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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로운 삶을 위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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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생각들을 퍼오고 퍼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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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dc:creator>성민이(mailto:)</dc:creator>
		<pubDate>Sun, 05 Oct 2008 15:32:3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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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로운 삶을 위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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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을 퍼오고 퍼가는 곳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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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무원노조 울산본부 여승선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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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어떤 노동조합이든 어용노조가 아닌 한 쉬운 활동은 없다. 그 힘겨운 노동조합을 공무원들이 만들었다. 가공할 만한 정권의 탄압, 차가운 여론, 거대 규모에 턱없이 모자란 간부역량이라는 조건을 감수하면서 10년의 세월을 버텨오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노조 울산본부 여승선 동지를 만나 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63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난 여승선은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아버지 장사가 망하면서 야반도주 같이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부산으로 옮겨온 가족은 불안정한 삶을 이어갔고,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1년 미룬 후 83년 취직한 형의 도움으로 부산 지산간호전문대학 방사선과에 입학하게 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재수는 하기 싫고, 어쨌든 1차는 떨어졌고, 2차는 어디에 할까하고 찾아보다가... 방사선과라는 것이 뭔가 과학적이고 첨단적으로 그렇게 보였어요. 홍보 사진을 억수로 멋지게 띄워놨잖아요. 깨끗하게...&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2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군 생활까지 끝내고, 88년 전공을 살린 병원생활로 사회활동을 시작하게 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88년에 제대를 했는데, 마침 학교 선배 한 분이 자그마한 병원에 있었어요. 자기가 하도 바쁘니까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게 됐죠.</p>
<p class="바탕글">그 당시에 삐삐가 있었잖아요. 선배가 삐삐를 차고 있으니까 퇴근 후에도 긴급한 일이 생기면 매일 불러들이는 거야. 나는 들어가서 CT를 일찍 배웠거든요. 그게 일반적인 촬영을 하는 것보다는 약간 고급기술이라서 CT를 일찍 안 가르쳐줘요. 그런데 이 선배는 들어가서 얼마 안 되니까 그걸 가르쳐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삐삐를 나한테 맡기는 거 있죠. 아이 참...&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그렇게 병원생활을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여승선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직원이 40여 명 정도의 자그마한 병원이었죠. 진료 과가 5개 정도 있고, 병실도 좀 있고... 이 병원도 보니까 건물 짓고 개원하면서 빚도 있고 그런가 보더라고요. 원장이 아주 좋은 차를 굴리는데 &lsquo;이런 차가 없으면 돈을 안 빌려준다&rsquo; 이런 소리를 들은 거 같애. 돈을 많이 빌리고 다녔나봐. 그러면서 원장의 사모님이라는 사람은 치와와 강아지 한 마리를 들고 다니면서 원무과에 앉아 있고... 내 그래서 치와와를 싫어해요. 분위기가 어떤지 알겠죠?</p>
<p class="바탕글">그런 분위기 속에 임금이 세 달 정도 밀렸어요. 그러면서 노동조합이 생겼죠. 우리 선배가 그걸 시작했으니까 나는 그냥 사무국장을 하게 됐어요. 내가 3월달에 들어갔으니까 병원 들어가서 몇 달 되지 않아서 노조가 만들어진 거죠. 나는 처음에는 모르고 있었어. 선배들이 만나서 작정하고 그랬나보더라고요. 나중에 나하고 얘기를 하면서 같이 하게 된 거죠. 나는 그냥 하라고 하니까 했지.</p>
<p class="바탕글">그 당시에 백병원하고 메리놀병원에 노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사무일이나 이런 거 배우러가기도 하고, 거기 있는 동지들이 와서 노래도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때 농민가, 님을 위한 행진곡, 5월 이런 노래들을 배웠지.</p>
<p class="바탕글">원장이 임금 체불되고 그러니까 일본으로 도망가쁜기라. 그러니까 진짜 대책이 없잖아요. 의사도 다 가뿔고, 환자도 다 나가뿔고... 우리가 건물 외벽에 스프레이로 &lsquo;체불임금 해결하라&rsquo; &lsquo;원장 잡아온나&rsquo; 이런 구호도 막 적어놨단 말이야. 그러면서 요금 못 내서 전기도 끊기고, 수도도 끊기고... 병원 같은 경우는 의료보험 청구를 하면 한 달이나 두 달 뒤에 나와. 그래서 우리가 의료보험 정리해서 청구를 하는 거야. 그래서 반 정도씩 월급 받은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다 떨어져 버리고... 나도 그 당시에 특별한 계획이 없었어요.</p>
<p class="바탕글">그때 노무현이를 처음으로 만났다니까. 노무현이를 만나서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니까 &lsquo;해봐야 실익이 없다. 돈 나올 구멍이 없다&rsquo;는 식으로 얘기하는 거야. 그 당시에 그런 쪽으로 일을 많이 했나보던데 나는 그런 건 잘 모르고, 변호사를 만나다고 하니까 갔었는데, 내가 들은 결과로는 그렇더라고요.</p>
<p class="바탕글">12명 정도가 농성은 계속 하고 있었죠. 처음 시작은 조합원들이 많았죠. 그 당시에 우리 집사람도 있었지. 그렇게 농성을 이어가는데 병원 앞길이 88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 길이였고 성화봉송로 환경미화관계로 공권력에 의해서 다 들려나왔죠. 밖에 나오니까 다들 막막한 거죠. 나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러다가 의료보험 청구한 게 온 게 있어서 그걸 마지막으로 해서 해산했죠.&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그 이후 여승선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부산지역에서는 병원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1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다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곳이 진주 윤양병원이었다. 고향인 남해와 가깝고 그래서 진주로 옮겼고, 두 번째 병원생활을 시작하고 결혼도 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그 당시에 시대 분위기도 있었고, 거기가 시내니까 경상대 학생들이 종종 로터리를 점거하고 그런 거를 보기도 하고, 최루탄 가스를 맡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병원의 처우에 대한 불만들이 각각 있었어요. 방사선과에 남자들이 다섯 명 있었는데 &lsquo;이래서 안 되겠다. 우리가 노동조합 한 번 만들자&rsquo; 이러다보니까 내가 또 거기에 덜렁 하게 됐어요.</p>
<p class="바탕글">노동조합을 만들려는 계기가 특별하게 튀어나온 것은 없었어요. 원장이 상당히 권위적이었어요. 원장이나 원무과 같은 위에 있는 지휘계통의 강압적인 것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차 있었죠. 나도 6개월 정도 됐으니까 분위기를 막 익혀갈 때였죠. 그 전부터 거기 있었던 선배들이 많은 불만들을 갖고 있고, 그런 분위기 속에 내가 옛날에 노동조합을 해봤다는 것 때문에 역할을 맞게 됐죠.&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진주에 있는 한국노총의 도움으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20대의 열정만으로는 노동조합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진주에는 병원 쪽으론 노조가 하나도 없었어요. 사실은 3개 병원 정도가 같이 하려고 했는데, 한 군데서는 못 하겠다 그래서 우리 윤양병원 하고 고려병원이 같이 &lsquo;한 번 만들어보자&rsquo;해서 준비했죠.</p>
<p class="바탕글">나 같은 경우는 병원의 나이 많은 선배들 하고 얘기를 하면서 서류를 갖춰갔죠. 그러던 중에 실&middot;과장들의 제어가 있었고... 그때는 그런 일을 처음 당하니까 걱정도 되고, 신경을 많이 써서 속도 쓰리고... 그래도 당시에 젊은 혈기로 했어요.</p>
<p class="바탕글">그래서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했어요. 조합을 설립하고 나니까 본격적으로 탄압이 들어오더라고요. 조합원 120명 정도였는데, 3개월 정도 밖에 못 갔어요. 진주라는 지역이 굉장히 보수적인데, 거기 일하는 간호사나 이런 사람들이 다 안면으로 들어온 거야. 그러니까 압력이 집으로 가는 거야. 나도 실장이 고향 선배니까 이 분이 아버님한테 전화를 해서 &lsquo;여승선이가 병원을 말아먹으려 한다&rsquo; 이런 협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조합원들이 떨어지더라고요. 3개월 정도 되니까 조합원이 12명 정도 남았어요. 그때는 왕성한 혈기만 있었지... 지역의 연대나 경험 있는 분들의 가르침이나 이런 게 있었으면 달랐겠지만... 거의 혼자서 했으니까... 그래서 아작이 난 거지. 고려병원도 아작 나고...</p>
<p class="바탕글">그렇게 있다가 독서회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월간지 &lsquo;말&rsquo;지를 구독하기 시작했죠. 거기서 목적의식적인 많은 것들을 받아들였어요. 독서회를 하면서 의식적으로 책도 사고, 읽어보면서 이야기도 하고... 그런 생활을 쭉 해왔죠. 그러다보니까 &lsquo;에이, 더러버서&rsquo;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는 것도 잘 안되니까 그 당시에는 벋어나고 싶은 생각이었어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그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공무원시험을 보게 된다. 생각지도 않은 공무원시험 합격과 함께 울산 생활을 시작한 것이 91년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환경위생과라는 곳이 뇌물이 상당히 심했거든요. 사람이 워낙 없으니까 9급 시보 때부터 환경관련 업무를 보면서 인허가 업무를 맡게 되었지. 그러면서 뇌물들을 많이 접하게 됐죠. 같이 간 사람이 받아서 얼마를 주는 거야. 나는 이게 막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구세군 냄비에 넣기도 하고 그랬어요. 나중에는 차츰 익숙해지더구만(웃음). 결국 위에도 가야하고 그렇더구만. 그런 거에 대한 불만들이 많이 있었던 거 같애요. 흘러 내려오는 체계에서 9급이 불만을 처리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lsquo;에에, 더러버라&rsquo;하고 뛰쳐나올 수도 없고...</p>
<p class="바탕글">그렇게 구청생활을 1년 반 정도 했었는데 솔직히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많이 만나지더구만. 내가 1년 반 정도하는데 명함이 2백 장 정도 모여지더구만. 그런 단속업무를 하면서 될 수 있으면 민원편이었거든요. 무작정 권위적인 구청의 업무를 하는 게 아닌... 야간 단속 나가보면 작은 포장마차들도 있고 그런데... 이런 불만들이 있는데도 조직적인 그런 게 있어서... 그렇게 하다가 보건소로 발령이 나서 오니까 마음이 억수로 편한 거라. 남들은 &lsquo;구청에 가야 진급이라도 하는데...&rsquo; 그러지만, 나는 보건소가 마음도 편하고, 여유도 있고 좋더라고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울산 중구보건소를 거쳐 동구보건소 방사선과에서 욕심 없이 편안한 공무원생활을 이어가던 가운데 외환위기 이후 철밥통 개념이 무너진 공무원사회에서도 조직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99년부터 합법적인 형태로 직장협의회가 각 지역별로 구성되기 시작하더니, 2001년 법적 규정을 넘어서 전국단일조직인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이 만들어지고, 이는 2002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창립으로 이어진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2002년 말쯤에 직장협의회가 생긴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보건소라는 데가 구청하고 떨어져 있으니까 소외지역이에요. 그리고 내가 행정직이 아니라 보건직이기 때문에 정보도 떨어져요. 일부러 찾아 듣지 않으면 힘들어요. 그래서 들리는 이야기로만 듣고 &lsquo;그렇구나. 있으면 좋지&rsquo; 이 정도 하면서 있었어요.</p>
<p class="바탕글">직장협의회 생기고 수련회 하면서 4명의 동지들이 &lsquo;우리도 노래 한 번 해보자&rsquo; 해서 노래패 &lsquo;비상&rsquo;이 만들어졌데요. 그 중 내가 잘 아는 동료가 한 명 있으니까 나보고 &lsquo;노래하러 온나&rsquo; 그랬어요. 나는 노래패에 들어가는 거에 대해서 고민을 억수로 했어요. 노래패가 어떤 건지 알기 때문에... 이 친구들은 &lsquo;니 노래 잘하니까 와서 노래나 해라&rsquo; 이런 식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그런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고민하니까 이 친구가 &lsquo;와? 뭘 그리 고민하는데?&rsquo; 그래서 &lsquo;가만 있어봐라. 내가 다음 주에 가서 얘기해줄게&rsquo; 그러고... &lsquo;그걸 하면 집회나 이런 데 가서 노래하고 그래야 되는데, 내가 그걸 할 자신이 있을까?&rsquo; 그런 고민을 했죠.</p>
<p class="바탕글">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lsquo;해보지 뭐&rsquo; 이렇게 결정을 했죠. 그때는 그 전에 읽었던 책이나 이런 게 많이 영향을 줬어요. 목적의식적인 게 조금은 있었던 거 같애. &lsquo;내가 집회에 서겠다&rsquo;는 이런 작정을 했었으니까.&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나이 마흔에 접어든 여승선은 2003년 공무원노조 울산본부 노래패 비상으로 다시 노조활동을 시작하면서 열정을 되찾는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처음에는 1주일에 두 번씩 연습했어요. 많은 시간들을 투자했죠. 연가도 많이 내고... 그 당시에는 전국에 공무원노래패가 울산의 &lsquo;비상&rsquo;밖에 없었거든. 정말 많이 다녔죠. 서울의 집회, 지역의 창립대회, 대의원대회... 상당히 많은 활동들을 했어요. 참 재미있고 좋았어요. 갔다 내려오면서 소주 한 잔 먹으면서 많은 얘기들을 했어요. &lsquo;이 노래는 하지 말자&rsquo; &lsquo;니들은 노래도 잘 못 부르면서... 노래를 한 번 하면 감동을 줘야 될 거 아냐?&rsquo; 이런 얘기들도 하면서...</p>
<p class="바탕글">지역에 문예활동 하는 동지들이랑 처음부터 같이 하다보니까 역량도 많이 올라오고, 그 동지들의 지도로 창작도 하고 그랬으니까. 그러면서 노래라든지, 창작이라든지, 문예운동에 대한 이런 거까지 고민하면서 역량이 많이 늘었어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출범과 함께 모진 탄압을 이겨내야 했던 공무원노조는 그게 맞서 치열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두 번의 연가파업에 이어 2004년 공무원노조의 총파업이 선언된다. 그러나 총파업은 하루 만에 끝이 났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그때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게, 지역이 거의 방치돼 있었거든요. 그때 나는 서울에 있었는데, 보건소에서 나한테 계속 전화 오는 거야. &lsquo;여 주사님, 과장이 들어오라고 하는데요&rsquo; 이러는 거예요. 현장에서 누가 책임져서 대처를 하거나, 대오를 어디 모아서 착착 대처를 해야 되는데, 이런 게 없는 거예요. 다 자기가 알아서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서울에 올라가서도 &lsquo;이렇게 전화가 오는데, 이렇게 방치해서 되냐?&rsquo; 그랬는데... 다른 지역에 보니까 조직한 곳이 있기도 한데, 목적의식적으로 된 게 아니라 &lsquo;야유회나 가자&rsquo; 이런 식으로 된 거 같고... 그러다보니까 한 두 사람 경찰에 붙들려가고 그러면서 얼마나 불안해요? 울고 불구 난리 나는 거야.</p>
