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형서점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가

 대형서점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가

_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장 chobari@gmail.com



이제 “교보 갔다 올게”라는 말만으로는,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을지언정 ‘무엇을 하러 가는지’는 알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음반, 다이어리를 구입하거나 학용품 혹은 생일선물을 사는 것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교보문고에 간다. 친구와의 약속 장소를 교보문고로 잡는 경우도 많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도 않을뿐더러 간단한 스낵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교보문고는 학생들과 연인들의 약속장소로도 활용된다. 책도 사고 음반도 사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결정적으로 서점은 돈 벌어서 좋고...


한편 이러한 대형서점들의 활약(?) 덕분에 동네서점들이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점 자체의 ‘복합문화공간화’에다 주변의 문화시설과의 지리적인 매개까지 가능하게 되면서 동네서점을 찾는 발길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동네서점의 개수는 서울지역만 하더라도 2000년 678개에서 2004년에는 413개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3000평 규모로 오픈한 잠실 교보문고에 대응하여 인근의 중소서점 상인들이 이익의 80%가 줄어드는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20~30%의 책값인하(마일리지 등으로)를 결정했다는 사실은, 대형서점의 등장이 동네서점에 미치는 파괴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파괴적인 상황이야말로 ‘진실로’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대형마트에 대한 별다른 규제를 하지 못함으로써 지역의 재래시장이 줄줄이 문을 닫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형서점들의 시장 독과점에 대한 규제나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동네서점의 위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대형서점의 입지조건이나 매장크기에 대한 제한 - 실제로 도서정가제 토론회에서 동네서점을 살리는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대안’은 완전한 도서정가제 실현보다는 서점 매장크기의 제한이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 등과 같은 조치들이 불가능하다면, 이제 우리는 대형서점과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해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형서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대형서점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이윤의 사회적 환원 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장의 독과점이란 게 결국 소비자에 대한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형서점의 사회문화적 ‘윤리’에 대한 문제제기와 규제를 통해서만이 대형서점과 동네서점이 공존하고 또한 ‘책’과 관련한 대중의 권리 - 접근에 있어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을 권리 등 - 가 증진될 수 있는 미래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독서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서점이 잘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책 읽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대형서점이 막대한 시장점유율을 기반으로 얻는 이윤의 상당부분을 독서문화진흥에 투여해야 한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부 베스트셀러 중심의 마케팅, 학습지 중심의 도서판매 등은 단기적이니 매출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특정 분야에 대한 집중현상으로 인해 출판문화의 다양성을 해치게 되고, 결국 중장기적인 매출하락의 위험을 서점 스스로 안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도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양질의 도서가 유통될 수 있도록 대형서점 스스로가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책에 대한 접근이 차별받거나 배제된 계층의 사람들 - 저소득층, 도서지역 등 - 에 대한 문화복지 차원의 서비스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이른바 ‘복합문화공간화’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대형서점의 이른바 ‘복합문화공간’은, 말이 ‘복합문화공간’이지 실상은 상업시설의 집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등 3대 대형서점들 모두 사실상 ‘다종문화상품판매전략’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영업전략을 주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돈 안내고 앉아 있을 공간도 부족한 것이 대형서점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부담없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커다란 수고가 드는 일이 아니다. 책장 간의 간격을 더 넓히는 것만으로, 빈 공간에 의자를 놓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책을 위해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 밖에도 ‘문방구 어음’과 같은 전근대적인 유통 관행에 대한 개선 문제는 대형서점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문방구어음’과 같은 관행이 상존하고, 같은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도매가가 달라지는 불합리한 관행. 그리고 대형서점과 대형출판사에 의한 일방적인 계약이 성립하는 불합리한 거래로 인해 출판시장 자체가 교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형서점 스스로가 출판유통의 투명성, 공정성, 합리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서점은 책을 ‘만나고’ 또 ‘사는’ 공간이다. 이 단순한 정의 가운데 (대형)서점이 나아갈 방향이 있다. 서점을 찾는 독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 ‘책’과 ‘독자’를 중심으로 서점 내부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 그리고 독서문화진흥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대형서점의 운영윤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오프라인 대 온라인, 대형서점 대 동네서점, 도서정가제 문제, 유통구조 합리화 문제 등 산적한 출판유통 관련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도 바로 ‘책’과 ‘독자’에 대한 고려를 전제로 한 출판 관련 주체들의 윤리의 복원과 이 주체들 간의 공존과 선순환을 위한 구조의 창출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 그런데 우리에겐 대형서점과 함께하는 미래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대형서점의 독과점적 존재를 전제한 대안 모색과 함께 영국의 헤이온와이(Hay-on-Wye)와 같은 전문화, 특성화, 집중화된 대안적 출판유통 모델을 고민하는 것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무리일까. 좀 더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다.

 

*출판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