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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23회


1


지난 가을 아버지의 폐암소식을 접하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찬바람만 불어왔습니다.
겨울이 시작될 즈음 세상과의 연결고리들을 끊어버리고 제 내면으로 들어앉아버렸죠.
스님들이 겨울동안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처럼 저도 이번 겨울을 동안거 기간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세상과의 접촉을 끊어버리니 조용하고 좋았습니다.
아버지의 항암치료도 초반에는 수월하게 진행됐고요.
겨울은 생각보다 춥지않아서 덜 움츠러들었습니다.


연말연초에 몇분이 연락이 왔지만 받지않았더니 ‘왜 연락을 받지 않냐고’ 항의성 문자가 오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치료는 의외의 부작용으로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고요.
그리 춥지않은 날씨 대신 전염병이 몰아쳐서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서서히 겨울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간절함과 따뜻함보다는 모호함과 불안함이 강했던 이번 겨울 제 마음에 뭐가 남았을까요?
그 마음 속을 한번 들여다봤습니다.

 


(George Winston의 ‘Thanksgiving’)

 

2


이번 겨울동안 제가 확인한 제 모습은 외부의 충격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세상에서 한발 물러나 제 자신을 다독이는 일에 집중하며 살았는데
제가 많이 성숙하고 단단해져가는줄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세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 서게지니까 금새 휘청거렸고
제 주변에는 제가 붙들고 있을 지지대가 의외로 없었고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정성스럽게 만들어놓은 자그만 비닐하우스가 강한 바람에 찢겨버리는 순간
의지할데없는 허약한 인간이 홀로 남겨져 있을 뿐이었죠.
지난 몇 년 간의 노력이 작은 비닐하우스였을 뿐이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앙상한 골조만 남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생각했습니다.
다시 비닐을 쳐야하나? 하우스를 허물고 좀더 든든한 집을 지어야하나? 침낭 하나로 살아가는 자연인처럼 강인해져야하나? 여길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야하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고개를 들었지만 딱히 답은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는 걸 하나씩 지워봤습니다.
새로 집을 짓는 건 현실적으로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제일 먼저 지웠습니다.
여기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갈데가 없기 때문에 자살을 할 게 아니라면 이것도 포기해야했죠.
침낭 하나로 살아가는 자연인의 삶은 이미 10년 동안 경험해서 처절하게 실패했기에 별로 대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시 비닐을 쳐서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바람이 거세지면 다시 비닐이 찢길테고
그러면 또 허약하고 의지할데 없는 제 자신을 확인하겠지만
그게 어쩔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Low Roar의 ‘Patience’)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봄날처럼 따뜻하고 미세먼지도 없어서 쾌청한 날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겨울이 따뜻해서 그런지 풀들은 아주 수북하게 자랐습니다.
어지럽게 자란 가지들도 미리 손질을 해야하고 풀들도 정리해야 합니다.
비닐하우스 주변에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것들도 정리해야 하고요.
겨울동안 묵혀뒀던 일들을 서서히 해야하는 때입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않고 항암치료는 계속될 겁니다.
동생들이 처한 조건들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시기이고
세상은 총선에 정신이 팔려서 어지럽게 돌아가겠죠.
제 마음의 비닐하우스도 정비를 해야겠는데...

 


(시와의 ‘사실, 난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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