이 던진 질문들에 대한 대답 내지 보충설명을 담은 텍스트이다. 질문들은 모두 다섯 가지이며 랑시에르는 각 질문들에 답하며 기존 미학의 범주들(주로 모더니티 담론)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범주들에 대한 설명, 그리고 해당 범주들을 통해 살펴 본 예술과 정치의 관계, 미학 자체에 대한 재정의 등의 광범위한 주제들을 압축적인 지면을 통해 논하고 있다.
텍스트의 첫 장은 『불화』에서 제시된 개념과 사유들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에 답하는 부분으로, 랑시에르는 자신의 ‘감성의 분할’ 개념에 대한 정의와 이 개념이 가지는 함의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모종의 ‘결론’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랑시에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2장과 5장에서의 서술을 중심으로[footnote]이외에도 재현적 예술 체제의 경우 4장을 많이 참고했고, 미학적 예술 체제의 경우 1장과 3장을 조금 참고했다. [/footnote] 랑시에르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의 근대 유럽에 이르기까지의 예술의 위상(호혹은 예술을 특정 위상에 제한하거나 규정하는 방식)을 세 체제(régime)로 나눠서 이해하는 부분들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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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질문들 Q1. 『불화』에서, 정치는 당신이 ‘감성의 분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질문된다. 이 표현은 당신이 보기에 미학적 실천들과 정치적 실천들 사이의 필연적인 합류(la jonction nécessaire)에 대한 열쇠를 제공하는가? Q2. 20세기의 예술 창작을 사유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범주들 가운데 몇 가지, 즉 모더니티, 아방가르드 그리고 언젠가부터 포스트모더니티의 범주들은 마찬가지로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신에게 이 범주들은 적확한 용어들로, “미학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에 묶는 것을 생각하는 데 대한 어떤 관심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가. Q3. 당신의 책들 중 한권에서, 당신은 사진과 영화인 ‘기계’ 예술들의 발전과 “새로운 역사”의 탄생 사이의 연결을 정립한다. 이 연결을 명시해주겠는가. 금세기 초에, 대중들은 대중들로서 이 예술들의 도움으로 어떤 가시성을 획득한다는 벤야민의 생각은 이 연결에 해당하는가. Q4. 당신은 허구 개념(l'idée de fiction)을 본질적으로 실정적인 것[footnote]불어로는 positivité, 영어로는 domain of empirical reality.[/footnote]으로 참조한다. 이것은 정확히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연루되어” 있는 역사Historie와 이야기récit의 예술들에 의해 말해지는(또는 해체되는déconstruites) 스토리들histoires 사이의 관계들은 어떠한가. 그리고 시적 또는 문학적 언표들이 실재의 반영들이기보다 오히려 실재적 효과들을 가지고 “구체화되는prennet corps”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치적 몸들” 또는 “공동체의 몸” 개념들은 은유들 이상의 것인가. 이러한 반성은 유토피아에 대한 재정의와 맞물리는가. Q5. ≪감정 제조소≫의 가설에 따르면, 예술적 실천과 그 보이는 외부, 즉 노동 사이의 관계는 본질적이다. 당신 입장에서, 어떻게 당신은 그러한 관계(배제, 구별, 무차별……)을 이해하는가. 우리는 ‘인간 활동l'agir humain’ 일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리고 거기에 예술적 실천들을 포함시킬 수 있는가. 또는 예술적 실천들은 다른 실천들에 관하여 예외에 속하는가. |
