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철아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 링크해준 사람의 글은 제대로 읽지 못했고, 형광색으로 색칠되어 있는 부분만 훑어 봤어. 그런데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냥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인적 자본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이야기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네.
사실 인적 자본론은 경제학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모형 혹은 개념 가운데 하나인데, 이걸 비판하겠다고 나서는 건 경제학 자체를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실제 경제학에서 인적 자본론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를 좀 염두에 두고 비판이 이뤄져야 할 것 같은데, 링크해준 글에서 그런 부분은 없는 것 같네.
내 생각으론 현실을 단순화 시킨 모형을, 그것이 실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지적하는 건 너무 무리한 비판인 것 같아. 그리고 이걸 학문으로 인적 자본론이 아니라, 담론으로 인적 자본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링크해준 글을 쓴 사람의 의도가 그건 아닌 것 같구.
실제 경제학에서 인적자본론 혹은 균형을 통한 논의들은, 경제학자들의 사회현상에 대한 해석에서 근간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모형이 현실에서 그대로 관철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물론 예외도 있어), 여러 마찰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인적자본론에서 주로 다루는 대상인 교육(일반적인 인적자본), 일자리(직무를 통한 인적자본), 건강에 대한 투자나 의사결정 같은 경우도, 단순히 모형에서 다루는 균형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보기보다 현실에서 정보의 비대칭성, 예산제약, 외부성( 혹은 동료효과),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선호의 문제 등에 의해서 여러 결론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서 인과관계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지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어.
경제학에서 인적 자본론을 비롯한 모형들은, 모형 자체가 밝히고 있는 내용들도 중요하지만, 어떤 조건들 하에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며,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결과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다는 부분이 정말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사실 이런 부분은 복잡한 수학이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잘 전달되지 못한다는게 문제라고 생각되지만) 이런 세부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내 생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견해를 지닌 경제학자들에게도 링크와 같은 인적자본론에 대한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 같아.
혹시 지금의 경제학이, 인적자본론이나 인간 행위의 최적화 같은 모형들을 바탕으로 실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아래에 링크한 Raj Chetty의 짧은 컬럼을 한 번 읽어주길 부탁할께. 그리고 좀더 여유가 된다면, 국내에서도 번역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원제: poor economics)를 한번 읽어주길 부탁하고. 그럼 또 좋은 글 부탁할께.
응. 자세한 코멘트 고마워~ 근데 링크된 글의 하이라이트는 내가 한 게 아니라서 그 부분만 읽었을 때는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잘 모르겠네.. 내가 Feher를 읽은 방식은 너랑 좀 다른데, Feher는 인적자본론을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오히려 인적자본이 현시대의 지배적인 주체성이 되었다는 신자유주의적 조건을 인정embrace하고, 그 위에서 너가 언급한 예처럼 환경적 변인들에 개입함으로써 다른 방식의 선택이 가능한 조건을 "좌파적 입장에서" 고려해보자는 거지. 그런 점에서 (기존의 휴머니즘적 신자유주의 비판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발적인 주장인 거고.
물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글에서 지적했지만 논의가 도식적인 데다가 너 말대로 실제 인적자본론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혹은 경제학 쪽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많이 부실하지. 기본적인 포지션이 문화연구자인 저자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저자의 비판 포커스가 인적자본론 쪽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자유로운 노동자"나 도덕 및 사회 개념에 기반한 신자유주의 비판흐름에 있기 때문이지 않을가 싶어.
내가 Feher에게 동의하는 부분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시장에 대립되는 도덕과 사회라는 가치에 의존하곤 하는데, 이 때 가정되는 도덕과 사회가 불변의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조건에 의해 이미 변화하고 있다면 어떡할 것인가?"란 질문 자체야. 이러한 변화가 최근에 사회적 경제 영역을 들여다 보면서 내가 보고자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해결책으로 페허가 제시하는 입장은 글에서도 표현했지만 그다지 동의하지 않아. (이 부분은 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니 나중에 만나서 함 이야기해보세~)
소개해 준 책은 재밌어 보이네. 잘 읽어볼께- 그런데 인적자본론 쪽이 너 박사논문주제하고 연결되어 있는거야? 아무튼 건강하고, 조만간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봅세-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