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새가족교회에서 짧게 서로 읽고 이야기를 나눴던 책입니다. 그래서 아내 별명인 징검다리라고 것 표지에 쓰여 있네요. 이 책은 톰 라이트가 쓰고, 백지윤이 옮긴 책인데 2017년 2월 초판 발행된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책인데 그냥 ‘1만권 독서법’의 인나미 아쓰시가 말하는 플로우 리딩 그냥 흘려 읽기를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생각 없이(?) 읽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책 읽는 재미를 생각한다고 했지만 읽다보니 그냥 목표 달성(?) 나 이 책 읽었어라는 마음으로 읽은 책이라 톰 라이트에게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미안합니다. 하하하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책을 어떻게 읽어 나갈 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일반 서적과 종교(기독교) 서적을 일 대 일 비율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고른 책입니다.

 

읽기는 어제 읽었는데 마나님 눈치 보느라 흔적을 못 남기고 아침에 잠시 짬을 내서 적고 있습니다. 오늘도 약간 정신없이 특히 오후부터는 새벽까지 일정이 있어서 오늘 읽을 책은 조금 편안한(?) 책을 골랐습니다.

 

마음에 드는(?) 말들이 간혹 눈의 띄지만 너무 길게 적으면 그럴 것 같아서 생각나는 몇 부분만 적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특히 사람을 죽이는 일에 뛰어난 전문가였던 로마 군병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라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바울의 좋은 소식의 핵심이다. 메시아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셨다는 것.(50)

 

 

언젠가 C.S. 루이스(Lewis)는 이렇게 말했다(이것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그의 묘비에 적힌 문구이기도 하다). “나는 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는다.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다른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53)

 

 

세상의 제국은 폭력으로 다스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사랑으로 다스린다고 선포하셨다(73)

 

 

그러나 이 이야기가 근거 없이 지어 낸 것이 아니라는 증거 역시 많다. 그중 하나는 사복음서에서 차지하는 여인들의 위치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빈 무덤에 처음으로 갔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났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예수님을 보았다고 처음으로 전했다. 고대 세계에서 의심하는 사람에게 확신을 주고자 할 때 어느 누구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꾸며 내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여인들은 신리할 수 있는 증인으로 취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린도에 보내는 바울의 첫 편지가 쓰일 즈음(50년대 초기)이 되면, 이미 공식적인 전통의 기록에서 여인들은 사라져 있다. 공식적인 목적을 위해 그들은 곤란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특별히 요한의 복음서에는 그들이 나온다.(84)

 

 

인간 통치자는 그들의 방식으로 다스리지만, 우리가 다스리는 방식은 그들과 다르다. 우리에게 권세란 섬김을 통해, 특별히 자기희생을 통해 온다. 잘못 이해될 수 있는 명백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왕국’에 대해 계속 말씀하신 이유는 일반적인 세상의 왕국을 완전히 다른 종류의 왕국으로 바꾸고자 하셨기 때문이다.(101)

 

 

과학자가 어떤 발견을 했다고 해서 어떤 사상이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상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67)

 

 

군인들의 옛 속담에 “여우 굴에 무신론자는 없다”는 말이 있다. 여우 굴은 전쟁터에서 위험한 지점에 파 놓은 참호를 지칭하는 군대 속어다. 이 속담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러나 보통 때라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도 어려움을 당하면 어떤 식으로든 기도하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배 안에서 폭풍우를 만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 대부분은 그런 상황에서 기도란 무엇이며 어떤 형식을 따라야 하는지를 놓고 느긋하게 묵상할 여유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는 그저 “도와주세요!”하고 절박하게 외치는 것뿐이다.(228~22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