질문2에 대한 답에서 랑시에르는 우선 현대 미술사의 핵심을 이루는 두 개념, 아방가르드와 모더니티를 문제시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본래 군사적 용어로 전투에 시작되면 가장 먼저 투입되는 전위부대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20세기 초반 마리네티, 앙드레 브르통 등 실험적 예술가들에 의해 미술사와 미학 담론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기성 예술과 문화, 나아가 사회 일반의 원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인식과 경험을 생산하고 표현하는 예술적 실천 일반을 가리키는 데 널리 사용되기에 이른다. 모더니티 담론은 논자마다 구체적인 내용이 상이하지만 크게는 ‘예술’의 자율성과 예술을 탐구하는 ‘미학’의 고유한 학적 영역이 근대에 들어 성립되었다고 보는 담론 일반을 가리키는 듯싶다.[footnote]랑시에르에게 있어 미학에 대한 모더니티 담론은 17세기 초 '아름다운 예술(fine art)'에서 예술의 자율성이 확보되었다고 보는 전통적 미학에서부터, 기술복제시대에 이르러서야 예술 감상에 있어 평등이 성취되었다고 보는 발터 벤야민에 이르기까지 ‘미’와 ‘미학’을 근대적인 사태로 보는 담론 일반을 가리키는 듯싶다. 벤야민의 경우, 근대를 기술의 시대로 규정하며 예술의 종별성을 미학적인 것이 아닌 기술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며, 그리하여 “대중들의 등장”을 근대적 사태로 제한하고 예술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하는 데 있어 기술결정론적 관점에 빠졌다는 이유로 1장과 3장에서 비판된다.[/footnote] 이 둘은 개념적 내용은 차이를 가지나, 자율적 예술의 조건으로서 근대라는 시기를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데 있어 제한적인 유사성을 갖기도 한다.
랑시에르는 현대 미술사의 핵심을 이루는 이 개념들이 예술의 새로운 형태들이나 정치적인 것과 미학적인 것의 연관을 파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한다. 이어지는 이유는 그가 보기에 이 개념은 “예술 체제 일반에 고유한 역사성”과 “이 체제의 내부에서 행해지는 단절 또는 예상의 결정들”을 혼동하기 때문이다(25). 보다 정확히 말하면, 윗 개념들은 전자를 후자로, ‘체제 내부의 변화’를 ‘체제’ 자체로 착각한다. 그리하여 “특수한 예술 체제의 단독성”, 다시 말해서, “작품들 또는 실천들을 생산하는 양식들, 이 실천들의 가시성의 형태들 그리고 전자와 후자를 개념화하는 양식들 사이의 어떤 특유한 유형의 관계의 단독성”을 은폐한다(26).
그렇다면 스스로의 고유한 ‘역사성’과 ‘단독성’을 가진 체제(régime)란 무엇인가? 이 범주는 기존 미학 담론에서 널리 쓰이던 말이라기보다는 예술, 미학, 정치와 그들 간의 관계에 대한 랑시에르 본인의 문제화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인다. 여기서 랑시에르 본인의 문제화란 바로 예술과 인간의 관계로서의 “감성의 분할”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예술은 세속적 삶의 일상적 활동(ex: 노동)과 구분되어 자율성을 가지지만, 그 자율성의 위상은 ‘특출난 기술’ 식의 특권과는 다른 것으로 자신과 구별되는 삶과의 연관 하에서 타율적으로만 실현되는 것이다. ‘(식별) 체제’들이란 이런 예술의 모순적 위상에 대한 감성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태도들의 양식을 의미한다. 장르나 소재의 변화, 사진과 구별되는 고유한 회화성(C.Greenberg), 감상층의 양적 확대(W.Benjamin), 비-재현 예술의 배타적 특권(J.F.Lyotard) 등의 예술(사) 인식들은 이 체제들의 한 항에 속하나 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실패하며 그 결과 “미학 혁명”이라는 예술을 통한 고유한 주체화 양식의 논리를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1. 이미지의 윤리적 체제régime éthique des images
-예술은 삶의 기예들과 다른 예외적 사태가 아니다. (나아가 그것은 삶의 기예들에게서 배제되어야 한다.)
-모방자는 위계적 공동체에서 자리를 갖는 주체가 아니다.