<p class="바탕글">서울에서의 1박2일의 일정은 상당히 타이트했죠. 전체 노동자대회에서 파업선언을 하고 공무원노조만 빼서 연세대로 갔단 말이야. 산개해서 가는데 학생들을 따라가기도 하고, 빨간 모자를 따라가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어쨌든 잘 모르니까 막 따라가는 거야. 그러다가 거의 다 왔나 봐요. 지하철이 공무원노조 조끼로 가득 차는 거야. 그때 머리가 쭈삣쭈삣 하는 거야. 감동이 막 끓어오르잖아요.</p>
<p class="바탕글">연대 입구에서 광장까지가 제법 멀데. 학생들이 대로를 차단해서 차 세우고 &lsquo;빨리 오세요&rsquo; 막 이러는데, 가슴이 막 뛰는 거예요. 그렇게 뛰어가서 그 밤에 연세대 노천광장에서 집회를 하면서 정말 감동이었지.&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하루 만에 끝난 총파업에 이은 후폭풍은 대규모 징계였다. 4개 구청이 파업에 들어갔던 울산은 대량징계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출신 구청장이 있었던 북구와 동구가 징계를 거부하면서 남구와 중구에서 먼저 징계가 이뤄졌다. 징계를 거부하던 북구와 동구마저도 양 구청장이 행정명령 불이행으로 기소된 후 법원의 실형선고와 함께 업무가 정지되면서 2006년부터 징계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북구하고 동구가 늦어지면서 울산 전체로는 징계가 2년이 간 거예요. 징계국면이 너무 오래간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조합원들이 많이 지쳤지. &lsquo;중구하고 남구는 가서 울었다&rsquo;는 둥 어쨌다는 둥 이런 얘기들은 들리고, 북구하고 동구는 징계는 없이 일은 하지만 신경은 쓰이고... 노래패도 그러면서 그만 두는 사람이 생기고...&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그 뒤를 이어 몰아친 것이 2006년 공무원노조 탈퇴 지침과 지부사무실 폐쇄 행정대집행이었다. 당시 행정대집행이 벌어지던 2006년 9월 20일 현직에 있던 여승선은 연가를 내고 행정대집행 저지투쟁에 결합하게 된다. 그러나 여승선의 연가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어 징계위에 회부돼 파면 처분을 받게 된다. 해고자 신분이 된 여승선은 지부와 본부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달라붙게 된다.</p>
<p class="바탕글">정권의 계속 강경탄압에 맞서오던 공무원노조 내부에서는 대응방식을 놓고 합법노조로 전환하자는 온건파와 기존 공무원노조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경파가 대립하게 된다. 결국 온건파는 2007년 독자적으로 대의원대회를 열어 민주공무원노조로 분리하게 된다. </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조합이 아작 나고 갈라질 때 나는 억수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쨌든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lsquo;이것저것 다 싫다&rsquo; 이럴 수는 없으니까. 2007년 7월달인가 저마들이(민주공무원노조 추진 세력) 대의원대회(독자적으로 민주공무원노조를 창립하기 위한 대의원대회) 잡고, 우리 공무원노조는 광화문 앞에서 한 달 단식투쟁을 하고... 그때를 마지막 선택지점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때까지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이렇게 찢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내가 올라가서 광화문으로 갔거든. 1주일 동안 전국순회를 하는 팀에 끼어서 여러 지역의 동지들을 만나보니까 뭘 해야 되는지 알겠더라고. 그렇게 해서 마음을 다 잡기도 하고... 그때 나한테는 억수로 중요한 고비였어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계속된 탄압과 대규모 징계 등으로 무너진 조직력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해고된 간부들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노동조합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공직사회 구조조정과 자치단체장들의 공직사회 통제권은 더 강화되기만 했다. 그래서 여러 현안문제를 갖고 힘겨운 역량이라도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이길 수 있다는 이런 거 보다는 이걸 가지고 노동조합의 인정이라든지 이런 걸 해내면서 다음에 할 때는 아무래도 안됐겠나 싶어요. &lsquo;알았어&rsquo; &lsquo;잘못했어&rsquo; &lsquo;미안해&rsquo;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p>
<p class="바탕글">문제는 간부만 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함께 해야 하는 거예요. 조합원 하고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lsquo;조합원 하고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rsquo; 고민하고 있어요. 이런 저런 거 고민하고 찾아보고 있는데...</p>
<p class="바탕글">여기저기서 민공노(민주공무원노조)가 단협을 갖고 가니까 기관측에서 민공노 하고 우리(전국공무원노조)를 분리하려고 해요. 동구가 아침 조기출근문제로 1인 시위 하는데 민공노랑 같이 하자고 해서 하고 있어요. &lsquo;어쨌든 뭔가 손 하나라도 같이 걸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rsquo; 이런 고민을 해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많지 않은 간부들도 서로 많이 지쳐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얼마 전에 술을 진탕 먹은 적이 있어. 그런데 한 동지가 나한테 &lsquo;내가 나태해져서 미안하다&rsquo;고 그러더라고. &lsquo;좀 더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rsquo;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팍 땡길 수 있는 어떤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같이 이런 고민들 해보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현장 일상 활동과 함께 여승선이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 학습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지금 우리가 교양학습을 6강을 하고 있거든요. 내부에서 기본적으로 하고 필요하면 외부강사로 한다고 해서 하고 있고... 우리 동지들이 투쟁의 사이클을 올리려면 교양학습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교육학습에 대한 얘기를 했고...&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공무원노조 노래패는 3명으로 줄어들어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워졌다. 그래서 울산노동자노래패연합이라는 형태로 지역의 여러 문예활동가들과 함께 공동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속에서도 문예활동가들이 자기들만 모여서 연습하고 공연만 하는 식의 활동을 넘어서기 위한 모색들도 이뤄지고 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노래패연합만 보더라고 이제까지의 공연이 한정된 장소에서 했는데, 2008년에는 거리에서 대중과 직접 접촉하는 그런 고민을 하다보니까 거리공연을 두 번째 했거든요. 앞으로 계속 해나가자 할 작정이고...</p>
<p class="바탕글">만들어진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창작을 하는... 자기 현장의 정서는 자기네가 가장 잘 알거든요. 예를 들어 예전에 미포(현대미포조선)에서 만든 &lsquo;해라 마라 좆까&rsquo; 이런 노래도 그 현장이 아니면 나올 수 없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그런 현장의 정서를 담은 창작을 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p>
<p class="바탕글">어쨌든 불러 모으는 공연이 아닌 가서 만나는 공연을 하자는 고민이 있죠.&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40대 중반을 넘어서 나이 쉰이 보이기 시작하는 여승선은 미래를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나는 한 때 &lsquo;남들은 나를 활동가라 하는데 내가 활동간가?&rsquo;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거든요. 지금은 활동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고민 끝내고 나니까 달라지더구만요. 내가 해야 될 일이 뭔지 알게 되더라고요. 처음에 나는 사실 한쪽 발은 빼고 있었던 것 같애... &lsquo;활동가가 얼마나 어려운데&rsquo; 하면서...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하면서보니까 &lsquo;지역의 문화행사나 가고, 연대나 열심히 가고 하는 것&rsquo;에서 넘어서지를 못하더라고요.</p>
<p class="바탕글">한때는 지도에 대해서 상당히 목말라 했어요. &lsquo;뭔가 좋은 거 없나?&rsquo;해서 강의 들으러 가고 그랬었는데, 그것도 &lsquo;나는 활동가다&rsquo;라고 작정을 하니까 큰 문제없어요. 그때는 &lsquo;누가 없을까? 누가 나를 안 가르쳐주나?&rsquo; &lsquo;이런 고민들 확 트이는 얘기 누가 안 해주나?&rsquo; 이랬었거든. 그런데 그걸 넘어서고 나니까 자유로워져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도통한 거 같아서 이상한데 (웃음)... 마음이 편해지면서 &lsquo;조합원은 간부의 거울이다. 열심히 하자&rsquo; 이런 마음이에요.</p>
<p class="바탕글">그래서 미래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어요. 지금 열심히 하는 만큼이 미래라고 생각하니까.&rdquo;</p>
]]>
			</description>
			<author>성민이</author>
			<category>새로운 삶을 위한 생각</category>
			
			<pubDate>Sun, 05 Oct 2008 15:32:32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comworld/?pid=510</guid>
			<title>로베스피에르</title>
			<link>http://blog.jinbo.net/comworld/?pid=51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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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 1793년 4월 21일 자코벵 클럽에서 낭독한 로베스피에르의 인권선언 초안</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1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이 지닌 자연적이고 시효에 의해 소멸되지 않는 자연권의 유지와 인간의 모든 능력의 발전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2조 인간의 중요한 권리들이란 그의 생존과 자유를 보존할 수 있게 해주는 권리들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5조 자유는 인간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자신의 뜻대로 행사하는 힘이다. 자유는 정의를 모범으로, 타인의 권리를 한계로, 자연을 원칙으로, 그리고 법을 보호자로 삼는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9조 앞에는 로베스피에르의 해설이 있다. &ldquo;먼저 소유권에 대한 여러분의 이론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조항들을 제안하겠다.&rdquo; 그에게 중요한 주제들이 이어진다. 즉 재산의 평등은 망상에 불과하고, 궁정에서 악을 행하는 것보다 초가집에서 덕을 행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갑자기 어조가 바뀐다. 그는 콩도르세 후작과 지롱드파 부르주아지의 위임을 받은 의원들을 공격한다.</p>
<p class="바탕글">&ldquo;이 인육(人肉) 상인에게 소유권이 무엇인지 물어보라. 그는 자신이 생존자들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넣어 보관해두고 선박이라고 부르는 이 긴 관을 보여주면서 여러분에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소유물들이다. 나는 일인당 얼마씩을 주고 이것들을 샀다. -토지와 가신(家臣)들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이것들을 더 이상 소유하지 못하면 곧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믿는 이 귀족에게 물어보라. 그는 소유권에 대해 거의 유사한 생각을 보여줄 것이다. -카페 왕조의 위엄 있는 성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모든 소유물 중 가장 신성한 것은, 이의의 여지없이, 프랑스 영토에 살고 있는 2천5백만의 사람들을 자신의 뜻에 따라, 합법적으로, 군주로서 억압하고, 타락시키고, 쥐어짤 수 있는, 그들이 예로부터 누려온 대대로 내려오는 권리라고 말할 것이다.</p>
<p class="바탕글">이러한 사람들이 보기에 소유권은 어떠한 도덕적 원칙에도 근거를 두지 않는다. 우리의 인권선언이 인간의 제일 가는 재산이며 자연으로부터 받은 가장 신성한 권리인 자유를 정의하면서 같은 오류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왜인가? 우리는 자유의 한계가 타인의 권리라는 것을 타당하게 이야기했다. 왜 여러분은 이 원칙을 하나의 사회적 제도인 소유권에 적용하지 않았는가? 마치 자연의 영원한 법이 인간의 관습들보다 덜 신성하거나 한 것처럼! 여러분은 소유권을 행사할 가장 큰 자유를 확고히 하기 위한 조항들을 늘리면서 그것의 성격과 정당성을 결정하기 위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여러분의 선언은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해서, 매점자들, 투기업자들, 전제군주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p>
<p class="바탕글">나는 다음과 같은 지리를 확립함으로써 이러한 결점들을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9조 소유권이란 각 시민이 법으로 그에게 보장된 몫의 재산을 향유하고 마음대로 처분하는 권리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10조 소유권은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의무에 의해 제한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11조 소유권은 우리 동포들의 안전, 자유, 생존, 재산을 해칠 수 없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12조 이 원칙을 침해하는 모든 소유, 모든 거래는 본질적으로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15조 사회는 온 힘을 다해 공적(公的) 이성의 진보를 고무하고, 모든 시민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18조 [......] 민중은, 원한다면, 자신의 정부를 바꾸고, 자신의 수임자들을 해임할 수 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22조 [......] 사회는 노동으로 생활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생활과 가족의 생활을 해치지 않으면서, 법이 출석을 요구하는 회의들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26조 압제에 대한 저항은 인간과 시민의 다른 권리들의 결과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27조 사회 구성원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압제당한다면 사회체가 압제당하는 것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28조 정부가 민중을 억압할 때, 민중 전체와 민중의 각 부분의 반란은 가장 신성한 의무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30조 압제에 대한 저항을 법률적 형식에 종속시키는 것은 전제정에 대한 최종적인 장식이다. ...... 민중이 선령하고 관리들이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 모든 제도는 사악한 것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32조 민중의 수임자들이 저지른 범죄는 준엄하고 용이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자신이 다른 시민들보다 더 큰 면책특권을 갖는다고 말할 권리를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마지막 네 개의 조항 앞에 로베스피에르의 새로운 해설이 있다. &ldquo;위원회는 또는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우애의 의무와 그들의 상호원조의 권리를 확고히 하는 것을 잊었다. 