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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프트럭 운전기사의 편지

안녕하세요. 양희은 누님, 송승환 형님 고생 많으시죠. 벌써 두분의 포근한 목소리를 못 들은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군요. 저는 울산에 살고 있는 우리의 MBC 라디오 고정팬 전굴연(전국굴삭기연합회)의 친구 덤프연(전국덤프연합회) 회원 백창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정확한 명칭을 갖고 있지만 특정 단체로서 말씀을 못드리겠고 계속 메스컴을 통해서 무슨, 무슨 문제가 있다라고 이야기하니까 잘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울산이 고향은 아니지만 군대 제대 후 93년부터 덤프 트럭을 운전하였고 중간에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이후 24톤 덤프트럭을 운전하고 있습니다.

15톤, 24톤 구분이 잘안되시죠??
당연하지요... 그걸로 밥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를 겁니다. 저도 TV는 보지만 연예인들 이름은 잘 모르니까요. 굳이 구분하자면 15톤은 앞바퀴 2개 뒷바퀴 8개, 24톤은 앞바퀴 4개 뒷바퀴 8개로 흔히들 '앞사발'이라고도 합니다.

제가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너무나 답답하고 꽉 막힌 현실 속에서 우리 덤프가 처한 현실을 100%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만 10%라도 알려드리고 싶고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셨으면 해서입니다.

여성시대를 계속 듣고 있지만 저희보다 많은 한과 눈물로 어렵게 사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에 제 사연이 덜컥 방송되리라고는 기대치 않습니다만 만약에 방송이 된다면 여러 청취자분들도 마음을 열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사회적 시선을 본다면 '도로 위의 무법자, 도로의 파괴자, 과적, 과속, 신호위반 할 건 다하고 남들 손해 입히고 그래도 지들은 먹고 살만할 건데 왜 시끄럽게 파업을 하나 배부른 거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실 겁니다.

'저 역시 다른 직장인들이 무슨 노조니, 협회니, 파업하고 시가행진이다 뭐다 도로가 막히면 경제적 손실이 얼만데 어려울수록 노사가 뭉쳐야 사는데 지금 뭐하는거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곱지않은 시선을 보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저희가 원하는 거 너무나 단순합니다. '남들처럼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겁니다. 주 5일 근무는 못할지언정 일요일만이라도 쉬면서 가족들과 나들이도 가고 싶고... 하루 근무시간이 공무원은 몇시간인지 몰라도 직장인 8시간 준수하자는데 저희는 10시간만 해도 감지덕지합니다.

'놀면서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시겠지요.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남들보다 가난한데 어떻게 쉬겠습니까?

제가 울산에서 근 10년을 넘게 덤프 일을 하지만 어떤 때는 한달 내내 일하고 대통령 선거일, 국회의원, 구의원 선거일도 일을 해봤습니다. 비 오면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어떤 날은 현장에서 자기들이 작 업준비를 못했으니 돌아가라고 하면 항의 한번 못하고 새벽부터 몇시간을 대기하다 그냥 옵니다. 집에 오면 애들은 학교 가고, 집사람은 일하러 가고 누구랑 놀러 갑니까?

그래서 일요일도 쉬지를 못합니다. 평일에 날씨와 현장에 따라 내 의지와 관계없이 계획성없이 일 안되는 날이 있으니까요. 저는 골재운송은 새벽에 하고 낮에는 흙터파기 현장에서 일을 합니다. 건설골재운송은 새벽4시부터 상차를 하니까 집에서 새벽 2시반, 3시가 되면 나와야 합니다.

나올 때는 미리 아침, 점심 도시락을 두개 챙겨서 곤히 잠든 애들 보며 오늘도 '힘을 내야지...' 하며 조용히 일터로 나섭니다.

말이 좋아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지요... 새벽 2~3시에 일어나려면 9시 이후로는 잠을 청해야 합니다.

'애들이 그러대요...'

'딴집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켜놓고 TV도 보고 게임도 하고 다 즐겁게 노는 시간인데 우리만 자냐고...' 초등학생 아들놈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머리만 긁고 있었습니다.

맞죠... 하지만 먹고 살아야지요. 그렇게 해서 새벽에 일어나면 석산에 가서 줄을 섭니다. 물론 저보다 일찍 일어나서 앞서 있는 차도 많이 있습니다.

순번을 서서 짐을 싣고 레미콘이 골재를 나르고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울산 동해바다가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해가 훌쩍 떠있습니다. 아침 먹을 때가 지난 거죠...

