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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김려령 글
노석미 그림
문학동네

아내가 책 한권을 권한다. 광명시 평생학습원 안에 있는 청개구리 도서관에 하경이와 함께 갔다가 하경이가 가지고 놀던 책을 주더란다. 그게 바로 이 책이다. 사실 읽다가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입양 아동 입장에서 쓴 글이라고는 하지만 전개가 서툴고 공개 입양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 글을 읽으며 울었다고 했다. 물론 나도 조금 눈물이 나온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보면 내 마음에는 별로다.

언젠가 파주로 이사간 소원네 놀러 간 적이 있다. 소원 엄마가 휴가라 휴가 끝날에 놀러갔다. 소원 엄마하고 아내는 고등학교 친구다. 그리고 공개 입양한 가정이고 우리 부부가 하경이를 입양하기까지 도움을 받았다.

하경아빠와 공개 입양한 아이에게 넌 입양아야 넌 입양아야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라는 책은 우리의 대화와 같은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입양 부모들이 모두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은 문학동네라는 출판사에서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고 문학동네가 어린이 책에는 나름 영향력이 있는 출판사기 때문에 조금자란 입양 아동들과 그 친구들이 이 책을 읽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책의 결말은 좋다. 가족의 화해로 끝났다. 또 다른 아이를 입양한다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음은 그리 편하지는 않다.

할머니는 이불을 끌어올려 나를 덮어 주었다.
“에효, 나가 아도 못 낳는 아덜을 장개 보냈더니 그 죗값을 니가 받는다. 그려도 니 엄마헌티 너무 서운해 마라. 알고 보문 니 엄마도 부쌍 안 허냐. 니도 여자니께 원젠가는 알겄지만, 여자라는 기, 내 새끼 뱃속에 열 달 품었다가 젖 먹이고 싶은 기 여자다. 고것을 못 혀니께 조로코롬 심든가 보다.” p. 103.

“그러니께 하늘이도 그 뭐여, 땔렌똔가 뭣인가 시켜라.”
“하하하. 하늘이는 연예인 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어머니.”
아빠가 어이없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야, 니 참말로 그런 거 허고 잡지 않냐?”
할머니는 나를 보고 물었다.
“저는 연예인 싫어요.”
세상에, 탤런트가 되라니. 내가 사진 찍기를 얼마나 싫어하는데.
“허이고, 아픈 거 데리다가 멕여 주고 입혀 주니께, 못 허는 소리가 없네. 고마운 중 알문 돈벌이라도 혀야제.”
“아이, 싫다잖아요. 저도 하늘이 연예인 되는 거 싫네요.”
“허기사, 저 가시나는 원체 뻣뻣혀서 인기도 없을 것이다. 가시나가 강아지맹키 살가운 구석이 없어.”
“어허, 우리 어머니 또 시작하신다. 속으로는 예뻐하시면서 왜 그러세요.”
아빠는 나를 보며 살짝 윙크했다.
“나? 나 저 가시나 한나도 안 이뻐. 워찌나 땍땍거리는지 에미 못지않다니께. 어린 게 살갑게 굴어야 빼다구라도 한나 던져 줄 것 아녀.”
강아지. 뼈다귀. 누가 가슴을 꾹 누르고 있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어이쿠, 놀래라, 저 가시나가 눈을 왜 살쾡이마냥 부릅뜨고 난리여.”
“하늘아------.”
아빠가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그렇게 힘을 줘도 턱이 덜덜 떨려 이가 제멋대로 부딪혔다.
‘나는 뼈다귀나 던져 주면 좋아하는 강아지가 아니에요.’
마음 깊은 곳에서 말하고 있었지만 이를 꽉 물어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했다.
“쟈가 왜 저런댜. 뭐여, 헐 말 있으문 싸게 허든가.”
‘나는 애완용 아이가 아니라고요!’
속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귀가 터질 것 같았다. 아빠는 속을 많이 썩였다면서도 사랑해 주면서, 나는 꼭 예쁜 짓을 해야만 사랑해 주는 걸까. 엄마 아빠에게는 착한 딸이 돼야 하니까, 할머니한테만큼은 조금 못된 손녀딸이 되면 안 될까.
“주먹 꼭 쥔 폼이 한 대 치겄다. 워디 겁나서 말 쪼까 허겄냐? 저러니 주서다 키울 필요가 없다니께------.”
할머니는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거실 바닥을 손으로 훔쳐가며 말했다.
“그만 하세요 어머니.”
아빠가 단단히 굳은 얼굴로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p.60-62.

“언니는 좋겠다. 입양 전문가 엄마  아빠를 둬서.”
한강이는 킥킥대고 웃으며 말했다.
“좋긴 뭐가 좋아. 난, 공개 입양된 거 싫었어. 내가 너처럼 떼라도 부려 본 적 있는 줄 알아? 고아인 애 데려다 키운 걸 다 아는데 어떻게 떼를 부리냐. 엄마 아빠랑 외출할 때는 싫은 것도 다 했어. 내가 입양된 걸 사람들이 다 알 텐데, 싫은 티 내면 나한테 뭐라고 할 거 아냐.”
“그래도 언니가 나은 거야. 나처럼 못된 짓 해 놓고 후회는 안 하잖아.”
행동으로 못된 짓은 하지 않았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수백번도 더 했다. 어쩌면 그런 내 마음을 엄마가 눈치챘을지 모른다. 혹시 그래서 내가 떠날 것 같았다고 했나? 정말로 나는 대학생이 되면 떠나려고 했다.
“너도 후회 같은 것 하는구나.”
“장난해? 우리 컵라면 사 먹자. 이거 탔더니 배고프다. 달려!”
한강이는 의자에서 발을 내리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나도 또 한소리 들을까 봐 열심히 밟았다.
“스톱, 스톱! 아이, 진짜, 이게 범퍼카야? 박을 뻔했잖아!”
힘껏 밟아도 뭐라고 하고 안 밟아도 뭐라고 한다. 돈도 내가 냈는데------. 엄마는 한강이가 왜 착하다고 했을까? p. 138-139.

내 가슴에는 해마가 산다. 가끔 나를 속상하게 해서 미울 때도 있지만, 아픈 상처가 보이면 같이 아프고, 떨어져 있으면 빈자리가 허전해 벌써 그리운 내 해마다. 욕쟁이 할머니 해마, 나한테 은근히 잘 속는 아빠 해마, 아무리 생각해도 연예인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엄마 해마, 그리고 울퉁불퉁 주름투성이 내 해마.
며칠 뒤면 귀여운 내 동생 해마도 같이 살 것이다. 한강이처럼 못되게 굴면 엉덩이를 찰싹 때려 줄 것이다. p. 157-158.
 
2008년 8월 30일 그리움이 머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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