-플라톤, 『국가』, 특히 3권
-2장, 5장
우선 'régime ~ des arts'로 쓰인 다른 체제들과는 달리 'régime ~ des images'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에게 있어 예술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예술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기예들, 제작방식들만이 존재”했다.[footnote]"L'art n'existe pas pour lui, mais seulement des arts, des manières de faire."(불어본, 28) 여기서 “arts”는 복수의 뉘앙스를 강조하는 듯한 “예술들”보다는 플라톤에게 있어 예술이 예외적인 사태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맥락을 고려하여 “기술들” 또는 “기예들”로 번역을 수정한다. “faire”의 경우, ‘함doing’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기보다는 ‘만듬making'의 의미로, 즉 mimesis(모방)와 대비되는 poiesis(제작)의 의미로 쓰여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를 행동방식으로 번역할 경우, 희랍어 poiesis가 아닌 praxis의 의미로 오해될 위험이 있다.[/footnote] 따라서 플라톤이 예술을 정치에 종속시켰다(예술의 타율성)는 통념적 비판은 정당하지 못하거나 충분치 못한데 그는 예술을 예술로서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톤이 오늘날 예술이라 불릴 수 있는 실천들 일반을 일반 기예나 노동들과 분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분할선ligne de partage을 긋는 것은 바로 그것들[기예들, 제작방식들] 가운데서다.” 기예들은 우선 ‘기원(이미지들의 진리 내용)’에 따라 ①“명확한 목적을 가진 어떤 모델의 모방을 근거로 한 지식들”과 ②“단순한 외관들을 모방하는 예술 시뮐라크르들”,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은 후자에 해당된다. 그 다음 이렇게 구별된 모방들은 각자의 ‘목적지(이미지들이 소용되는 용도들과 이미지들이 최종적으로 끌어내는 효과들)’에 따라 구별된다. ≪예술≫은 기원과 목적지에 관한 질문들에 사로잡혀 개별화 ․ 자율화되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 플라톤은 예술적 실천들을 다른 기예들과 같이 공동체의 일부분에 포함되도록 방임 또는 구조화하지 않고, 기예들 사이에 무리한 구분선을 그어가며 예술적 실천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려 한 것일까? 왜 ‘비극 장인’같은 것은 불가능했는가? 예외적 기예를 부정하는 플라톤은 여기서 단순한 기예를 초과하는 예술적 실천의 예외성을 거꾸로 반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랑시에르가 보기에 플라톤에게 있어 예술적 실천, 즉 ‘모방자’의 문제는 공동체의 모범적 가치를 훼손하고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악한 성격”을 가진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잘 조직된 공동체의 원리”는 구성원 각자가 “제 ‘본성’이 그를 운명짓는 것 한 가지만” 하는 것이다. “노동의 이념은 우선 결정된 활동의, 물질적 변형 과정의 이념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부재’에 근거한, ‘다른 것’을 하는 데 대한 불가능성이라는 어떤 감성 분할[footnote]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감성의 분할은 미학적 예술 체제에만 고유한 것이 아닌 예술을 통한 자기이해의 방식일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어떤 공통적인 것의 존재 그리고 그 안에 각각의 몫들과 지리들을 규정한 경계설정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감각적 확실성(évidences sensibles)의 체계를 나는 감성의 분할이라고 부른다.”(13)[/footnote]의 이념이다.”
헌데 모방자는 모방이라는 한 가지 일을 하는 노동자가 아닌 “이중의 인간”, 노동과 모방이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노동자”이다. “예술적 실천은 노동의 외부가 아니라 전치된 가치성의 노동 형태다.” 따라서 모방자의 존재는 사회의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넘어 사회의 조직 원리 자체를 문제시하기에 이른다. 때문에 플라톤은 이를 우려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배제해야 했으며, 이미지의 윤리적 체제란 이런 배제의 모범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2. 시학적(또는 재현적) 예술 체제régime poétique(ou représentatif) des arts
-예술은 삶의 기예들과는 다른 예외적(혹은 특권적) 사태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예술이 가진 엄격한 재현의 규칙들에서 비롯된다.
