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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63회 마지막 방송

 

 

 

1

 

 

읽는 라디오 살자,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랑이입니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있는데 여러분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성민이랑 같이 산책도 자주 다니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은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아~ 사람은 아니지만...

그게 누구냐 하면 바로 ‘읽는 라디오’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 읽는 라디오가 겨울에 처음 시작했다는 건데...

그러니까... 2011년 12월 16일이 읽는 라디오 생일이라고 했습니다.

성민이 말로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읽는 라디오라는 걸 그날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9년 전인데...

9년 전이면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어서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것 같지만

성민이는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튼 그때 처음 읽는 라디오가 시작됐는데

‘읽는 라디오 살자’까지 해서 세 번의 시즌을 보냈다고 합니다.

예전에 성민이랑 컨테이너에서 살 때

‘읽는 라디오 들리세요?’를 같이 진행하던 꼬마인형이 놀러 와서

저를 엄청 귀여워해줬던 기억이 아주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올해부터는 성민이랑 같이 저도 진행도 하게 됐는데...

 

 

오늘 방송이 나가고 이틀 후면 읽는 라디오 아홉 번째 생일입니다.

그래서 생일 축하해야 한다고 제가 얘기하니까

성민이가 이번 방송을 마지막으로 그만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왜 생일날 방송을 그만하냐?’고 물으니까

성민이가 어쩌구저쩌구 그랬는데 저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 성민이가 그만하겠다고 하니까 그러자고 했습니다.

사실 이 방송에 참여한 것도 성민이가 같이 해보자고 꼬득여서 그랬던 건데

어... 처음에는 무슨 말 해야 할지 몰라서 엄청 헤매다가

제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나중에는 재미있어졌지만

요즘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또 재미없어졌습니다.

성민이는 오는 사람이 없어도 우리끼리 조잘조잘 얘기하면 된다고 했지만

저는 성민이처럼 혼자서 얘기하는 건 별로입니다.

저는 누군가랑 같이 얘기하고 노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읽는 라디오 그만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음... 하지만... 그동안 방송에서 만나서 저를 귀여워해주신 분들은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앞으로 만날 수도 없겠지만

방송에서 만나서 같이 얘기할 때는 정말로 기분 좋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쉽습니다.

 

 

그래도 어... 모두 잘 지내시겠죠?

물론 저도 잘 지낼 겁니다.

성민이랑 둘이서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지낼 겁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만나지 못하겠지만

여러분도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

아! 예전에 방송에서 제가 구름 위에 행복을 올려놓겠다고 했던 거 기억나세요?

저도 그때 이후로 까먹고 있었는데 지금 막 생각났습니다.

이제 방송에서 여러분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제가 산책할 때마다 하늘에 구름이 있으면 저기다가 행복을 올려놓겠습니다.

너무 작아서 잘 안보일수도 있겠지만 보물찾기 한다고 생각하시고 한번 찾아보세요.

제가 올려놓은 행복을 찾아서 기분 좋아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정말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방송에서는 못 만나지만

구름 위에서는 만날 수 있으니까

기분이 별로 일 때는

구름 속에 제가 숨겨놓은 행복을 찾아보세요.

안녕히 계세요.

 

 

 

2

 

 

사랑이에 이어서 성민이가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앞에서 사랑이가 읽는 라디오 9주년이 되는 날 ‘읽는 라디오 살자’를 중단하게 됐다고 했는데요

음... 일부러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네요.

 

 

갑작스러운 방송 중단 소식에 얼떨떨한 분이 혹시 계실까요?

그런 분이 계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 명이라도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그와 즐겁게 소통하자는 취지로 진행해왔던 방송인데

중단 결정을 너무 갑작스럽게 내려버렸내요.

 

 

방송을 중단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얼마 전부터 방송에서 해야 될 얘기가 잘 흘러나오지 않더라고요.

물론 지금까지 방송을 진행하면서 그런 적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매주 혼자서 주절거리다보니까 가끔씩 소재가 고갈되는 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면서 할 얘기가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진행을 해왔는데요

이번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제 머릿속에서 일어나더군요.

