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특집 2004. 10. (통권 20호)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안 해설


지난 7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함께 마련한 비정규직 관련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번 입법안의 기초는 2000년에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마련한 입법청원안이다. 이번 2004년 입법안은 2000년 청원안을 바탕으로 하면서 지난 5년간의 비정규직 투쟁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추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근로기준법 개정안, 노동조합법 개정안, 직업안정법 개정안과 함께 근로자파견법 폐지안이 제출되었다. 이번 입법안의 내용을 그동안 비정규직 투쟁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요구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1. 기간제 고용의 제한


현재 통계청 조사만으로 보아도 전체 노동자의 55.4%가 비정규직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일 정도로 불안정노동이 확산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에 대한 법적 제한이 없었다는 점이다. 기간제 노동자의 대다수가 근로계약서상에 정해진 계약기간을 여러 번 반복갱신하면서 일하고 있다. 자본은 상시적인 업무에도 비정규직을 활용하면서,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계약기간 만료’라는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맺는 것 자체를 엄격히 제안하고, 상시적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23조(근로계약기간) 개정안>

①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

1. 출산·육아 또는 질병·부상 등으로 발생한 결원을 대체할 경우

2. 계절적 사업의 경우

3.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다만, 사업자가 동일한 목적으로 수행하는 사업은 하나의 사업으로 본다.

4. 기타 일시적·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입법안에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즉 정규직 고용을 근로기준법의 원칙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기간제 고용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일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로만 제한하고 있다. 기존 노동자의 출산·질병 등 사유로 일정한 기간 결원이 발생한 경우나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사업이 완료되어 더 이상 고용이 지속될 수 없는 경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반면 경기변동이나 주문량의 변화 등 흔히 노동유연화가 필요한 이유로 제기되는 시장상황의 변화는 해당되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업자가 동일한 목적으로 일련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을 경우, 그 중 하나의 사업이 완료되었다는 이유로 기간제 고용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점이다. 이러한 단서 조항을 둔 이유는 건설산업이나 연구기관의 경우처럼 프로젝트별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 프로젝트별로 기간제 고용을 남용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한 단지에서 현대의 아파트건설이 완료되었다고 하더라도 현대건설은 또 다른 단지를 건설하는 식으로 계속 동일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건설노동자들을 일용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근절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은 무권리의 노예노동이라는 점에서 철폐되어야 한다. 정부는 1998년 파견법을 도입하면서 “전문적인 지식․기술이 필요한 경우”나 “일시적․임시적 고용이 필요한 경우” 간접고용을 합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6년여의 경험은 간접고용이 결국은 저임금과 노동기본권의 억압을 가져올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전문적인 지식․기술이 필요한 경우라도 그것이 기업의 상시적인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면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정당하다. 정말로 일시적․임시적으로만 고용할 필요가 있다면, 그 때는 1년의 한도 내에서 기간제 고용을 사용하면 된다. 따라서 간접고용을 합법화시킨 파견법은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파견법의 폐지만으로 간접고용을 모두 근절할 수는 없다. 현재에도 파견법에 의한 근로자파견 형식이 아니라 도급계약 형식으로 불법파견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위장노무도급을 구분하여 원청과의 직접고용관계를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직업안정법에 위장노무도급을 판별하는 기준을 강화하는 안을 제출하였다.


<직업안정법 제33조의 2(도급 등과의 구별) 신설>

① 근로자를 타인에게 제공하여 사용시키는 자는 다음 각호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행하는 자로 본다.

1. 도급계약의 목적․내용이 특정되어 있고 단순히 노동력의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경우

2. 다음 각목의 사항에 관하여 도급인의 사업과 독립적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적으로 지시․관리하는 등 노동력을 스스로 직접 이용하는 경우

  가. 업무수행방법, 업무수행결과 평가 등에 관한 사항

  나. 휴게시간, 휴일, 휴가, 시업 및 종업시각, 연장근로 등에 관한 사항(근로시간 관련사항의 단순한 파악은 제외한다)

  다. 배치결정과 그 변경 및 복무상 규율, 채용 및 해고, 인사이동과 징계에 관한 사항

  라. 도급인과 구별되는 독자적 사업목적에 따른 작업조직 및 작업수행방식

3. 다음 각목에 해당되는 경우로서 도급인 또는 위임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

