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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그저 박수를 보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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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우미 일을 해서 일당 4만5천원을 받고는
방값, 밥값, 교통비, 약값, 술값, 담배값을 제하면
남는 게 없는 하루살이 인생.
그런데 새해가 되더니 담배값이 2천원이 올랐고
월세도 5만원을 올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
방을 빼면 흑자인생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


영화의 설정은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렇게 쉽게 방을 빼지는 못하지만
영화적 실험을 위해 과감하게 방을 뺐다.
그리고는 아는 선후배들을 찾아다니며 기거를 구걸한다.
대학시절 밴드활동을 같이 했던 이들을 찾아가는데
잘나가는 회사에 다니는 동기는 달라붙는 것 귀찮다고 딱 잘라 거절하고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동기는 사는 형편이 말이 아니고
흔쾌히 아파트로 받아들여준 후배는 자기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고
가족까지 나서서 환영해준 선배는 뜬금없이 결혼을 얘기하고
럭셔리하게 인생이 편 선배는 너무 오래 붙어있는 것에 대해 염치없다고 하고
자신의 무능에 괴로워하던 애인은 돈벌러 외국으로 나가버리고...
참으로 버라이어티하고 리얼한 인간군상들의 향연이었다.
그래도 담배는 에쎄를 피우고, 빠에서 마시는 위스키 한 잔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구질구질한 삶에서 그를 위로해주는 것은 담배 한 모금과 위스키 한 잔 뿐이었다.


영화는 삶의 구질구질함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만화적 상상력과 캐릭터로 우회를 했지만 그 우회로로 도망가지도 않는다.
현실과 영화적 설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조심조심 나아가봤는데
그 결론은
답이 나오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서 멋과 낭만을 놓치지 않는 영화적 타협이었다.


이 영화는 실제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면 만들 수 없는 영화다.
그러기에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이 100%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신파나 자의식에 짖눌리는 것 없이 깔끔하게 만든 영화다.
하지만 우회로로 돌아다니며 영화적 타협을 해버려서 더더욱 답이 나오지 않는 영화다.
“답이 나오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이렇게 답이 없는 영화를 내놓으면 어쩌란 말이냐!”
라고 항변하기에는 그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에쎄 한 모금과 위스키 한 잔으로 호사스러움을 누리며 자신의 삶을 위로하듯이
어렵게 버티며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며 자신을 다독이는 감독에게
그저 격려의 박수를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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