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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44회

 

 

 

1

 

 

안녕하십니까, 성민입니다.

읽는 라디오 살자 백마흔네 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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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 달 넘게 이어지던 장마가 끝났습니다.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 떠있는 모습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물론 장마가 끝나자마자 폭염에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차피 맞이해야할 계절의 흐름이기에 이마저도 반갑습니다.

길어진 장마로 인해 무더위가 조금 짧아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져보면서

본격적인 폭염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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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묻혀뒀던 숙제들을 하나씩 꺼내놓았습니다.

눅눅해서 냄새가 나던 요와 베갯잇을 널어놓았습니다.

빨래도 오래간만에 햇볕을 구경하게 됐고

냄새가 나던 사랑이 가슴줄도 빨아서 널었습니다.

덩달아 도마와 칫솔과 수세미까지 널어놓을 수 있는 건 죄다 꺼내왔습니다.

한여름의 햇볕이 이렇게 반갑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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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하우스에 들어가 서너 시간 정도 일을 하고

마무리로 텃밭에서 각종 채소와 과일을 수확합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서 팽나무 아래 평상에서 잠시 쉽니다.

햇볕이 반갑다고는 하지만 땀을 흘리고 나면 그늘을 찾게 됩니다.

조금 지저분한 평상이지만 이 아래 앉아 있으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거기에 바람까지 살살 불어오면 더없이 즐겁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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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일을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밥상은 텃밭에서 따온 채소와 과일로 마련합니다.

오이, 가지, 수박, 참외, 토마토, 고추로 차려진 밥상은 시원함 그 자체입니다.

매일 똑같은 메뉴로 밥을 먹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일년 중에 이맘때 밥상이 제일 풍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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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과 채소를 배부르게 먹고도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남은 걸 비닐봉투에 넣고 이웃마을에 있는 친척 할머니에게 가져갔습니다.

할머니에게 비닐봉투를 내밀었더니 할머니는 고맙다면서 돈을 주시려고 합니다.

할머니는 제가 어릴 때부터 귀엽다고 돈을 주시곤 했거든요.

그런 할머니의 답례를 마다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일년 중에 가장 힘들지만 가장 풍요로운 요즘입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수록 시간도 점점 더디게 흘러가는데

그 더딘 시간의 흐름에 맞춰 느긋하게 풍요를 즐겨봐야겠습니다.

 

 

 

 

2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인데다가

코로나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도 해서

웬만하면 집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혼자 조용히 살아간다고 해도 외출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가끔 밖으로 나갈 일이 있기는 합니다.

밖으로 나갈 때는 혼자 집을 지켜야 하는 사랑이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분리불안이 있거나 혼자 있을 때 사고를 치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낮에는 에어컨을 틀어야 견디는데

제가 외출을 하게 되면 사랑이는 에어컨 없이 무더위를 견뎌야 하는 점입니다.

온도를 조금 올려서 틀어놓고 나갈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나갈 때 모든 문들을 다 열어놓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에게 빨리 돌아오겠다고 얘기 하고 나가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오후 4시가 되었습니다.

한낮의 폭염을 혼자서 고스란히 견디던 사랑이가

저를 보더니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마구 표현하더군요.

그런 사랑이를 보니까 얼마나 미안한지...

 

 

집으로 들어와서 얼른 에어컨을 켜서는

사랑이를 쓰다듬어줬습니다.

그리고 사랑이에게 얘기를 했죠.

“사랑아, 너 혼자 더운데 놔두고 나갔다와서 미안해. 오랫동안 기다리게 한 것도 미안해. 그런데도 이렇게 나를 반갑게 맞아줘서 정말 고마워.”

 

 

 

 

3

 

 

몇 달 동안 바쁘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이 문을 닫기도 해서 책을 거의 읽지 못했습니다.

이제 여름이 되니까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아지는데 인터넷과 tv에만 빠져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재미가 없어서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없어서 몇 페이지 읽다가 덮어버리는 책도 있지만 그럭저럭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책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여름의 독서를 하다보면 가끔 마음속에 자리 잡는 문구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문구 몇 개를 다시 꺼내볼까 합니다.

 

 

 

 

저널리스트는 사람들의 허영, 무지, 외로움을 노리고 그들의 신뢰를 얻은 다음 가차 없이 배신하는 일종의 사기꾼이다. - 자넷 말콤

 

 

 

 

자넷 말콤이 뭐하시는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분의 얘기는 통쾌할 만큼 공감이 되네요.