  가. 소요자금을 전부 자기 책임 하에 조달․지급하는 경우

  나. 민법, 상법 기타 법률에 규정된 사업주로서의 모든 책임을 부담하고, 그 근로자에 대하여 법률에 규정된 사용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하는 경우

  다. 자기 책임과 부담으로 제공하는 기계, 설비, 기재(업무상 필요한 간단한 공구는 제외) 또는 자재를 사용하거나, 스스로의 전문적인 기획과 기술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로서 단순히 근로자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경우

  라. 도급계약에 대한 보수가 수급인의 근로자의 수, 근로시간 등을 기초로 산정되는 것이 아닌 경우

② 제1항의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고의로 위장된 경우에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행한 것으로 본다.


위에서 밑줄 그은 부분이 현재의 노동부고시를 보강한 내용이다. 즉 진정한 도급관계라고 인정되려면 원청의 사업과 구별되는 사업목적과 작업조직을 가져야 하고, 원청의 필요에 따라 노동력을 투입하는 것은 위장도급으로 불법적 간접고용이라는 것이다. 현재 노동부의 입장처럼 하청업체 관리자가 있으면 그것이 곧 인사상 독립성이고 하청업체가 일정한 자본만 있으면 곧 경영상 독립성이 인정된다는 식으로는 간접고용을 근절할 수 없다. 설령 원청 관리자가 직접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지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원청의 필요에 따라 노동력이 투입되고 그 대가로 도급계약의 보수가 산정된다면 그것도 불법적 간접고용으로 보아야 한다.


3. 원청(사용)사업주의 사용자 책임 인정


입법요구안은 불법파견 근절에만 머무르지 않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따로 분명히 못박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15조 개정안>

근로계약의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당해 근로자의 근로조건 등의 결정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

<노동조합법 제2조 제2호 개정안>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근로계약 체결의 형식적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당해 노동조합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거나 또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도 같다.


근로계약상의 고용주가 아니더라도 해당 노동자의 노동조건 결정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영향력이 있으면 노동법상의 사용자로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불법파견임을 인정받고 원청에 대해 직접고용관계를 주장하는 투쟁을 주로 벌여 왔지만, 앞으로는 직접적 고용관계까지는 인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결정력이 있는 자에게 사용자 책임을 부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청 자본이 점점 더 간접고용화를 고도로 발전시켜 직접적인 지시․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원청을 상대로 하는 노동조합활동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4.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특정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자는 근로자로 본다.


긴 말이 필요없다.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위탁계약을 체결하여 일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근로계약의 체결 여부에 따라 노동법상 근로자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특정 자본에 편입되어 노동하고 보수를 받는 노동자들을 노동법상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을 현실에 맞게 넓히자는 것이다.


5.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입법안은 비정규직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직접고용․상시고용이 노동법의 원칙임을 확인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남용을 방지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원칙을 위반하여 비정규직을 사용한 경우 정규직화됨을 명시하여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23조 개정안>

④ 제4항의 기간(1년)을 초과하여 계속 근무하는 경우 그 기간을 초과하는 시점부터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본다.

<직업안정법 제33조의 3 신설>

이 법 위반의 근로자공급사업이 행해진 경우에는 공급을 받은 자가 당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 다만, 당해 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기간제고용의 경우 기간제고용을 사용해야 할 객관적 필요성이 없거나 1년 이상 기간제고용을 사용한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는 근절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법적 간접고용으로 일한 시점부터 직접고용으로 전환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6.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금지


객관적인 필요성이 있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때 동일한 가치의 노동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객관적인 직무수행능력과 노동강도, 작업조건 등 객관적인 것이어야 하고, 책임감, 성과 등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근로기준법 제5조(균등처우) 개정안>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② 사용자는 근로기간 및 시간 기타 근로형태의 차이를 이유로 고용 및 근로조건상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한다.

③ 사업주는 고용형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 사업 또는 사업장 내의 동일가치 노동에 대하여 동일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④ 제3항에서의 동일가치 노동의 기준은 객관적인 직무수행능력과 노동 강도, 작업조건으로 한다.


이번에 제출된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안은 법조문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 내용은 그동안의 비정규직 조직화․투쟁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요구들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쟁취”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비정규직의 투쟁에서 제기된 요구들을 법제도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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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2 18:42 2005/12/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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