즉 전제군주들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영원한 동맹의 토대를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분의 선언은 소유하고 거주하도록 자연으로부터 땅을 제공받은 거대한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의 한구석에 몰아넣어진 한 떼의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다음의 조항들은 여러분이 끊임없이 왕들과 불화를 겪게 만드는 단점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고백하건대, 이 단점은 결코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 그들과 화해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 역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33조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형제이고, 여러 민족들은 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힘이 닿는 대로 서로 도와야 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34조 한 국가의 국민을 억압하는 자는 모든 국가의 국민들의 적으로 선언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35조 자유의 진보를 방해하고 인간의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한 민족에게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예사로운 적이 아니라 살인자이자 반도로 기소되어야 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36조 왕들, 특권층, 독재자들은 누구든 지상의 주권자인 인류와 우주의 입법자인 자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 1794년 5월 26일 두 차례 암살 시도 적발 후 자코벵클럽에서의 로베스피에르의 발언</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그러나 즐거워하고, 하늘에 감사합시다. 전제정의 비수를 맞을 만하다고 판단될 만큼 우리가 조국에 크게 봉사했으니 말입니다...... 왕들과 그 시종들이여,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와 벌이는 것과 같은 전쟁에 대해 불평하지 않으며, 나아가 그 전쟁이 여러분에게 신중하고 위엄 있는 고려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의 원칙이나 우리의 군대에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우리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사실상 훨씬 더 쉬운 일입니다...... 지상의 강대국들이 미약한 한 개인을 살해하기 위해 동맹을 맺는다면, 아마도 그 개인은 사는 데 집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오래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압제자들에게, 그리고 훨씬 더 위험하게는 모든 악당들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p>
<p class="바탕글">...... 나는 오직 조국에 대한 사랑과 정의에 대한 갈증 때문에 일시적인 삶에 집착할 뿐이며, 지금은 어느 때보다 더 개인적인 사정에서 벗어나 내 나라와 인류에 대항해 음모를 꾸미는 모든 악당들을 정력적으로 공격할 태세가 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그들이 이승에서의 나의 삶을 끝장내려 서두를수록, 나는 나의 동포들의 행복을 위한 유익한 활동으로 내 삶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에 조급해집니다. 나는 적어도 압제자들과 그들의 모든 공모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유언장을 남길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 나는 충분히 살았습니다. 나는 프랑스 민중이 비천함과 예속의 한 가운데에서 영광과 자유의 정점으로 도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민중들의 족쇄가 깨지고 세상을 짓누르는 비난받아 마땅한 왕좌들이 승리한 민중들의 손 아래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완수하십시오. 시민들이여, 당신들의 숭고한 운명을 완수하십시오. 여러분은 인류의 적들의 첫 번째 압력을 견뎌내도록 우리를 전위에 서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영예에 걸맞는 자격을 갖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대항하는 전 세계의 모든 괴물들을 제거하고, 이어 민중의 축복과 여러분이 덕성의 열매를 평화롭게 누리는 데 필요한 이 변함없는 힘을 여러분이 쉼 없이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장 마생 지음, 교양인) 중에서</p>
]]>
			</description>
			<author>성민이</author>
			<category>새로운 삶을 위한 생각</category>
			
			<pubDate>Tue, 23 Sep 2008 14:17:29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comworld/?pid=509</guid>
			<title>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을 때 (루이스 세풀베다)</title>
			<link>http://blog.jinbo.net/comworld/?pid=509</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을 때 (루이스 세풀베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하지만 나의 신들은 나약했으며 나는 미심쩍어했다.</p>
<p class="바탕글">- 안토니오 시스네로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을 때면 내 말을 떠올리고 마마 안토니아의 집으로 가보십시오.</p>
<p class="바탕글">그곳을 찾기란 아주 쉽습니다. 부둣가에서 아무 남자나 붙잡고 물어보면 별다른 서론 없이 낡은 목재 건물까지 가는 길을 알려 줄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어쩌면 입구에서 좀 놀라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착각해서 주교의 집에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벽면을 장식한 어린 천사들의 중성적인 얼굴은 무시하고, 문턱을 넘어 초인종을 딱 한 번만 누르십시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와 당신을 맞이할 겁니다.</p>
<p class="바탕글">하여간 아주 이상하게 생긴 남자입니다. 항구 근처 술집들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그 남자는 질투심이 엄청난 한 남편한테서 도망치다가 전차에 치여 두 다리가 잘렸으며 자신의 비극을 토해 내기 위해 기어서 마마 안토니아의 집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또 들리는 얘기로는, 마마 안토니아가 몸이 반 토막이 나서 거의 죽어 가는 남자를 불쌍히 여겼다고 합니다. 마마 안토니아가 치료비까지 물어 절단된 부위를 불로 지진 다음, 초인종을 울리면 놀란 신학생처럼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용수철로 된 복잡한 시스템의 이동 장치를 만들도록 했다고 합니다. 항구의 술집들에서 떠도는 얘기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부두 노동자들의 입이 어떻다는 건 잘 아시겠지요.</p>
<p class="바탕글">반 토막짜리 남자가 허술하게 생긴 방명록을 가져올 겁니다. 그는 거기에다가 당신의 이름, 나이, 직업을 적고, 마지막으로 왜 울고 싶은지 물어볼 겁니다. 당신이 울고 실은 이유를 정확히 모르거나, 아니면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성통곡하거나 조용히 울 수 있게 충분한 이유를 주는 것도 그 집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반 토막짜리 남자는 작은 수레 위로 껑충 뛰어 올라가 어두운 복도를 따라 문이 열려 있는 곳까지 당신을 안내할 것입니다. 그 방에는 침대 하나와 의자 하나, 거울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당신은 좀 긴장할 겁니다. 거의 확실하게 긴장할 겁니다. 하지만 믿어야 합니다. 마마 안토니아를 믿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들 겁니다. 당신이 도망치려는 순간, 방 안으로 들어설 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난 체구를 지닌 비대한 여자가 문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p>
<p class="바탕글">여자는 한마디 말도 없이 헐떡거리며 당신이 있는 곳까지 와서 당신을 침대 위로 밀쳐놓고는 당신 위로 올라타 당신의 편도선이 있는 곳까지 혀를 깊숙이 밀어 넣으면 키스할 겁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숨 막혀 죽을 듯한 느낌이 들 때 여자는 옆으로 돌아누워 당신을 계속 쳐다보며 옷을 벗을 겁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여자는 당신을 증오로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볼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증오심이라서 헐떡거리는 숨소리도 계속 커질 것입니다. 그 여자가 마마 안토니아입니다.</p>
<p class="바탕글">당신은 무질서하게 출렁거리는 꺼무죽죽한 살덩어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호박처럼 커다란 젖가슴에, 꼭 움켜쥔 주먹만 한 두툼한 젖꼭지, 술통만 한 거대한 다리, 그리고 그 가랑이 사이, 쭈글쭈글하게 주름 잡힌 비곗더미 아래로 비밀스러운 음부를 뒤덮은 음모를 보게 될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그리고 당신은 그 살덩어리가 계속 출렁거리고 잇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드는 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젤라틴이 방 안 가득 흘러넘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단지 당신을 옥쥐며 신음만 내뱉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소름이 돋을 듯한 몸동작으로 흐느적거리며 자기 몸 안으로 들어오라고 당신을 초대하며 늑대처럼 울부짖을 겁니다.</p>
<p class="바탕글">당신은 막다른 골목에 갇힌 기분이 들 것입니다. 당신이 있는 곳은 벽 네 개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도망치기 위해 어떤 벽면을 선택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여자가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터져나갈 듯한 두꺼비 소리가 들릴 겁니다. 그녀는 눈을 허옇게 치켜뜨고는,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혓바닥을 입술 밖으로 쭉 내밀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녀가 얼마나 큰 오르가슴에 도달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녀의 오른손이 쉬지 않고 가랑이 사이로 들락거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그러면 이제는 당신도 모르게 흥분해 있는 당신 자신에게 놀라 신음을 토해 내게 될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어느 것도 음탕하지 않으니까요.</p>
<p class="바탕글">당신은 옷을 마구 벗어던지고는, 개처럼 헐떡이는 살덩어리 위로 올라탈 것입니다. 땀범벅이 되어 후끈하게 달아오른 살덩어리 위에서 당신은 어디를 집어도 푹푹 빠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 살덩어리에 키스하고, 깨물고 아프게 하면서 고통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고통을 말입니다. 당신은 성기로 비밀스러운 구멍을 찾으며 마구 칠 것입니다. 추악하고 맹목적인 음경이 당신을 몰아붙이기는 하지만 점점 커져만 가는 당신의 요구는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뭔가를 더 완할 것입니다. 수치심 이상의 그 빌어먹을 뭔가를 말입니다. 당신은 혀가 있다는 걸 떠올릴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랑이 사이로 혀를 집어넣으려는 순간, 마마 안토니아는 당신을 한쪽으로 밀어젖힐 것입니다. 자위로 오르가슴에 이르려는 순간, 당신이 거치적거릴 테니까요.</p>
<p class="바탕글">그제야 당신은 공포에 치를 떨며 몸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제야 당신은 혐오를 느낄 겁니다. 당신은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모습은 절대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마 안토니아만이 하염없이 침을 흘리며 헐떡이는 거대한 살덩어리를 드러내놓고 있을 테니까요.</p>
<p class="바탕글">당신은 서둘러 옷을 입고는 문을 열려다가 문이 밖에서 잠겼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은 내보내 달라며 반 토막짜리 남자를 부르면서 소리 지를 겁니다. 당신은 문을 열어 주는 조건으로 반 토막자리 남자에게 돈과 팔찌 시계, 당신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을 모두 주겠다며 소리 지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고함보다는 마마 안토니아의 고함이 더 크게 들릴 겁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게 당신은 나무 바닥을 긁으며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엉엉 울고 있을 겁니다.</p>
<p class="바탕글">당신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울 것입니다. 미친 듯한 대성통곡도 점차 잦아들어 아무 죄 없는 사람이 흐느끼듯 조용히 훌쩍거리게 되겠지요. 당신이 울다가 지켜 고개를 돌리면 마마 안토니아가 그새 옷을 입고 침대에 앉아 동정 어린 눈길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때 당신은 수치심에 울게 될 것입니다. 마마 안토니아가 당신을 자기 곁으로 불러 당신 머리를 쓰다듬으며 코를 풀어 주고 침도 닦아 주며 이제는 기분이 괜찮아졌는지, 아니며 더 울고 싶은지 물어볼 겁니다. 한 번 더 울고 싶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찌 됐든 그 집은 예의상이라도, 나가는 길에 양쪽 눈에다가 레몬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고 부어오른 눈두덩이 가라앉도록 얼음 한 덩어리씩 주니까요.</p>
]]>
			</description>
			<author>성민이</author>
			<category>문학적 감수성</category>
			
			<pubDate>Tue, 16 Sep 2008 00:03:30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comworld/?pid=508</guid>
			<title>기륭</title>
			<link>http://blog.jinbo.net/comworld/?pid=50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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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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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시청과 청계광장에서, 그리고 기륭전자 앞에서 촛불을 들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석 달이 돼 갑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시청과 청계광장에서의 두 달은 엄청난 활력과 상상력을 뿜어내면서 저를 흥분하게 만들었고, 기륭전자 앞에서의 한 달은 엄청난 무거움과 힘겨움으로 저의 모든 것을 빼가고 있습니다. 투쟁은 이렇게 즐겁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힘이 만들어지고 빠져나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투쟁이 끝나고 나면 그곳에 뭔가 새로운 것이 생기기도 합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지금 기륭전자 투쟁이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완강함 속에 다양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사측과 정권의 강경함에 비해서는 2%가 아니라 20%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p>
<p class="바탕글">매일 촛불 들러 가고 가끔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저도 이 시점에서 작은 결단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동안 기륭투쟁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얘기를 쏟아내고, 제가 갖고 있는 메일링리스트를 삭제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륭 앞으로 촛불을 들러 가는 한 사람으로만 남으려고 합니다.</p>