부랴 부라 도로 갓길에다 차를 세우고 도시락을 먹습니다. 10분도 채 안걸립니다. 그리고 내려서 차 상태 점검하고 볼일도 보고 담배 한 개피 물며 차에 다시 오릅니다.

한 3분정도.
또 밥먹고 살려면 점심 때까지 차에서 내릴 새도없고 겁나게 달려야 합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도 죽도록 밟지요. 엑셀을...

점심 때 남은 도시락 먹고 또 차에 탑니다. 13분 정도 소요되지요.
저녁 6~7시 사이에 일을 마치고 갑니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 15시간, 우리나라 교통사고율 1위라더군요. 졸음운전,안전사고, 방지할 수 있는 사고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화물, 택시 덤프 이외의 모든 차량들도 근로시간 지켜집니까? 15시간 이상씩 일을 해도 남들처럼 살지도 못하는 현실 아닙니까?

왜 그렇게 일을 장시간해야 하는지 아시는지요.
운반단가가 10년전 단가입니다.
기름값은 오르고 운반비는 차가 많아지는 관계로 소자본가들의 덤핑으로 더 적게 떨어지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도 빚을 내서 차를 샀으니 할부는 내야죠.

한달 매출 1,000만원에서 기름값 리터당 1,200~1,300원대 한달 500만원, 할부 250만원, 타이어소모비, 보험료 100만원, 수리비 50만원 이렇게 빼고 집에 가면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전기료 등 기초생활비만 50만원을 넘고 있습니다.

차량할부금 3달 밀리면 바로 신용불량자에 압류 매매합니다.
그렇다고 차 뺏기기 전에 차 팔려고 내놓아도 차가 팔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름값 오르고 일하는 곳도 점점 줄어드는 판국에 누가 차를 삽니까?



일을 하다보면 골재도 하고 흙작업도 합니다. 흙작업은 흔히 아파트 부지나, 고속도로, 구획정리일이 대부분이죠. 과적 문제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동맥, 핏줄이라는 고속도, 지방도, 국도 모두 굴삭기와 덤프가 공사한 우리나라 건설의 기초 역군 아닙니까. 하지만 과적을 강요당합니다.
도로파괴의 주범이 됩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흙을 규정대로, 시간제로 일하면 되는데 현장에서는 짐을 적재함 위, 그것도 굴삭기 바가지로 꾹꾹 눌러서 많이 싣고 나가라 합니다.

실고 나가서 과적에 걸리면 현장은 처벌하지 않고 짐 실은 덤프차만 단속에 걸리고 전과자에 벌금도 냅니다.(50만~200만원 사이)
그렇다고 현장에다 규정대로만 실어주세요 하면 "어...그래요. 일하기싫죠...다른데 알아보세요" 이렇게 합니다.

방송이라 이렇게 표현하지 실제로는 X로 시작해서 XX로 끝납니다.
참 비참한 현실입니다. 거지도 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다른 곳에라도 갈 곳은 많을테니까요. 울산은 고작 대여섯 군데 큰 현장이 있지만 다 똑같은 현실입니다. 우리를 다그치는 분들도 답답할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는 게 없을 거니까요.

발주처, 시공자, 시행자, 전문건설, 전문하도급, 알선자 1~2단계 거치면 그들이나 우리나 제일 마지막입니다. 말로는 불법다단계 없애자고 하지만 중간에서 그렇게 남은 돈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검은 돈이 되어 어디로 흘러드는지 뻔한 사실 아닙니까?

불법다단계의 마지막은 '많이 싣고 빨리 달려야 그나마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우리'. 누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까. 규정대로 싣고 규정대로 달리고 싶습니다.
신호 위반도 하기 싫고요. 하지만 '과적에 탕뛰기'라고 해서 1회에 얼마, 하루에 최저 몇해 이상이 정해집니다.
이렇게 시간제가 아닌 탕뛰기의 노예가 되어 계속 미친듯이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름값은 왜 이리 오르는지 불과 1년새 30~40%가 올랐습니다.
경유 하루 기름 소모량 200리터를 계산하면 하루에 8만원 정도를 기름값에 보태야 하는 것입니다. 일을 해도 손해, 안하면 더 손해, 신용불량에 차를 뺏길 지경입니다.

정부는 화물, 택시, 버스 다 지원하는데 우리 덤프는 노조도 없었고 건설기계라는 이유만으로 기름값 지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건설기계는 물로 움직이지도 않고 출,퇴근용 기계도 아닙니다.

