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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망명자

즐거운 망명자

즐거운 망명자 -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이 글은 내가 이런 책을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함이지 서평을 쓰고자 함이 아님을 밝힙니다.

 

제임스 휴스턴이 쓰고 홍종락이 옮긴 2009년 초판 발행된 책을 읽었습니다.

 

 

성경의 권위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편협함과 도덕의 자기도취가 생겨날 수 있다. 혹 그런 태도가 나타나면 삶의 문화적 복잡성을 통하여 교정해야 한다. 시와 문학과 드라마와 미술은 이런 복잡성을 살펴보도록 도와준다. 예수님도 당대의 도덕적 자기도취와 인습적인 가치관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셨다(33~34)

 

 

성경이 없으면 자연히 영혼이 쪼끄라드는 절망에 이르게 된다.(118)

 

 

내 친구는 에베소 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린 이유는, 지도자들이 변증론과 신학 연구에 매달리느라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일을 소흘히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126)

 

 

기독교 기관의 지도자들이 도덕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개인적 희생으로 시작한 일이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명성을 얻으려는 세속적인 야심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신실한 삶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여 준 희생적 현실이며 성공과는 무관하다.(137)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이는 누구인가? 우리 자신인가, 다른 사람들인가, 하나님이신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 16:18).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기독교적 현실주의다.(154)

 

 

기독교적 열정은 일시적인 황홀경이 아니며 불행을 피해 달아나지도 않는다. 또 감각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며, 지금 여기에서 만족을 찾지도 않는다. 기독교적 열정은 우리의 영혼을 고양하여 그것을 세상의 유혹 너머로 끌어올려 청교도들이 말한 ‘천국을 바라는 소망’에 인격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끈다.(177~178)

 

 

신학적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특정 교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신앙은 우리에게 일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최대한 충실하게 살아가는 데 전념하라고 요청한다.(194)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약함 가운데 강함을 발견하는 일이다.(198)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문화 생활의 범위가 협소해진다고 믿었던 내 젊은 날의 오만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220)

 

 

1953년 루이스가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치기 위해 떠난 후 그를 자주 보지 못했다. 1957년, 이러다 연락이 끊어지겠다 싶어서 나는 그에게 저작 중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1943년에 출간된 공개 강연 모음집 「인간 폐지」(The Abolition of Man, 홍성사 역간)와, 1956년에 출간되었으나 반응이 실망스러웠던 소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Till We Have Faces, 홍성사 역간)가 자신의 관심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221)

 

 

기독교 신앙은 의기양양한 승리의 삶이자 고난과 패배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운다.(232)

 

 

우리는 기독교 본래의 교육 정신, 즉 보다 인격적인 신앙 교육 모델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기독교의 교육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죽음 – 부활 – 승천의 비전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본을 보여 주었다. 요컨대 신앙의 전수 없이 헌신이 나올 수 없고, 일관된 헌신 없이 신앙이 전수될 수 없다.(247)

 

 

사랑하는 이들이 무릎 끓고 기도하는 기억을 통해 신앙은 전해진다.(262)

 

 

“짐, 타이타닉호를 만든 건 전문가들이었지만 방주를 만든 건 아마추어 한 사람이었음을 기억하게.”(271)

 

 

교회사에 꼭 필요한 교의敎義와 잘못된 교조주의를 혼동하는 일은 늘 있었다. ‘교의’는 권위 있는 신앙 체계, 즉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교리 체계를 가리킨다. 그러나 ‘교조주의’는 이런 근본 확신을 교조적으로 붙드는 태도다. 믿는 바를 확고하게 붙들어야 마땅하지만, 그 확고함이 지나치면 완고함이나 오만함이 나타나 급기야 ‘교조주의’로 변질된다.(285)

 

 

진리에 따라 살기를 구할수록 더욱 많은 반대에 부딪치게 마련이다.(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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