<p class="바탕글">그렇게 내가 불사를 수 있는 것을 불살라서 기륭투쟁이 승리하면 좀 더 대중 속으로, 계급의 밑바닥으로 들어갈렵니다. 만약, 그 반대의 결과로 이어진다면 활동을 정리할 생각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단식 45일째에 처음 기륭전자 앞에 갔던 저는 한없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그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저를 기륭전자 앞으로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런데 서울이라는 지역의 모습은 정말 상상 외였습니다. 단식 45일을 맞아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마련된 1박2일 집중집회에는 150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였을 뿐이고, 그 사람의 대부분도 집회가 끝나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촛불집회에는 기륭전자 조합원 10명, 조직적으로 돌아가면서 참여하는 학생 10여명, 기륭공대위 관계자 몇 명이 전부였습니다.</p>
<p class="바탕글">제가 울산에 있을 때, 그렇게 비판을 받는 지역이었지만, 단식 투쟁이 20일을 넘기고 30일을 넘기면 지역의 역량이 최대한 모여서 어떻게든 해결을 보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울산에서는 단식투쟁이 최대 45일을 넘기지 않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lsquo;지역&rsquo;과 &lsquo;현장&rsquo;과 &lsquo;여성&rsquo;과 &lsquo;비정규직&rsquo;을 그렇게도 강조하면서 울산의 운동을 그렇게 비판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막상 서울이라는 자기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lsquo;지역&rsquo;과 &lsquo;현장&rsquo;과 &lsquo;여성&rsquo;과 &lsquo;비정규직&rsquo;의 모든 것이 합쳐져서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기륭전자 투쟁에서 그들의 무수한 말과 글들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었습니다. &lsquo;말과 글로서 하는 운동&rsquo; &lsquo;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운동&rsquo;의 씁쓸한 모습을 기륭전자 앞에서 보고 말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광화문에서 전경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시위대들이 전경들을 향해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ldquo;부끄러운줄 알아야지!&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거대한 시민들의 정치투쟁이 벌여지던 광화문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기륭전자 앞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 중의 하나는 노동운동의 무기력과 무능함이었습니다. 제가 봤던 여러 가지 모습 중 금속노조가 보여줬던 인상적인 장면 두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6월 10일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던 날이었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가득 매운 이날 금속노조는 서울집중 지침을 내리고 수 백 명의 금속노조 간부들이 모였습니다.</p>
<p class="바탕글">끼리끼리 모여서든 혼자서든 다양하게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과 달리 금속노조에서 제작한 티를 맞춰 입고 아주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행진을 했습니다. 방송차를 앞세우고 지도부가 플랭카드를 들고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벌인 금속노조 간부들은 독립문 앞에 뒤늦게 도착해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광화문으로 돌아갔습니다. 전경들의 봉쇄 속에 싸움을 벌이기 위한 모색을 하기도 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로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투쟁을 즐기기라도 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조직적이고 질서정연한 금속노조 간부들은 앞쪽에 있는 사람들만 구호를 외치뿐 중간 이후부터는 끼리끼리 잡담만 하면서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아는 얼굴들이 있어서 만난 사람들은 지도부의 태도만을 비판하면서 자기들끼리 잡담하는 거리행진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자기들의 구호를 외치거나, 시종일관 &lsquo;이명박은 물러가라&rsquo;는 구호를 쉼 없이 외치며 행진하는 &lsquo;자생성의 한계를 작고 있는 자발적 대오&rsquo;와 너무도 비교되는 &lsquo;목적의식적이고 조직된 노동자대오&rsquo;였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단식투쟁이 60일을 넘기면서 사회적 여론이 집중되던 즈음이었습니다. 30~40명을 넘지 않던 촛불집회 참여자들도 100명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lsquo;정말 오래간만에&rsquo; 금속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30명 정도 참여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사회도 아니었던 금속노조 중앙의 한 간부는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교섭에 대한 얘기만 늘어놨습니다. 집회가 끝날 때 쯤 금속노조의 한 간부가 노래를 부르고 &lsquo;한번 더&rsquo;를 외치자 &lsquo;금속노조가&rsquo;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30명 가량의 금속노조 간부들이 전부 일어나서 자랑스럽게 팔뚝을 치켜 올리면서 자기들만 아는 &lsquo;금속노조가&rsquo;를 정말 힘차고 당당하게 불렀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박수만 치고 있었고요.</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광화문 주변에서 밤새도록 전경과 싸움을 벌일 때 보면 똑 나타나는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맨 앞에서 치열에서 투쟁하고 있으면 2~3미터 쯤 뒤에서 &lsquo;이래라&rsquo; &lsquo;저래라&rsquo; 코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전경이 치고 들어오면 제일 먼저 도망갑니다. 그리고 밀리고 밀려서 정리하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잘난 척을 또 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ldquo;재수없어! 꺼져버려!&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노동운동의 무기력과 무능함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지도부가 보여주는 개량적이고 관료적 태도 때문일까요?</p>
<p class="바탕글">그렇다면 그동안 무수한 이를 비판했던 세력들은 기륭전자 투쟁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요?</p>
<p class="바탕글">정규직 중심의 운동을 그렇게도 비판하면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전비연을 비롯한 금속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왜 성명서 하나 발표하지 못할까요?</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투쟁에는 부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p>
<p class="바탕글">최근 다양한 형태의 연대투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전주와 대구지역에서 보여주고 있는 연대투쟁의 모습은 정말 모범입니다.</p>
<p class="바탕글">어떤 한 사업장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름대로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야 하는 투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식농성과 함께 진행된다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이 한 사업장 수준이 아니라 지역수준으로 벌어질 때는 정말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농성장을 어떻게 지킬 것이며, 그 책임단위는 어떠할 것이며, 농성과 함께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누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등등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
<p class="바탕글">그런데 그런 투쟁을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과 같은 전국단위 조직의 지침에 의한 정치투쟁으로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준비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전주와 대구지역입니다. 전국적 정치투쟁 사안도 아니고, 해당 지역의 사안도 아닌 기륭전자의 문제로 여러 개인과 조직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그런 높은 수준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전주에서는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나선 노동자들이 먼저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벌이면서 지역을 조직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역 언론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어떤 시민은 단식에 참여는 못하지만 매일 천막 앞에 와서 혼자 촛불을 들다 가기도 합니다.</p>
<p class="바탕글">전주보다 며칠 늦게 시작한 대구는 더 조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구지역 단체들이 모여서 공동기자회견도 하고, 경찰의 침탈에도 노상단식을 이어가는가 하면, 매일 투쟁 소식을 제작해서 알리는 등 매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과거 80년대 말 90년대 초반 민주노조운동이 막 생동감 있게 일어났을 때의 연대투쟁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p>
<p class="바탕글">현대중공업 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하기 위해 전국에서 무수한 노동자와 학생들이 울산으로 달려갔습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가는 전경을 막아서기 위해 노조 지침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작업장을 뛰쳐나와 가두투쟁을 벌이면서 시간을 벌어주기도 했습니다. 대구지역에서는 울산으로 가는 병력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몇몇의 학생들이 시경 철탑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많은 사람들이 그런 연대투쟁의 정신을 되살려야 된다고 얘기합니다. 지금 전주와 대구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또 하나의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자발적 연대대오입니다.</p>
<p class="바탕글">인터넷을 보고, 언론보도를 보고, 아는 사람의 얘기를 듣고 다양하게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정말 다양한 투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10년 만에 처음 집회를 참여했다는 사람의 제안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릴레이단식단은 &lsquo;현장 단식&rsquo; &lsquo;직장 단식&rsquo; &lsquo;자율 단식&rsquo;의 형태로 다양한 동조단식을 조직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이를 알려내고 새로운 단식단을 조직합니다. 단식 후기를 써서 인터넷 언론에 릴레이 기고하기, 글 파나르기, [명막퇴진-기륭승리] 머리말 달기, 아고라 서명운동, 항의메일 보내기, 모금운동, 뉴옥타임즈 광고비 1억5천 만 원 조직하기, 시리우스 항의방문단 항공료 모금운동, 스카프 제작과 판매, 사진엽서 제작과 판매, 일일 호프 등 정말 다양한 운동을 조직합니다.</p>
<p class="바탕글">특별한 조직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륭투쟁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모인 이들은 농성장에서 자체 논의를 통해 모임을 만들고 &lsquo;스텝&rsquo;이라는 책임자를 정해서 움직입니다.</p>
<p class="바탕글">카톨릭단체도 독자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고, 학생들도 뭔가를 하고 있고, 문화예술인들도 뭔가를 하고 있고, 경기도 광명과 충청북도 청주에서도 뭔가를 하고 있고, 인터넷 카페의 주부들도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그렇게 모여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lsquo;기륭 릴레이 단식단&rsquo; &lsquo;기륭 행동대&rsquo; &lsquo;기륭 네티즌 연대&rsquo; &lsquo;기륭 대학생 단식단&rsquo; 등에서 판매하는 스카프에 적힌 문구가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ldquo;우리는 기륭 승리의 그날까지, 기륭 노동자들의 편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싸울 것입니다.&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제가 보내는 메일을 보고 몇몇 동지들이 답신을 보내거나, 지역에서 직접 기륭전자 앞으로 달려오는 동지도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 동지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ldquo;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죄인이 될 것 같아서...&rdquo;라고 합니다.</p>
<p class="바탕글">동지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저 때문이 아닙니다.</p>
<p class="바탕글">저는 그저 안타깝고 미안해서 기륭전자 앞으로 촛불 들러 갈 뿐이고, 그 분위기를 전달할 뿐입니다.</p>
<p class="바탕글">학생운동에서부터 노동운동까지 20년 정도 이 판에서 놀다보면 상황이 보입니다.</p>
<p class="바탕글">그리고 대중의 눈동자와 얘기를 들으면 그 호흡이 느껴집니다.</p>
<p class="바탕글">저는 그렇게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겁니다.</p>
<p class="바탕글">제가 너무 솔직하게 전달해서 동지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질수는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리고 제가 기륭전자 동지들과 얘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기륭전자 동지들의 생각을 제대로 알 수 없어서 그저 제 느낌이 좀 더 강한 것일 뿐입니다.</p>
<p class="바탕글">동지들이 부담스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저에게가 아니라 기륭전자 동지들에게 가져야할 생각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마지막으로 故 김남주 시인의 시를 하나 옮겨봅니다.</p>
<p class="바탕글">아마 기륭전자 동지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率 然</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김남주</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대가리를 치면 꼬리로 일어서고</p>
<p class="바탕글">꼬리를 치면 대가리로 일어서고</p>
<p class="바탕글">가운데를 한가운데를 치면</p>
<p class="바탕글">대가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일어서고</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뭐 이따위 것이 있어</p>