-모방자는 다른 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에서 고유한 자리를 가진 주체이다. 동시에 그 모방자의 자리는 이 자리들의 질서("공동체의 위계적 비전vision"(29))를 재현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2장, 4장, 5장
시학적 또는 재현적 예술 체제에 들어서면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모방(mimesis)은 명백히 통상적인 기예와 노동들과는 구분되는 예외적 사태로서 자율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이미지들의 일관성과 목적지에 관한 플라톤의 의심으로부터 시학적 미메시스[footnote]통상적인 예술사나 미학에 따르면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 “아름다움 예술”의 개념이 정초되기 전까지 자율적인 ‘예술’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연극, 회화, 시와 같은 예술적 실천을 가리키는 용어로서의 ‘미메시스’가 있을 따름이었다. 허나 랑시에르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예술의 자율성이 주장되었다고 보는 듯싶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랑시에르가 esthétique를 근대에 성립된 좁은 의미에서의 “예술”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아닌 ‘감성론’ 또는 ‘감각학’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footnote]의 형태들을 보호”, “시의 제작들의 배치가 시뮐라크르의 제조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는 크게 ①“모방들의 기예art는 기술technique이며” 플라톤이 말하듯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과 ②모방자가 “더 이상, 각자가 단 한 가지 일만 하는 도시국가에 대립시켜야 하는 이중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①-1)“시학적poétique”: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뮐라크르와 같은 거짓말fausseté과 허구fiction를 구분하고 후자를 시와 같은 모방에 있어서의 고유한 원리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시는, 시가 말하는 것의 “진리”에 관해 설명할 것”이 없는데 “왜냐하면 시는 그 원리상, 이미지들 또는 진술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허구들, 다시 말해서 제작들 사이의 배치들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즉 미메시스는 “활동하는 인간들을 재현하는 제작들을 배치”를 규범 원리로 삼는다.
①-2)“재현적représentatif”: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재현에 있어서의 엄격한 규칙을 제시한다. “가장하는 것Feindre은 환상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 가능한 구조들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현이 가능한 것과 불가한 것이 나뉘고, 재현된 것들에 따라 또 장르의 구별이 이뤄지며, 재현된 주제의 구별에 따라 표현 형태가 구별된다. 이런 규칙들에 따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의미의 파악이 가능한 인간의 언어(logos)와 의미를 담지 않은 동물 혹은 비-인간의 소리(phone)의 구분이 자리를 잡는다.
②: 이렇게 모방이 집중적인 학습을 통해서 습득이 가능한 엄격한 규칙들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모방의 기예가 전문적인 “테크네”에 국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방자는 더 이상 노동자의 정체성을 이중화하고 이를 통해 플라톤적 이상 사회의 특정한 감성의 분할에 갈등을 가져오는 예술적 예외가 아니라 노동자와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외부자로 규정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의 자율성을 정초한 “허구 원리”가 “예술적 예외를 안정시키는 방식”이었음을 알게 된다. 모방은 “노동의 전치된 가시성임을 동시에 멈춘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수행되고 예견된 예술의 자율화는 근대적 예술 개념의 시초라고 불리는 고전주의 시대의 “아름다운 예술beaux-art” 개념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여기서 랑시에르는 모더니티 담론들이 전제하는 것과 달리 예술의 자율성이 근대에 단절적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이미 원형적으로 제시되었다고 보고 있다.
3. 미학적 예술 체제régime esthétique des arts
-예술은 삶의 기예들과는 다른 예외적 사태이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기예들과 뚜렷한 경계선을 갖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한에서 자율성을 가진다.
-모방자는 위계적 공동체에서 자리를 갖는 주체가 아니다(이미지들의 윤리적 체제와 상동). 하지만 이러한 주체가 아닌 한에서, 일상인/노동자라는 주체에 기생하는 한에서 모방자와 노동자는 ‘주체’가 된다.
