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빠는 전업주부

 

아빠는 전업주부
아빠는 전업주부
키르스텐 보예
비룡소, 2003

 

 

아빠는 전업 주부

 

비룡소에서 기르스텐 보이에가 쓰고 박양규가 옮긴 글을 출판했다.

 

육아 문제로 직장을 다니지 않던 아내가 어렵게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셋째가 생겨 선생님이었던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고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큰 딸 넬레(코르넬리아의 애칭)의 입장에서 적은 글이다.

 

넬레는 아빠의 선택이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예상을 하지 못했다. 넬레는 단지 아빠가 직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가정을 돌본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 정도였지만 막상 아빠의 전업주부 생활이 시작되자 일은 점점 복잡해져 간다.

 

아빠 역시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몰랐다. 처음 시작하는 전업주부의 삶은 의욕이 넘쳤지만 동생에게 심통이 난 둘째 구스타프와 이제 막 태어난 야콥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사이 아빠의 생각은 조금씩 바뀐다.

 

 

“나도 알아! 그럼 왜 그때 아무 말도 안 했지? 나는 주부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어떤지 몰랐어. 더군다나 집에는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자기 시간이 많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거의 휴가 같을 거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엄마는 내가 어떤 기분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하잖아. 나도 한번 밖에 나가고 싶다는 걸 말이야!”(147)

 

 

남성이든 여성이든 전업주부의 삶은 고단하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그 고단함의 분량은 작아진다. 현실의 삶에 완벽할 필요는 없다 아니 완벽할 수 없다 단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고 그 최선의 결과물을 자신 스스로 받아들이면 된다. 전업주부는 숨을 쉴 구멍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넬레의 엄마 소식에 자신도 직장 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카타의 엄마와 자신의 아내가 일하는 것을 반대하는 카타의 아빠의 모습은 카타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조금은 다르지만 ‘최나미’가 쓴 청년사의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아빠는 엄마가 일자리 찾는 것을 말려, 아빠 말로는 엄마가 일할 필요도 없고 또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아빠 회사가 망했다고 생각해서 주문이 들어오지 않을거라는 거야. 그런데 엄마는 자아실현이 회사 일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말했어. 그러니까 아빠는 자아실현이란 단어는 우리 집에서 쓰는 단어가 아니라고 했고, 여성 해방 운동가가 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보따리를 싸서 나가도 된다고 했어. 그런데 아이까지 물들여 놓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어.”

“어떤 아이 말이니?”

“누구긴 누구야. 나지! 아빠는 엄마가 나의 모범이 되야 한다고 했어. 아빠는 평생 엄마와 나를 위해 심장병이 생길 정도로 일했지만, 기껏 남자들이나 시샘하고 너무 못생겨서 결혼하지 못한 여자들이나 부르짖는 여성 해방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막 화내셨어.”

“그래서?”

“엄마는 울면서 밖으로 뛰어나갔고, 아빠는 위스키를 마셨어.”(129)

 

 

가출을 했던 구스타프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넬레는 자신의 어린 동생에게 아빠의 전업주부 생활로 인해 벌어진 복잡한 상황을 정리해준다.

 

 

“누나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줘.”

이제 구스타프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나는 구스타프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괴물이 어느 집에 몰래 들어가 모든 걸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고, 또 사람들끼리 싸우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구스타프는 흥분해서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하는 괴물이 있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물론이지. 괴물을 볼 수 없으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이 서로 그런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괴물은 마음을 놓고 나쁜 짓을 하는 거야. 알아듣겠어?”

구스타프는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나서 괴물들이 어떻게 했어?”

나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다시 서로 사랑하니까 괴물은 달아났고 옛날로 다시 되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스타프는 뭔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구스타프는 말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사람들은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막 때렸지! 그래서 괴물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도망친 거야, 응?”

그스타프는 베개에 머리를 대고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큰 몽둥이였지, 그렇지?”(165-166)

 

 

'아빠는 전업 주부'는 남성(아빠)이 집안 일을 시작하면서 벌어진 혼란을 무리없이 적어간다. 넬레의 짝사랑, 동생이 생겨 힘들어하는 구스타프, 온 집안을 혼란으로 몰아간 야콥, 전업주부의 고단함을 알아가는 아빠,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가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는 엄마를 통해 삶의 고단함과 삶의 여유를 이야기한다.

 

 

아빠는 요리와 바느질 그리고 청소를 하고 야콥을 위해 작은 통나무로 장난감을 만든다. 그리고 테니스를 치러 다니고 창문을 닦고 구스타프와 함께 라디오를 분해한다. 라디오는 누가 길에 버려 놓은 것이었다. 모든 관과 전선을 다 뜯어서 나중에 휴지통이 꽉 차 버렸다.

집이 깔끔하게 정리된 적은 여전히 한 번도 없다.

아빠가 말했다.

“나는 집을 깨끗하게 치우는 마술을 부릴 재주는 없지만 어질러 놓고 사는 데는 문제없어.”

하지만 이웃 아주머니가 갑자기 방문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빠에겐 여간 괴로운 노릇이 아니었다.(203-20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