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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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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막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봤습니다.
어느 시골마을의 허름한 집에서 같이 살아가는 두 할머니의 얘기였습니다.


막이 할머니는 예전에 아들이 둘 있었는데 홍역과 태풍으로 둘을 모두 잃었다고 합니다.
집안의 대를 잊기 위해 당시 스물넷이던 춘희 할머니를 씨받이로 들였다고 합니다.
씨받이는 아들을 낳으면 내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막이할머니 말에 의하면 “나가 마음이 그래서 그냥 데리고 살았어”라고 합니다.
춘희할머니는 지적장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자식들도 모두 외지로 나간 그 집에 할머니 둘이 살아갑니다.
둘 다 나이가 들이 등은 굽었지만 밭일이면 집안일은 누구 도움없이 둘이 잘 해냅니다.
서로 자매처럼 의지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였죠.


나이가 많은 막이할머니는 자기가 죽은 후에 홀로 남겨질 춘희할머니가 걱정입니다.
세상물정을 배워보라고 돈의 개념을 가르쳐보니만 춘희할머니는 배울 생각이 없습니다.
막이할머니는 그래서 더 열불이 나기도 합니다.
춘희할머니 자식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중에 어머니를 거둘것같지 않은 걱정에 막이할머니는 적금을 붓고 있습니다.
없는 살림에 한푼두푼 아껴서 춘희할머니를 위한 돈을 모으는 겁니다.
“나중에 나 죽으면 양로원에라도 들어가야할거아녀. 양로원에 들어가려면 돈이 있어야지.”
막이할머니의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경건해지더군요.


내가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제 주위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겁니다.
자식도 없고 배우자도 없고 왕래하는 사람도 거의없는 흔한 독거노인이겠지요.
동생들이 그때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면 그나마 가끔 얼굴을 보는 유일한 사람일겁니다.
분명히 늙고 병들고 외로운 저를 걱정해줄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나 죽으면 쟤는 어떻하냐”며 걱정을 할 사람은 한 명 있었으면 합니다.
나이 들어서 내 목숨이나 연명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보다는
누군가를 걱정하며 한푼이라도 모아두려고 노력하는 삶이 덜 고단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춘희막이 할머니가 50년의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두 분이 지금 살아가는 그 모습을 보여줄 뿐이죠.
어쩌면 현재의 그 모습 자체가 그들이 살아온 그 세월을 보여주는 거겠죠.


저의 지금 모습은 어떤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30년 후 제 모습은 어떨지도 덤으로 잠시 생각해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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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밥을 먹고 있으면 사랑이도 자기 밥그릇으로 가서 밥을 먹습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그런거겠거니했는데 계속 그러는 거였습니다.
사랑이가 왜 그럴까 싶으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로 같은 밥상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같이 밥을 먹는 식구가 됐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는 요즘 사랑이가 제게 주는 선물은 또 있습니다.
사랑이는 제 주변에 누워있다가 제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는데
사랑이가 누워있던 자리에 발이 닿으면 그 자리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차가운 바닥에서 그 자리만 온기가 느껴지는 거지요.
그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함께 가슴 속에서는 뭉클한 기운이 올라옵니다.


제가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고
제가 밥먹을 때 같이 밥을 먹고
제가 잠을 잘 때 같이 잠을 자는 사랑이는
제가 볼일이 있어서 밖에 나가면 혼자서 집을 지킵니다.
그런 사랑이가 안쓰러워서 가급적 빨리 집에 들어오려고 하지만
볼일이 길어져서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기라도하면
사랑이는 밥도 먹지않고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때 또 가슴 속에서 뭉클한 기운이 올라옵니다.
이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하는 걸 실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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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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