-사례가 많지만 특히 쉴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
-1장, 2장, 4장, 5장
앞서 두 체제는 노동으로부터 예술적 실천을 한쪽은 배제시키고 한쪽은 독립시키는 등 겉보기에는 상이한 태도를 보이지만 사실 근원적인 유사점들을 가진다. ①예술은 노동과 같을 수 없으며 ②주체란 특정한 기술을 가지고 그것 ‘한 가지’만을 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 두 유사점들이 공유하고 있는 전제는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특정한 이해, 특정한 존재론적 구분이다.
쉴러는 랑시에르와 달리 고대로까지 소급하지는 않고 근대인만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이러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구분을 “사유의 활동성 對 감각 질료의 수동성”이라는 구도로 파악했다. 근대에 들어서 사회의 분화로 인해 예술이 자율성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이 시기 인간은 자신의 총체성을 이성과 감성으로 분열되는 소외를 겪게 된다. 쉴러는 이런 감성과 이성의 분열은 프랑스 혁명과 같은 현실의 정치 혁명에서는 성취될 수 없다고 본다. 쉴러는 프랑스 혁명의 평등과 분열된 총체성이 회복된 도덕국가라는 이상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하층 계급들은 자기 욕구충족을 위해 모든 이성의 원칙들을 따르지 않는 “원시인Wilder”이었으며, 혁명 지도세력은 원칙만을 추종함으로써 인간성을 상실한 “야만인Barbar””였다.[footnote]조경식, 「프리드리히 쉴러의 미학서간에서 나타난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체계이론적 분석Ⅱ」, 『뷔히너와 현대문학』18권, 2002에서 재인용.[/footnote] 이런 양극단의 상황에서 분열된 총체성이 회복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쉴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미적 교육”을 제시한다.
랑시에르는 이런 쉴러의 논의를 직접적으로 인용한다. “지배와 예속은 우선 존재론적 분배(사유의 활동성 對 감각 질료의 수동성)”와 연관된다. 이 존재론적 구분을 유지시키는 데에서 상이한 체제들은 지배와 예속을 존속시킨다. “(…)쉴러는 문제의 쟁점인 정치적 분할(체험된 경험의 합계에 진입하는 교양 계급들 그리고 노동과 감각 경험의 분할morcellenment 속에 깊숙이 빠져있는 미개 계급들 사이[의 분할partage], 행동하는 자들과 감내하는 자들 사이의 분할)을 가리킨다.”(60) 한편으로는 이미지의 윤리적 체제처럼 대놓고 옹호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재현적 예술 체제처럼 본래 이 이항대립을 초과하고 무화시키는 예술을 여러 기술들 중 하나로 중성화시킨다. 쉴러에게서, 그리고 랑시에르에게서 미적 교육, 즉 예술은 “능동적 오성과 수동적 감수성 사이의 대립을 중단함으로써, 쉴러의 ‘미학적’ 상태는 예술의 어떤 이념과 더불어, 사유하고 결정하는 사람들과 물질적 노동에 운명지어진 사람들 사이의 대립에 근거한 사회의 어떤 이념을 무너뜨리고자 한다.”(60)
미학적 예술 체제는 이미지의 윤리적 체제가 부인하는 모방자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민주주의적 감성 분할은 노동자를 이중적 존재로 만든다. 그것은 장인을 ‘자신의’ 장소, 가내 노동 공간으로부터 나오게 하며 그에게 공적 토론들의 공간에, 그리고 토의하는 시민의 신분 속에 있을 ‘시간’을 준다.” 이는 “활동 분야들의 분배répartition를 지탱하는 ‘점유[footnote]점유의 원어인 occupation은 이외에도 일, 직업의 의미를 가진다. 랑시에르는 여기서 플라톤이 자신의 이상국가론에서 제시한 철학자/수호자/장인의 분업 체계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따라서 occupation의 번역어는 ‘점유’보다는 ‘일’이나 ‘직업’이 적절하다. [/footnote]들’의 분할partage을 다시 밝히”는 일이다. 그것은 또한 노동으로부터 추상된 예술이라는 “테크네의 중성화된 지위”를 문제시하고, 그 재현의 원칙이 표방하는 “관성적인 물질에의 어떤 사유 형태의 부과로서의 기술의 이념”을 문제시한다. 그리고 이런 구분의 폐기를 실천한다는 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맥락과는 다른 삶으로부터의 추상이 아닌 삶과의 연루 하에서만 가능한 예술의 새로운 자율성이 확보된다.