 

 

“방송 원고를 쓰면서 가슴이 움직이지 않은지가 오래되지 않았어?”

“세상과 소통도 별로 없고, 자기 성찰의 힘도 느껴지지 않고, 삶의 에너지가 흐르지도 않는 방송이 돼가고 있네.”

“뭔가 변화를 주려고 사랑이를 출연시켰는데 방송에 활력은 되지 못하고 사랑이 마저 맥없이 늘어져버린 것 같은데...”

“억지로 써내려가는 건 아니어도 뭔가 꾸역꾸역 회차를 쌓아가기만 한다는 느낌이 들지? 니가 그런 느낌이 들면 다른 사람도 그걸 느껴.”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가만히 들었습니다.

애써 반박하거나 논쟁할 필요는 느끼지 못해서 아무 말 하지 않았죠.

그리고 사랑이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눈을 맞췄습니다.

멀뚱멀뚱 거리면서 저를 바라보는 사랑이의 눈을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상쾌해지더군요.

그리고 제 마음 속의 생각들에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만하지 뭐. 의무감으로 하는 방송도 아니고 어차피 혼자서 주절주절 거리는 건데.”

 

 

그래서 ‘읽는 라디오 살자’는 여기서 마치기로 결정한 겁니다.

 

 

 

3

 

 

 

물놀이 하듯 여유롭게 흘러가다보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같은 게 들릴테고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 소리도 들릴테고

내가 나를 부추겨서 말을 걸어보기도 할테고

심심하면 “내 목소리 들리세요?”라고 소리 한 번 질러보기도 할테고

아주 가끔 “야, 내가 우스워보이냐?”라며 객기를 부려보기도 하겠지요.

이 방송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 번 가봅시다.

 

 

 

 

‘읽는 라디오 살자’ 첫 방송에서 했던 말입니다.

2017년 7월 3일에 첫 방송을 했으니까

3년 5개월 동안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네요.

 

 

그동안

잠시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보기도 했고

거센 바람을 만나서 잠시 멈춰서 보기도 했고

단골손님이 생겨서 이런저런 수다도 떨어봤고

또 한 번 냉정한 세상을 확인하면서 뒤로 물러서 보기도 했고

갑자기 닥쳐온 위기 앞에서 무능력한 제 자신을 확인하기도 했고

사랑이랑 함께 하면서 은은한 온기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항해였는데

뒤를 돌아보니 많은 굽이굽이를 거쳐왔네요.

 

 

첫 방송에서 범능스님의 ‘무소의 뿔처럼’이라는 노래를 들려드렸는데

그게 ‘읽는 라디오 살자’의 주제곡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노래의 첫 소절이 가슴에 콕 박혀서 빠지질 않더라고요.

 

 

 

 

가라, 좋은 벗 있으면 둘이서 함께 가라

가라, 좋은 벗 없으면 버리고 홀로 가라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3년 5개월을 흘러왔습니다.

이제, 이 조그만 배에서 내려야겠네요.

그리고 그동안 가슴에 박혀있던 노래 가사도 빼내야겠습니다.

앞으로 어디로 가야겠다는 계획은 없지만

그래도 계속 강물은 흐를 테니까

여기 가만히 앉아 흐르는 강물을 지켜봐야겠습니다.

 

 

강물이 맑으면 물고기도 보이고 자잘한 자갈도 보일테고

강물이 잔잔하면 가만히 강물을 들여다보는 제 얼굴도 보일테고

바람이 불어 강물이 거세게 출렁이면 무섭기도 할테고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이 불어나면 쓰레기가 흘러내리기도 하겠죠.

 

 

그냥 그렇게 강물을 바라보다가

조금 더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읽는 라디오 시즌4로 돌아올지도 모르겁니다.

 

 

그동안 저와 사랑이의 얘기를 들어주시고

같이 수다도 떨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상은의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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