우리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고 이쪽 저쪽의 흙, 골재를 싣고 필요한 곳으로 옮겨주고 길을 닦고 바다를 메꾸는 도로 위의 건설장비란 말입니다. 화물차와 바퀴도 같고 차 크기도 같고 엔진 또한 같습니다. 다만 짐을 하차할 때 덤프와 수작업의 차이일 뿐입니다.

끝으로 한마디만 더 보태겠습니다. 울산 촌놈이 할 말도 많고 해서 요번 13일 서울에 갔었습니다. 건물도 높고, 사람도 많고, 지하철은 질리도록 타 봤습니다. 태어나 처음 머리띠 두르고 고함도 쳐보고 울분도 토해봤습니다. 전경들에게 물도 맞고 방패로 머리도 찍혀 봤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왔더군요. 젊은분, 나이드신 분, 덤프하시는 가족분들도 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동참하였더군요. 참다, 참다 얼마나 못참았으면 동참했겠습니까?

국회청사, 국회의사당, 여의도 공원을 처음으로 보면서 조금 설레였습니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면서 이내 숙연함으로 바뀌더군요. 여의도공원 아스팔트바닥에 비닐을 깔고 얇은 카시미론 침낭에 들어가 손만 내밀어 머리 위까지 비닐을 덮었습니다. 가을 찬 서리를 피해야지요... 아직 날씨는 가을이지만 여의도 공원의 밤날씨는 바람도 불고 무척이나 춥더군요.



자는 한밤 사이 척추 끝까지 서리가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조명도 없는 공원 바닥 시커멓게 널부러진 행렬이 비닐을 덮어 놓고 본 모습은 먼 나라 전쟁으로 인한 시체 보관소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밤을 지새고 서로의 어깨를 감싸주며 꽤재재한 모습으로 아침도시락을 먹는데 어느 나이드신 동료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인데 일흔이 넘은 분이 차디찬 바닥에 잠을 청하는 중에 서울에 사는 아들이 찾아 왔답니다.

"아버지 여기서 왜 이러십니까. 따뜻한 방 놔두고. 우리 집에가서 편히 주무세요." 하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여기 있는 동료들은 추운 바닥에 벌벌 떨면서 가슴에 한을 품고 있는데 나혼자만 편히 잘 것 같으면 왜 왔겠냐. 같이 자고 같이 먹으니 이것이 동료 아니냐. 나만 살고 동료들 죽게 할 수 없다. 돌아가거라..."하며 아스팔트 바닥에 잠을 청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슬픈 이야기는 아니지만 왜 그렇게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지...
동료들도 서로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더군요.

우리의 요구사항은 큰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바꿔주면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밥에 이물질이 들어 있다고 합시다. 가려내고 먹어도 또 있어요. 조용히 부릅니다.
"아줌마, 밥을 못먹겠어요. 다른 걸로 바꿔주든지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런데 먹든 말든 대답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좀더 큰소리로 외칩니다.
"아줌마 배 고파서 못살겠어요. 밥을 바꿔주든지 먹고 힘을 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지금 밥은 밥이 아닙니다." 세금 낼 건 다 내는데 이런 소리 한마디 못합니까?

저는 지금 울산에 도착해서 시민용 홍보물 전단지를 돌리다 도로를 달리는 차 앞에서 파업동참 홍보를 했다고 경찰서 유치장에 있습니다.

13일 울산에서 서울로 17일 새벽에 울산에 도착해 홍보활동하다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되어 근 일주일째 집에도 못가고 바닥 싸늘한 유치장에 앉아 이글을 씁니다. 왜 죄가 되는지 몰랐고 죄가 된다면 왜 이런 행동을 했겠습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운전만 하면서 열심히 일만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저도 처와 초등학생이 둘이 있는 가장이며 우리 늙으신 부모님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도 보고 싶고 토끼같은 자식 얼굴도 보고 싶습니다.
먹고 살기가 오죽 힘들면 집을 떠나 고생하면서 3박 4일 울부짖었겠습니까.
말도 못하는 세상이 온 겁니까. 지나가는 차 세워서 이야기 몇마디 했습니다.
같이 잘 살아보자고. 그런데 업무 방해 긴급체포 유치장이라니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돈 있으면 양반이고, 돈 없으면 상놈이다. 양반 배 부르면 상놈 배 고픈 줄 모른다." 참 명언이죠.
학력란에 무졸이지만 어릴 때 시집오셔서 부모공양, 자식 뒷바라지에 온갖 농사일로 뼈마디가 성할 날 없던 어머니. 지금은 허리도 굽으시고 어깨가 너무 좁아 보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사랑합니다.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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