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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기숙사학교 -독일의 대안학교-

전원기숙사학교-독일의 대안학교-

 

정기섭의 글을 도서출판 문음사에서 2007년 12월에 출판한 책이다. 독일의 대안교육은 어떤 입장인지 간략하게 살필 수 있는 책이었다.

 

리츠에 대한 부정적 입장도 간략하게나마 들어 있어서 좋았는데 리츠가 1차 세계대전 당시 군대에 지원했다는 것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책에 소개된 다른 학교들도 좋지만 하안의 잘렘성 학교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다.

 

 

[1932년 8월 10일 히틀러가 슐레지엔 지역의 포템파에서 한 공산주의자를 그의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때려죽인 나치돌격대원(SA)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축하하는 전보를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하안은 히틀러를 비난하면서 그해 9월에 잘렘학교의 졸업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회람을 보냈다.

 

"잘렘은 중립을 유지할 수 없다. 잘렘 동창회의 회원 중에서 나치돌격대원 또는 나치친위대(SS)로 활동을 하는 사람은 히틀러에게 충성하거나 잘렘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권유한다"(Knoll(Hrsg), 1998: 189).

 

이러한 히틀러에 대한 비판적 태도 때문에 하안은 1933년 3월 11일에 체포되어 위브링엔에 있는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1933년 7월 지인들의 권유로 스코트랜드로 망명하여 11월에 '영국-잘렘-학교' 고든스타운을 설립하게 된다.] - 186. 재 인용

 

 

독일계 유대인이었던 하안이 독일에서 기세가 오른 히틀러에 대한 비판이 그리 쉽지 않았겠지만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했다는 점이 마음에 와 닫는다.

 

 

[잘렘학교 모델을 논의함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할 점은 아마도 학교공동체의 성격일 것이다. 물리적인 통제에 의한 공동체가 아니라 자발적인 주체들의 "역동적 참여"에 의한 공동체가 교육적으로 중요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학교국가로 형성된 잘렘학교가 민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의 법치국가로서의 학교에 대한 주체적인 개인들의 인정일 것이고, 이러한 인정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 권리와 의무를 담고 있는 학교 규칙(법)에 대한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개인의 자유란 학교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권리가 된다.

 

주체들의 자발적인 인정이 없이 학교 규칙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은 획일주의를 생산할 것이며, 또한 공동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열정적 참여만을 강조한다면 집단이기주의로 발전될 위험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성원의 열정적 참여의식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판적 사고와 대화능력을 함께 갖춘 자주적인 구성원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개인의 고유성이 침해 받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개인들 간에 조화를 이루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안이 언급하고 있는 "정치적으로 행위 하는 것을 배우기"(이 책, 181쪽 이하 참조)가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행위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존재로서 인정하면서 자신이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을 대화적 행위를 통하여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갈등해결과 화합의 능력을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해는 결국 잘렘학교가 강조하고 있는 "민주적으로 행위 하는 것을 배우기"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205-206. 재 인용

 

 

정기섭이 잘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긴 하지만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닫는 부분이다. 민주적으로 행위하는 것을 배우기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나름 해결해 줬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0일 배움터 길에서 홍세화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에 대한 의미들을 생각했는데 그 말의 의미와 같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더 마음에 와 닫는다.

 

 

최근 부목사로 사역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사역의 방향을 잡아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아내와 함께 대안교육의 틀을 지역아동센타에 적용시켜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앞으로 나갈 생각이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더 이상 방황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3월 19일 삼청교회에서 고병헌교수님의 교회 도서관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아이들에게 입문학을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20일 배움터 길에서 홍세화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변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지속적이고 끈질긴 행위들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읽어야 할 책들을 읽고 청소년 문화학교와 지역아동센타를 지속적으로 준비를 해서 민주공화국에서 사는 즐거움을 아이들과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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