<p class="바탕글">그래 나는 이따위 것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만만해야 죽는 시늉을 하고 살아야</p>
<p class="바탕글">밥술이라도 뜨고 사는 세상에서</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나는 그래 이따위 것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
			</description>
			<author>성민이</author>
			<category>우리 살아가는 세상은</category>
			
			<pubDate>Sun, 24 Aug 2008 22:00:44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comworld/?pid=507</guid>
			<title>기륭 단식 60일</title>
			<link>http://blog.jinbo.net/comworld/?pid=507</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단식 60일입니다.</p>
<p class="바탕글">이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p>
<p class="바탕글">어제부터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륭전자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하지만 단식자들은 의학적 한계에 이르렀습니다.</p>
<p class="바탕글">이 투쟁이 이기든 지든 며칠 안에 끝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집에서 기륭전자까지 가려면 두 시간이 걸립니다.</p>
<p class="바탕글">그 시간이 항상 힘들었는데 오늘은 유독 더 힘들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두 시간이 2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p>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앞에서 두 시간 정도 촛불을 들고 있으면 그래도 좀 나아집니다.</p>
<p class="바탕글">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두 시간은 또 힘겨움에 씨름하는 시간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그 시간 동안 오만 생각들을 다 하게 됩니다.</p>
<p class="바탕글">대부분의 생각은 내가 너무 무력하다는 생각뿐입니다.</p>
<p class="바탕글">극단적 생각이 들다가도 애써 희망을 가져보자고 자위를 하기도 합니다.</p>
<p class="바탕글">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매일 촛불 들러 가는 것으로만 자위하는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울산에 있을 때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조직력도 없고 주위의 조건도 좋지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에 노력을 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렇게 2~3달을 노력하면 사람들이 모이고 그 투쟁은 힘을 만들어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때 &lsquo;단 한 명이 아쉬울 때 그 한 명이 그 옆에 있어준다면 우주의 중심이 된다&rsquo;는 것을 느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래도 울산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좀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지금 이곳 기륭전자 앞에서도 우주의 중심을 느끼지만</p>
<p class="바탕글">그곳은 힘이 만들어지는 곳이 아니라 엄청난 무게감에 내 모든 것이 타들어가는 곳입니다.</p>
<p class="바탕글">그래서 내 운동의 생명을 태우기로 했던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저는 개인적으로 구로공단을 이번에 처음 접하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60년대부터 노동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무수하게 거쳐 간 그 유명한 구로공단!</p>
<p class="바탕글">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산업재편 속에서 희망이 없다고 그 많던 사람들이 떠나간 그 곳!</p>
<p class="바탕글">김소연 동지와 송경동 동지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곳에 남아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그곳에 금속노조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전노협의 역사를 안고</p>
<p class="바탕글">기업별 노조의 장벽을 넘어</p>
<p class="바탕글">15만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뭉친</p>
<p class="바탕글">민주노총의 핵심 산별인</p>
<p class="바탕글">금속노조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와 현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이 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으렵니다.</p>
<p class="바탕글">많은 이들이 이 투쟁을 알리고 있어서 제가 알리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p>
<p class="바탕글">이런 글을 쓰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p>
<p class="바탕글">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감을 느끼면서 그냥 기륭전자 앞에서 촛불 들러 갈랍니다.</p>
]]>
			</description>
			<author>성민이</author>
			<category>우리 살아가는 세상은</category>
			
			<pubDate>Sat, 09 Aug 2008 23:29:55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comworld/?pid=506</guid>
			<title>기륭전자 동지들을 살려냅시다!</title>
			<link>http://blog.jinbo.net/comworld/?pid=506</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동지들의 단식이 55일을 넘기면서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최고위원, 시당위원장이 월요일부터 동조단식에 들어갔습니다.</p>
<p class="바탕글">수요일부터는 &lsquo;영화와 책&rsquo;이라는 모임에서 릴레이 동조단식을 벌이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수요일 집회에는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주로 참여하던 지금까지의 촛불문화제와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들, 주부, 학생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인터넷 모임에서 왔다는 한 주부는 &ldquo;나는 정규직 남편을 만나서 중산층 의식을 가지면서 살아왔는데,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는 줄 몰랐어요&rdquo;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발언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릴레이단식을 하고 있는 &lsquo;영화와 책&rsquo; 모임의 한 분은 &ldquo;저는 지난 10년 동안 집회라는 것을 거의 참여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난 번에 1박2일 동안 참여하면서 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릴레이단식을 하고 있다&rdquo;고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또 다른 분은 &ldquo;내 아이들이 컸을 때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비정규직으로 살지 않았으면 한다&rdquo;며 울먹였습니다.</p>
<p class="바탕글">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분은 &ldquo;직장에서 단식을 하고 퇴근 후에 농성장에 와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rdquo;고 얘기하고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구로지역에 있는 공부방 중학생들과 선생님은 직접 죽을 써서 들고 오기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진정성이라는 것은 이런 모습들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목에 힘을 주면서 &ldquo;끝까지 투쟁해서...&rdquo; &ldquo;목숨을 걸고서 반드시...&rdquo; 등의 상투적인 거짓말들을 하지 않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저 겸손하고 솔직하게 이 투쟁에 함께 하고자 하는 자발적 움직임들이 이렇게 조직되고 있는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구로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동지가 찍은 영상이 상영됐습니다.</p>
<p class="바탕글">최근 상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상을 보다가 그동안 애써 보지 않으려고 했던 모습을 보고야 말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뼈만 앙상하게 남은 단식자들의 몰골을...</p>
<p class="바탕글">눈을 하늘로 돌렸습니다.</p>
<p class="바탕글">수없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눈동자를 여기저기 돌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요즘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합니다.</p>
<p class="바탕글">그 인사를 가볍게 받지만 그들과 얘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p>
<p class="바탕글">집회가 끝나면 그냥 집으로 와버립니다.</p>
<p class="바탕글">그들과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 힘겨움을 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10여 년 전일 겁니다.</p>
<p class="바탕글">제가 학교를 다닐 적에 대우정밀 병역특례해고자였던 조수원 열사가 민주당 농성장에서 목을 매서 자결한 적이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12월 차디찬 날씨 속에 서울역 광장에서 추모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때 사회를 보던 전해투 동지가 &ldquo;수원이가 죽기 전에 &lsquo;누구 하나 죽어야 사람들이 모일까?&rsquo;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정말 누구 하나 죽으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모였다&rdquo;면서 흐느끼는 모습을 봤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때 저는 대우정밀 해고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투쟁을 했고, 이것저것 안 해본 것 없이 다해보다가 결국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몰랐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 이후 대우정밀 해고자 문제는 해결이 됐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10여 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면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봐왔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중에는 제가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 무수한 죽음들 앞에서 무수하게 분노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하지만 지금 이렇게 죽어가는 기륭전자 동지들 앞에서 분노의 감정마저도 일어나지 않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저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p>
<p class="바탕글">이 동지들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저는 앞으로 운동이라는 것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동지 여러분!</p>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동지들을 살려냅시다!</p>
]]>
			</description>
			<author>성민이</author>
			<category>우리 살아가는 세상은</category>
			
			<pubDate>Thu, 07 Aug 2008 00:18:22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comworld/?pid=505</guid>
			<title>내 심장은 두 개 입니다</title>
			<link>http://blog.jinbo.net/comworld/?pid=505</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지난 금요일부터 기륭공대위 동지들이 국회 농성에 들어갔습니다.</p>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앞 촛불문화제가 잠시 취소됐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래서 오래간만에 청계광장을 찾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토요일에는 빗속에 6천여 명이 모여서 집회를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집회를 마치고 행진을 하려고 하니 경찰이 청계광장을 주변을 완전히 막아버려서 청계천으로 내려가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시청측에서는 &ldquo;폭우로 청계천이 범람할 우려가 있으니 시민여러분으로 밖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rdquo;라고 방송을 하고 있었지만 밖으로 나갈 길이 그곳 밖에 없는 사람들은 폭우 속에 청계천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렇게 청계천을 걸어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경찰의 포위망 밖에서 거리행진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하지만 종로나 시청으로 향하는 것은 경찰의 봉쇄로 어려웠습니다.</p>
<p class="바탕글">돌아 돌아서 명동 근처로 행했더니 잠시 후 앞뒤로 경찰이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사람들은 부활한 백골단을 비롯한 경찰의 강경방침으로 인해 긴장하고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잠시의 대치 후 경찰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명동 골목으로 빠졌습니다.</p>
<p class="바탕글">명동에 나와 있던 사람들과 섞이면서 이날 집회를 자연스럽게 해산으로 이어졌습니다.</p>
<p class="바탕글">다른 쪽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봤지만 경찰이 명동 주변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렇게 이날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왔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일요일에 어디로 갈까 하면서 인터넷을 살펴보고 있더니 국회에서 농성하던 기륭공대위 동지들이 연행됐더군요.</p>
<p class="바탕글">뭘 어떻게 해볼 수 없이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살피던 저는 다시 청계광장으로 갔습니다.</p>
<p class="바탕글">전경버스들이 주변을 막고 있는 청계광장에는 어디서 주최하는지 모르는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광우병대책위는 빵빵한 문화행사 스피커가 미치지 않는 뒷편 인도 한 켠에서 작은 스피커를 켜고 있었고요.</p>
<p class="바탕글">비참하더군요.</p>
<p class="바탕글">그래도 150명가량이 모여서 88번째 촛불문화제를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주위에 전경이 배치되고 순찰차가 &ldquo;불법집회이니 해산해주십시오&rdquo;라고 찍찍거리는 속에 집회는 이어졌습니다.</p>
<p class="바탕글">조직적으로 온 학생들, 가족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 꿰제제한 몰골이지만 당당하게 촛불을 들고 있는 나이든 사람들이 모여서 촛불집회를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심장이 두 개인 것이 다행인가 봅니다.</p>