하지만 이것이 예술적 실천에 있어 반-모방과 비-형상화의 추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재현적 예술 체제를 ‘체제’의 측면이 아니라 ‘내적 규범’의 측면에서만 비판하는 것으로서 “예술의 자율성과 단순화된 동일시”를 한다. 반-규범이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의 반대 경향으로서 예술의 자율성을 비판하고 예술을 윤리적 실천의 특권적 장으로 삼은 리오타르같은 이는 재현할 수 없는 것을 특권화한 나머지 재현/비-재현의 구분 자체를 의문시하게 하는 예술적 실천의 고유성을 간과한다. 전자를 ‘예술의 해방’이라 부르고, 후자를 ‘예술을 통한 해방’이라 불러보자. 랑시에르에게 있어 미학 혁명이란 정확히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한다. 미학적 예술체제는 새로운 “경험 형식으로서의 정치의 장소와 쟁점을 동시에 규정하는, 시간들과 공간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과 소음의 경계설정”으로서 “감성의 분할”을 재구조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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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러에 관한 부기 쉴러는 "미적 상태ästhetische Zustand"라는 개념을 통해 이런 역설적 사태의 설명을 시도한다. 그는 예술이 사회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했으나, 그 결과 동시대의 인간성은 이성과 감성이 분열된 자기소외의 상태에 빠져 있다는 현실진단을 내린 후[footnote]다음의 언급은 “한 가지”이외의 것을 할 수 없는 노동자에 대한 랑시에르의 묘사를 떠올리게 한다. “공공단체가 직무를 인간의 척도로 삼아서, 시민들 중의 어떤 사람에게는 오직 기억력만을, 다른 사람에게는 일람표 같은 지식만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오직 기계적인 숙련만을 존중해준다면, 국가는 여기서는 품성에 상관치 않고 오직 지식만을 추구하고 저기서는 반대로 질성의 정신과 준볍적인 태도를 지니기만 하면 지성이 지극히 어두워도 상관치 않는다면, 그리고 국가가 개인에게서 범위 면에서 집요하게 제한해 준 정도로 개별적인 능력만을 밀도 있게 추구하려 든다면, 명예와 보수를 가져다 줄 단 하나의 소질에 집중하기 위해서 기질의 나머지 소질들을 소홀히 여긴다고 해서 놀랄 것이 있겠습니까?”(주경식, 「쉴러의 『미학편지』에 나타난 예술의 자율성」, 『독일어문학』 26권, 2004에서 재인용) 하지만 랑시에르는 이런 소외의 사태가 고대에도 내재해 있었다고 보는 반면, 쉴러에게 있어서 소외는 철저히 근대적 사태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총체성을 가진 인간의 전형으로 칭송된다.[/footnote], 이의 극복책으로서의 “미적 교육”을 주장한다. 여기서 미적 교육이라 함은 예술을 통해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미를 경험함으로써 감성적 본성에서 비롯된 질료충동Stofftrieb와 이성적 본성에서 비롯된 형식충동Formtrieb의 상호조화로서의 유희충동Spieltrieb을 통해 이중적 본성 모두를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첫째, 이 조화 혹은 상호작용Wechselwirkung의 과정은 한 본성이 다른 본성으로 바뀌는 일 없이 일어나며 둘째, 오로지 예술의 심미적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예술이 심미적으로 경험되지 않을 경우, 심미적 기능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의 2차적 기능 역시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footnote]조경식, 「프리드리히 쉴러의 미학서간에서 나타난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체계이론적 분석 Ⅰ」, 『독일문학』81권, 2002.[/footno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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