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번주에 뜨끔한 지적 하나를 들은 뒤로 영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다. 요는 내가 '사파'식 공부 방법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지적은 내가 그간의 자신을 돌아보며 하고 있는 생각, 이론서들을 하나의 무협지로서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과 겹쳐 심하게 괴로운 심정을 자아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자기반성이 노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아주지 않은 지적자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고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1958년에 쓴 기타 잇키에 관한 짧은 글에서 "나는 무능한 사회주의자보다는 유능한 파시스트를 유산으로 갖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약한 아군보다는 강한 적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일본과 아시아』, 328~9쪽)라고 말하며 기타 잇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사상은 진보한다는 둔사(遁辭)로서 5년, 10년, 심지어는 1년 반 만에 자신을 부정하고도 태연히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정치가와 사상사가와 교사와 문장가는 그래도 괜찮지만-혁명가로서 시대를 구획하고 기 백 년의 신념과 제도를 일변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태어난 자가 용인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내가 통감했던 대목은 사명 운운하는 것보다는 "1년 반 만에 자신을 부정하고도 태연히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사파의 방식이든 정파의 방식이든 나 스스로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간주하는 시기는 2년 남짓이다. 그 동안 나는 무언가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아무 것도 몰랐었구나하는 과정을 적어도 3번은 반복했다.
처음에는 건강한 자기반성이겠거니 했다만, 지금에 와서는 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나와 내 잡문을 믿어 준 주변 사람들이나 나 자신에게 참으로 부도덕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나는 정말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과거의 자신을 비판하고 거리를 두며 현재의 자신을 구원하려는 이 시도들에 머리가 아프다. 나는 과연 나를 얼마나 믿어도 될런지? 멀지 않은 때에 스스로와 화해를 하는 법을 익힐 수 있기를 희망한다.
2.
밤섬해적단의 뮤비(?)가 떴다. recandplay라는 영상촬영집단에서 촬영해 주신 것으로 영상은 뽀대가 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음질에 있어서나 만담의 생생함에 있어서나 이 팀의 매력이 모두 드러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다. 아마도 늦어도 4월에는 데모가 나올 것 같은데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3.
어떤 이론을 그것이 발생한 정세 혹은 역사와의 연관 하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이론의 가치를 특정한 상황에 제한해서 이해한다는 상대주의 경험주의로만 귀착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정세와 역사는 이미 그 자체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정세의 배후가 아닌 정세로서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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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모두 격하게 동감임. 특히 3번 메모는 최근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서 좀 실마리를 주는 것 같네....2번 영상은 정말 때깔나는군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