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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와 카메라맨,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여주는 내공의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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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한 미국 다큐감독이 쿠바를 방문해 쿠바사회를 돌아보고 카스트로와 인터뷰를 한다.

혁명이 일어나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쿠바사회는 매우 활기차고 낙관적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쿠바를 찾은 그는 미국과의 줄다리기 속에서 갈등하면서도 열정이 살아있는 쿠바를 다시 보게된다.

그렇게 몇 년 간격으로 쿠바를 계속 방문하여 그 사회를 기록하던 중 1990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국가 쿠바에 심각한 타격이 가해진다.

그는 그 시절에도 쿠바를 방문해 휘청거리는 쿠바사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에 찾아갔을 때도 더욱 악화되고 있는 그곳의 모습을 기록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시스템을 도입하며 아사직전의 사회가 가까스로 회생하기 시작하는 모습도 담아냈다.

그리고 서서히 사회가 살아나는 과정과 그 속에서 새로운 모순이 싹트는 과정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리고 2016년 쿠바혁명의 상징인 피텔 카스트로가 죽음을 맞이하며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며 영화는 끝났다.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카메라 하나 들고 적대국가를 들락날락하면서 찍었는데

아주 오랜 시간과 아주 민감한 정치적 소재와 아주 커다란 역사적 부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너무 단순했다.

시골마을과 도시외곽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민중들과 피텔 카스트로의 모습을 몇 년 간격으로 계속 찾아가면 찍은 걸 간결하게 편집해서 펼쳐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여정과 소박한 촬영과 수다스러운 멘트와 간결한 구성으로 만들어낸 두시간짜리 다큐멘터리는 예상 외의 깊이를 보여줬다.

  

  

우선 50년이라는 세월을 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값진 다큐였다.

그 세월동안 쿠바사회가 어떤 부침을 겪었는지가 아주 잘 드러나 있을뿐 아니라 그 세월을 견뎌내는 사람들 각자의 삶에도 어떤 부침들이 있었는지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50년이라는 세월은 쿠바사회가 세계정세 속에서 심한 격변을 겪었던 세월일뿐 아니라

50대 농부가 활력을 유지하며 살아가다가 노년에 위기를 맞이하고 가까스로 위기를 헤쳐나가다 죽어가는 세월이었고

10대 소녀가 꿈을 키워가다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모진 시련을 겪다가 할머니가 되어가는 세월이었고

조그만 꼬마가 자라가면서 이런저런 세월의 풍파를 겪어내면서 중년의 나이가 되어가는 세월이었고

30대의 혈기왕성한 다큐감독이 직접 드러내지 않은 온갖 어려움들을 묵묵히 견뎌내면서 흰머리가 수북한 노년에 접어들어가는 세월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서 같이 웃고 아파하고 한숨짓고 그러다가

영화를 다 보고났더니 그렇게 단순한 구성 속에 나무와 숲이 동시에 드러났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게 내공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묵직하고 커다란 프로젝트를 오랜 세월 진행하면서 감독은 점점 눈높이가 낮아져갔다.

처음에는 미국사회의 여러가지 부조리와 부폐를 기록하고 고발하던 감독이 옆나라 쿠바에서 벌어지는 혁명적 상황들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쿠바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을 직접 보고싶어서 달려갔다가 카스트로를 인터뷰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던 것이다.

그 열정과 행운에서 시작해서 쿠바의 매력에 빠져든 감독은 카스트로에게만 매달리지 않고 민중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쿠바사회를 들여다보다가 역사의 물줄기가 출렁이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 상황에서도 정책을 주도하고 집행하는 관료나 전문가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아니라 밑바닥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민중들에게로 카메라는 계속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민중들 속에서 고정된 카메라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견뎌내는 시간에도 그들과 함께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다큐는 쿠바현대사나 쿠바민중사가 아니라 쿠바사회와 민중들의 삶에 대한 성찰이 되고 있었다.

쿠바를 알고 싶었고 민중의 맥박을 느끼고 싶었던 감독은 점점 그 혈관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의 부침을 함께한다는 것은 그렇게 핏속까지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이 다큐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피텔 카스트로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쿠바 혁명의 상징이었던 카스트로가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다뤄졌다.

그에 대한 인터뷰 비중도 당연히 높았고 그가 차지하는 위치도 중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카스트로와의 인터뷰는 점점 힘들어졌고 자연스럽게 민중들과의 인터뷰가 많아졌다.

그리고 험난한 세월을 지나오면서 간간히 카스트로와의 만남이 직간적접으로 있었지만 감독은 점점 민중들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며 촬영된 영화는 2016년 카스트로의 죽음과 함께 마무리됐지만 영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는 50년을 같이 호흡한 시골 농부의 죽음과 카스트로의 죽음이 별반 다르지않게 다뤄졌다는 점이다.

쿠바라는 사회에서 시골농부와 카스트로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그 모진 세월풍파를 견뎌내면서 삶을 마감해간 한 인간으로서 동등한 가치를 가졌던 것이다.

  

  

미국 출신의 감독이 적대국가의 문제를 50년이나 다뤄왔다면

그 세월만큼이나 어마어마하게 많은 분량의 촬영물이 있었을 것이고

그 정치적 무게감만큼이나 커다란 사회적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고

그 세월을 견뎌온 만큼이나 개인적 고민과 갈등이 엄청났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소중해서 다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아주 단순하고 유쾌한 2시간짜리 다큐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렇게 과감하게 버릴 수 있다는 것과 그 결과 아주 단순하고 유쾌한 결과물을 내놓았단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심오한 철학작품이다.

우연히 발견한 그리 유명하지않은 한편의 다큐를 보면서 참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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