<p class="바탕글">하나의 심장은 청계광장에서 뛸 수 있고, 또 하나의 심장은 기륭전자 동지들과 함께 뛸 수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마음이 많이 지치는 요즘입니다.</p>
<p class="바탕글">촛불집회 속에서 뭔가 해보려고 시도했던 토론회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청계광장에서는 숨 막히는 답답함만을 느끼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동지들의 투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어서 속만 타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래서 뭔가 해야겠기에 청계광장으로 갔고, 이렇게 동지들에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며칠 전에 머리를 자르기 위해 동네 미용실을 찾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손님도 별로 없는 오후 시간에 미용실에 들어섰더니 손톱 손질을 하던 종업원은 잠시 저를 쳐다보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ldquo;어떻게 오셨습니까?&rdquo;하고 묻더군요.</p>
<p class="바탕글">약간 당황해서 &ldquo;머리 자르려고 그러는데요&rdquo; 그랬더니 &ldquo;여기 앉으세요&rdquo;하더니 &ldquo;뭐, 이런 놈이 있어&rdquo;하는 마음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성의 없게 머리를 자르더군요.</p>
<p class="바탕글">머리를 자르고 거울을 보니 내가 정말 없어 보이기는 없어 보이더군요.</p>
<p class="바탕글">옷은 꿰제제 하고, 생긴 것도 별 볼일 없는 중년의 남자였으니까요.</p>
<p class="바탕글">그때 &ldquo;이게 자본주의구나!&rdquo;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내가 내 돈 주고 머리를 깎는데도 없어 보이는 사람은 천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하지만 저처럼 꿰제제 한 사람이 청계광장을 찾았을 때는 같이 촛에 불을 붙여 주고, 발언을 하면 박수를 쳐줍니다.</p>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앞에서는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제 이름까지 알면서 인사를 해줍니다.</p>
<p class="바탕글">그게 중요한 힘이더군요.</p>
<p class="바탕글">세상의 밑바닥을 살면서 동네 미용실에서 마저도 천대를 맡는 저 같은 사람도 그곳에서는 인정받는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p>
<p class="바탕글">그래서 저와 같이 꿰제제 한 사람들이 쉼 없이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요즘 &lsquo;대중을 신뢰한다는 것&rsquo;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시청과 광화문에서 쏟아져 나왔던 대중들의 그 힘은 저에게 엄청난 활력을 줬습니다.</p>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앞에서 무겁게 느꼈던 &ldquo;세상에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rdquo;라는 그 답답함 마저도 저에게 간절함을 심어주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대중을 믿는다면</p>
<p class="바탕글">대중이 거대하게 뿜어져 나올 때 그 힘을 최대한 느끼는 것이고</p>
<p class="바탕글">대중이 모이지 않을 때 간절하게 기원하는 것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것이 투쟁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누군가가 아고라에 기륭투쟁과 관련해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더군요.</p>
<p class="바탕글">아고라 이슈청원 <u style="text-underline: #0000ff single"><span lang="EN-US" style="COLOR: #0000ff">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57183</span></u>&amp;</p>
<p class="바탕글">아고라 응원청원 <u style="text-underline: #0000ff single"><span lang="EN-US" style="COLOR: #0000ff">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57185</span></u>&amp;</p>
<p class="바탕글">아고라 토론 <u style="text-underline: #0000ff single"><span lang="EN-US" style="COLOR: #0000ff">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mp;articleId=1790376&amp;pageIndex=1&amp;searchKey=&amp;searchValue=&amp;sortKey=depth&amp;limitDate=0&amp;agree=F</span></u></p>
<p class="바탕글">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십시오.</p>
]]>
			</description>
			<author>성민이</author>
			<category>우리 살아가는 세상은</category>
			
			<pubDate>Mon, 04 Aug 2008 00:57:30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comworld/?pid=504</guid>
			<title>단식 50일째인 기륭집회에 갔다 왔습니다</title>
			<link>http://blog.jinbo.net/comworld/?pid=504</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7월 30일로 기륭전자 동지들의 단식이 50일을 맞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지난 토요일이 한 명의 조합원이 병원으로 실려 가서 지금은 3명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단식자들은 월요일부터는 집회 할 때 밖으로 나와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서 텐트 앉아 그대로 누워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 모습을 보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월요일부터는 경찰들이 체포영장을 들고 단식자들을 연행하려고 하는 시도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회사는 직원들을 모두 휴가 보냈다고 합니다.</p>
<p class="바탕글">학생들이 돌아가면서 10여 명씩 집회에 참여하고 있고 지역의 몇몇 동지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조합원까지 합쳐서 30여 명 정도가 매일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오늘은 사회를 보는 동지가 &ldquo;정말 사회 보기 싫다&rdquo;고 얘기하면서 집회를 시작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장기능이 이미 멈춘 단식자들은 서서히 장에 문제가 생기면서 배가 아파오고 몸 곳곳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병원에 실려 간 동지는 원래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간 단식을 한 후유증 때문에 정밀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경비실 위 단식자들의 텐트 앞에서는 검은색 관이 놓여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오늘은 꽃다지 동지들이 와서 이런 저런 노래를 부르면서 지치지 말고 투쟁하자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도저히 그 노래를 같이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때로 신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저는 자꾸 눈물만 나오려고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촛불만을 쳐다보면서 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p>
<p class="바탕글">&ldquo;세상에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rdquo;</p>
<p class="바탕글">집회 내내 온통 그 생각뿐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송경동 동지를 만났더니 &ldquo;글을 잘 봤다. 고맙다. 자주 써달라&rdquo;고 얘기를 하더라고요.</p>
<p class="바탕글">&ldquo;새삼스럽게 뭐 그런 거 같고...&rdquo; &ldquo;쪽팔리게...&rdquo; 대강 이런 식으로 얼버무렸습니다.</p>
<p class="바탕글">지난 월요일에는 사회를 보는 동지가 저를 지목해서 발언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정말 당황스러웠고, 정말 할 얘기가 없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이제야 겨우 몇 번 집회에 참석한 제가 이 피말리는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p>
<p class="바탕글">그래서 &ldquo;쪽팔리지만 그냥 촛불만 들다 갈께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서 없어요&rdquo;라고 얘기를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런데 오늘 송경동 동지의 얘기를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내가 개인적으로 이렇게 동지들에게 글을 써서 보내는 것도 기륭 동지들의 투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농성을 1070일을 넘게 하고, 단식을 50일 하는 동안 저는 겨우 4번 집회에 참여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매일 저녁에 가서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고, 주위에 이 동지들의 투쟁을 알리는 것이라면 그것만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해야겠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겨우 네 번을 갔던 내가 &ldquo;세상에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rdquo;하는 생각을 했는데, 기륭동지들은 오죽할까요?</p>
<p class="바탕글">동지여러분!</p>
<p class="바탕글">&ldquo;우리가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함께 합니다&rdquo;라는 표현을 해주실래요?</p>
<p class="바탕글">기륭 동지들의 까페가 있습니다. <u style="text-underline: #0000ff single"><span lang="EN-US" style="COLOR: #0000ff">http://cafe.naver.com/kiryung.cafe</span></u></p>
<p class="바탕글">까페에 가서 간단한 글을 남기셔도 되고요.</p>
<p class="바탕글">후원금을 보내셔도 되고요.</p>
<p class="바탕글">성명서를 내주셔도 되고요.</p>
<p class="바탕글">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기륭투쟁을 알려주셔도 되고요.</p>
<p class="바탕글">가능하면 촛불문화제에 참석해주셔도 되고요.</p>
<p class="바탕글">그 외에 뭐든지...</p>
<p class="바탕글">할 수 있는 뭐든지...</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저는 그냥 쌩까지 않을려고 기륭집회에 가고 있을 뿐입니다.</p>
<p class="바탕글">그런데 너무 무겁고 아파요.</p>
<p class="바탕글">&ldquo;청계광장에는 사람들이 계속 모이고 있을까?&rdquo;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p>
<p class="바탕글">기륭동지들을 보고나서는 청계광장으로 가지 못하겠더라고요.</p>
<p class="바탕글">그곳에도 촛불이 사그러들고 있겠지만, 기륭에서는 목숨이 사그러들고 있기 때문에...</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기륭동지들에게 마음을 전해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p>
]]>
			</description>
			<author>성민이</author>
			<category>우리 살아가는 세상은</category>
			
			<pubDate>Thu, 31 Jul 2008 00:02:17 +0900</pubDate>
		</item>
		<item>
			<guid>http://blog.jinbo.net/comworld/?pid=503</guid>
			<title>기륭전자 집회에 갔습니다</title>
			<link>http://blog.jinbo.net/comworld/?pid=503</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25일 기륭전자 집회에 갔습니다.</p>
<p class="바탕글">유난히도 폭우가 많은 이번 여름, 이날도 폭우 속에 집회가 이어졌습니다.</p>
<p class="바탕글">오후 4시 30분쯤 기륭전자 앞에 도착했더니 4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기륭전자 경비실 옥상 위에는 45일째 단식농성 중인 기륭전자 동지들이 말없이 앉아 있었고요.</p>
<p class="바탕글">그들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집회 대오 속에 앉을 수도 없어서 뒤편 가장자리에 서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울산에 있을 때 두 번의 장기 단식투쟁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2000년 현대미포조선 해고자였던 김석진 동지가 복직을 요구하며 45일간 단식투쟁을 벌인 적이 있었고, 2005년 현대자동차 2차 하청업체인 현대세신 여성해고자들이 35일간 단식투쟁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 투쟁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루하루 말라가는 그들의 모습에 내 마음도 바짝바짝 말라갔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게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단식 45일만에야 찾아간 나는 그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1시간여의 집회를 마치고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날 저녁 400일 투쟁집회를 벌이는 이랜드 뉴코아 집회로 갔습니다.</p>
<p class="바탕글">저는 저녁 7시에 기륭전자 앞에서 투쟁문화제를 기다리며 있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비는 계속 내리고 집회 시간은 다가오는데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기륭공대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경동 동지가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한 잔 했는지 약하게 술 냄새가 났습니다.</p>
<p class="바탕글">왜 술을 먹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서 일부러 &lsquo;약주 한 잔 하셨군요?&rsquo;하고 농담을 건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저녁 7시 30분부터 폭우 속에 투쟁문화제는 진행됐습니다.</p>
<p class="바탕글">임시로 천막을 두 동 치기는 했지만 주위에 서서 지켜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150명 정도가 모인 크지 않은 집회였습니다.</p>
<p class="바탕글">많이 착잡하더군요.</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집회 도중에 사회자가 예정에 없이 코오롱 정투위 위원장의 발언을 신청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정투위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더니 가슴 절절한 얘기를 쏟아놓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ldquo;코오롱이 기륭보다 6개월 정도 먼저 시작했다. 우리도 작년 연말에 1000일 투쟁 집회를 했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또 잊혀지더라. 지금 기륭 동지들이 어떤 심정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000일이 지나서 더 잊혀지기 전에 어떻게든 이 투쟁의 불씨를 사그러들지 않게 해야 하겠다는 절박함이 이런 투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구미에서 올라오면서 심란했다. 이렇게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집회 할 때 서있어 주는 거 말고는 없더라. 그래서 화가 나더라.&rdquo;</p>
