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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같은 나라

부천역에서 2차선 도로로 하경이가 다니고 있는 산어린이학교를 가다보면 펄 벅 기념관 표지판이 보인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펄 벅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 것은 알고 있기에 펄 벅 기념관이 평소 궁금했다. 마침 방학 중 돌봄도 끝났고, 차도 손을 봐야 해서 부천에 갔다가 8월 25일 자동차를 카센터에 던져놓고 펄 벅 기념관을 다녀왔다.

 

펄 벅 기념관은 생각보다 작았다. 발을 들여놓고 잠시 당황했지만 전시되어있는 물건들과 사진들을 보면서 펄 벅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해설하시는 남자 분이 다가와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펄 벅은 1967년 유한양행 유일한박사와 함께 2만평 정도의 땅에다가 소사희망원을 세운 뒤 10여년 전쟁고아와 혼혈아동들에게 도움을 줬다. 펄 벅의 80세 생일에 1030명의 이름이 새겨진 산수화를 선물로 받았다고 하는데 1030명의 이름에는 윤수일, 인순이, 박일준 등의 이름이 들어있다고 한다.

 

1973년 펄 벅이 세상을 떠난 뒤 소사희망원은 사라졌지만 2006년 소사희망원이 있던 자리에 펄 벅 기념관이 세워졌고, 펄 벅 재단( http://www.pearlsbuck.or.kr )은 현재까지 다문화가정과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전쟁이 지나간 뒤 남겨진 아이들, 특히 외국 군인의 아이들이 혼혈이라는 이유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던 펄 벅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말년에 복잡한 문제들로 인해 그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나는 그녀가 걸어온 길들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끌어안지 못했던 이들을 그녀는 끌어안고자 했고,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줬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산수화를 선물했던 1030명의 사람들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고, 그녀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녀의 빛과 그림자를 모르기에 나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단지,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면 좋겠다.

 

그녀처럼 아파하는 이들을 돌보고자하는 노력들이 계속된다면 내가 살아가는 나라는 그녀가 말했던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일 것이다.

 

 

사랑으로<고통 받는 어린이를 위한 시>

 

이 기쁨의 날을 다른 이들과 함께 누리도록 허락 하소서.

누군가를 위하여 작은 선물을 준비하게 하시고,

그 선물이 고통 속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어린아이의 삶에, 살아갈 희망으로 다가가게 하소서.

 

Let me share, I pray, In this joyous day.

Let me, for your sake, A small gift to make.

And in such giving May some child’s life,

Now torn with strife, Be more worth l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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