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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 4자루에 묻어난 삶의 흔적

산 어린이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있고 삶이 있다.


오후 3시에 출근하는 난 먼저 부엌으로 간다. 부억에서는 맛있는 간식을 준비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간식을 가지러 올 것이고 맛단지와 징검다리가 준비한 간식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면서 내 학교 일과는 시작된다.


어제 간식은 팥죽이었는데 한 아이가 팥죽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맛단지가 아이에게 말한다. 조금이라도 먹어봐 얼굴에 구겨짐을 약간 보이던 아이는 팥죽을 들고 나간다. 모든 아이들이 이런 모양새는 아니다. 조금있다가 팥죽을 더 먹겠다고 한 두 아이들이 들어온다. 눈에 뜨게 나눠주면 너도 나도 달려들기 때문에 부엌에서 먹고 나가라고 말을 했는데 한 아이가 그것을 보고 팥죽을 더 받은 아이의 이름을 들먹이며 좋겠다고 말한다.


팥죽에 밥알이 있는 것을 보고 한 아이가 말한다. 어 팥죽에 밥이 있네? 맛단지 왈 그거 다 사연이 있는 거다. 맛있으니까 잘 먹어라. 팥죽에 밥이 들어간 이유? 그건 세알을 팥죽에 넣었는데 생각보다 세알이 적어서 밥을 넣었다. 밥알이 함께 떠 있는 팥죽의 맛은 맛단지가 만든 음식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정말 맛있다^^


운동장에서는 축구가 한창이고 한쪽에서는 길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온 학생이 농구를 한다. 9월부터 인턴쉽으로 온 호선군은 아이들 속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모래장에는 산이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 가끔 산이 옮겨 다니기도 한다. 산(?)이 무슨 말인지 궁금하신 분든 시간을 내서 학교에 와 모시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것이라 생각하기에 별도의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두 개의 산을 만들던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3학년 여자 아이들이 철봉대 바로 밑에다 만들고 있는 모래 언덕을 다른 아이들이 만지지 못하게 하자 심술이 붙은 남자 아이들이 하나 둘 장난을 친다. 한 쪽에서는 작은 삽을 가지고 너무 오래 사용했으니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는 말에 자신이 더 삽을 가지고 놀고 싶다고 실랑이다. 작은 삽은 학교에 모두 10개가 들어왔지만 현재 4개만 풀어놨다. 좁은 공간에 삽질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안전상 문제가 생길 것은 뻔한 노릇이니 미리 예방차원에서 4개만 풀었다.


5학년 교실의 책상을 치우고 왔다가 갔다리가 벌어졌다. 아이들의 왔다리 갔다라니는 장소를 옮겨다닌다. 가끔은 4학년 교실에서 또 어떤 때는 새 강당에서 이도 저도 아니면 강당에서 왔다리 갔다리를 한다. 처음에는 운동장에서 하던 것이 운동장을 나눠써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버린 아이들의 지혜다. 아니 어느 장소든 놀이 공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들의 천진 난만함의 결과라고 해야 하나?


방아개비를 잡는다고 텃밭에 올라있는 아이들이 모래 사장으로 와서 놀다가 교실로 들어가 논다. 아이들은 도둑과 경찰을 한다고 뛰기도 하고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꽃밭에는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고 휘파람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길학교에서 인턴쉽 과정 현장순회를 온 선생님은 한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2학년이 5학년보다 높은 이유를 설명하는데 초딩 5학년과 고딩 2학년 과연 누가 더 높은 학년일까?


때때로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논다.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는 세력은 적이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험악한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어찌보면 혼란이요 어찌보면 조화다. 침범하는 세력과 저항하는 세력 그것을 방관하는 세력, 관찰하는 세력


여자 아이들이 징검다리와 자리를 옮긴 사이 남자아이들이 숫자를 샌다. 하나 둘 아이들이 숫자를 세는 이유는, 여자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산을 옮겼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숫자를 열심히(?) 세도 여자 아이들이 오지 않자 삽질을 시작한다. 어떤 아이는 산을 발로 무너트리고 어떤 아이는 손으로 산을 옮긴다.


산이 있던 자리는 평지가 되고 산 하나는 더 높아지고 새로운 산이 하나 더 생겼다. 아이들은 조그만 물통에 물을 담아 산에 뿌리고 삽으로 다지고 다시 모래를 위에 쏟는다. 산은 조금씩 자라고 일꾼들은 신이 난다. 지난 추석을 전후로 쏟아진 비로 모래가 모두 쓸려 가 자리가 횡한 자리에 모래가 다시 채워지자 전교생의 놀이터가 되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여자 아이들이 흥분을 했다. 자신들이 쌓은 산이 사라졌으니 한 아이는 울고 다른 아이들은 소리를 지른다. 눈물 앞에는 장사가 없다. 큰 소리 뻥뻥 치던 아이들이 삽을 들어 다시 평지를 산으로 만든다. 소리 소리 지르던 여자 아이들도 가고 남은 아이들은 다시 8개의 산봉우리를 만들고는 지리산 둘레길을 만들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마을도 만들고 작업을 끝냈다. 한 아이가 한 구석에서 뭔가를 만든다. 뭘 만드니? 응 집이야 산이 이만한데 집이 이렇게 커? 그럼 이건 우리 학교야 아이는 학교를 봉우리 사이에 들어선 마을보다 더 크게 지었다.


삽 4자루는 아이들에게 소통의 수단이요 삶의 질곡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난 계속 웃는다.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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