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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100회 – 마지막 음악회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백 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들풀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왔더니 백 개의 발걸음이 쌓였네요.

그리고 2년 가까이 걸어왔던 길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합니다.

오늘 방송을 준비하면서 지난 백 번의 방송을 돌아봤더니

이런저런 상념들이 떠올라 늘어놓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마지막 방송을 깔끔하게 하고 싶어서 덜어내고 덜어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방송은

지난 백 번의 방송에서 소개드렸던 노래들 중에

제 가슴에 남았던 몇 곡을 추려서

여러분과 함께 조촐한 음악회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편안한 마무리를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 음악회의 첫 곡은 윤향기와 신유가 함께 부른 ‘장미빛 스카프’로 준비했습니다.

나이도 한참 어리고 창법도 다른 후배가수와 함께 합을 맞춰 부르는데

자신은 한 발 뒤로 빠지고 상대를 받쳐주며 살살 스텝을 밟듯 불렀던

그 우아함과 노련미가 너무 좋았던 노래였습니다.

의지만 앞선 채 좌충우돌하며 헤매던 저를

살살 달래며 겁먹지 않게 만들고는

제 자신과 대면해서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준

성민씨의 내공이 이 노래를 닮은 것 같아서

고마움과 존경의 의미로 골라봤습니다.

 

 

 

 

 

2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는 세상을 향해 좀 더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상 속으로 한 발 더 다가간다는 애초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노력은 많이 했습니다.

 

세상을 향해 귀를 기울였을 때 강렬하게 들려왔던 소식이 미얀마에서의 목숨 건 투쟁이었습니다.

2021년 3월부터 시작한 방송은 자연스럽게 미얀마 투쟁에 대해 얘기했고, 투쟁의 메아리가 점점 사그라지는 상황에서도 귀를 기울이려고 했고, 투쟁이 잊혀져가는 상황에서도 미얀마 소식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미얀마 투쟁을 위해 거창한 것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처절한 투쟁을 잊지 않으려고 했던 노력은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어지네요.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를 마무리 해갈 즈음에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그 끔찍함 앞에서 할 말이 별로 없었지만 외면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서는 그런 노력을 더 할 수 없어지겠지만 제 마음속에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자리는 마련해놓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얀마에서 전해졌던 사진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사진입니다.

투쟁은 이렇게 간절하고 처절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습니다.

그 마음을 제 가슴속에 잘 간직해두렵니다.

 

 

 

(단편선과 선원들의 ‘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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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개해드린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Automat’과 오귀스트 루느아르의 ‘시골 무도회’입니다.

이 두 그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의 차이가 제가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며 변해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같이 붙여봤습니다.

 

멋스럽게 차려입고 늦은 밤 카페에서 홀로 차를 마실 때의

고단함과 위안, 외로움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는

도시 속 현대인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게 되면서

제주에서 전해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편안한 삶의 얘기들을 전했고

세상으로 향해있던 귀를 내면으로 돌려 제 마음속의 여러 상념들을 자연스럽게 펼쳐놓게 됐습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보내고 났더니

제 마음의 얘기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됐고

세상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휘둘리지 않게 됐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멋을 부린 차림으로

행복하게 춤을 추며 보여주는 미소처럼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됐는데

이제 방송을 마치게 됐네요.

 

저의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는 노래로

정밀아의 ‘서울역에서 출발’을 골라봤습니다.

엄마와 조잘조잘 통화하는 그 얘기 속에

뭐라고 꼭 집어서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들이 차곡히 쌓여있거든요.

 

 

 

 

 

4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의 애초 목표는

‘외롭고 힘든 이들에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방송’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민씨의 바램도

“자신의 얘기보다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방송 진행자로서 저는

“이 방송이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쯤 더 다가설 수 있는 역할을 해보자”고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2년을 달려온 지금 그 목표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외진 곳에 관심을 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세상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세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려고만 했었고

이곳만이 주는 안락함에 빠져들어 제 스스로가 세상에서 한 발 물러서 버렸습니다.

그 결과 저는 더없이 편안하고 여유로워졌지만 성민씨와 이 방송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본다고 했지만

제 능력의 한계만을 확인하면서 끝내는 것 같아서

그 미안함이 진하게 남습니다.

그런 미안함을 담아서 성민씨와 이 방송을 위한 노래를 골라봤습니다.

아무리 애타게 불러 봐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기에 더 애절하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노래했습니다.

김기태가 부른 ‘제발’입니다.

 

 

 

 

5

 

읽는 라디오 100회 방송을 앞두고 미리 축하 인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구수한 된장국에 따뜻한 밥 한 그릇같은 좋은 방송 응원하겠습니다.

들풀씨, 누렁이아저씨, 성민님 모두 건강하세요~~~

- 건강연구소 일동 -

 

 

100회 방송이 외롭지 않도록 득명님이 미리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따뜻해서 뭉클했습니다.

이 방송이 ‘구수한 된장국에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고리라도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외진 골목 안에 자리 잡은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백 번이나 문을 열고 닫는 동안

가끔씩 찾아와서 안부를 물어줬던 득명님, 곰탱이님

힘들어하는 저를 든든하게 받쳐줬던 성민씨

멀리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선한 눈동자를 보내줬던 사랑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줬던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들의 주인공들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 힘을 전해줬던 책과 그림과 영상의 창작자들

그 모든 분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고마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쉽게 잃어버리는 감정이 ‘고마움’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누군가의 선의에 대해 숨겨진 의도를 찾으려고 하거나

선의에 대한 보답 때문에 부담스러워하거나

짧은 고마움이 너무 쉽게 날아가 버리거나

무수한 도움보다 한 두 번의 배신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하거나 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삭막해지고 날카로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자주 놓치나 봅니다.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제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것은

바로 그런 소중한 불씨였습니다.

앞으로 감사할 것에 수시로 감사하면서

그 불씨를 잘 간직하며 살아야겠네요.

강아솔이 부른 ‘다 고마워지는 밤’ 들으면서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문을 닫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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