<p class="바탕글">그 얘기를 들으면서 &lsquo;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냥 집회에 참가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는데 다른 사람도 그렇구나&rsquo; 하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하지만 눈은 땅만을 쳐다보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너무도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다른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문화제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함께 108배를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너무 무거워서 같이 108배를 하지 못하겠더라고요.</p>
<p class="바탕글">그래서 그냥 뒤편에 서서 108배를 지켜봤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108배를 마치고 이날 일정을 마치는 순간 사회자가 &ldquo;방금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내일 예정돼 있는 교섭을 연기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안다&rdquo;고 얘기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 무게가 너무 힘겨워서 집회가 끝나면 그냥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런데 사람들이 문화제를 마치고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렇게 집으로 가버리면 더 미안해서 앞으로 기륭에 오지 못할 거 같았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 무게감이 힘들었지만,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감내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lsquo;내가 뭘 한 게 있어서 힘들다고 얘기를 할 수 있겠냐?&rsquo; 생각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더군요.</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농성장에서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서 하루 밤을 보냈습니다.</p>
<p class="바탕글">정말 오래간만에 보내는 농성장에서의 밤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단식 45일을 넘기고 있는 농성자들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사측은 완강하기만 하고, 정권은 강경하기만 한데...</p>
<p class="바탕글">밤새도록 비가 쉼 없이 내리더군요.</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아침에 일어나서 농성장을 정리하고 출근투쟁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사측에서는 이날 사람들을 회사로 출근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p>
<p class="바탕글">쉼 없이 쏟아지는 비속에서 20여 명의 사람들이 간단히 아침집회를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집회 도중에 얼마 전에 위출혈로 단식을 중단했던 조합원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천막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무거움 그 자체만 느껴질 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잠시 그렇게 멍하게 있다가 송경동 동지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광화문과 시청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는 저에게 엄청난 힘을 불어넣고 있습니다.</p>
<p class="바탕글">치열한 만큼 즐겁고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집회였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리고 어느 순간 &lsquo;이 투쟁에 내 투쟁이다&rsquo;라는 생각이 들면서 촛불집회 참석은 자연스러운 일과가 됐습니다.</p>
<p class="바탕글">&lsquo;투쟁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rsquo; 하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농성 1068일을 맞이하고 단식 46일째를 맞이하는 기륭전자 집회는 저에게 엄청난 무게감만을 안겨줬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 무게감에 완전히 짓눌려 버린 1박2일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lsquo;투쟁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구나!&rsquo; 하는 것을 실감하는 1박2일이었습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전반적으로 몰아치는 이명박 정권의 반격을 맞서기 위해서는 시청으로 좀 더 많은 이들이 모여야 합니다.</p>
<p class="바탕글">힘은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p>
<p class="바탕글">그리고 토요일인 오늘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
<p class="바탕글">하지만 저는 오늘 저녁 기륭전자로 갈 생각입니다.</p>
<p class="바탕글">시청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륭전자 앞에서 그냥 촛불을 들고 서 있는 한 명이 되려고 합니다.</p>
<p class="바탕글">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단 한 명이 아쉬운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p>
<p class="바탕글">그리고 그 감당하기 힘겨운 무게를 촛불로 감당해보려고 합니다.</p>
]]>
			</description>
			<author>성민이</author>
			<category>우리 살아가는 세상은</category>
			
			<pubDate>Sat, 26 Jul 2008 11:07:05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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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blog.jinbo.net/comworld/?pid=502</guid>
			<title>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이야기</title>
			<link>http://blog.jinbo.net/comworld/?pid=502</link>
			<description>
<![CDATA[
<!--FCKeditor--><!--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의사라는 신분을 갖고 노동자의 삶과 투쟁에 녹아드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호흡을 함께 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동지를 만나 그 힘겨우면서도 즐거운 과정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74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난 공유정옥은 6살 때 자식들의 교육을 배려한 부모의 결정으로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년 재수 끝에 고려대 의대에 입학하게 된 것이 94년이다. 학생운동의 활력이 많이 줄어들었던 시절 공유정옥은 과 동아리인 &lsquo;상계진료소&rsquo; 활동을 하면서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도시빈민 진료소 같은 포맷인데, 토요일마다 상계동에 가서 오후 4시부터 진료활동을 해요. 원래는 공부방하고 진료소 활동을 했었는데, 공부방이 떨어져나가고 없어지면서 진료동아리만 남은 거예요. 80년대 선배들이 만든 거고, 우리 동아리 같은 경우는 88학번이 최고 선배였는데... 지역에 도시빈민 선교하는 전도사님이 있었어요. 공부방은 추억으로만 남고, 진료소만 있었고...</p>
<p class="바탕글">나는 그런 거 모르고 들어갔고... 좋은 일 하는 것 같고, 사람들도 좋고... 매주 토요일 진료 갔고, 매주 수요일에 세미나를 했어요. 시험 때나 방학 때 빼고는 1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했어요. 되게 빡쎘어요. 내가 의예과 2년 동안 세미나랑 진료를 한 번 빼고 매번 갔어요. 94년~95년 내 대학 생활의 전부였죠. 진료할 때 할머니들 장애인들 이런 분들 왔는데, 기다리는 동안 얘기하고 이러는 게 좋았고, 선배들하고 뒤풀이 하면서 얘기하는 것도 좋았고... 우리 사람들도 좋았고, 거기서 진료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정이 많이 들었어요.</p>
<p class="바탕글">세미나는 선배들이 커리큘럼 딱 짜서 했죠. 3월에는 대학생에 대하여, 4월에는 4&middot;18(고대에서는 4&middot;19 하루 전인 4&middot;18에 대해서부터 얘기했어요), 5월은 광주민중항쟁, 6월은 여성학, 방학 때는 철학 세미나 이렇게 커리가 있었거든요. 할 때마다 선배들이 텍스트(주요문헌)는 뭐고 레퍼런스(참고문헌)는 뭐다면서 책을 두어 권씩 권해줘요. 그때 과외를 해서 30만원씩인가 벌었는데, 보지도 않는 텍스트와 레퍼런스를 다 샀어요. 되게 성실하게 했어요. 재미도 있었고, 정성을 많이 쏟았어요.</p>
<p class="바탕글">그때 세미나 했던 거가 졸업할 때까지 고민을 계속 하게 했던 거죠. 선배들은 &lsquo;이게 옳다&rsquo; 이렇게 얘기하는데, 옳은 건 옳은 건데 그렇게 살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미나 하고 이럴 때는 모르겠는데, 돌아와서 우리 과 친구들을 보거나 그러면 일상하고 전혀 안 와 닿으니까 &lsquo;나는 되게 모자라다&rsquo; &lsquo;나는 훌륭한 사람은 될 수 없고, 어떻게 하면 죄는 안 짓고 살 수 있을까?&rsquo; 이런 생각을 했죠.</p>
<p class="바탕글">투쟁의 역사를 배우고, 해방의 역사를 배우고, 예전에 학생운동이 어떤 역할을 했고,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러면서 막상 본과 올라가면 공부에 매달리는데... 그렇다고 내가 학업을 때려치고 현장에 투신하고 이럴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그랬다가 학교로 돌아오는 선배들 보면서 &lsquo;저게 뭔가?&rsquo; 하는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나는 &lsquo;진료소 정도 수준에서 열심히 해봐야겠다&rsquo; 생각했던 거죠.&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그렇게 대학생활과 동아리 활동에 즐거움을 가져갈 즈음 1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하게 철거민투쟁을 경험하게 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상계동이 10몇 동까지 있는데, 우리는 상계4동에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1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에 &lsquo;상계1동 큰마을 철거&rsquo; 이렇게 대자보가 붙었어요. 우리 과 아닌 다른 과 친구들이 막 가고... 소위 운동권 친구들이 가는 거예요. 우리 과에서는 역사학회 하는 친구들이 가는 거예요.</p>
<p class="바탕글">내가 생각하기에 &lsquo;우리가 가는 바로 옆 동네 일인데 가서 봐야 되지 않겠냐&rsquo; 그래서 동기 셋이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갔어요. 갔더니 삼엄하죠. 다 놀래는 거야. 다행히 우리 과 선배들이 있고... 뭐했냐 하면, 돌 줍고, 골리앗에 기왓장 줍고... &lsquo;오늘 밤은 자자&rsquo;해서 자는데 새벽에 &lsquo;들어온덴다&rsquo; 그러면서 깨우더라고요. &lsquo;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냐?&rsquo; 그랬더니 저랑 여자 둘이서 &lsquo;동네 애기들을 데리고 뒷산에 가 있어라&rsquo; 그래요. 남자 애들은 제일 앞에서 화염병 던지고 빠지는 일을 했고... 새벽에 일어나서 갑자기 화염병 만드는 일을 처음으로 했고... 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놀아주는 일을 했죠. 오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저녁 때 다시 모이라고 그래서 저녁 때 모였죠. 그랬더니 13가구 남아있던 동넨데 그 집이 다 헐렸더라고요. 돌들만 쌓여 있는 집터에서 솥 걸어놓고 라면 끓여먹고 그랬는데...</p>
<p class="바탕글">그러고 나서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잠도 한 숨도 못 잤고, 너무 긴장했고, 애들 다칠까봐 걱정했고... 우리 집은 강남에 넓은 아파트에 내 방이 있고, 침대가 있고... 그전까지는 우리 아버지가 &lsquo;노력하면 잘 산다&rsquo;는 것을 주입해서 &lsquo;너무 잘 사는 거만 강조한다&rsquo;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데... 그날 지하철 타고 오면서 너무 피곤하기는 한데 잠을 한숨도 못 자겠는 거예요. &lsquo;이제 겨우 스무 살에 내가 한 게 뭐가 있어서 그 집에 사냐?&rsquo;는 거죠. &lsquo;다섯 살 여섯 살 먹은 애들은 지들이 안 한 게 뭐가 있길래 하루 아침에 집 없는 애들이 되냐?&rsquo;는 거고... &lsquo;이건 정말 아닌 거 같다&rsquo;는 생각도 하고...</p>
<p class="바탕글">지금도 돌 줍고, 화염병 만들고 이런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집터 무너졌던 거 하고, 지하철 타고 돌아올 때 너무 괴로웠던 거는 생각이 많이 나요. 그런 게 되게 무거웠던 거 같애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 4년을 다녀야 하는 의대에서 공유정옥은 본과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학생회 활동을 결심하게 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96년 초에 노수석 열사가 집회 나갔다가 진압할 때 쫓겨서 돌연사를 해요. 노수석 열사 추모제를 연대 앞에서 하는데 토요일 오후 3시에 하는 거예요. 그전에 2년 동안은 학내 집회나 이런데 가끔 가기는 했지만, 학외 집회는 보통 토요일 오후 2시에 집회를 하고 나는 4시까지 상계동에 가야 하니까 학외에서 하는 집회를 거의 안 갔는데, 그날은 나보다 한 학년 어린 친구가 죽었다는데 되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연대 앞에 가서 노수석 열사 추모제를 하고, &lsquo;오늘 집회 때문에 내가 진료를 빠지는 구나. 다음에는 가능하면 진료를 가야지&rsquo;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나서 4년 내내 못 갔어요.</p>
<p class="바탕글">그게 결정적 계기는 아니었는데... 본과 올라가면서 학생회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보통 본과 올라가면 동아리활동 하던 것도 접고 그러는데 &lsquo;나는 맨날 동아리 안에서만 놀았지. 밖에 일들은 보고 듣더라도 직접 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뭐했나?&rsquo;라는 생각에... 나는 학생회 활동하겠다는 것도 굉장히 큰 결심이었어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학생운동이 침체기로 빠져들던 97년 학생회는 소수의 간부의 활동으로 축소되지만 열정적으로 활동을 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다음 해에 남자 동기 애가 학생회장 하고, 언니가 사무국장 하고, 내가 사회부장 하고... 셋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 해부터 학생회 못 만들었죠. 그전에는 집행부가 5~6명 됐는데, 셋이니까 다 같이 했어요. 대자보를 다섯 벌을 만들어야 되거든요. 되게 부지런히 했고... 늘 새벽 예닐곱시에 모여서 대자보 다섯 벌을 만들어서 쫙 붙이고... 뒷간 토론이라는 걸 했어요. 매주 주제를 정하고, A3용지에 볼펜 달아서 월요일날 붙이고, 금요일날 모아서, 의견을 다 잘라서 &lsquo;학우들의 의견&rsquo; &lsquo;우리의 답변&rsquo; &lsquo;다음 주제에 대한 의견&rsquo; 이렇게 다시 대자보를 만들어서 붙이고... 품은 정말 많이 팔았어요. 근데 &lsquo;애들이 조금 하다 말겠지&rsquo;하는 걸 1년을 했으니까 되게 신뢰를 많이 받았어요.</p>
<p class="바탕글">96년 여름에 연대사태가 있었어요. 학생회장 하는 친구 아버지가 부산대 교직원인데 &lsquo;한총련을 탈퇴하라&rsquo;는 압박이 들어와서 고민이 많았어요. 학생운동 내에서 우리는 소위 좌파성향이었는데, 한총련이랑 같이 해본 게 없으니까 한총련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는데, &lsquo;이거는 학생운동 탄압이니까 이거는 아니다&rsquo;해서 버티다가 그 친구가 &lsquo;아버지가 잡아 내릴려고 강하게 나오신다&rsquo; 그래서 &lsquo;이걸 어떻게 풀거냐?&rsquo; &lsquo;이건 우리 셋이 결정할 수 없다&rsquo; 그래서 친구들하고 1대1 면접을 했어요. 종이를 들고 &lsquo;너 한총련 연대사태 알지? 우리는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낸 거 본적 있지? 그런데 학생회장이 되게 힘들데, 그래서 우리 되게 고민 돼. 너는 어떻게 생각해?&rsquo; 그러면서 몇 십 명을 했어요. 결국 탈퇴하기로는 결정이 났어요.</p>