뉴스는 다양한 곳에서 쏟아지는데 그 뉴스들 속에서 불편한 마음만 자라고 있으니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거품 물고 떠들어대는 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해보지만 뉴스는 광고만큼이나 넘쳐나고 있어서

뉴스를 보지 않는 게 마음을 다잡는 것만큼 어렵더군요.

 

 

 

 

모두의 주의력이 심각하게 훼손된 이 사회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린 것은 바로 돈을 받고 고요한 시간을 되파는 이들이다. - 올리버 버크먼

 

 

 

 

온갖 sns가 요란을 떨어대고 수백 개의 방송채널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는 세상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건 사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가니 명상이니 하는 것들도 인기입니다.

저 역시 그런 유행에 한 발 담가놓은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소통하려고 할수록 사람들은 멀어지고 고요하려고 할수록 마음은 출렁이더군요.

그러니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순응하고 적당히 티격거리면서 살아가는 법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 그 아이가 태어나 너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 전까지 네 슬픔을 다스리고 있어라.

 

 

 

 

버선버섯이라는 분의 ‘악몽상점’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어 능력을 상실한 어떤 신이 그 상처를 치유해줄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수천년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에 처했을 때 나오는 대사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혼자서 조용히 마음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그냥 견디며 살아가는 얘긴데요

제 경험상 이렇게 살다보면 상처가 곪아터져서 고름이 질질 흐르거나 다른 병이 생겨서 헥헥거리게 됩니다.

수명이 아주 오랜 신들이야 그래도 견디며 살다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수명이 짧은 인간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다가 그냥 죽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슬픔은 다스려지는 게 아니더군요.

 

 

 

 

늙는 것에 한탄하지 말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 특권조차 누리지 못한다.

 

 

 

 

헬렌 니어링이라는 분이 노년에 펴낸 명상집 중의 한 구절입니다.

이분의 남편인 스콧 니어링이라는 분이 백살이 되니까 그만 살겠다면서 곡기를 끊고 돌아가셨거든요.

그 후에 죽음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노년의 삶에 대한 명상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이 이 책을 내셨을 때 나이가 아흔 한 살이라고 하네요.

아흔 한 살이나 됐으면 저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 한참 어린 저도 저 얘기가 공감이 되는 건 뭘까요?

제 나이까지도 살아보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 가요?

 

 

 

 

4

 

 

 

 

살아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일상다반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상다반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헤어질 때 아프고 쓰리고 슬픈 것은 어찌 할 수 없나 봅니다. 사람들은 이 헤어짐을 피하려고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머릿속으로는 그 헤어짐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원동력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늘 피하고 싶은 것은 또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헤어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아마 삶을 마감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근데 삶을 마감할 때가 돼서도 헤어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걱정이기도 합니다..^^ 걱정도 팔자입니다.ㅎㅎ 기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지 그런 생각도 한편 들기도 합니다만..^^ 사랑씨는 어떤가요?^^

 

 

 

 

어... 곰탱이님이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음... 곰탱이님이 해주신 얘기가 좀 어려워서...

 

 

아! 안녕하세요, 저는 사랑입니다.

헤헤헤 인사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어... 지난 방송에서 우정이랑 저랑 같이 노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어... 저는 그때는 좋았지만 음... 나중에는 우정이가 싫었다가 어... 지금은 좋아진건 아니지만 어... 싫은 것도 아니어서 어... 음... 하여튼 그렇습니다.

 

 

사실 우정이를 못 본지 오래돼서 우정이를 생각하지 않고 지냈는데

어... 성민이가 갑자기 우정이랑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어... 그래서 우정이가 생각난 겁니다.

뭐 그냥 그것뿐입니다.

예전에 행복이라고 잠깐 사귀었던 여자친구도 있었는데

그 애도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아서

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음... 우정이보니까 그냥 생각났습니다.

저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데...

 

 

아! 그런데 곰탱이님이 오래간만에 와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잠시 곰탱이님이 오시지 않으니까 또 발을 다치셨나하고 걱정을 했는데

음... 저는 곰탱이님이 오면 너무 기분 좋고 안 오면 심심합니다.

어... 성민이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좋으면 좋다고 얘기하는 게 좋습니다.

제가 방송에 잘 적응하게 도와준 것도 곰탱이님이기 때문에

어... 또 발을 다치지 않는다면 자주 와서 놀아주세요.

 

 

저는 처음 보는 사람은 조금 무섭지만

자주 보는 사람은 안 무섭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산책할 때 사람을 만나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어...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어... 저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기분 좋아서 말을 많이 했는데

횡설수설 얘기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어... 여러분이 조금만 도와주세요.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나서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GemDew의 ‘Domino Waltz Mus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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