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자격지심?

오늘 일이 있어 청계광장을 잠시 지나게 되었습니다.

 

청계광장에서는 한 단체가 행사를 하고 있어서, 8일에 진행되는 ‘2016 학교밖청소년축제-대안교육한마당’ 부스 형태를 비교해볼 생각에 주위를 돌아봤습니다.

 

돌아보다 현수막에 쓰인 글이 자꾸 눈을 아프게 합니다.

 

청계천으로 내려가는 길 쪽 방향으로 큰 상자를 만들어 어른상자라는 체험부스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상자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궁금했지만 어쩌면 화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상자 외벽에는 이런 글도 있었습니다.

 

한 해 300명.

 

‘버려지다’라는 말의 뜻을 알기도 전에 버림을 받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품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차가운 시멘트 온도를 알아버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무연고 아동’이라 불리는 이 아이들에게 여러분의 품과 따뜻한 온기가 필요합니다.

 

 

뭐가 문제지? 뭐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도대체 뭐가?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런 아이들을 돕자고 하는 것인데 뭐가 문제지?

 

어른상자에 쓰인 글을 읽을수록 내 마음은 불편해졌습니다. 내가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한 부모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사소한 일에 너무 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이거나, 자격지심에 의한 것인지 분별할 수 없으나 ‘버려지다’라는 말은 나를 불쾌하게 했습니다.

 

오늘 행사를 진행한 분들을 탓하고는 싶지 않습니다. 단지,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상대방을 조금 더 배려하면 좋겠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위의 글을 어떤 이유로 써 넣었는지 이해는 되지만 버려지다는 표현 방식을 사용했어야 하는지는 묻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표현이 너무나 거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나와 같이 이런 사소한 일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소수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혜자가 소수라 할지라도 시혜자는 소수인 당사자의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혜자는 시혜자의 입장에서 수혜자를 바라보기 보다는 수혜자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 돌아보니 행사에 동참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온 아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던 것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풍선을 나눠준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그들의 기억 속에는 버려진 아이들을 도왔던 좋은 추억들이 남을지도 모릅니다. 버려진 아이들 위해 무엇인가를 한 날로 말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오늘 하루는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이 아닌 버려진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을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한 날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버려지다’라는 말이 마음 한 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 할 언어가 없는 건가요?

 

비약이지만 만약 어린 자녀가 엄마. 베이비박스에 아이들 버리면 베이비박스는 뭐야? 아이를 버리는 상자? 이리 물어본다면 아이에게 무엇이라 말을 해야 할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