<p class="바탕글">지금은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렇게 발상을 하고 애썼던 게 되게 소중한 기억인 거 같애요. 그래서 우리가 학내문제나 과의 복지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해도 애들이 굉장히 많이 지지를 해줬어요.</p>
<p class="바탕글">97년 연말 대선 때 나는 투표를 안 했었거든요. &lsquo;권영길이 왜 찍냐?&rsquo; 그랬는데... 학년이 올라가니까 학생회 정리하고 도서관에서 시험공부하고 있었는데, 친구들 몇 명이 와서 &lsquo;집이 인천인데 집에까지 가서 권영길 찍고 왔어. 나 잘했지?&rsquo; 이러는 거예요. &lsquo;그렇게 안 하면 너한테 부끄러울 것 같아서 했다&rsquo; 이런 얘기를 하고...</p>
<p class="바탕글">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lsquo;학생대중조직으로서의 민주성은 참 열심히 만들었다&rsquo; 생각이 들어요. 나름대로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친구들이 막 나서지는 못하는데, &lsquo;운동하는 애들은 우리랑 달라&rsquo; 이런 게 아니라 &lsquo;나도 여기까지 하면 얘네랑 같이 힘을 보탤 수 있겠구나&rsquo; 하는... 집행부는 세 명인데, 늘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20~30명 정도 있었어요. 그게 되게 좋았죠.&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학생회 활동을 정리하고 이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 갖게 된 곳이 민중의료연합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98년 되니까 본과 3학년인데 나는 큰일 난 거야. 운동을 했던 다른 끈이 있는 게 아니어서 나는 끈 떨어진 거고... 이렇게 가면 1~2학년 때 봤던 선배들처럼 이 사이클에 말려서 그냥 의사가 되고... 그래서 찾아간 게 민의련(민중의료연합)이예요. 나한테 &lsquo;뭐 할 수 있나?&rsquo; 하는 고민을 던져줄 수 있는 게 필요한데... 인의협(인도주의실현의사협의회)도 생각해봤는데, 의사에 갇히면 못 찾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보건의료운동을 생각해왔기 때문에 보건의료운동 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얘기를 해왔던 사람들이 민의련이어서 그냥 갔어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민의련 민중연대팀 활동을 하면서 철거민이나 노동자들 농성장들을 많이 찾아다니면서 진료도 하고 얘기도 많이 나눴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마치고 2000년 인턴생활을 시작한 곳이 원자력병원이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2000년에 의약분업 때문에 의사들이 파업을 했어요. 의사들이 두 번을 나갔는데, 나는 파업에 반대해서 병원에 남아있었어요. 그때 인턴이 26명이 있었고, 레지던트들까지 하면 200명 정도의 전공의들이 있었는데, 첫 파업 때는 저랑 저희 학교에서 같이 운동했던 선배 둘만 빼고 다 나갔어요. &lsquo;의약분업이 의료 사회주의다. 의사들이 약사들한테 밥그릇 뺐기는 거다&rsquo; 그러는데 그걸 어떻게 동의해요.</p>
<p class="바탕글">왕따 당하는 일이 좀 있었는데 별로 안 괴로웠고, 두 번째 파업했을 때는 한 명이 더 동참을 해서 세 명이서 남았어요. 그때 병원 과장이 불러가지고 &lsquo;병원입장에서는 니네들이 남아줘서 고맙지만, 나도 같은 의사기 때문에 니네가 점수가 잘 나올지 모르겠다&rsquo;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도 나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1년의 인턴생활을 마친 2001년 결혼과 함께 산업의학과로 전공을 결정하면서 찾아간 곳이 서울대보건대학원 산업의학교실이었다. 그곳에서 4년간의 레지던트 과정을 밟으면서 산업의학과 예방의학 등에 대한 공부를 하고, 민중의료연합 노동자건강사업단 활동을 하면서 여러 노동현장과 결합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p>
<p class="바탕글">2002년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근골격계투쟁을 시작으로 근골격계투쟁이 전국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lsquo;근골격계 직업병 공동연구단&rsquo;이 만들어지면서 현장투쟁과 결합된 연구활동이 본격화된다. 이어 2003년과 2004년에는 노동자들의 직업병투쟁이 더욱 거세게 일어나게 되면서 공동연구단도 다양한 활동을 벌이게 되지만, 공유정옥은 직장의 프로젝트사업에 묶여 다양한 현장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는 못한다.</p>
<p class="바탕글">그런 조건에서도 관계를 맺으면서 사업을 해오던 사업장이 서울도시철도공사였다. 2003년 기관사가 자살을 하면서 정신질환 문제에 대한 현장조사사업을 하기 시작했고, 민주노조가 막 들어선 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승무본부를 중심으로 적극적이었다. 2004년 공유정옥은 여러 가지로 어수선한 조건에서도 도시철도공사 승무본부 공황장애투쟁에 결합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노동조합이 힘이 약한 상황에서 본조도 열심히 했고, 승무본부 동지들도 열심히 했어요. 승무본부 동지들이 이 문제를 비롯해서 다른 현장문제에 대해서도 훌륭하게 현장활동을 했던 거 같애요. 본부장만 사실상 전임자인 거고, 사무국장은 근무협조를 해서 하는 건데, 두 명이 7개로 쪼개져 있는 승무사업소를 돌면서 한 명 한 명 근무시간이 다 다른 기관사들을 조직하려고 맨날 열차타면서 다니는 거예요.</p>
<p class="바탕글">정말 문제가 너무 절박했었어요. 산재신청은 7명밖에 못했지만, 30여 명의 환자가 드러났었으니까. 투쟁을 전후로 해서 조합원들이 하나 하나 숨겨왔던 자기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게 너무 좋기도 하고 너무 무거웠어요.</p>
<p class="바탕글">2004년 7월에 궤도연대 파업을 했어요. 서울지하철, 도시철도, 인천, 대구 모여서 파업대오가 있었는데, 거기 진료실 차려서 들어가 있었고... 도철 승무조합원들은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서울지하철은 뿔뿔이 흩어져서 숨어서 자고 그러는데, 도철 조합원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놀고 토론하고...</p>
<p class="바탕글">여러 가지 아픔이 있어서 파업대오가 중간에 빠지고 도철만 남았어요. 그래서 지축기지에서 도봉기지로 옮겨갔고, 옮겨갈 때 다 떨어져 나가고, 승무는 처음 대오가 거의 다 있고, 기술 일부 남고, 차량 일부 남고, 활동가는 거의 다 있고... 그게 1박2일 동안이예요.</p>
<p class="바탕글">나는 집에 가서 자고 와서 도봉기지에 가봤더니 공대위 회의를 하고 있었고, 승무조합원들은 여전히 대오를 유지하고 앉아서 구호만들기 같은 걸 하고 있어요. 냉방도 안 되는데 모여서 땀 뻘뻘 흘리고... 결국 현장복귀를 결정하게 되죠.</p>
<p class="바탕글">그날 저녁에 총회를 열면서 위원장이랑 본부장이랑 현장복귀 선언을 하면서 위원장이 막 울어요. 그런데 조합원들이 다 우는 거예요. 나가면서 위원장하고 본부장이 서 있는데 조합원들이 &lsquo;수고 많았다&rsquo;고 한 명 한 명이 다 인사하면서 나가고, &lsquo;괜찮아! 현장투쟁 열심히 하면 돼!&rsquo; 이러는데... 참 좋았어요.</p>
<p class="바탕글">그 맥락이 이어지는 게, 환자들을 산재신청한 후에 지부별로 근로복지공단 항의방문 가고, 간담회 하고, 조합원 특별교육 잡아서 돌아다니면서 지부별로 교육하고, 그러니까 조합원들이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어요. &lsquo;나도 저럴 수 있다&rsquo; &lsquo;저 사람 얼마나 힘들까?&rsquo; 하는 이런 동지적 분위기가 2004년~2005년에는 굉장히 높았어요. 활동가들에 대해서도 &lsquo;정말 고맙다&rsquo; &lsquo;뭐라도 같이 할 수 있을까?&rsquo; 그러고...</p>
<p class="바탕글">이런 게 좋았다가 탄압이 들어오죠. 승무는 본부장과 사무장, 지부장급까지 다 해고예요. 그리고 나서도 2005~2006년 막 힘들 때 &lsquo;그래도 우리가 해야지&rsquo;하면서 해고자 동지들이 현장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하고...&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2004년까지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게 되는 공유정옥은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어머니가 쓰러지시는 등 어려움이 찾아온다. 2005년 초 우여곡절 끝에 산업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하고 상근활동을 시작하게 된 곳이 &lsquo;근골격계 직업병 공동연구단&rsquo; 활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였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2005년 초에 전문의 시험을 보고 직장을 구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스터디도 하고... 그러다가 2004년 10월에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석 달을 입원해 계셨어요. 초반에 두 달까지는 의식이 안 돌아오셔서 공부할 거 책 싸들고 가서 병원에서 했어요. 엄마 문제 때문에 아버지랑도 많이 다투고... 주변에서 많이 걱정해줬어요. 공부도 안 잡혔고, &lsquo;엄마가 이렇게 가시면 어떻하나&rsquo; 하는 걱정도 컸고... 막판에 2차 수술 하시고 엄마가 정신이 돌아오셨어요.</p>
<p class="바탕글">어쨌든 내 생각에는 전문의 시험을 겨우 통과한 거 같애요. &lsquo;어떻게 할까?&rsquo; &lsquo;어디로 취직을 할까?&rsquo;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는데, &lsquo;상근을 해야겠다&rsquo;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내가 파고드는 스타일이라서 학교에 남아서 연구를 하는 것도 좋았을 거 같은데, &lsquo;내 스타일이나 이 운동에 필요한 게 단체 상근이지 않을까?&rsquo; 하는 생각도 했었고... 산업안전공단이라는 곳이 있는데, &lsquo;거기서 하는 일도 상당히 중요한데 그런데 가보는 건 어떨까?&rsquo;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성에 안 차고 제약이 많잖아요.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조금씩 조금씩 내 일상생활하고 운동하고 교집합이 넓어지면서 왔는데, 그걸 물리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남은 건 상근 밖에 없는 거예요.</p>
<p class="바탕글">저희 나올 때 거제 대우병원에서 &lsquo;아파트, 차, 1억&rsquo; 이렇게 조건을 걸었었거든요. 지방에는 산업의학 검진의로 가면 초봉 최저가 750이다고 그랬고... 그런 데의 일상이 뻔한 거고... 잠깐 생각했던 것이 &lsquo;1년 정도 돈을 벌어놓고 해볼까?&rsquo;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엄마 쓰러지고 이러면서 정신없었고... 그런 생각들을 잠깐씩 해보기는 했었는데 자연스럽게 다 사라지고, &lsquo;그냥 상근하지 뭐&rsquo; &lsquo;상근비로 충분히 살 수 있고, 만약에 모자라면 아닌 말로 응급실 아르바이트 한 번 뛰면 20만원 벌 수 있는데... 내가 자식이 있어? 뭐가 있어?&rsquo; 그러면서 되게 자연스럽게 결정을 했어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2005년 주요하게 진행했던 사업 중의 하나는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사업이었다. 대공장이었고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사업의 중요성이 있었던 만큼 연구소에서도 많은 투여를 했다. 공유정옥은 1주일에 3일을 울산에서 지내면서 평가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관료화된 대공장 노동조합운동은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거기 분위기가 &lsquo;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다&rsquo;는 게 있어요. 일 하다가 멈춰 서서 잘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게 아니라 &lsquo;하기로 했으니까 하는 거다&rsquo;는 정말 관료적인 거죠. 하기로 한 거만 하는 거죠. 하다보면 다른 걸 더 붙여야 되거나, 원래 들고 가던 걸 내려놔야 되기도 하는데, &lsquo;하기로 했으니까 하기로 한 것만 하는 거다&rsquo;는 그런 관계맺기가 재미도 없지만, &lsquo;저 사람은 재미가 있을까?&rsquo; &lsquo;이렇게 해서 운동이 발전이 될까?&rsquo;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예전에 학생회 있을 때 뒷간토론 해보자 해서 했던 게 몸은 고달퍼도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는데... 나중에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된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해요. &lsquo;자신도 그렇다. 노동운동 처음의 마음이나 낙을 잊고 사는 거 같다&rsquo; 그런 마음을 알게 되면서 더 애정을 갖게 됐어요.</p>
<p class="바탕글">지금은 그런 모습들 보면서, 정말 쳐다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lsquo;노동운동은 옛날식으로는 안 돼. 나는 집행부 맡았으니까 그냥 하는 거야&rsquo; 하는 무기력감에 젖어있는 모습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무집행을 하는 사람들이 하기로 했으니까 하는 딱가리가 아니라 운동을 하는 기쁨을 느끼게 하고 보람을 찾게 할 거냐 하는 건, 대공장이건 작은 공장이건 다 마찬가지 숙제라는 생각을 해요. 그 문제를 풀 때 그렇게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 자기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줄 모르거나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고, &lsquo;그런 식으로 하면 노동운동 안 된다&rsquo; 이렇게 고민을 하고 그래야 풀리지, 밖에서 풀어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ldquo;제가 소재공장을 담당했는데, 소재공장이 10개가 있어요. 토요일날 오전에 조합 사무실이 비어 있잖아요. 이만큼 큰 궤도가 벽에 붙어 있으면, 종이를 대서 지도를 그렸어요. 그걸 복사기로 축소복사 축소복사해서 작게 축소를 했어요. 그걸 놓고 지도를 외웠어요. 공장이 흩어져 있으니까 내가 맡은 공장이라도 외워야 된다 싶어서... 그리고 현장에 갈 때마다 &lsquo;여기가 몇 번 문이고, 여기가 게시판이고, 조합원들은 여기서 쉰다&rsquo;는 걸 지도에 표시를 했어요. 하나하나 메모해놓고 계속 봤어요.</p>
<p class="바탕글">나중에 주철공장 출신의 활동가 차를 얻어 타고 대자보를 붙이러 가는데 경합금공장을 가게 된 거죠. &lsquo;이렇게 도셔서 저기 문이 있는데, 거기로 가면 게시판이 가깝다&rsquo; 그러니까 &lsquo;어떻게 자기보다 더 잘 아냐?&rsquo;고 그래요. 그러면서 얘기하게 되니까 자기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20년을 다녀도 자기 일하는데, 대의원을 하더라도 자기 선거구 밖에 모르는 거예요.</p>
<p class="바탕글">회사가 보기엔 &lsquo;거기 운동하는 놈 있어? 걔 영역 요만큼&rsquo; 이거잖아요. &lsquo;걔 괜찮아. 뛰어봤자 거기까지야&rsquo; 이런 거잖아요. 위원장급으로 튀는 사람만 몇 사람 쳐주면 되니까. &lsquo;이거 되게 허름한 시스템이다&rsquo; 싶었어요.</p>
<p class="바탕글">대의원들이 자기 선거구 관리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라인을 가다가 &lsquo;여기까지가 내 선거구기 때문에 더 이상은 안내하지 못 한다&rsquo; 그래서 &lsquo;그쪽 선거구 들어간다&rsquo;고 전화를 하더라고요. 너무 황당했어요. 그런데 상집들이건 현장활동 하는 사람들이건 자기 나와바리가 있어서 딱 그만큼인 거예요. 그걸 깰 수가 없는 거죠. 이 경계의 문을 열어야 하는데...</p>
<p class="바탕글">근골격계 실행위원 하는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게 자기가 일 안 해본 현장을 가는데, 그냥 가는 게 아니라 그걸 분석적으로 보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걸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게 정말 위협적인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게 보이지 않는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그게 2004년에 바로 됐으면, 2005~2006년에 뭔가 다른 희망을 만들어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rdquo;</p>
<p class="바탕글">&nbsp; <o:p></o:p></p>
<p class="바탕글">2005년은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사업만큼 중요한 비중으로 결합했던 사업장이 구로의 하이텍알씨디코리아였다. 노조 탄압에 의한 정신질환문제로 연구소와 함께 힘겨운 투쟁을 벌였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